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
0002 초능력 검증(1)
“헥헥, 더 만져 달라!”
“……그래.”
만져달라며 자그마한 머리통을 손바닥 사이에 밀어넣는 솜주먹이었다.
잠시동안 솜주먹의 몸을 천천히 쓰다듬고 있으니 어머님의 잔소리 폭격이 서서히 끝을 맺고 있었다.
“아, 진짜 이제 잔소리좀 그만하면 안 돼? 수환이도 옆에 있는데 이게 뭐야.”
“허이구, 서방 있다고 부끄러워 하는 겨? 아주 여우가 따로 없네. 신 서방만 없었으면 바락바락 대들던 년이.”
“됐어.”
정확히는 반쯤 토라진 누나가 어머님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회피했기에 끝나가고 있는 잔소리 폭격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누나가 고개를 돌리며 토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과 동시에 현관의 도어락 소리가 울려퍼졌다.
? 띠딕, 띠리리리릭-
“왔슈?”
“와 현관 앞에 있노?”
도어락이 열리고 집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누나의 아버님이었다.
그리고, 아버님은 현관 앞쪽 거실 바닥에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대뜸 소리치셨다.
“뭐여. 이 놈아! 내 딸은 못 준다!”
어머님의 인사처럼 누나를 줄 수 없다고 하는 게 아버님의 인사 방법이었다. 물론, 그것 역시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기에 어색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아빠!”
“앞으로 밥 먹기 싫은겨? 이제 삼십 다 된 딸년 혼삿길 틀어막으려고 작정했어? 당신 때문에 하은이가 결혼 못하면 그 날 먹는 저녁밥이 당신 제삿밥 되는 줄 알어.”
누나와 어머님의 공격에 아버님은 흥, 칫 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셨다.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누구보다도 나를 좋아해 주시는 분이셨다. 애초에, 나를 부를 때는 사위라 부르는 분이기도 했다.
“근디, 우리 사위는 뭣하러 왔다냐?”
“그…… 뭐시여. 애니멀 커뮤…… 뭐시깽이가 됐다고 실험하러 왔다는디?”
“애니멀 커뮤? 그건 또 뭐 하는 거여.”
아버님은 의아함이 가득 담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셨고, 어머님에게 해드렸던 설명을 다시 한 번 해드렸다.
“오오, 그래서 솜주먹이가 자네한테 붙어 있는겨?”
“예.”
내 말에 아버님은 신기허구만- 하시고는 박수를 짝짝 치셨다.
그러자 방금까지 내게 붙어 있던 솜주먹이 홱 돌아서더니 아버님께 달려가, 두 무릎 사이에 안착했다.
“그래도 수환이 보다는 아빠가 더 좋나보네.”
“당연히 그래야제! 내가 요놈 시키한테 들인 돈과 시간이 얼만디!”
아버님은 누나의 말에 환하게 웃으시며 솜주먹의 몸을 막 쓰다듬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따지자면 거친 손길이라 할 수 있었으나, 솜주먹은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었다.
“쥔님, 쥔님! 좋아! 더! 아학!”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기뻐하는 솜주먹의 모습은, 정말로 아버님을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버님께서는 ‘그 아빠’였기 때문이다.
‘데려오면 내가 집을 나가던가 해야지!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어머님과 누나의 합공에 어쩔 수 없이 솜주먹을 데려왔으나, 정작 어머님이나 누나보다 더 솜주먹을 감싸고 도는 아버님이셨다.
심지어 뮤튜브까지 찾아보시며 솜주먹의 훈련을 직접 하신 분이실 정도로 솜주먹에게 진심이셨다.
그런 아버님의 노력 덕분에, 솜주먹은 웬만큼 훈련이 잘 된 강아지들 보다도 할 줄 아는 것이 많았다.
아버님과 솜주먹에 대한 추억아닌 추억을 떠올리던 도중, 누나가 내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수환아. 그럼 초능력 검증은 언제 할 거야? 신청서는 다 써 놓은 걸로 봐서는 조만간 할 것 같은데.”
“일단은…… 내일?”
“내일? 월요일에?”
“응. 이런 건 빼지 말고 당장 하는게 편하잖아.”
누나는 내 말을 듣더니 잠시 고민된다는 모습을 보였다.
“으음. 수환아. 나도 따라가도 될까? 한 번 보고 싶은데…….”
베시시 웃음 지으며 말하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친구가 같이 가고 싶다는데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었고, 초능력 검증의 경우에는 참관인 한둘 정도는 허용해주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 ◑ ● ◐ ○ ◑ ● ◐ ○
“초능력 검정 신청 완료 되셨구요. 저쪽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면 이 번호로 호출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시청의 초능력 당담 부처의 직원이 내미는 자그마한 번호표를 받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능력 검정에 대한 신청서는 미리 작성해두었기에 오래 기다릴 것도 없었다.
“아! 초능력이 아무래도 특수한 타입이다 보니 조금 늦게 호출될 수 있어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에!”
뒤돌아 대기실로 향하던 나는 뒤이어 까먹었다는 듯한 직원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먼저 대기실 의자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하은 누나에게 다가갔다.
“접수 했어?”
“어. 아무래도 준비할 게 많나봐. 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네.”
“얼른 불렀으면 좋겠다.”
“그러게.”
나는 나보다도 더 기대하고 있는 듯한 누나의 모습에 웃으며, 누나의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듯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어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관한 대화는 기본이었고, 이제는 특별한 주제가 된 나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대화의 주제가 떨어질 때 즈음이 되니 때마침 내 번호가 호출 됐다.
