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03
0302 세끼(3)
“아하하핫! 장난이에요, 장난! 예상치 못하게 산책을 가긴 했는데, 제가 원래 산책 가는 걸 좋아하거든요.”
잠시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거리고 있으니, 바다 씨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장난이었다고 손사래쳤다.
“어후, 놀랐네요. 그때 산책 보낸 사람을 만나는 건 처음이라…….”
실제로 만난 경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 경험 덕분에 다음에 만나면 놀라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딱히 원망하진 않으니 걱정하지 마요. 오히려 덕분에 여름이에게 도움 되는 것들도 많이 알았거든요.”
토실토실한 웰시코기를 쓰다듬어 주는 모습을 보니, 반려견을 무척 좋아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편하게 바다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아, 형은 좀 아닌가? 아하하핫!”
“그냥 형이라고 할게요. 저도 잘 부탁드려요.”
나이 차가 좀 있긴 하지만, 형이라고 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바다 형과 적당히 말을 편하게 하기로 하고 있으니, 아주 짙은 보조개의 소유자가 다가왔다.
“꿀팁? 산책? 그게 다 무슨 소리예요?”
“아, 우리 도련님은 모르나? 수환이가 예전에 인터넷 방송으로 애견인들을 공격했거든.”
“공격?”
의문을 표하는, 도련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세진 씨가 의문을 드러냈다. 내가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사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나는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름아! 산책 가자고 졸라! 갈 때까지 졸라! 얼굴도 마구 핥아!”
“으악!”
내 외침과 동시에, 바다 형이 바닥으로 나자빠졌다. 여름이가 달려와, 목줄을 문 채로 냅다 몸통 박치기를 날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멍멍컹컹왈왈 짖어대는 여름이의 모습에 바다 형이 한숨을 푹- 내쉬며 여름이와 함께 달려나갔다.
“이런 거죠.”
떠나가는 바다 형을 향해 손을 휘휘 흔들어 준 나는 세진 씨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와…….”
벌써 시야에서 사라진 바다 형의 모습에, 세진 씨가 황당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반응은 딱 거기까지였다.
사라지든 말든 별 신경 쓰지 않는 건지, 내 뒤에 있던 동물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 그 독수리!”
“선물은 잘 받으셨어요?”
“설마, 그 숭어가?”
“네. 굶고 계시다고 해서, 갖다 드린 거죠.”
“한 마리로 무슨 선물.”
“……진짜 솔직한 편이시네요.”
내 말에 세진 씨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은 사실이라면서 말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안한데 몇 마리만 더 잡아다 줄 수 있을까?”
“괜찮아요.”
“고마워. 유부 너도 좀 가서 도와줘.”
“알겠소이다.”
내 부탁에 두 녀석이 퍼드득 날아올라, 바다를 향해 날아갔다.
“나도 잡을 수 이쪄!”
“잡아서 돌아올 수는 있고?”
섬이라고 해도, 해안에서 집까지 거리는 조금 긴 편인데다 오르막이었다. 페엥 녀석이 혼자서 물고기를 지고 오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녀석은 고개를 휘휘 내젓고선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날아간 두 녀석은 발 하나에 한 마리씩, 총 네 마리의 숭어를 잡아왔다. 마침 근처에서 튀어 오르던 숭어 떼가 있었다며, 아주 손쉽게 잡아온 것이었다.
“오오!”
순식간에 네 마리의 숭어가 추가되니, 세진 씨의 볼에 패인 보조개가 더더욱 짙어졌다.
“형, 볼에서 피나겠어!”
곁에 있던 피디가 그 모습을 보며 놀릴 정도로 말이다.
“어? 뭐야? 이 숭어는 뭐야? 바깥양반이 잡아온 거야?”
그리고,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던 성원 씨가 바닥에 놓인 숭어를 보며 놀란 모습을 보였다.
“아까 그 독수리가 오늘 손님이 기르는 애였나 봐. 숭어 좀 더 잡아 오라니까 네 마리나 더 잡아 왔네.”
“어이구야.”
주방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성원 씨가 바닥에서 퍼덕이는 네 마리 숭어를 보며 투덜거렸다. 손질이 귀찮다, 이걸로 또 뭘 해야 하나- 이야기한 것이었다. 하지만 말과 다르게, 그는 기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해준아, 불은?”
“어……. 그게 아직요.”
“왜? 그러고 보니, 바깥양반은 어디 갔어?”
