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06
0305 세끼(6)
딸바보도 이런 딸바보가 없다며 고개를 내젓는 형들의 모습에 당당히 맥주 한 캔을 원샷 하고서,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돌렸다.
나도 내가 딸바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대로 이야기가 이어져봐야 내가 놀림당하는 결과밖에 없을 것이 뻔했다.
“원래 제작진들은 이렇게 저희가 먹을 때, 좀비처럼 드시는 건가요?”
“쟤들? 쟤들은 그냥 산에서 내려온 짐승들이라고 생각해. 한 열흘 정도 굶은 짐승.”
제작진을 향해 고개를 내젓는 세진 형이었다.
하지만 다른 형들도 그런 말을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있었다.
접시에 담고 남은 튀김, 상에 올릴 자리가 부족해서 올리지 못한 군고구마, 워낙 많이 해서 남은 맛탕까지. 그렇게 나온 것들을 제작진들이 감싸고 마구마구 해치우고 있었다. 흡사 어느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TV로 볼 때는 제작진들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보지 못했던 부분인데, 실제로 보니 제작진도 꽤나 극한 직업 같았다. 그냥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근데,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어요.”
“뭐?”
“방송으로 볼 때는 왜 저런 말에 속지? 하는 느낌이 있는데, 진짜 왜 속는 거예요?”
“내가 쟤를 괜히 사기꾼이라고 부르겠냐.”
세진 형이 고개를 내저으며 피디를 가리켰다.
“쟤가 우리 속인다고 한 헛소리는 다 편집돼서 그래. 우리도 방송으로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세진 형의 말에 튀김을 입안 가득 물고 있던 피디가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렇게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 보기도 하며 우리는 즐거운 수다 시간을 보냈다. 이건 방송에 100% 나가지 못할 거다 하는 느낌의 이야기도 있었고, 거짓말인지 사실인지 분간이 안 되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렇게 수다를 떨며 고구마로 만든 것들을 반쯤 먹고 나니, 피디가 다가왔다.
“이제 인터뷰할게요. 일단 세진 형부터.”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던 세진 형이 마당의 구석에 마련된 곳으로 다가가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조용히 말소리를 줄이며 그 모습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수환 씨가 오셨는데, 처음 만난 거죠? 첫인상이 어땠어요?”
“엄청 신기했지. 개나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은 자주 봐도, 부엉이나 독수리로도 모자라서 펭귄까지 데리고 왔잖아.”
“그런 것치고는 어이가 없다는 모습도 보였는데, 어떻게 된 거죠?”
“아니, 그럴 수밖에 없잖아? 게스트로 오면서 맨몸으로 온 사람은 처음이니까. 가지고 온 소고기도 전부 동물들 전용이라고 하고.”
진짜 그런 게스트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내젓는 세진 형의 모습에 괜히 멋쩍어졌다. 옆에서 다른 형들이 가볍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뭐 그래도 덕분에 풍족하게 먹긴 했으니까 좋았어. 아침에 봤냐? 계란이 막 열 개씩 있는 거.”
그래도 내가 와서 좋았다며 마무리하는 세진 형이었다. 주로 식재료 쪽으로 만족했기 때문인 것 같긴 했지만.
이후로 바다 형, 성원 형, 해준 형까지 인터뷰를 하고서 내 차례가 다가왔다.
마당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으니, 여러 대의 카메라가 나를 찍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이곳에 온 소감이 어떻냐, 즐거웠냐 등등.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이곳으로 오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뭐……. 어떤 걸 하겠다, 이런 거요.”
“딱히 대단한 걸 생각하진 않았어요. 자급자족이라면 저한텐 일상이거든요. 음식을 만들 때 텃밭에서 무언가를 따서 만들고, 식후에는 텃밭에 있는 딸기나 참외 같은 것들을 따서 먹고요.”
“아, 우리가 원한 자급자족이 딱 그런 건데.”
