Druid RAW novel - Chapter 277
0276 왕눈이, 큰눈이(2)
“이게 화장실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야. 뭔지 이해했지?”
동물들을 위해, 화장실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동물원 전역에 설치해둔 상태였다. 그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로 안내해 주는 화살표가 바닥 곳곳에 있었다.
“화장실!”
“그래, 화장실.”
“이건 무엇?”
“……하아.”
화장실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화살표라고 알려준지 딱 10초. 이 녀석들은 그 새 그 사실을 까먹었다.
“과학자들도 참 대단해. 이걸 어떻게 발견했다냐.”
타조들의 기억력이 10초라는 걸 어떻게 확인한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타조들에게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금세 요령을 깨우칠 수 있었다.
10초가 지났을 때 까먹는다면, 그 10초 안에 또 가르쳐 주면서 반복을 하면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10초가 지나서 다 잊기 전에 다시금 입력을 시키고, 다시 갱신된 10초 안에 또다시 입력 시키면서 머리에 남도록 하면 생각보다 쉽게 가르칠 수 있었다.
“화장실로 한 번 너희들끼리 알아서 가봐.”
“화장실!”
“그래그래.”
“어디로?”
“…….”
지시한 것을 10초 안에 잊어버리는 상황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화장실로 가라는 말에 화살표를 따라서 움직였지만, 이내 자신들이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까먹은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이 녀석들, 자기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배변 욕구를 느끼게 되면 화장실을 잘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배변 욕구까지 잊는 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나마 동물원 관람로에 마구잡이로 싸갈기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이 됐다.
그렇게 왕눈이와 큰눈이에게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나도 이제 진짜 늙었네.”
두 녀석을 가르친 것이 전부였는데, 벌써부터 지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덟 살이 된 딸이 있는 아저씨가 되었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근처 벤치에 앉아 두 타조들이 잔디를 뜯어 먹고 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 타조다.”
“신수님도 있네? 새로 들어온 동물 교육하나 보다.”
그리고, 동물원이 오픈되었기에 찾아온 관람객들이 그런 나와 타조들의 모습을 보며 다가왔다.
제게 가까이 다가오는 관람객들을 잠시 바라보던 타조들 중에 왕눈이 녀석이 갑자기 몸을 크게 낮췄다. 그러더니, 목을 뒤로 한껏 젖히며 날개를 부풀리고, 몸을 좌우로 퍼득퍼득 움직였다.
“솨랑해요오~!”
바로, 수컷 타조가 암컷들에게 구애할 때 한다는 구애의 춤이었다.
“……야, 손님한테 구애하지 마라.”
“앗, 이거 구애하는 거예요?”
“네. 사랑한다네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놈들, 이제는 자기들 종족마저 잊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손님은 그저 즐거운 건지, 구애의 춤을 열심히 추고 있는 타조를 바라보며 무척 즐거워하고 있었다.
“자기야, 들었어? 쟤가 나 사랑한다는데?”
“내가 타조를 질투해야 해?”
“응! 해줘!”
“……차마 타조까지 질투하진 못하겠다.”
“이잉!”
눈꼴 시리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관람객들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도 오래가지 못했다.
“응? 누구?”
10초짜리 구애 덕분이었다.
순식간에 벌떡 일어나, 언제 구애했냐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타조는 다시금 바닥에 자라고 있는 잔디를 찹찹 뜯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조금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다른 동물들을 보러 갈 생각인지 손을 붕붕 흔들며 떠나갔다.
“자, 그럼 우리도 다시 교육을 시작해 볼까.”
잠깐 쉬었다고 그래도 피로가 많이 사라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곧바로 왕눈이와 큰눈이를 데리고 주변을 돌아다녔다.
관람객들에게 타조가 들어왔음을 알리며 인사시키는 것과, 사람들과 교류를 가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사람들이 다가올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공격!”
“공격하면 안 되지 임마!”
“도망!”
“……그래, 도망치는 건 뭐 알아서 하고. 웬만하면 적당히 호응해 줘. 그럼 맛있는 것도 얻을 수 있다고.”
당연한 말이지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주의사항을 몇 번씩 반복해서 알려주고 나서야 타조들이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였다.
2미터가 훌쩍 넘는 큰 키를 가진 두 녀석은 사이좋게 동물원을 누비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큰 눈을 멀뚱멀뚱 뜨고 진득하게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가까이 다가가 10초 정도 구애의 춤을 추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덤으로 건초나 과일 조각 같은 것들을 받아먹었고 말이다.