“그게……. 산책……?”
“이 양반은 하필 왜 지금 산책을 가고 있어! 손님 대접을 해도 모자랄 판에! 도련님도 좀 움직여 봐, 이제. 언제까지 사장님처럼 앉아 있을 거야?”
숭어 네 마리를 양동이에 담고 있는 성원 씨의 모습과, 투덜거리는 세진 씨, 그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시선이 떨리는 해준 씨였다.
“어후, 더워 죽겠는데 불까지 피워야 해? 회 떠서 먹으면 안 되나?”
투덜투덜, 자리에서 느릿느릿하게 일어나는 성원 씨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가까이 다가갔다.
“제가 해봐도 될까요?”
“불 피우기요? 어……. 원래 손님은 쉬는 건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으시다니까, 한 번 해보세요. 해준아. 네가 좀 도와드려.”
“네.”
세진 씨의 말에 해준 씨가 우물쭈물 다가왔다. 꽤나 낯을 가리는 듯한 모습이어서, 덩달아 어색해지는 것 같았다.
“신문지 깔고 장작 쌓으면 되는 거죠?”
“네에. 얇은 걸 밑으로 깔면 조금 더 괜찮아요.”
내가 먼저 다가가니, 조금은 어색함을 털어낸 해준 씨와 함께,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장작을 쌓기 시작했다. 장작을 열심히 쌓은 다음, 곧장 불을 피우기 위해 라이터로 신문지에 불을 붙였다.
나름대로 캠핑도 몇 번 다니며 불도 붙여 보았기에, 자신은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신문지만 탈 뿐, 정작 장작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부채질을 조금 더 강하게 해야 해요. 팍팍. 어, 어어? 너무 센데요?”
부채질이 강해야 한다길래 있는 힘껏 했더니, 겨우 장작에 붙으려던 불이 확 꺼져버렸다. 불쏘시개로 쓰려던 신문지만 재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이야! 이게 얼마 만에 보는 한여름의 눈이야?”
옆에서 피디가 웃음기 가득한 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그제야 떠올랐다. 내가 캠핑에서 붙였던 불은 고체연료를 쓰던가, 화력이 짱짱한 토치를 사용했다는 것을 말이다. 예전에 무인도에 갔을 때도, 손재주가 뛰어난 초능력자인 김손이 불을 다 붙였었다.
“제가 할까요?”
“아뇨아뇨. 제가 한 번 해볼게요.”
괜히 오기가 생겼기에, 나는 어떻게든 불을 피우기 위해 열심히 부채질을 했다. 강하게 약하게, 자진모리장단으로, 4분의 3박자로, 안단테로, 알레그로로. 온갖 속도와 박자로 부채를 흔들었다.
하지만 신문지만 재가 되며 활활 탈 뿐, 장작에는 좀처럼 불이 붙지 않았다.
“비켜보시오.”
“왜?”
“바람을 그렇게 불어서야 되겠소? 내가 할 테니, 나오시오!”
그리고, 그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던 유부 녀석이 답답하다는 듯이 나를 밀어냈다. 퍼덕퍼덕 날개를 휘저으며 나를 쫓아낸 녀석은 내가 앉아 있던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저거 위험한 거 아녜요?”
“괜찮을걸요. 자기가 비키라고 한 거니까, 무슨 생각이 있겠죠.”
“어, 어?”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해준 씨가 갑자기 놀란 모습을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있던 자리를 차지한 유부 녀석이 장작을 향해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펄럭, 펄럭. 유부가 날개를 움직일 때마다 강한 바람이 장작을 향해 휘날렸다.
파르르륵! 파르르륵!
그리고, 녀석이 날개를 힘차게 움직일 때마다 불꽃이 화르륵 살아났다. 단순히 날기 위해 펄럭이는 느낌에 가까웠는데, 재 하나 날리지 않고 불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와, 불을 벌써 피웠어?”
순식간에 장작에 불이 옮겨붙으며 제법 강력한 화력의 불꽃이 솟아올랐다. 때마침 주방에서 나오던 성원 씨가 그 모습을 보며, 곧바로 냄비를 가져와 불 위에 얹었다.
내부에는 매운탕을 끓이려는 건지, 여러 재료들이 들어가 있었다.
“어우, 수환 씨. 덕분에 오늘 점심은 풍성하겠어.”
냄비를 올린 성원 씨가 손질된 숭어들을 아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다 얘들이 수고해 준 거죠 뭐.”
