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85
0284 여름 방학의 시작
“어우, 덥다. 더워.”
지상의 것을 모두 익혀버리겠다는 듯이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었다.
덕분에 푹푹 찌는 듯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여름이라 어쩔 수 없는, 자연적인 것이지만 더운 것은 더운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화단을 관리하고 있으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해가 더 강해지고 오래 떠있으면 인간들은 힘들었지만, 식물들에겐 성장하기 최적화된 환경이 되기 때문이었다. 지금 관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엉망진창으로 자라날 것이 뻔했다.
이리저리 줄기들이 퍼져나가며 딸기 줄기 사이에서 수박이 뿅- 튀어나올 수도 있었고, 무게를 이기지 못한 고추들이 고정대가 아니라 바닥으로 퍼져나갈 수도 있었다.
그나마 챙이 무척 넓은, 누나의 모자를 가져와 쓰고 있는 상태여서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시원한 거라도 하나 줄까?”
“어…….”
더위를 타지도 않는 건지, 조금도 더워하지 않는 누나가 더위에 늘어지는 내게 차가운 커피 하나를 타주었다.
유리잔에 얼음에 부딪히며 타그르륵-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소리만 들었음에도 시원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캬, 시원하다 시원해. 이제 좀 살겠네.”
냉수 한 사발 들이켠다는 말처럼, 시원한 커피를 순식간에 반이나 비워냈다.
속에 시원한 것이 들어가 체온을 낮춰주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껏 덥게 느껴지던 것이 조금 가시는 느낌이었다.
“압빠! 나도 시원한 거!”
그리고, 커피를 테이블에 탁-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소은이가 호다닥 뛰어 들어왔다.
“응? 소은아, 학교는?”
점심이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인데 소은이가 집에 있는 것이 무척 의아했다. 원래라면 이 시간엔 학교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이 주말이나 공휴일이 아닌, 평일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오늘은 일찍 가는 날이니까 가래써!”
“오늘? 무슨 날인데?”
“방학식!”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소은이의 모습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곧바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 가지 문제를 찾을 수 있었다. 소은이의 방학을 캘린더에 기록해두긴 했는데, 정작 알림을 해두지 않았었다. 덕분에 오늘이 방학식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몰랐어?”
“알림을 안 해놔서 오늘인 줄 몰랐지.”
“개학식 날짜는 제대로 맞춰놔. 소은이 등교해야 하는데 까먹으면 큰일이잖아.”
나는 황급히 개학식 일정을 확인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개학식 일정에는 알림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었다.
“후히?, 이제부터 방학이야!”
“소은이 좋겠네?”
“웅! 은수랑 쿨쿨 자다가 은수랑 놀다가 지연이랑 놀러 갈 거야!”
벌써부터 방학에 한껏 놀 생각을 하는 소은이를 보며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압빠. 나도 시원한 거 먹고 싶어!”
“시원한 거? 저건 커피인데?”
“커피 말고! 시원한 거!”
내가 자주 마시는 것이다 보니 호기심에 한 모금 했다가, 쓴맛에 교육을 당했던 소은이는 커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원한 걸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아무리 엔초를 타고 등하교 하는 덕에, 높은 오르막을 걸어 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더운 날씨 자체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듯했다. 이마에 땀이 한 방울 살며시 맺혀 있었다.
“음……. 그럼, 엄마한테 오미자차를 시원하게 타 달라고 하자. 얼마 전에 아빠가 선물 받은 거 있거든.”
“그거 맛있어?”
“오미자라는 게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오미자인데, 한번 먹어봐.”
“오옹. 엄마!”
소은이는 곧장 누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서 만들어 달라는 듯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소은이의 모습에,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환아, 너도 한 잔 타줘?”
“응. 부탁해.”
누나가 집으로 들어가자, 소은이가 내 곁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맛있게 커야 돼!”
주먹만 하게 자라난 수박을 토닥토닥 두드린 소은이는 입맛을 다셨다. 내 초능력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 맛 하나는 뛰어난 수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박, 참외, 딸기 등등. 소은이가 좋아하는 달달한 과일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으니, 누나가 세 잔의 유리잔을 가지고 돌아왔다.
오묘한 붉은 빛깔의 액체가 얼음과 함께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와앙! 빨간 주스!”
누나가 주스를 내어주니, 소은이가 그것을 들어 올리며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빛깔을 구경하던 소은이는 이내 오미자차를 홀짝 마셨다.
“오-으엥.”
오미자차를 한 모금 마신 소은이는 순간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첫 맛이 제법 맛있게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곧바로 바뀌었다.
다섯 가지 맛이 나기 때문에 오미자라는 이름이 있을 정도로, 오미자는 여러 맛이 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차로 만든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차로 마시기 위해 청으로 만드는 과정에 설탕이 많이 들어가서 소은이가 처음에는 단맛을 강하게 느꼈지만, 그다음에는 다른 맛들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써! 셔!”
베- 혀를 내밀며 인상을 찌푸리는 소은이의 모습에 나와 누나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어른들이 쓴 게 몸에 좋다며 아이들에게 먹이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럼 안 먹을 거야?”
“우움…….”
누나의 물음에 소은이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첫 맛은 달고 좋긴 한데, 시고 쓴맛은 별로고. 그런데 또 시원한 건 마시고 싶고. 열심히 고민하는 것이 얼굴에 다 드러났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소은이는 이내 마당 구석으로 향했다. 바로, 벌들의 터전인 거대 벌집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다.
