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8
0027 자판기 아저씨(1)
동물들의 일상 같은 Vlog를 찍고, 영상을 업로드하고, 건물의 공사 과정을 한 번 훑어주며 관심 있는 척도 해주고, 개들을 이끌고 산책을 갔다가 뻗어버리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덕분에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흘러, 구독자의 가정방문이 있는 토요일이 되었다.
나는 누나와 함께, 촬영을 할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봐야, 깔끔한 옷을 챙겨 입고 새로 구매한 액션캠을 들어올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자, 오늘은 제게 사연을 보내주신 구독자 분의 집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촬영을 시작하자, 나는 곧바로 미리 준비해둔 대사를 읊었다. 평소처럼 단순히 동물들의 Vlog 형식의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흐, 흡…….”
누나도 내 모습이 어색해서 웃긴지, 어떻게든 웃음을 참겠다고 흡흡 거리고 있었다.
나는 애써 그런 누나의 모습을 무시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도대체 어떤 사연인데, 제가 직접 가느냐! 그건 바로, 아빠만 보면 짖는 강아지 때문입니다.”
“아빠만 보면 짖는 강아지요?”
대사를 읊는 도중 누나의 난입이 있었다. 물론, 다 사전에 계획 된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로봇같이 말을 할 리가 없지.
“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다는데, 얼마 전부터 견주님의 아버지만 보면 강아지가 하도 짖어대서 스트레스라고 하네요. 주변에서 민원도 들어올 정도로요.”
“와, 그러면 꽤 심하게 짖나보네요?”
“그렇죠. 견주께서 직접 찍은 영상을 보내주셨는데,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만 보면 짖으니, 아버지께서도 강아지가 싫어지셨다고 할 정도라고 합니다. 녀석의 행동이 교정되지 않는다면, 견주께서 강아지와 이별을 해야 할 수도 있을 수준이죠.”
“안타깝네요.”
“그렇죠. 견주께서도 그렇고, 견주님의 아버지께서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얼른 해결해야 하니, 바로 가볼까요?”
누나의 대사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오프닝 촬영이 끝났다.
“어우……! 어색해 죽겠어!”
액션캠을 내려놓은 누나는 어색하다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 모습에 결국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않아도, 촬영을 할 때 액션캠을 들고서 어색한 얼굴로 대사를 말하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우, 웃지마아!”
내 웃음에 애교를 부리듯 내게 다가와 나를 짤짤 흔들어대는 누나였다.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웃음을 짓게 만든다는 걸 모르는 걸까?
잠깐 누나와 애정행각을 벌이다 보니 어느덧 출발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이 보다 더 늦게 출발한다면 도착하기로 한 약속 시간에 늦을 상황이었다.
“일단 움직이자. 늦겠네.”
내 말에 누나가 시계를 보더라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가방을 챙겨들었다.
“가자!”
웃지 말라고 닦달하다, 이제는 빨리 가자며 재촉하는 누나의 모습에 다시금 웃음을 흘리며 마당에 세워둔 차로 향했다.
당연히, 아빠 차였다.
다만 이번에 아빠의 반응은 달랐다. 짜증내긴 커녕 오히려 온화한 상태였다.
저번에 기름을 가득 채워주고 실내외 클리닝까지 싹 처리한 다음에 돌려드렸더니 보이는 반응이었다. 딴 건 몰라도, 기름 값이 비싼 요즘 기름 가득 넣어주는 게 제일이겠지.
“우리 나갔다 올테니까, 사고치지 말고 집 잘 지키고 있어.”
“주인님 다녀오세요!”
“올 때 츄르.”
“걱정 마시오. 이 내가 그대의 자택을 완벽하게 지켜주리다!”
누나와 내가 나가자, 우르르 몰려나온 동물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차를 몰아 천천히 이동했다.
“누나. 우리도 그냥 차 한 대 살까?”
“차를?”
“언제까지 아빠 차를 빌려서 탈 수는 없으니까. 우리도 편하게 이동하려면 한 대 정도는 있어야지.”
누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어디 이동할 때마다 버스나 택시를 타는 것도 나름 고역이었다. 집의 위치가 위치다보니, 먼 거리에 정류장이 있었고 콜택시도 잘 오려고 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으응, 여기가 교통이 조금 불편하긴 해.”
특히, 나나 누나는 집에서 나가면 몇 걸음만 걸어도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살았다. 그렇다보니, 현 상황이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그럼 두 대 살까? 나 하나, 누나 하나.”
“두 대나? 뭐 하러. 나 운전 못하는 거 알잖아.”
내 말에 누나는 잠깐 놀란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누나가 운전을 드럽게 못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누나를 연수 시켜준 아버님이 열 받아서, 누나의 면허증을 잘라버렸을 정도로.
“아 맞네…….”
“그냥 네가 원하는 걸로 사.”
“진짜? 내가 원하는 걸로?”
“그래. 네 벌이에 뭘 못 사겠어? 네가 스포츠 카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아.”
누나의 말에 나는 평소의 드림카들이 머릿속에 주르륵 떠올랐다.
사실, 말이 드림카지 그냥 평소에 타보고 싶었던 차량들이었다. 누나의 말대로 스포츠 카를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다보니, 생각나는 것들은 몇 개의 SUV였다.
