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96
0295 너도 쓸모가 있구나?(2)
“한무야, 왜 이렇게 오랜만인 거 같지?”
한무를 차 트렁크에 올리기 위해 리프트를 사용하며, 왠지 모르게 오랜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일매일 동물원을 돌면서 보는 녀석이었음에도 말이다.
“허허허허.”
물론, 한무 녀석은 어디 여유롭고 인자한 영감님처럼 허허 웃기만 할 뿐이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한무 녀석을 차에 올리기 위해서 리프트를 작동시켰다. 우우웅- 하면서 리프트가 힘겹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거북이인 알다브라땅거북이라는 종인 한무는 아주 열심히 성장해서, 어느덧 300kg을 넘기는 상황이었다. 그 크기도, 어린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라고 할 수 있는 탑승형 자동차 장난감보다 더 거대한 수준이었다.
녀석을 태우고 이동하기 위해서는 따로 동물 이송용 차량을 써야 할 정도로 자란 상태였다. 어차피 다른 녀석들도 데려갈 생각이라 이송용 차량이 있어야 하긴 하지만, 한무 녀석은 혼자 이동할 때도 이송용 차량이 필요할 정도로 거대해져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허허허- 웃는 한무 녀석을 차에 탑승시킨 나는, 다른 몇몇 동물들도 차에 태워주었다. 루돌프나 사올라 같은 녀석들을 차에 태운 것이었다.
동물들이 전용 칸에 자리를 잡고 앉은 모습을 확인한 나는, 한무의 등껍질 위에서 등껍질을 톡톡 두드리는 은수를 안아들었다.
“자, 은수는 아빠랑 같이 앉아 있자.”
은수를 안아든 나는, 따로 사람용으로 마련된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당연히 은수는 옆자리에 미리 설치해둔 카시트에 앉혔다.
“출발하겠습니다.”
어차피 외부 이동 시에 따라다니는 경호원들이 있었기에, 경호원들 중 한 명이 운전대를 잡아 주었다.
그렇게 천천히 충북 괴산군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아뿌아. 아뿌아.”
나와 단둘이서 나가는 것이 즐거웠는지, 은수가 당근인형을 휙휙 흔들며 나를 불렀다.
그런 은수와 적당히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니, 금세 목적지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 왔어요?”
“아, 그게 아직입니다.”
아니, 산길에 멈춰 서서 비상등을 켜길래, 벌써 목적지에 도착해서 주차하려는 것인 줄 알았다.
아직 도착한 것도 아닌데 산길에 멈춰 섰다는 것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량의 전면 유리를 바라보았다.
외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시선을 돌리니, 차량이 왜 멈춰 선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고라니?”
“예. 길가에 고라니가 있어서 잠시 정차했습니다.”
바로, 길가에 고라니 한 마리가 차를 빠-안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튀어나올 가능성이 아주 다분한 그 모습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정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두 눈을 크게 치켜뜰 수밖에 없었다.
“……쟤, 지금 뒤로 피했죠?”
고라니 녀석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기 때문이다. 마치 차가 오니까 일단 자기가 먼저 피한다는 느낌 같았다.
울산에서 고라니에게 가르쳤던 것이 이곳까지 퍼지게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곧바로 차량에서 내려, 고라니에게 다가갔다.
“아아아악!”
“도무지 저 비명 같은 소린 적응이 안 되네.”
고라니의 울음을 들으며 다가간 나는 곧바로 녀석에게 방금 뒷걸음질 친 이유를 물었다.
“친구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줬다아아아악!”
“오…….”
내가 예상한 대로, 울산에서 만났던 고라니로부터 이곳까지 내 가르침이 전파된 것이었다.
괜히 흡족해져, 녀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조심히 다녀.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보자아아아악!”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다시금 차에 올라타니, 내가 차에 오르는 동안 고라니가 어디론가 달려갔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다시 출발한다는 경호원의 말소리와 함께 차량이 다시 출발했다. 고라니 때문에 멈췄던 곳이 목적지에 무척 가까웠던 것인지, 오 분 정도를 더 달리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괴선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와아아!”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하차하는 순간, 몇 명의 사람들이 환영 인사를 해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신수 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글귀가 적힌 현수막마저 있었다.