아무리 10초에 지나지 않는 기억력을 가진 타조라고 해도, 먹을 것을 얻는 방법까지 쉽게 잊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타조 두 마리를 간신히 동물원에 적응시키고 나니, 점심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어우, 배고프네.”
타조들에게 지식을 때려 박느라 심력을 소모했더니, 허기가 느껴졌다.
뭘 먹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으니, 누군가가 다가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어, 누나. 휴대폰은 다 고쳤어?”
“응, 사람이 많아서 생각보다 조금 더 걸렸네. 근데 여기서 뭐해? 타조들은?”
“타조들은 풀어놨어. 제법 교육됐거든.”
누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종이봉투 하나를 넘겼다.
“밥 안 먹었지? 오는 길에 샌드위치 가게가 새로 생겼길래 사 왔어. 같이 먹자.”
종이봉투 내부를 보니, 잘 포장된 샌드위치 두 개가 보였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잘 됐다 여기며, 그대로 근처에 있던 벤치를 차지하고 앉아 점심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오, 이거 맛있네.”
“그래? 나도 먹어볼래. 나눠 먹자.”
“자.”
나와 누나는 사이좋게 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며 조금은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압빠! 엄마!”
그리고, 샌드위치를 다 먹고 나니, 마침 학교에서 돌아온 소은이가 우리를 찾아왔다. 타조가 들어온 것을 보고 학교에 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곧장 집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왕눈이랑 큰눈이 어디써?”
“글쎄? 마음대로 돌아다니라고 풀어뒀는데. 아, 저기 있네. 관광안내소 옆에.”
“와앙!”
주변을 둘러보다, 타조를 발견하고 알려주니 소은이가 호다닥 달려갔다.
“수환아, 저거 타조가 구애할 때 추는 춤 아니야?”
그리고, 두 마리 타조가 동시에 소은이에게 구애의 춤을 추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니, 큰눈이 저 녀석은 암컷인 주제에 저러고 있네.
“후헤헤헹! 나두!”
“허이구야.”
나는 소은이도 팔을 벌리며 몸을 좌우로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그래도 구애의 춤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만 이전과 다른 차이가 있다면 타조들이 춤추는 이유를 까먹고 멈춘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소은이가 갑자기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온 탓이었다.
“엄마!”
“응? 왜 그러니?”
“나, 나! 유치원 때 쓰던 책 어디써?”
“유치원 책?”
“웅!”
우리에게 달려온 소은이는 갑자기 유치원에서 사용하던 교재를 찾기 시작했다. 왜 그러나 싶어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창고에 고이 모셔둔 책들을 꺼내왔다.
그것을 보여주니, 소은이가 책들 사이에서 한 권을 쏙- 빼내어 다시금 타조들에게로 달려갔다.
“1 더하기 1은 2! 2 더하기 2는 4!”
그리고, 냅다 타조들에게 더하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타조들의 지능 수준을 궁금해하던 소은이답게, 자신이 직접 가르쳐보면서 어떤 수준인지 판가름하려는 것 같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잇! 1에다가 1을 더하면 2라니까아!”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콩콩 두드리며 성을 내는 소은이의 모습 덕분이었다.
“타조를 똑똑하게 만들겠다더니, 아주 공부를 시키고 있네?”
“그래서 자기 유치원 때 책을 꺼내달라고 했구나.”
“지금 소은이 기준에선 유치원 때 배운 게 가장 쉬운 거라서 그렇겠지. 왜, 예전에 그런 말 있었잖아. 대학생은 고등학생 시절이 좋았고, 고등학생은 중학생 시절이 좋았고. 그거 결국 태아 시절이 좋았다- 까지 갔던 거 같은데.”
내 말에 누나가 그건 맞는 말이라면서 푸흐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가슴을 콩콩 두드리던 소은이가 우리에게 달려온 것이.
“압빠! 도와줘!”
“뭘?”
“타조 똑똑하게 만들기!”
“어이구야.”
도도도도- 달려온 소은이의 당돌한 외침에 아찔해졌다. 오전에 겪었던, 타조들의 교육이 다시금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아, 맞아. 네가 휴대폰 바꾸라고 했었지? 이참에 어떤 거로 바꿀지 찾아봐야겠다.”
“자, 잠깐만!”
이마를 짚고 오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치니, 곁에 있던 누나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분명! 100% 확신하는데, 귀찮아질 것 같으니 도망치는 것이었다.
“도망가는 거지?!”
“무슨 소리니? 내가 도망을 왜 가?”
