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91
0290 감사패
우우웅-
부드럽게 차를 집 근처에 세우고, 어느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잘도 자네.”
“좀 놀랐었잖아. 아무래도 몸이 순간 강하게 긴장했으니까, 피로가 많았을 거야.”
어른인 나나 누나도 피로가 얼굴에 드러나고 있는데, 아이들은 오죽하겠냐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마냥 재울 수가 없었다. 이를 닦아야 하니 말이다. 나는 그냥 재워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누나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먼저, 안고 있던 은수를 욕실로 데려가 이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은수가 칭얼거렸지만 얄짤없었다.
“으우웅.”
“이제 코, 자자.”
칭얼거리던 은수는 침대에 눕혀 주니,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 품에 있던 소은이 차례였다.
“소은아, 이 닦고 자야지.”
“우우우우우웅.”
“이를 안 닦고 자면 입냄새난다고 친구들이랑 동물 친구들이 안 놀아 줄걸? 특히 동물들은 냄새난다고 싫어할지도 몰라.”
“그건 안 돼!”
축 늘어져서 칭얼대던 소은이가 욕실로 내달렸다. 역시 노는 게 가장 중요한 아이답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잠시 웃음을 터트린 나는, 집 앞에 세워두었던 차량을 주차장에 옮겨 놓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어디 문제는 없겠지.”
갑작스러운 급정거로 인해서 차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순간 걱정도 들었지만, 집까지 오면서 아무런 일도 없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깨를 으쓱이며 차 문을 잠그고 다시금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집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집에서 무언가가 쏙- 튀어나왔다. 새하얀 어떤 덩어리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 모습에 순간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정체 모를 뭔가가 튀어나오니, 조금 전의 고라니 녀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체는 금세 알 수 있었다. 그 정체 모를 새하얀 덩어리가 내게로 다가오더니 폴짝폴짝 뛰고 있었으니 말이다.
“압빠!”
“소은이야?”
“웅!”
새하얀 덩어리의 정체는 바로, 소은이가 하얀 보자기 같은 것을 뒤집어쓴 것이었다.
“어……. 아, 놀려고?”
“웅!”
그리고, 소은이가 그러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지금은 공포를 느끼며 더위를 싹 잊기 좋은 시기였기에, 괴물의 둥지가 가장 핫한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소은이가 마음대로 놀래켜도 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라는 것이었다.
“피곤한 거 아니었어?”
“히히, 양치하니까 다 깼어!”
“하긴……. 그럼, 조심히 놀다가 와. 너무 늦게 있지 말고. 많이 무서워하는 사람들 놀래키지 말고.”
“웅!”
힘차게 대답한 소은이는 다시금 새하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손을 앞으로 내밀며 뛰어갔다. 우히히히힝-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은 덤이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소은이가 달려간 방향에서 꺄아아악- 하는 비명이 들려왔다.
“잘 놀면 됐지 뭐.”
어깨를 으쓱인 나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호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우리 직원들 중 한 명이 급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장님!”
내게 찾아온 직원은 우리 동물원의 SNS를 관리해 주는, 배수북이었다.
동물원을 찾은 이들의 반응을 정리하고, 동물원에서 이벤트를 진행하게 될 경우 외부에 알리는 것을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하는 직원이기 때문에 꽤나 자주 마주치는 직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의아했다. 평범하게 주간 근무를 하는 배수북이 이 시간에 나와 마주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퇴근 안 했어?”
“커뮤니티 반응을 체크하다 보니 조금 늦었는데, 거기에 사장님이 연락을 안 받으니까 퇴근을 못 했죠.”
“나?”
배수북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부재중 전화 – 9건]휴대폰에는 총 9건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모두가 배수북이 건 전화였다.
늦은 시간에 차를 타고 움직이다 보니, 아이들이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전화를 무음으로 해두었다가 전화를 받지 못했던 것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사장님, 혹시 고라니랑 마주쳤어요?”
“고라니? 오, 어떻게 알았어?”
고라니를 만났던 걸 어떻게 알았나 싶다.