뚝- 떨어질 뻔했다가 대규모 보강공사를 한 다음, 튼튼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었다.
“꿀~ 꿀꿀~ 꿀!”
그리고, 소은이가 그 벌집으로 다가간 이유는 꿀이었다. 꿀이 남아도는 벌들이 꿀을 따로 모아놓는 곳으로 다가간 것이었다.
우리 가족을 위해, 특별히 엄선한 꽃가루만 이용해 만들어지는 꿀이 담긴 자그마한 벌집으로 다가간 것이었다.
숟가락이 들어갈 구멍이 있는 벌집에 다가간 소은이는 비치된 숟가락을 꺼내어, 벌집을 쑤셨다.
“히히, 맛있겠지?”
그렇게 벌집을 쑤셔 퍼낸 꿀을 컵에 넣은 소은이가 오미자차를 휘휘 저었다.
찬물이라 그렇게 꿀이 잘 녹지는 않았지만, 꿀벌들의 특제 꿀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금세 오미자차에 녹아들었다.
“소은아, 꿀 타니까 맛있어?”
“우움……. 맛은 있는데, 여전히 셔!”
아무리 특제 꿀이라고 해도 오미자의 신맛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하는 듯했다.
그래도 소은이는 레모네이드를 마신다는 느낌으로 오미자차를 맛있게 홀짝였다. 중간중간 시다고 혀를 내밀긴 했지만 말이다.
“아이가 일어났소이다.”
“어? 알았어.”
그리고, 오미자차를 마시는 소은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침실과 연결된 베란다에서 휴식을 취하던 유부 녀석이 푸드덕 날아왔다. 은수가 깼다는 소식을 가지고서.
“은수 깼다니까 이제 들어가자.”
“은수야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부의 말을 들었던 소은이가 은수를 부르며 집안으로 호다닥 뛰어갔다.
그 모습에 나와 누나는 다시금 피식 웃으며, 유리잔을 챙겨들고 소은이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히히, 은수야! 눈나랑 놀자!”
집으로 들어가니, 소은이가 2층에 있던 은수를 꼬옥 안고서 1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은수를 안은 탓에 계단이 잘 보이지 않아, 발을 휘적거리면서 한 칸 한 칸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모습이 귀엽긴 했지만 조금 불안하게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가 은수를 대신 안아들고 내려왔다.
“히히.”
거실로 내려와 은수를 바닥에 내려놓으니, 소은이가 달려와 은수의 손을 붙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눈나가 이제 방학이라서, 맨날 은수랑 놀 수 있다? 좋지!”
“우웅!”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우리는, 점심을 가볍게 해결하기로 했다. 어제 사둔 빵을 데워 먹기로 한 것이었다.
샌드위치, 바게트, 타르트, 카스테라 등등. 여러 빵들이 가득한 식탁에서 점심을 시작했다.
달고 신맛의 오미자차가 입맛을 돋우었는지, 소은이는 정말 ‘와구와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맛있게 빵을 흡입했다.
그리고, 소은이는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누나의 품에서 빵을 먹고 있는 은수에게 다가갔다.
“은수 많이 먹어?”
“왜? 은수랑 놀고 싶어서 그래?”
“웅.”
“그러면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자. 은수도 배가 불러야지 소은이랑 재미있게 놀 수 있겠지?”
“아라써!”
소은이는 누나의 말에 다시금 제 자리로 돌아가, 컵에 반쯤 남아 있던 우유를 마셨다. 물론, 시선은 은수에게서 떼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은수의 식사가 끝나길 얌전히 기다린 소은이는, 은수의 식사가 끝나자마자 은수를 데리고 놀러 가겠다며 사라졌다.
자기가 어릴 때 타고 다니던 왜건에 은수와 토끼즈를 밀어 넣고, 청호에게 왜건을 고정한 채로 말이다.
“다녀오게씀미다!”
“씀이다!”
손을 붕붕 흔들며 뛰쳐나가는 소은이와, 그런 소은이를 뒤따라 왜건에 탑승한 채로 손을 흔드는 은수를 바라보며 우리는 손을 흔들었다.
“청호랑 토끼즈가 같이 가면 딱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저번에 우리 둘 다 일 있어서 소은이랑 은수만 있었을 때도 저러고 놀다가 온 것 같더라?”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 당시 동물원을 찾았던 사람들이 영상으로 찍어서 SNS에 공유한 영상들을 여럿 본 상태였다.
까딱 잘못하면 넘어질 위기에는 토끼즈가 온몸으로 받아주었고, 조금 위험하다 싶은 상황이 오기라도 하면 청호가 미리 막아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영상들이었다.
아이가 아기랑 단둘이서 놀러나감에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조금의 걱정도 하지 않고, 오붓하게 둘이서 식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두 시간 정도가 지나고 돌아온 아이들은 나갈 때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저, 은수의 엉덩이 부근에 흙이나 나뭇잎 같은 것들이 조금 묻어 있을 뿐이었다.
“잘 놀았어?”
“웅! 재미있었어!”
“뭐 하고 놀았는데?”
“은수랑 자연구역에 있는 나무에 영양제도 주고, 열매도 따고, 숨바꼭질도 하고, 뛰기도 했어!”
재미있게 놀았다며, 소은이가 해맑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은 은수도 마찬가지인지,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소은이는 그다음 날에도, 또 다음 날에도 은수를 데리고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와 누나는 오붓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우리는 오히려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