나는 가장 앞에서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 여자는 내가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그 도아정이라는 공무원이었다. 옷에 도아정이라는 이름이 떡하니 박혀 있어서 알기는 쉬웠다.
“안녕하세요. 신수환입니다.”
“괴선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신수님께 후원을 하고 채팅을 했던 도아정입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도아정은 내 품에 안겨 있던 은수에게도 손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마치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큼큼, 괜히 번잡하게 신수환 씨를 모신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도아정의 상사 정도의 위치를 가진 듯한 아저씨 한 명이 헛기침을 하면서 다가왔다. 그러자, 은수에게 손을 조심스럽게 흔들던 도아정이 재빨리 손을 내렸다.
아무래도 현수막을 비롯한 환영 인사는 도아정이 계획한 것 같았다. 번잡하다는 소리에 도아정의 입술이 툭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아뇨아뇨, 괜찮아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번잡하다고 하기엔 인파도 거의 없었고, 주변이 시끌벅적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일단, 가시박이 덮었다는 미선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죠. 아무래도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가 없어서요.”
나는 공무원들을 상대하기가 귀찮았기에, 곧바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나이가 조금 있는 편인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무언가를 했다는 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해서 귀찮았다. 단순히 팬심에서 찍는 것보다, 자기가 누굴 초청했었다- 라는 느낌으로 기록을 남기려는 이들이 많았다.
아무튼, 귀찮을 수도 있는 일을 미리 막아버린 나는 곧바로 도아정의 안내를 따라 미선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내 키와 엇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크기의 나무들이 가시박에 점령당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변에 ‘미선나무’라는 이름이 적힌 팻말이 없었다면, 그곳이 미선나무의 자생지라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자원봉사자인지 아니면 따로 고용된 이들인지는 몰라도, 여러 사람들이 가시박을 열심히 뜯어내고 있는 모습 역시 볼 수 있었다.
“흐앙! 쩌 시러!”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버둥거리는 은수를 달래야 했다.
이미 가시박이라는 식물이 우리 동물원에 자란 적이 있는 만큼, 은수도 가시박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식물이 죽도록 만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무척 잘 알고 있었다. 은수가 좋아하던 산딸기나무 하나가 가시박으로 인해 말라죽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들을 죽이는 식물이 있다는 것에, 은수는 울상을 지었다.
“은수야, 아빠랑 같이 저거 치울까?”
“치어!”
가시박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은수가 주먹을 불끈 쥐며 가시박을 노려보았다.
“함무, 머거!”
그리고, 느릿하지만 꾸준하게 움직여 나를 따라온 한무에게 지령을 내렸다. 바로, 가시박을 먹어 치우라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가시박을 제거할 때, 동물원에 있던 초식동물들에게 아주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열매나 씨가 퍼져나가지 않도록 초식동물들이 싹 먹어 치웠던 것이었다.
“허허허허허허.”
나나 소은이와 다르게 은수와 대화가 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무는 은수가 원하는 것을 이해했다는 듯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미선나무로 다가간 한무는 담쟁이넝쿨처럼 나무를 뒤덮고 있는 가시박을 향해 목을 길쭉하게 뻗었다.
목을 길게 뻗어 가시박을 크게 한 입 물어뜯은 한무는 가시박을 빠르게 해치워갔다. 어마어마한 덩치에 맞게, 한무가 먹는 가시박의 양은 꽤나 많았다. 한 입에 한 줄기가 뭉텅이로 딸려 가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자, 너희도 먹어도 돼.”
내 말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동물들도 움직였다. 루돌프나 사올라처럼 사슴과의 동물들이 가장 먼저 달려나가 가시박을 뜯어 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녀석들은 가시박이 제법 입맛에 맞던 건지, 가시박을 처리하러 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들이 먹겠다며 자원한 녀석들이었다.
