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94
0293 생일파티
8월 7일.
소은이가 방학을 시작하고도 며칠이 더 지난날이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8월의 하루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우리 가족에겐 무척 분주해지는 날이었다.
“소은아, 내일 은수 생일인데 뭐해줄 거야?”
다름이 아니라, 내일. 8월 8일이 은수가 태어난 날이자 은수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움…….”
어쨌거나, 은수의 생일에 어떻게 해줄 거냐고 물어보니, 소은이가 볼을 부풀리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열심히 고민할 때 가끔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냥 은수가 좋아하는 거 줄래!”
“은수가 좋아하는 거?”
“웅. 뭔지는 안 알려줄 거야! 히히.”
개구진 웃음을 지어 보인 소은이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은수한테 줄 선물 사서 올게!”
“응? 지금?”
“웅! 다녀오게씀미다!”
지금 당장 갈 거라며, 소은이는 곧장 뛰어나갔다. 도대체 어딜 가려는 건가 싶어 재빨리 따라가 보니, 벌써부터 엔초의 등에 올라타며 내달리고 있었다.
“소은이가 대체 뭘 사 오려는 걸까?”
“그을쎄……?”
솔직히 통통 튀는 소은이의 생각을 이해하기란 힘들었다. 어느 정도 이게 맞겠거니- 예상하고 있으면, 전혀 예상 못 한 것들이 한 번씩 툭툭 튀어나왔다.
나는 소은이가 은수의 생일 선물로 무엇을 준비할지 예상해 보며, 근처에서 뒹굴고 있던 남캣을 툭 건드렸다.
“뭐.”
“하여간.”
툭 건드리니, 고양이 주제에 살쾡이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캣이었다.
정말 어딜 봐도 냥아치 그 자체인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나는, 녀석의 곁에 털썩 주저앉으며 녀석을 무릎 위로 올렸다.
귀찮다는 듯이 내 손을 툭- 쳤지만, 머리 부근을 슥슥 쓰다듬어 주니 금세 저항이 사라졌다.
“아무튼, 내일 은수 생일인데, 너도 뭐 좀 준비해야 되지 않겠어?”
솔직히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남캣은 은수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다른 누구보다도 은수에게 붙어 있는 녀석이 이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은수에게서 캣닙의 향이 난다며, 은수에게 매일같이 붙어 있는 녀석이 남캣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하루에 1시간 이상은 붙어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간혹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은수의 옆구리에 뱀이 똬리를 틀듯이 웅크리고 있는 녀석을 볼 수도 있었다.
“끙…….”
그리고, 그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남캣 녀석은 앓는 소리를 냈다. 인간들이 생일이라는 것을 챙기며 축하하는 것을 몇 번이나 보면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녀석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살짝 쳐진 귀가 번쩍 솟아오르고, 코 주변에 있던 수염들이 파르르- 떨렸다.
“미리 말하지만, 쥐 같은 거 잡아오는 건 안 된다.”
녀석의 모습에, 나는 불길한 생각이 딱 떠올랐다.
몇 년 전, 소은이의 생일이던 날. 그때 온갖 동물들이 소은이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벌였던 일을 말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남캣 이 녀석은 지나가던 참새 한 마리를 물어다가 소은이에게 준 일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살아 있는 녀석이었기에, 그 참새는 소은이의 곁에서 한동안 예쁨 받다가 한 암컷 참새를 따라 떠나갔었다.
그런 전적이 있는 남캣이었으니, 이번에는 은수의 선물이라며 쥐를 잡아 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에엑.”
“야이씨!”
쥐를 잡아 오려고 했던 건지, 남캣 녀석이 기분 나쁘다는 것처럼 내 바지에 헤어볼을 토해냈다. 내 초능력의 영향으로 헤어볼도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주제에, 굳이 내 바지에 헤어볼을 토해낸 것이었다.
그러고선 호다닥 도망치는 녀석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제 새끼들이 자기만 한 덩치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저 냥아치 기질은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으이그. 이번엔 네가 잘못했지.”
“내가 뭘?”
“고양이한테 애 생일 선물을 가져오라고 하는 게 말이 되니?”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걔라면 뭐든 일단 들고 오긴 할걸?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내 말에 누나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흘렀을 때 역시, 그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저거 우리 기념품 상점에서 파는 거 아니야?”
“……그러게.”
다름이 아니라, 남캣 녀석이 웬 당근인형 하나를 물고 왔기 때문이다.
녀석은 그렇게 가져온 인형을 내 앞에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아니, 진짜 어떻게 가져온 거지?
“야, 이거 훔쳐서 온 건 아니지?”
“훔치긴 뭘 훔쳐.”
“그럼 이거 어떻게 가져온 건데?”
“너구리들.”
“너구리? 설마, 포동이들?”
너구리들- 이라는 말을 남기고 그대로 홀연히 떠나는 남캣을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포동이들이라면 여전히 굿즈 교환권을 뿌리는 소매요정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남캣의 말에서 유추해 보자면 포동이들에게서 그 교환권을 빼앗아서 기념품 상점에서 인형을 가져왔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수환아, 설마 남캣이 포동이들한테 교환권 받아서 이걸 교환해 온 거야?”
“……받은 건지 뺏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남캣이라면 빼앗았을 확률이 무척 높긴 했다.
나는 남캣이 던지고 간 당근 인형을 주워들었다. 우리 기념품 상점에서 파는 거라 은수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긴 했지만, 남캣이 은수의 선물이라고 가져왔으니 챙기는 것이었다.
