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84
0283 외전 – N씨의 일상
부산에 사는 평범한 20대의 회사원, 노 씨 가문의 막내아들 동함.
그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평소처럼 출근을 준비했다.
한 번으로는 안 되는 알람을 두 번 듣고 자리에서 일어난 동함은 비몽사몽 한 얼굴로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혼자의 힘으로 자립해 보겠다며 뛰쳐나온 동함이었기에, 집은 그리 좋지 않았다. 빛도 잘 들지 않았고, 바깥의 풍경이 가장 잘 보이는 곳도 화장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볼 수 있었다. 화장실의 쪽문 너머로 수백 마리에 가까운 새떼들이 날아가는 것을 말이다.
“철새……는 아닌데?”
단순히 철새떼의 이동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는 것이, 그 새떼는 정말 온갖 새들이 다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앵무새와 제비 같은 것들이 무척 많았다. 앵무새들이 가진 화려한 색감은 멀리서 보아도 눈에 띌 정도였다. 희고 검은 제비도 눈에 띄는 편이었다.
“세상이 망할 징조인가? 망할 거면 출근하기 전에 망해라. 출근하고 망하면 억울하니까.”
동함은 이대로 콱 망해서 출근하지 않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헛된 망상을 하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찰칵- 찍었다.
1억 화소, 2억 화소. 이렇게 점차 늘어나던 카메라 성능이 어느덧 10억 화소까지 늘었다. 100배 줌이던 것도 어느덧 300배 줌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아주 선명한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수백 마리에 가까운 새떼의 모습을 아주 자세히 담을 수 있는 것이었다.
“어? 아. 신수 님이네.”
그리고, 그 사진에 담긴 모습을 확인한 동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에 나온 새떼의 가장 선두에, 독수리에 매달려서 날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수리에게 매달려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신수가 유일했다. 며칠에 한 번 정도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부산에 사는 사람들에겐 익숙한 모습이었다.
“아침부터 스케줄이 있었나?”
귀여운 동물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동함은 신수의 팬을 자처하고 있었다. 월세를 내고, 친구들과 만나 술도 마시고, 통신비나 휘빙, 웹플렉스 같은 OTT 서비스 구독료도 내다보면 남는 돈이 없음에도 신수의 둥지를 주기적으로 찾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동함은 양치를 위해 칫솔을 물며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재앙의 징조? 아니! 드루이드의 징조!] [드루이드가 검독수리 아라에게 매달려, 수백 마리의 새떼를 이끌고 이동하는 장면이 포착되어 화재다. 이동 경로의 끝 지점에 부산항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부산항에서 발견된 붉은불개미에 관한 일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붉은불개미? 이건 또 뭐야. 오, 찾아서 신고하면 포상금이 삼십이야?”
신수가 나서는 것을 보면 무척 유해한 생물 같았지만, 그래도 삼십만 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동함은 딱 한 마리만 앞에 나타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재빨리 씻고, 옷을 챙겨 입은 동함은 그대로 집을 나섰다.
지하철로 15분 거리에 회사가 있었기에, 그대로 지하철을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휴대폰으로 오늘 할 일이 뭐가 있나- 체크한 다음, 곧바로 뮤튜브를 실행했다. 쇼츠를 보면서 가면 시간이 뚝딱이었다.
“푸르릉.”
“응?”
그런데, 그 순간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함은 곧바로 뒤를 돌아 보았고, 무척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황금 빛깔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커다란 말 한 마리가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말이 바로 뒤에서 콧구멍을 씰룩거리면서 바라보고 있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으헉!”
말이 있다는 것에 화들짝 놀란 동함이었지만, 이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할 수 있었다.
그 말은 동함도 몇 번이나 본, 유명한 말이었으니까. 더군다나, 그 말에 올라타고 있는 어린이는 더더욱 익숙한 아이였다.
신수의 딸이자, 귀여움의 대명사인 소은이가 말에 타고 있는 것이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공주님도 안녕?”
자주 마주치지는 못하지만, 출근길이 소은이의 등굣길과 겹치는 동함은 이미 몇 번이나 소은이와 인사를 주고받으며 안면을 익힌 상태였다.
황금빛 자태를 뽐내는 말, 엔초가 등 뒤에 바짝 붙어서 푸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게 하는 장난을 칠 정도였다.
“히?, 아저씨 빠이빠이!”