“십육 번 신청자님! 계신가요?”
“여기요.”
검증실에서 빼꼼 나와, 내 손에 쥐어진 번호표의 번호를 호명하는 직원에게 다가가 번호표를 내밀었다.
번호표를 받아 한 번 확인한 직원은 대충 주머니에 번호표를 쑤셔넣더니, 따라오라며 검증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아. 저기, 여자친구를 참관인으로 입회시킬게요.”
“제길, 커플지옥 솔로천국…….”
“예? 못들었는데,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아, 아닙니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참관인은 검증인의 허가에 따라 달렸으니까요.”
직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아함을 지우지 못했다.
‘분명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약간의 의아함이 있긴 했지만,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신경을 껐다.
직원을 따라 들어간 검증실 내부에는 약간의 기계와 몇 마리의 동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목줄을 찬 채로 얌전하게 앉아 있는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와, 테이블 위에 있는 볼펜을 슬그머니 바닥으로 떨어트리려는 고양이. 거기에 새장에 갇혀 있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있었다.
“일단 저희 쪽에서 하실 수 있는 검증은 기초 검증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등급 심사를 포함한 자세한 검증을 하시려면, 여기서 검증을 받으신 다음 상위 기관이나 전문 업체로 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기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직원이 안내하는 의자에 걸터 앉았다.
의자 앞 테이블에는 물리치료를 할 때 볼만한 저주파 치료기 패드라던가, 전기 치료용 스펀지 패드 같은 것들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이건 초능력 탐지기와 거짓말 탐지기가 합쳐진 기기입니다. 최근 초능력 관련 사기가 급증하는 터라, 이런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직원은 간단하게 설명하며 실례가 될만한 상황은 만들지 않을 거라며 안심시키고서 내 몸 여기저기에 패드들을 붙였다.
저주파 치료기의 패드처럼 차가운 겔이 붙으며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럼 일단 작동 실험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질문을 하면 진실과 거짓을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해주시면 됩니다. 먼저, 귀하께서는 하얀 티셔츠를 입고 계십니까?”
“네.”
“진실. 그럼, 지금 신발을 신고 계십니까?”
“아뇨.”
“거짓. 맞네요. 확인 됐습니다.”
직원은 내 이야기에 모니터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말 가볍디 가벼운 질문을 시작으로 한 검증이 드디어 시작 되었다.
“일단, 신청서에 보니 복수 초능력을 가지고 계신 걸로 작성하셨는데요. 이번에 검증 신청하신 건 기존의 물 온도를 맞추는 초능력이 아니라, 새롭게 개화된 능력에 대한 검증 신청인가요?”
“네.”
“새롭게 검증 신청하려는 초능력의 종류가 애니멀 커뮤니케이팅이 맞습니까?”
“네.”
나는 직원의 질문에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것에 따라 직원이 종이에 무언가 체크하며 기록하더니, 몇 번의 질문이 더 이어졌다.
능력을 활용한 경우가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로 사용했는지 같은 것은 물론이고 어떤 수준인 것 같냐는 질문 역시 있었다.
“거짓말 탐지에 걸리는 부분이 없으니 다음 절차로 넘어가겠습니다. 일단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반려동물들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질문들에 모두 진실되게 말한 나는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인 검증을 하겠다는 말에 살짝 긴장했다.
직원은 가장 먼저, 바닥에 볼펜을 떨어트려놓고 또 다른 목표를 물색하고 있는 고양이를 데려왔다.
“일단 이 녀석의 이름과 주인의 성별을 알아내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직원은 내 앞에 고양이를 내려놓고서는 기계에 떠오르는 수치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서 해보라는 듯한 모습을 취했다.
덧붙여 하은 누나 역시 직원과 비슷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직원은 몰라도 누나의 기대감을 져버릴 수는 없었기에, 고양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고양-”
“뭘 꼬라보냐. 뒤지고 싶어?”
“-이, 냥아치 새끼야.”
“흥.”
고양이는 정말 싸가지가 없었다.
정말로.
하지만 그래도 검증을 진행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곧바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나를 보지도 않고 그루밍을 해대는 그 모습은 다시금 짜증이 일었으나, 애써 억누르며 대화를 이어갔다.
싸가지 없는 말투에 반해, 고양이는 나름 협조적이었다.
“야. 너, 이름이 뭐냐. 이 냥아치야.”
“냥아치가 아니다. 내게는 페르난디오 알렉소 디아블랑카 조나단 4세라는 이름이 있다!”
“……아, 그래.”
고양이의 이름을 들은 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하며, 고양이의 주인이란 작자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너네 주인은 남자냐 여자냐?”
“내게 주인은 없다!”
“……그럼 집사는?”
“집사는 있지. 매번 내게 자기를 집사라고 하면서 먹을 걸 갖다 바친다.”
“그래. 그럼 그 집사는 남자야 여자야?”
“네 눈 앞에 있는데, 뭘 물어 보는 거냐.”
고양이의 말에 나는 절로 직원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고양이 이름을 왜 페르난디오 알렉소 디아블랑카 조나단 4세라고 지은 겁니까? 외우기도 힘들겠네요.”
“크, 크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직원은 내 말에 고개를 슬며시 피하더니 고양이를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놓았다.
원 위치로 이동한 고양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테이블 아래로 떨어트릴 물건을 선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