하지만 배수북의 말에, 그가 아는 것도 당연하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 우연히 찍었다는 영상을 뮤튜브에 올렸거든요. 사장님 차가, 현재 국내에는 딱 한 대 밖에 없잖아요? 산길에서 신수 봤다- 하고 영상을 업로드 한 거죠. 거기에 사장님이 고라니 머리통을 잡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고요.”
이걸 보라며, 배수북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회사 공식 SNS 계정을 관리하기 위해 준 휴대폰이었는데, 그 휴대폰 화면에는 내가 고라니 녀석의 머리통을 쓰다듬던 영상이 뮤튜브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댓글들이 무척 많았다.
[신수가 유도탄 맞은 건가?] [ㄴ 차가 박살 난 건 아닌 걸 보면 맞진 않은 듯.] [ㄴ 신수가 키우는 고라니도 아니고 ㅋㅋㅋ 차에 박고도 어케 멀쩡하겠냐고 ㅋㅋ] [제발 고라니쉑 참교육 좀 ㅠㅠ] [그래서 저놈은 왜 잡혀 있는 거?] [ㄴ보나 마나 신수 차에 뛰어들었다가 한 소리 듣는 거지 ㅋㅋ] [나 저기 알거든? 근데 저기 갈 때마다 고라니 봤음.] [열받냐? 아무도 멸종위기종인 나를, 억!]엄청난 수의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아무래도 나를 중점적으로 찍은 영상이다 보니, 알고리즘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간 탓인 것 같았다.
“지금 저희 공식 계정으로 문의가 엄청 많이 오고 있는 상태에요. 혹시, 사고가 나셨던 건 아니죠?”
“사고 난 건 아니야. 걱정 마. 그랬으면 집으로 바로 오는 게 아니라, 병원부터 가서 애들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검사부터 하고 있었을걸? 급정거 때문에 좀 놀란 것 같긴 했지만.”
“아, 그건 다행이네요.”
배수북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가 싶어- 휴대폰을 조금 더 바라보니, 몇몇 댓글들이 보였다.
[진짜 고라니 친 건 아니겠지?] [신수 방송 켜!] [아 왜 안 멈췄냐고; 다음 이야기 ㅈㄴ 궁금하잖아!] [ㄴㅠㅠ퇴근 버스라 내가 세우고 말고 할 수가 없단 말야 ㅠㅠㅠㅠ 잔업하고 퇴근하는 것도 억울하고 신수님 스쳐 지나가는 것도 억울해 죽겠구만ㅠㅠㅠㅠㅠㅠ] [ㄴ 미안;]단순히 고라니의 머리통을 잡고 있는 내 모습이 영상의 전부였기에, 사람들이 뒷이야기가 궁금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휴대폰에 팝업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공식 SNS에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신수님 고라니 어케 됐어요? 궁금해서 잠도 못 잘 거 같아요! 제발 알려주세요!??]제발 좀 알려달라며 DM을 보내는 것이었다. 알림이 온 것을 확인해 보니, 비슷한 메시지가 수백 개 이상 쌓여 있었다.
“방송을 한 번 하는 게 낫겠지?”
“네, 아무래도 사장님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사람들이 무척 궁금하다고 공식 SNS에 DM을 왕창 보내고 있었으니, 그 사람들의 호기심을 해소해 줄 필요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뭘 하더라도 ‘그때 어떻게 됐어요?’하고 질문이 날아올 것이 100% 확실했다.
결국, 나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곧바로 방송을 시작해야 했다.
[ㅅㅎ!] [고라니! 고라니! 고라니!] [고라니 이세계 포탈 태운 거임?] [정보) 고라니는 멸종위기종이다.] [그게?] [정보) 고라니 개체 수의 90%는 한국에 밀집되어 있다.] [고라니는 또 뭔 소리임? 뭔 일 있었음?] [신수가 국도에서 고라니 뚝배기 잡고 있는 영상 올라옴 ㅋㅋㅋ]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고라니에 대한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이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울산에서 밥을 먹고 오는 길에, 갑자기 차가 급정거를 하더라고요. 그, 옵션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충돌할 거 같으면 자동으로 세워주는 그 기능이 작동한 거였죠. 뒤에서 애들은 울지, 차는 삥삥거리지. 정신이 나갈 거 같은데 그 순간 보이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그 순간을 떠올린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고라니 놈이 전조등이랑 비상등 불빛에 번쩍이는 눈깔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모습이 보인 거죠.”