하지만 둘 다 가야 하는 목적지가 있다 보니, 딱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았으면 됐다는 듯이 소은이는 엔초를 타고 위풍당당하게 학교로 향했고, 동함 역시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다시 걸음을 옮겨야 했다.
“멍멍멍멍멍멍멍멍-!”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샛노란 털뭉치 하나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쌩하니 지나간 것이 말이다. 그것도 멍멍 짖어대면서.
“아, 놀래라. 마루잖아.”
동함은 방금 어마어마한 속도로 지나간 것이 마루임을 알 수 있었다.
부산에서 멍멍 짖으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질주하는 샛노란 털뭉치는 마루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것보다, 마루가 가방 같은 거 달고 있지 않았나?”
지나간 것이 마루임을 확신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동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루가 웬 가방 같은 것을 달고 호다닥 뛰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정말 마루가 아주 옅은 분홍빛이 감도는 흰색 가방을 달고 질주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당연하게도 동함은 그 가방이 누구의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아, 조금 전에 공주님한테 가방 없었네?”
가방의 주인이 밝혀지니, 마루가 그토록 급하게 뛰어간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보나 마나 가방을 놔두고 간 소은이를 위해, 마루가 가방을 가지고 소은이를 쫓아간 것이 분명했다.
아주 가끔이지만, 소은이가 지나간 다음 소은이의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경호원이나 동물들을 볼 수 있었으니 유추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나도 동물 키우고 싶다.’
동물들이 챙겨주고, 동물들을 챙겨주는 소은이를 생각하니 반려동물을 기르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동함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월세방에 사는 동함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방을 계약할 때, 반려동물을 기르지 못한다는 조항이 떡하니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동물 털에 심한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였다.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라 독신 가구에서 회사를 다니는 실정인지라 키우는 것 자체가 여의치 않았지만 말이다.
아쉬움에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며, 어제 구매한 로또가 당첨되길 빈 동함은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진짜, 그 신수인지 뭔지 하는 놈 너무한 거 아냐? 애들을 다 데리고 가버리면 어떡해!”
그런데, 지하철로 가기 위해 최단거리인 주택가를 지나가던 도중, 자신이 팬을 자처하는 신수를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팬을 자처하는 동함의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캣맘이 다 있네. 부산에서 멸종한 거 아니었나?”
그리고, 그곳으로 시선을 돌린 동함은 신수를 욕한 사람이 누구인지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한 손에는 일회용 그릇에 물과 고양이 사료를 가득 담아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듯한 사람이었다. 바로, 이제 부산에서는 사라졌다고 알려졌던 캣맘이었다.
신수를 욕한 것이 캣맘임을 파악한 동함은 곧바로 자리를 피했다. 가장 위험한 이들이 바로 이상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들과는 애초부터 상종을 하지 말아야 했다.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한 동함은 조금 전 보았던 캣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캣맘을 제외한 모두가 만족한다고 해도 될 정도로 사람들이 만족하는데, 거기에 쓸데없는 이유로 불편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길고양이들이 싹- 사라지며 큰 만족감을 얻은 사람들에는 동함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밤마다 애애오옹애애오옹, 잠을 방해하는 고양이들의 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집 근처에 더 이상 터져서 나뒹구는 쓰레기봉투도 없었으니 더더욱 만족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길고양이가 없어지니 쥐가 나올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깨끗하게 방역을 하고 다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쥐가 나오는 일도 없었다. 도시 전체가 깔끔하게 바뀌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물 털 알레르기가 심한 집주인은 만세까지 외쳤는데, 겨우 밥을 챙겨주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라니까- 라며 고개를 내저은 동함은 휴대폰에 보이는 시간을 확인하고서, 호다닥 달려나갔다. 까딱 잘못했다간 지각할 상황이었다.
소은이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그 여운이 너무 강하다 보니 걸음이 저도 모르게 느려졌던 탓이었다.
그래도 머리가 5 대 5 가르마가 될 정도로 열심히 달린 덕에 지하철을 놓치지 않았고, 간신히 지각을 역시 면할 수 있었다.
“노동안함이~! 오늘 아슬아슬한데?”
열심히 뛰어 사무실로 들어가니, 동갑인데다 같은 날 입사한 동기가 히죽히죽 웃으며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각한 사람이 점심에 커피를 쏘는 내기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공짜 커피 아깝다! 하고 외치는 동기의 모습에, 동함은 씩- 미소를 지었다.