예전이라면 30대 중반에나 구매해 볼까- 생각 정도 했을 차량이었으나, 뮤튜브 수익이 폭발하는 지금은 누나의 말대로 사지 못 할 것이 없었다. 수익을 몇 달만 모은다면 프리미엄 SUV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잠시 후, 우회전입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네비게이션의 안내 음성에 싹- 사라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와이프라 할 수 있는 누나와 함께 타고 있다보니 조심스러워진 운전으로 네비의 안내에 따라 차를 몰았다.
그리고 누나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삼십 분 가량 더 주행하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 꽤 잘 사는 집인가보네.”
이번에 구매한 우리 집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그마한 마당이 딸린 단독 주택이었다.
조금 올드한 느낌이 있는, 커다란 대문의 옆에 달린 초인종을 꾹- 눌렀다.
삐리루룩, 괴상한 소리가 초인종에서 울려퍼지길 잠시. 곧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악! 신수님이다아아아!”
“하, 하하…….”
여성……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앳된, 소녀의 감성이 그득한 외침이 초인종 너머로 들려왔다.
“수환이는 좋겠어? 벌써 소녀 팬도 생기고.”
“후후, 이런 남자를 남편으로 삼을 수 있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아.”
괜히 의기양양하게 구니 피식 웃음을 지은 누나는, 때 마침 삐익- 소리와 함께 열리는 대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갔다.
“신수니이이임! 안녕하세요오오오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담장 안에 있는 주택에서 문이 열리며 자그마한 소녀가 튀어나왔다. 아주 높은 텐션으로 나를 부르며.
그런 소녀의 품에는 자그마한, 고운 주황색 빛깔의 털을 복슬복슬하게 기르고 있는 포메라니안이 안겨 있었다.
‘저 녀석인가? 아빠만 보면 짖는다는 개가.’
나는 포메라니안을 잠시 바라보았다. 외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왔음에도 별달리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는 문제견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가 보내준 영상에 담긴 증거는, 그녀가 거짓으로 사연을 꾸며냈다곤 볼 수 없었다. 그 영상 속의 포메라니안은 한 아저씨를 향해 미친듯이 짖어대고 있었으니까.
“저는 세희예요! 김세희! 나이는 꽃다운 이팔청춘이라는 열여섯! 신수님이 나이가 더 많으시니까, 편하게 세희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얘는 세복이예요. 포메라니안이고, 이제 한 살 조금 넘었어요. 그리고, 얘가 그 문제아예요. 요즘 아빠만 보면 막 짖는다니까요? 신수님이 해결해주실 수 있다고 하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아빠가 맨날 세복이 갖다 버릴 거라고 그랬거든요. 처음에는 안 그래서 아빠도 얘를 예뻐해줬는데, 요즘은 보면 짜증부터 낸다니까요? 세복이가 얼마나 귀여운데!”
소녀, 세희는 어마어마한 수다쟁이였다. 나는 아직 한 마디도 못했는데, 혼자서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말 못 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나름대로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누나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세희야! 손님 모셔놓고 뭐 하는 거냐.”
“아 맞다! 신수님, 안으로 들어가요!”
세희의 수다는 집 안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끝을 맺었다. 우리는 드디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널찍한 거실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소파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성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간식! 간식! 간식! 간식!”
그리고, 그 아저씨를 보는 것과 동시에 세희의 품에 안겨 있는 포메라니안 세복이가 미친듯이 짖기 시작했다. 간식이라고.
‘말 못 해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견주에 간식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붙은 강아진가……?’
영상을 통해서도 동물의 말이 번역되는 내 능력으로 이미 포메라니안이 짖을 때 부터 간식이라고 짖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들으니 제법 충격이었다.
그렇지만 그 짖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빠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눈초리가 사나워지는 모습을 본 세희가 호다닥 제 방으로 도망간 탓이었다. 세복이를 안은 채로 도망갔으니 세복이도 더 이상 짖지 않았다.
“후……. 일단, 반갑습니다. 세희 애비되는 사람입니다. 세희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세희 아버지는 내게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하며, 나와 누나의 소개를 했다.
“그런데, 정말 저 세복이 놈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겁니까?”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예요.”
다행이군요- 하며 중얼거린 세희 아버지는 세희가 들어간 방을 빤히 바라보았다.
“세희 아버님? 괜찮으시다면 지금부터 촬영을 할까 하는데, 어떠신가요?”
“아, 촬영이요. 예, 괜찮습니다. 최상급 초능력자분이 도와주시는데, 촬영 정도도 못 해드리겠습니까.”
세희 아버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누나가 들어올리는 액션캠을 바라보았다.
나는 곧바로 세희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촬영을 진행했다.
언제 부터 이런 일이 있었나, 무슨 이유인지 알겠나 같은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솔직히, 세복이 저 놈이 왜 저러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딸이 좋아하니 저도 좋아하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저만 보면 미친듯이 짖더군요.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도 심합니다. 딸과 시간을 보내려고 해도, 세복이 놈이 저만 보면 짖어대니 딸이랑 함께 할 시간도 줄어들고요.”
다른 걸 다 떠나서, 세복이 때문에 세희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세희 아버지였다.
그런 세희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곧바로 세희의 방으로 찾아가 세복이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원래 이런 건 양측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야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양측의 이야기를 모두 듣게 된 나는 무척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세희 아버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저만 보면 짖는 건지 아신 겁니까?”
“그게 말이죠…….”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우지 못한 채, 사실을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세복이가, 세희 아버님을 간식 자판기로 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