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21
0320 기우제(2)
“준비는?”
“당장 관람객들 입장 시작해도 될 정돕니다!”
이른 아침, 나는 동물원을 돌며 행사 준비의 마무리를 체크했다. 행사에 필요한 자재, 설비부터 시작해서 동물들의 준비 수준까지 빠짐없이 확인한 것이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체크를 한 이후, 매표소를 향해 다가갔다.
이미 밖에서는 오픈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대기열이 꽤나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오늘은 기우제를 마치 축제처럼 진행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벌써부터 많은 이들이 모인 것이었다. 심지어 단순히 보는 것으로 끝나는 축제가 아니라, 직접 참여해서 즐기는 형태의 축제였으니 말이다. 세세하게 따지고 보자면 여름마다 진행되는 물폭탄 축제와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물뿌리개는?”
“저기 준비되어 있습니다.”
직원이 가리킨 곳을 보니, 자그마한 물뿌리개가 아주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물뿌리개가 오늘 찾아온 이들에게 줄 자그마한 굿즈였다. 주변에 물을 뿌리는 것은 물론, 따로 포함된 물총 파츠를 끼우면 물총으로도 쓸 수 있는 물뿌리개였다.
오늘 진행될 기우제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물을 뿌리고 놀며 하늘에서도 물이 뿌려지길 기원하는 것에 가까웠기에 준비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모든 준비가 완벽히 끝나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길게 늘어져 있는 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삼 분 남았나? 그럼 그냥 열자.”
준비도 다 끝난 상황이고, 정식 오픈까지 삼 분 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냥 오픈하기로 결정했다.
매표소 직원들이 창구 앞에 앉아 매표를 시작했고, 근처에 있는 키오스크에도 발권이 시작되었다.
따로 온라인 입장권으로 발권이 필요 없는 이들은 곧바로 입장을 시작했다. 지하철 개찰구처럼 입장권을 자동으로 확인해 주는 것을 지나, 관람객들이 천천히 입장하고 있었다.
“입장하실 때 물뿌리개랑 우비 하나씩 받아 가세요!”
그리고, 그들은 미리 대기 중인 아르바이트생들이 건네주는 물뿌리개와 우비를 하나씩 받았다.
은수에게 맞춘 자그마한 물뿌리개와 동일한 사이즈라, 그렇게 큰 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물을 뿌리고 놀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물총 기능도 달려 있었고.
물폭탄 축제처럼 물을 마구 뿌려댈 예정이라, 우비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우비를 갖춰 입고 물총 기능이 달린 물뿌리개를 쥔 관람객들이 향한 곳은 정면에 위치한 물탱크였다. 입구 외에도 동물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번에 특별히 준비해둔 것으로, 바닷물을 담수화하여 만들어낸 담수였다. 담수화된 해수가 안전함을 홍보하기 위해 담수화 기술을 가진 업체에서 협찬해 준 것이었다. 오늘 마구 뿌려댈 물은 모두 이 담수화된 해수였다.
아무튼, 그런 물탱크로 향한 이들은 곧바로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죽어라!”
“야이씨, 물총으로 죽겠냐고. 아오 코 따갑네.”
당연한 말이지만 물폭탄 축제를 하는 것처럼 물총과 우비가 지급되니, 친구끼리 온 사람들은 아주 즐겁게 서로를 쏘고 있었다.
“미안미안, 대신 잘 자라라고 이 형님이 물을 주마.”
“야! 아씨, 빤쓰까지 젖었잖아!”
“악! 물총으로 패는 건 반칙이지!”
하다 보면 물총이 아니라 물뿌리개로 때리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기 땅이 진짜 많이 말랐네. 꽃도 좀 시든 거 같지 않아?”
꽃이 시든 것 같다고 물뿌리개에 있는 물을 꽃에 뿌려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메마른 땅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흙먼지를 가라앉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덕분에 동물원 전체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날에 무더위까지 겹치니 마치 봄날의 황사처럼 흙먼지가 날리고 있었는데, 비가 온 직후처럼 촉촉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관람객들이 열심히 물을 뿌리고 있는 와중에, 아르바이트생들이 아주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동물원 곳곳에 비치해둔 촛불에 불을 붙이러 다니는 것이었다.
화재 예방을 위해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만 만들어둔 것이었는데, 사람들이 물을 뿌려 그 불을 끄도록 유도하는 중이었다. 무더위를 상징하는 불을 물로 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물만 뿌리면 재미없으니 불도 끄라고 한 것이었다.
“우리 딸, 아빠처럼 불 꺼볼래?”
특히, 자그마한 촛불이었기 때문에 특히나 부모님들이 좋아하고 있었다. 아이들 손에도 잘 맞는 물뿌리개였기에, 자그마한 촛불을 끄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불이 물에 닿으며 픽- 꺼지며, 회색 연기가 아주 잠깐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며 불을 끈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아이들한텐 뭐가 됐든 체험이 재미있지.”