그런 만큼, 녀석들도 한무만큼이나 빠르게 가시박을 씹어 돌리고 있었다. 하나하나 따지자면 한무가 먹는 양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수가 여럿이다 보니 빠르게 가시박이 뜯겨져 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는 작업과 다르게, 뜯겨지는 것들이 모조리 녀석들의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가시박은 열매가 많기 때문에, 뜯어낸 것도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열심히 동물들이 가시박을 줄여 나가는 모습에, 은수가 드디어 표정을 풀었다. 여전히 볼을 부풀리고 있긴 하지만,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뭐냐아아아아악!”
그런데, 동물들이 열심히 가시박을 뜯어 먹는 것을 보고 있으니,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작업하던 이들이 우리 동물들 때문에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것인 줄 알았는데,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고라니?”
다름이 아니라, 뒤쪽 야산 방향에서 내려온 듯한 고라니 한 마리가 루돌프를 바라보며 놀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주변에 다른 작업자가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라니가 치명적일 정도로 위험한 동물은 아니지만, 뒷발차기에 당하는 경우는 치명적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또 만나서 반갑다아아아아악!”
그런데, 그 고라니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니, 고라니 녀석이 아는 척을 했다. 그런 녀석을 자세히 바라보니, 조금 전 산길에서 만났던 그 녀석이었다.
“아까 걔구나. 뭐, 이거 먹으러 온 거야?”
“지천에 널려 있어서 편하게 먹기 좋은 거다아아아아악!”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고라니 녀석은 곧장 주변에 있는 가시박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루돌프나 사올라들이 그러는 것처럼 턱을 열심히 씹어 돌리는 것이었다.
“오……. 제법 잘 먹네?”
“평소보다 더 맛있는 거 같다아아아악!”
“그래?”
나와 은수가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고라니 녀석은 가시박이 평소보다 더 맛있다며 가시박을 씹어 돌리는데 집중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녀석을 툭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이게 여기 엄청 많은데, 모처럼이니까 네 친구들 싹 다 불러와서 먹는 건 어때? 주변에 있는 애들 모조리 다 데려와서 다 같이 먹어.”
“좋은 생각이다아아악!”
고라니 녀석은 내 말에 턱을 열심히 씹어 돌리면서 긍정을 표했다. 그리고, 곧바로 어디론가 호다닥 달려가기 시작했다.
“신수 님, 저 고라니는 뭔가요?”
“야생 고라니네요. 아까 이쪽에 오는 길에 마주쳤는데, 모처럼이니 친구들을 싹 다 불러와서 먹으라고 했죠.”
“우와!”
고라니와 대화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도아정이 내 설명을 듣고서 기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고라니에게 친구를 싹 불러오라고 했다는 소리에, 얼마나 데려올까 기대하는 듯한 모습 같았다.
나도 솔직히 고라니가 다른 고라니들을 몇 마리나 데리고 올 건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 호기심이 경악으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아아아아아아악!”
“저거 먹으란 거냐아아아아악!”
“애기야 가자아아아아아악!”
“인간들도 있다아아악!”
“나 배고프다아아아아아아아악!”
다름이 아니라, 수십여 마리의 고라니들이 떼를 지어 우르르- 몰려왔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산길에서 만났던 그 고라니를 따라 찾아와서는, 곧바로 가시박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수십여 마리의 고라니들이 열심히 가시박을 씹어 돌리니, 미선나무 자생지를 뒤덮고 있던 가시박들이 사라지는 것이 눈에 띌 정도였다.
“와, 쟤들도 쓸모가 다 있네.”
가시박을 정말 순식간에 먹어 치우기 시작하는 고라니들의 모습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데려온 동물들도 적잖게 가시박을 빠르게 처리해가고 있지만, 고라니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쓸모라곤 하나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으니 놀라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꺄우아앙!”
그리고, 내가 고라니의 새로운 면모를 보고 감탄하고 있으니, 은수는 팔다리를 파닥파닥 흔들며 기뻐하고 있었다.
은수에겐 가시박은 꼴도 보기 싫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었으니, 은수로서는 마냥 기쁜 것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가시박 정리가 빠르게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팔다리를 파닥거리는 은수의 움직임에 맞춰 적당히 호응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