“근데 왜 갑자기 이 타이밍에 일어나는 건데?”
“그, 그거야……. 나, 나는 남편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아는 아내이기 때문이지! 네가 휴대폰 바꾸라며!”
다급히 변명하는 느낌이 다분한 외침이었다. 100% 확신하는데, 도망치는 것이었다.
“아니, 무슨…….”
“아무튼! 나는 휴대폰 검색하러 갈 거야! 수고해!”
누나는 우리가 먹었던 샌드위치의 잔해를 수거해서 도망쳤다.
제길.
“압빠?”
“아, 아냐.”
내 옷을 붙잡고 올려다보는 소은이의 시선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소은이도 동물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 엄마보단 내가 더 필요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아빠랑 같이 타조들 가르쳐 보자.”
“웅! 우리가 꼭 타조를 똑똑하게 만드는 거야!”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는 소은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무척 귀여운데, 타조를 또 가르칠 걸 생각하니 막막했다.
“네가 사과 한 알을 먹고, 또 한 알을 먹게 되면 두 알을 먹은 거야.”
“한번 잔디를 쪼면서 일곱 개의 잔디를 부리에 물었는데, 그중에서 세 개가 빠져나갔어. 그러면 결국 남은 건 네 개지.”
“소은이가 왕눈이의 머리를 세 번 쓰다듬고, 큰눈이의 머리를 여섯 번 쓰다듬었어. 총 아홉 번을 쓰다듬은 거지.”
“어제 화장실을 세 번 가고, 오늘 두 번 갔어. 그럼 총 다섯 번을 간 거야.”
나와 소은이는 정말 열심히 두 마리 타조에게 덧셈을 가르쳤다. 소은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쓰던 교재를 이용해서 말이다.
이 녀석들이 글을 읽지는 못해도, 예시가 무척 많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나씩 하나씩 습득하기 시작했다.
“5 더하기 3은 뭘까?”
“8!”
“정답!”
한 시간 정도 열심히 머릿속에 때려 박아주니, 드디어 결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9 더하기 7은?”
“…….”
다만, 결과의 숫자가 두 자리를 넘어가게 되면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단 한 가지의 문제가.
덧셈을 하는 과정에서 10초가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응? 무엇?”
“으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앙!”
나와 소은이는 답답함에 소리를 내지르며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어휴 속 터져!
“왕눈이랑 큰눈이가 좀 똑똑해졌으면 조케써!”
“그러게 말이야. 제발 좀 똑똑해졌음 좋겠다.”
나와 소은이는 아주 일치되는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의 단합력은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마치 진화의 섬에서처럼 말이다.
조금씩 조금씩 타조들이 습득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간단한 계산 결과를 도출해 내는데 9초가 걸렸던 상황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1 더하기 1을 계산하는 데 9초가 걸렸다면, 그다음 날에는 8초가 걸렸다. 또다시 시간이 흐른 다음날엔 7초가 걸리는 형태였다.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나와 소은이는 희망을 갖고 교육을 시작했다. 물론, 나는 타조들의 교육도 교육이지만 덤으로 소은이의 교육도 겸하고 있었다. 가르치려면 본인이 먼저 알아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소은이에게 수학 공부를 시킨 것이었다.
어쨌거나, 우리 두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초능력을 통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에 그 결과가 아주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72 곱하기 32는 뭐게?”
“2304!”
두 자릿수와 두 자릿수의 곱셈까지 아주 빠르게 도출해 내고 있는 것이었다.
“히히, 타조들 엄청 똑똑해졌어! 나보다 계산 잘 해!”
심지어, 그 수준은 소은이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직 구구단을 다 외운 정도에 지나지 않은 소은이였기 때문에, 두 자릿수와 두 자릿수의 곱셈은 암산으로 하지 못했다. 그나마 타조들을 가르치면서 작은 수 정도는 할 수 있게 된 상태였다.
덕분에, 소은이는 수학 숙제를 타조들과 함께 하는 지경이 되었다.
“왕눈아, 83 곱하기 31이 뭐야?”
“2573!”
“앗싸! 정답이다!”
자기가 열심히 풀어낸 수학 숙제를 검사할 때 타조들을 계산기로 쓰는 실정이었다.
“그러엄, 121곱하기 91은?”
“…………응? 무엇?”
“에엥, 압빠! 왕눈이 또 바보 돼써!”
다만, 여전히 생각하는데 10초가 넘는 것들은 답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저건 어떻게 죽어라 노력해도 안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