내 말에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었다.
‘ㅋ’만 남발하며 웃고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경험을 해서 고라니라면 질색하는 이들이 역정을 내는 이들이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고라니 때문에 그 사달이 났다는 생각 때문에 갑자기 열이 확 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냅다 내려서 녀석의 머리통에 꿀밤을 날리고, 훈계를 했었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차는 너를 잡아먹으러 오는 포식자가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던 과정에서 그 영상이 찍힌 거 같네요. 차가 몇 대 지나가긴 해서 언제 찍힌 건진 자세히 모르겠고요.”
[와 그걸 꿀밤으로 참아? 나였음 바로 레프트훅임;] [그래도 멸종위기종인데 때리는 건 좀 심하지 않았을까요?] [쟤는 멸종위기종이 아니라 그냥 유해조수임.] [근데 무슨 훈계를 한 거예요? 고라니한테도 통해요?]“훈계요? 아, 그냥 별거 아니었어요. 앞으로는 차에 뛰어들지 말라고 한 게 전부죠. 포식자가 아니니까 괜히 도망친다고 들이박지 말라고 한 거랄까요? 자식이나 친구들한테도 그렇게 알려주라고 하고.”
내게는 딱히 대단한 일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듯했다.
[ㄹㅇ? 진짜로? 구라 안 치고?] [그럼 이제 야간에 고속도로 맘 놓고 다닐 수 있는 거임?] [고라니가 전국에 다 퍼져 있으니까, 시간만 지나면 ㄹㅇ 고라니 로드킬 확 줄어들듯?] [신수님 진심 감사합니다 ㅠㅠ 앞으로 고라니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ㅠㅠㅠㅠ]사람들은 더 이상 도로 위의 고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며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가 한 것이, 시청자들이 바라는 수준의 효과가 있을까-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고라니가 생활하는 영역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라는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국내 야생동물 로드킬 비율 급감!] [울산 일부 지역, 최근 2주간 고라니 로드킬 전무!] [차를 보고 달려들지 않는 고라니? 드루이드의 작품!] [로드킬 1순위와 2순위를 다투는 고양이, 고라니. 두 동물 모두 드루이드에게 구원받다.] [부산은 로드킬이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돼.]실제로 로드킬 당하는 고라니의 수가 엄청 줄어든 것이었다.
특히, 내가 직접 교육을 해주었던 고라니가 있던 울산 지역에서는 고라니가 로드킬 당하는 일 자체가 보고되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또 하나의 감사패를 받을 수 있었다. 국제적으로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단체에서 보내준 것이었는데, 로드킬 예방에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며 주는 것이라고 했다.
“우와, 아빠 또 상 받았다!”
소은이는 그런 감사패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평범한 감사패와 달리, 이건 고라니를 조각한 듯한 조각상의 아래쪽에 감사패 문구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소은이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며, 뮤튜브 구독자 수에 따라 주는 버튼들이 모인 진열장에 장식했다. 이미 그곳엔 몇 개의 감사패를 비롯한 몇 개의 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호주에서 자연을 복원해 준 공로로 받은 감사패, 마약탐지견을 육성해 주어서 고맙다고 받은 감사패, 지진으로 인한 매몰자들을 구조했던 것으로 받은 감사패 등등. 대부분이 내 초능력을 활용해서 받아낸 것들이었다.
왠지 모르게 뿌듯함이 느껴지게 만드는 그 진열장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아직 비어 있는 몇 자리를 바라보았다.
“저기도 한 번 채워볼까…….”
받고 싶다고 그냥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빈자리를 금세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