“그래도 은수가 좋아하는 게 뭔지는 잘 알고 있네. 하긴, 매일 붙어 있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은수를 보고 있으면, 은수가 뭘 좋아하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당근과 오이 인형을 끌어안고, 당근과 오이를 오물오물 씹고 있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남캣이 은수의 선물이라고 가져온 선물을 챙기고 있으니, 휴대폰이 지잉- 하고 진동을 울렸다.
“뭐지?”
갑자기 짧게 진동을 울리는 휴대폰에, 문자가 왔나 싶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가족 카드 결제 알림 – CS11 편의점 7,300 원 결제]“응?”
휴대폰이 진동을 울리며 알려주는 것은 편의점에서 결제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가족 카드라면 소은이가 들고 있는 것이라 이상한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나가서는 편의점에 왜 간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곧이어 또 다른 알림이 떠올랐다. 약간의 차이를 두고 여러 개가 떠오른 것이었다.
[가족 카드 결제 알림 – 25스톱 8,800 원 결제] [가족 카드 결제 알림 – CS11 7,300 원 결제] [가족 카드 결제 알림 – G마트 12,700 원 결제]“얘가 도대체 뭘 사는 거야?”
편의점 투어라도 다니는 것처럼 온갖 편의점에서 물건들을 구매했다는 알림이 왔다.
나는 순간, 소은이가 카드를 잃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소은이는 자기가 딱 먹고 싶은 것 정도만 사지, 이렇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사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짜 잃어버린 건가?”
“일단 소은이가 오면 물어보자. 소은이가 직접 사는 걸 수도 있잖아.”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소은이가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산 것들이 가득한 봉투들을 끌어안고서 말이다.
일단 그 모습을 보니, 소은이가 카드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편의점 투어를 다니면서 무언가를 사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소은아, 뭐 사 온 거야?”
“비밀!”
“엄마랑 아빠한테도 비밀이야?”
“우……. 그래도 비밀!”
소은이는 절대 보여줄 수 없다는 것처럼 몇 개의 봉투를 끌어안고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하지만 소은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친환경이니 뭐니 하면서 봉투를 워낙 얇게 만들다 보니 내용물이 훤히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거 당근이잖아…….’
소은이가 품에 끌어안으며 제품과 봉투가 밀착해, 그 내용물이 훤히 보였다. ‘맛있는 당근’이라고 적힌 제품의 문구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절대 안 보여 줄 거라며 호다닥 도망가는 소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은수가 당근 좋아한다고 당근을 샀나 보네.”
누나 역시 그 부분을 확인했던 건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요즘에 편의점에서 손질된 당근 같은 것도 팔잖아. 그거 사 왔나 보네.”
“그럼 편의점 여러 곳을 돌아다닌 것도 그거 때문이겠네?”
“그렇겠지. 보통 편의점마다 많아야 두세 개 정도 있는 거니까. 그냥 주변 편의점을 싹 돌면서 다 쓸어 온 거지.”
나와 누나는 한 편의점에서 당근을 사서, 다른 편의점으로 향했을 소은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푸흐흐-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소은이가 자기 방에서 열심히 무언가 꼼지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은수의 생일파티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은수, 생일 축하합니다! 와아!”
은수를 전용 의자에 앉혀 놓고, 머리에 고깔까지 씌운 상태에서 우리는 생일 축하 노래를 짧게 불러주며 박수를 쳤다.
그런 은수의 앞에는 주황색이 영롱한 케이크 하나가 있었는데, 특별히 주문한 ‘당근’ 케이크였다. 모양까지 당근으로 만들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은수가 벌써부터 케이크를 달라는 듯이 손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으며 웃고 있으니, 소은이가 선물! 하고 외치며 은수에게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소은이에게서 상자를 전해 받은 은수는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처럼 소은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은수의 두 눈이 번쩍- 치켜 떠지며 상자의 뚜껑을 붙잡았다.
휙!
상자의 뚜껑을 붙잡은 은수는 그대로 만세를 하듯 상자의 뚜껑을 날려보냈다. 그리고, 덕분에 고스란히 상자의 내용물이 우리에게도 보였다.
“역시 당근이었네.”
“근데 진짜 많이도 샀다.”
나와 누나는 소곤소곤, 아이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상자의 안에는 정말 빽빽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당근들이 들어 있었다. 실제로, 은수가 그중에 하나를 빼려고 낑낑거리고 있었음에도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뿌아!”
결국, 당근을 뽑아내지 못한 은수는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자, 은수가 당근 좋아한다고 누나가 선물한 당근.”
그중에 하나를 뽑아내어주니, 은수가 해맑은 얼굴로 당근을 냅다 입에 집어넣었다. 깨끗이 세척되어 팔리는 당근이라 다행이었다.
“은수야, 누나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오아어!”
입안 가득 당근을 밀어 넣은 은수는 고맙다는 것처럼 들리긴 하는 옹알이를 내뱉었다.
“히히.”
소은이는 그런 인사도 좋았던 건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미리 챙겨 두었던 것을 은수의 품에 안겨주었다.
“이건 남캣이 은수한테 주는 선물. 나중에 보면 고맙다고 해야 한다?”
“앙!”
당근을 입에 문 채, 은수는 남캣이 준 당근 인형을 품에 꼬옥 안아들었다.
그 모습에 잠시 웃던 우리는 은수를 위해 만들어낸 생일 케이크를 나눠먹기 시작했다. 당근 케이크라고는 하지만, 당근 맛이 강하지 않아서 소은이도 무척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당근 케이크를 가장 좋아한 것은 은수였다. 숟가락이 아니라 손으로 잡고 뜯어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