피디가 내 말을 듣더니 다른 형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특히, 세진 형에게.
“뭐!”
“아냐, 먹어.”
고개를 내저은 피디가 다시금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쯤 됐으니 물어보는 건데, 솔직히 말해 주세요. 굶지 않을 자신이 있으셨던 거죠? 그러니까 동물들에게 먹일 고기만 사서, 몸만 달랑 오신 거였죠?”
사실대로 말해달라는 듯한 피디의 모습에 나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쟤들도 데려왔고, 제 초능력이 있으니 어딜 가서 굶을 걱정은 없거든요. 보셨잖아요? 손가락만 한 고추가 오이고추처럼 커진 거요. 그게 저한텐 일상이고, 당연한 거니까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메라 감독들 중 일부가 텃밭으로 호다닥 뛰어갔다. 한껏 커져 있는 작물들을 아주 세세하게 찍으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피디의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형들은 어때요? 어제 도착해서, 벌써 두 번째 날 밤인데요.”
“다들 좋아요. 처음엔 어색했는데, 오히려 그래서 그런가 더 잘 챙겨주시더라고요. 코골이가 좀 심하시긴 하지만.”
매일 아이들의 히유히유- 하는 자그마한 숨소리만 듣다가 커어억- 하는 소리를 들으니 좀 적응이 되지 않긴 했다.
“세끼 집에 있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어떤 게 있을까요?”
“……세진 형이 피디 님이랑 싸우는 거?”
“야! 내가 언제 쟤랑 싸웠다고!”
“볼 때마다?”
“그치그치. 우리 도련님이 아주 그냥 피디한테는 쌈닭이 따로 없긴 하지.”
내 말에 세진 형이 발끈하고, 다른 형들이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투덜 거리는 세진 형의 모습에 피디가 가볍게 웃으며 다른 것이 있냐고 물었다.
“음……. 그렇다면 역시 성원 형의 요리겠네요. 진짜 맛있었어요.”
“그럼 부인께서 해주는 요리와 비교하자면?”
“고생해 준 성원 형한테 미안하지만, 당연히 와이프가 해주는 게 제일 맛있죠.”
새로운 암살 방법인가 싶었다. 하지만 누나가 해주는 것이 제일 맛있긴 했다. 나중에 집에 가면 요리 관련 초능력이라도 생긴 건지 테스트해보자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몇 가지 질문들을 더 받아, 대답해 주고 나니 인터뷰가 끝이 났다.
그런데 인터뷰가 끝이 나, 다시금 튀김과 맥주를 마시려고 하니 피디가 다가왔다.
“수환 씨. 혹시, 나중에 동물원에서 촬영을 할 수 있을까요?”
“동물원이요? 어떤 거 찍으시게요?”
“아직 생각해둔 게 없긴 한데,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찍어도 될까 해서요.”
“뭐, 동물들에게 해가 되는 게 아니라면 얼마든지요.”
이미 동물원에서 몇 차례 방송이 촬영된 적이 있었다. 주로 여행지 소개에 관한 방송이 대부분이었지만, 촬영한 경험이 없진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허락해 주는 것과 동시에 세진 형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너 우리 보고 동물들 세끼 챙겨주라는 이상한 아이템 가지고 오기만 해봐! 죽어!”
“오.”
오히려 아이디어를 준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내가 고생하는 거만 아니면 즐겁고 좋지.
그렇게 피디가 묘한 웃음을 짓는 것을 뒤로하고, 형들과 다시금 고구마 파티를 즐겼다.
몇 달 동안 먹을 고구마를 오늘 다 먹는 느낌일 정도로 고구마튀김과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그래도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들 즐겁게 웃고 떠들며 저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있던 맥주를 모조리 비우고 나니, 형들이 하나둘씩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왠지 나이 순대로 잠자리를 찾는 느낌 같았기에, 나는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너 진짜 부엉이 맞냐? 그러고 있을 거면 그냥 자.”