“내가 오늘 누구 봤는 줄 아냐?”
“뭐 연예인이라도 봤어? 왜 그렇게 재수 없는 표정이야.”
“후후, 마음껏 부러워해라. 오늘 내가 출근길에 공주님을 만났다 이거야. 아저씨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도 해줬다고.”
“공주님? 잠깐만. 공주님이면 그 공주님?”
“그래! 신수 님 딸! 엔초 타고 학교 가는 길에 마주쳤다는 거 아니겠냐.”
“와 씨! 신세권 개 부럽네 진짜!”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던지는 동기의 모습에 괜히 어깨가 으쓱여지는 동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뒤이어, 부장님이 허허- 웃으면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둘은 이제부터 근무시간이란 생각을 하며 재빨리 자신들의 자리로 향했다.
“예, 전산팀 노동함입니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회사다 보니, 계속 자잘한 일들이 몰려왔다. 동함은 잠깐 생긴 여유에 스트레칭을 하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10:10]“뭐지? 과거로 회귀한 건가……? 왜 아직도 열 시지.”
분명 세 시간은 일한 거 같은데- 생각한 동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도 가고, 오는 길에 탕비실에서 커피라도 한 잔 타서 올 생각이었다.
커피를 들고 화장실에 가긴 애매하다는 생각으로, 동함은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화장실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물이 쏴아- 하고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곳은 몰라도, 화장실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는 것이 조금 어색한 동함은 볼을 긁적이며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이내 쓸모없는 고민이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 물소리를 만들어낸 것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야오옹.”
“아, 울프였구나.”
바로, 부장님이 매일매일 데리고 다니는 울프였다. 얼굴 생긴 것이 뭔가 늑대 같다며 부장님이 지어준 이름을 가진 고양이였다.
신수가 길고양이들을 싹- 데리고 간 다음 분양한 고양이들 중 한 마리로, 인간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아주 기가 막히게 사용하는 녀석이었다. 신수의 교육 덕분이라는데, 동함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신기했다.
“야-아아.”
특히, 수고하라는 듯이 울며 스쳐 지나가는 걸 보면 더더욱 신기하게 여겨졌다.
자신의 바짓단을 스치고 지나간 울프를 멍하니 바라보던 동함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하려던 것을 마저 진행했다.
화장실도 가고, 탕비실에서 커피도 타서 자리로 돌아온 것이었다. 물론, 탕비실에서 커피 하나만 들고 온 것은 아니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동함답게, 탕비실에 있던 울프 전용 간식을 조금 가져온 것이었다.
“울프야, 이거 먹을래?”
“애옹.”
손에 간식을 쥐고 있음을 아는 건지, 울프가 다가와 애교를 피워댔다. 고양이의 눈높이에 맞춰 내린 손바닥에 얼굴을 비벼대고, 다리에 앞발을 올리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려 했다.
그런 울프의 모습에 헤벌쭉하게 웃음을 지은 동함이 울프에게 간식을 주었다. 자그마한, 고양이에게 한 입 크기인 간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간식을 맛있게 먹고서, 고맙다는 듯이 주변을 한 바퀴 훑고 떠나가는 울프를 바라보던 동함은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하고 괴물의 둥지 한 판 조지고 가야겠다.”
평범한 동물원인 신수의 둥지도 좋았지만, 야간에 운영하는 괴물의 둥지도 꽤나 좋아하는 동함이었다.
신수의 둥지 때는 할 수 없는, 조금 더 찐-한 교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가령, 호돌이에게 핥아진다든지, 뿌우뿌우에게 인간칼리버를 당한다든지, 전력으로 돌진하다가 1cm 앞에서 급히 멈추는 코뿔소를 본다든지, 콩콩이와 포옹을 하는 등의 찐-한 교감을 할 생각인 것이었다.
“……집에 가서 빤쓰랑 바지만 챙겨서 가야지. 또 사면 아까우니까.”
동함은 기필코 칼퇴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평소보다 더 집중해서 일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동함은 일을 열심히 한다며 칭찬을 들었고, 동물들과 찐-한 교감을 나누었으며, 미리 준비한 것으로 인해 추가적인 지출을 피할 수 있었다.
자그마한 굿즈를 받은 것은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