두 손을 뻗으니, 아라와 유부가 내 손 위로 올라탔다. 그 모습에 성원 씨가 신기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고맙다며 두 녀석의 목덜미 깃털을 쓸어주었다.
제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임을 아는 두 녀석은 적당히 호응해 주고선, 다시금 바닥으로 내려갔다.
“애들 이름이 아라랑 유부라고 했죠?”
“네. 아,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그럼, 수환이도 편하게 형이라고 해. 안에서 들으니까, 바깥양반도 그렇게 부른다며?”
얼떨결에 성원 씨. 아니, 성원 형과도 말을 트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갑작스레 말을 편하게 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세진 형도, 호준 형도 슬쩍 편하게 말을 해도 된다며 유도한 것이었다.
조금 남아 있던 어색함이나 불편함마저 사라지는 느낌에, 나는 편안히 평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성원 형이 분주히 움직이며 점심…… 시간은 좀 늦긴 했지만 어쨌든 점심이라고 하는 것을 준비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해주나!”
“네! 선배님!”
“해주나!”
“여기 있습니다 선배님!”
열심히 뛰어다니는 해준 형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TV로만 보던 것을 실제로 구경하고 있다는 것에 새삼 감탄하고 있으니, 세진 형이 슬쩍 다가왔다.
말로는 동물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다고 했으나, 내 곁에서 깃털을 고르는 아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독수리가 얌전하네.”
“아라가 좀 그런 편이죠. 유부도 얌전하긴 한데, 친한 녀석들이 있으면 조금 발랄한 스타일이고요.”
얌전히 내 곁에 앉아 있는 아라와 다르게, 페엥과 마루와 함께 마당을 누비고 있는 유부를 보며 웃었다.
“만져봐도 될까?”
“네. 아, 맞다. 먹이도 한 번 줘보실래요?”
나는 구석에 놔두었던 먹이용 소고기를 조금 가져와 주었다.
“소고기네?”
“형! 그거 형은 못 먹는 거야. 수환 씨가 딱 잘라서 동물들 먹이용이라고 했거든.”
혹시 꿍쳐놓았다가 세진 형이 먹을까- 걱정하는 듯한 피디의 말에 세진 형이 발끈하며 투닥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점심 준비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땀에 범벅이 된 바다 형이 돌아왔다.
“헤엑, 헤엑……!”
“헥헥헥헥!”
반려견과 똑같이 헥헥거리면서 말이다.
“선배님 오셨어요?”
“하루에 몇 번을 뛰는 거야. 빨리 와요. 밥 거의 다 된 거 같네.”
“이 양반은 갑자기 산책을 가고 그래? 손님도 왔는데.”
“……어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바다 형은 여름이를 풀어주고서, 가볍게 씻고 온다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식사 준비가 완벽히 끝나니 바다 형이 다시금 나타났다.
“오! 뭐야? 매운탕에 조림까지 있네? 어떻게 된 거야?”
“당신이 산책 간 사이에 저 독수리랑 부엉이가 잡아왔다네.”
“산책이 아니라……. 아니, 아니야.”
무어라 말을 하려던 바다 형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아꼈다.
내가 했던 짓을 설명하려다가, 행동으로 설명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또 행동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쉽네.
아무튼, 그렇게 모두가 자리에 앉으니, 식사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사이, 몇 대의 카메라가 잘 차려진 밥상을 아주 꼼꼼하게 찍은 다음에 말이다.
“어때, 우리 선수가 한 매운탕 맛은?”
“어우 맛있는데요?”
정말 맛이 꽤 좋았다. 솔직히, 방송이니 맛있다고 치켜세우는 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줄이 어디까지 길게 늘어서는 맛집 수준은 아니더라도, 숨겨진 맛집 정도라고는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점심을 해치우니, 형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식기들이 사라졌고, 세진이 형이 고무장갑을 낀 채로 즐겁게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맞다, 수환이는 아직 여기 구경도 제대로 못했지? 저 양반이 갑자기 산책을 가는 바람에.”
“아하하하…….”
성원 형의 말에 어색하게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산책을 보내버린 것이 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다 형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소개해 주겠다며 나를 데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바로 옆에 있는 텃밭이었다. 수십여 종의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각종 향신료부터 식재료들이 가득했다. 상태도 제법 괜찮아 보이는 것이, 저런 걸로 요리를 하니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