야행성 동물인 주제에, 워낙 소은이의 생활패턴에 맞추다 보니 주행성 동물이 된 유부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모습에, 녀석을 자라고 쓰다듬어 준 다음, 다른 녀석들도 한 번씩 둘러보았다.
바닥에 드러누워서 어디 뛰고 있는 꿈이라도 꾸는지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마루, 날개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벌써 자고 있는 아라, 대(大) 자로 널브러져 있는 페엥까지. 녀석들을 확인한 다음, 닭장으로 향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닭들이 얌전히 자고 있는 모습까지 확인한 다음, 나 역시 잠자리로 들어갔다.
“커어어어어억.”
“…….”
편한 잠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휴식이라고 할 수 있을 수면을 취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아침은 별다른 특이 사항 없이 무난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물론, 내 기준으로 말이다.
“으하하하! 오늘도 계란이 풍년이야! 어제보다 더 많아!”
“와, 선배님. 이거 좀 보세요. 애호박이 제 손목보다 굵게 자랐는데요?”
식재료가 풍년이 됐다며 좋아하는 형들은 아침부터 상을 가득 채웠다.
1인당 밥 반 공기 수준의 계란말이와 계란찜, 손목만 한 둘레를 가진 애호박전, 오이고추로 위장하고 있는 풋고추와 장, 큼직한 재료들이 한데 썰려 있는 된장찌개까지. 아침이 무척 풍족했다.
“진짜, 아침을 이렇게 풍족하게 먹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무척 풍족한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집으로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지내기로 한 것이 딱 2박 3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었다.
“수환아. 안 가면 안 되냐?”
아직 며칠 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세진 형은 그런 나를 붙잡으려 했다. 아무래도 내가 곁에 있으면 계란을 비롯해서 식재료들을 아주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숭어를 선물해 주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라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에 더더욱 아쉬운 듯했다. 물론, 다른 형들도 다르지 않았다.
성원 형은 불을 잘 붙여준 유부를 마음에 들어 했고, 바다 형은 여름이와 잘 놀아주는 마루를 좋아했다. 해준 형은 어째선지 페엥이 자신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뿐만이 아니라 동물들이 떠난다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대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마냥 할 일 없이 널브러져 있는 것 같아도, 이래저래 할 일이 많은 편이었다.
“다음에 동물원에 놀러 오세요. 얘들도 형들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기억력도 좋은 애들이라, 형들 다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기억할 수 이쪄!”
“페엥이 자기는 꼭 기억할 거라네요.”
날개를 파닥파닥 흔들며 기억할 수 있음을 어필하는 페엥의 모습에, 해준 형이 헤벌쭉한 웃음을 지으며 페엥을 안아들었다.
“꼭 갈게! 아니다, 이번 촬영 끝나고 바로 갈게!”
다짐하듯 외치는 해준 형의 외침을 뒤로하고, 형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짧지만 재미있던 2박 3일의 시간이 끝을 맺었고, 나는 다시금 집으로 돌아왔다.
“압빠아아아아!”
“아뿌! 아뿌!”
2박 3일 만에 만나는 아이들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겨 주었고, 누나 역시 잘 다녀왔다며 가볍게 안아 주었다.
가져갔던 짐을 풀 시간도 없이, 나는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궁금해하는 아이들과 누나의 재촉에, 섬에서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는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도 이어졌고, 덕분에 누나는 하루세끼를 미리 스포 당했다며 아쉬워했다. 물론, 그렇다고 보지 않을 건 아니라고 했지만.
“아 맞다. 조만간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는데, 해준 형은 올 거 같아. 페엥이 엄청 마음에 든 것 같더라고.”
“정말? 오면 싸인 해달라고 해야지!”
소녀팬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좋아하는 누나의 모습에 괜히 질투가 나, 누나의 볼을 주욱-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