아이들이 좋아할까- 싶어, 은수에게도 시켜봤었는데 무척 좋아했었다. 부모가 절대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불을 직접 껐다는 것이 아이들에겐 무척 즐거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으악!”
그런데, 그렇게 관람객들이 즐기는 모습을 구경하던 도중, 갑자기 내 위로 대량의 물이 쏟아졌다.
“히히히히!”
“뿌뿌뿌뿌!”
다름이 아니라, 마음껏 돌아다니도록 허락했던 뿌우뿌우 녀석이 내게 물을 쏟아낸 것이었다. 그것도, 소은이의 지시를 따라서 말이다.
“어쭈, 소은이가 아빠한테 도전장을 내밀었어?”
나는 뿌우뿌우 위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은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냥 즐거운 소은이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히히! 승부야! 뿌우뿌우 물대포!”
“뿌이이이익!”
소은이의 외침에, 뿌우뿌우 녀석이 근처에 있던 물통에 코를 처박더니 이윽고 내게 다량을 물을 한 번 더 뿌렸다.
정면에서 강하게 뿌려진 물 덕분에 내가 입고 있던 우비의 단추들이 후두둑- 떨어지며 옷 전부가 젖어버렸다. 축축하던 신발이 더더욱 축축해졌고, 이제는 빤쓰까지 아주 축축해졌다. 그나마 물을 막아주던 우비 역시 너덜너덜해졌다.
“뿌뿌, 도망치자!”
“……멈춰.”
우비가 너덜너덜해지고 내가 쫄딱 젖은 꼴을 본 소은이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뿌우뿌우를 타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소은이의 행동을 막았다. 마법의 단어 한 방이면 아무리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뿌우뿌우라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히, 히히. 압빠! 사랑해!”
“응, 아빠도 사랑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한 번만 봐달라는 듯한 소은이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뿌리개를 들어 올렸다.
찌익- 하며 물이 쏘아지며, 포물선을 그리다가 소은이의 정수리에 안착했다. 소은이의 정수리가 촉촉하게 적셔진 것이었다.
“힝.”
“가서 놀아.”
“웅!”
정수리가 젖긴 했지만, 그래도 혼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듯이 소은이가 호다닥 도망갔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나는 계속해서 관람객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행사를 즐기는 것을 구경했다.
그렇게 한동안 사람들을 구경하던 나는, 어느덧 본격적인 기우제를 진행할 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가, 기우제를 가장 기다려온 은수를 데리고 은수목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기우제를 진행할 장소가 은수목의 바로 앞 공터였기 때문이다.
“사장님, 기우제 준비 끝났습니다!”
공터에 도착하니, 미리 행사 준비를 끝마친 직원이 다가와 당장 시작해도 문제없음을 알려왔다.
이미 주변에는 본 행사를 기다리고 있는 관람객들도 무척 많았다.
“그래? 그럼 일단, 드라이아이스부터 배분해 줄래?”
행사 시작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직원들에게 지시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드라이아이스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나눠주게 만들었다.
주머니에 물을 부어, 새하얀 연기가 뿜뿜- 뿜어지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더군다나, 비라는 것이 하늘 높은 곳에서 얼음결정이 생겨 낙하하며 물이 되어 내리는 것이니 드라이아이스를 나눠주는 것이었다. 지상에서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긴 하겠지만 나름대로 의미 부여 정도는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드라이아이스 조각들을 나눠주기 시작하니, 주변에 새하얀 연기가 가득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어느 공연장에서 드라이아이스 연기로 특수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주변 바닥이 새하얀 연기로 가득 차게 된 것이었다.
“오, 분위기 죽이는데?”
몽환적인 분위기가 따로 없었다. 주변에서도 사람들이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는지 찰칵찰칵 소리가 연신 울리고 있었다.
나도 사진을 한 방 찍으며, 근처에 있던 직원에게 다음 절차를 진행하라고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곧이어 은수목 앞쪽에 만들어져 있던 초대형 화로에서 불이 치솟았다. 미리 많은 양의 장작과 착화제들을 깔아둔 상태였기에, 치솟은 불의 높이가 3미터 정도는 되어 보였다.
뜨끈뜨끈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의 불이 피워지자, 나는 곧바로 마이크를 잡아들었다.
“모두 다 함께,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물을 뿌려 불을 꺼주세요!”
나는 단순히 나 혼자 제사를 하며 비가 오는 것을 바랄 생각이 없었다.
“자, 은수도 아빠랑 같이 물 뿌리자. 비가 꼭 오길 바라면서 뿌리면 돼.”
사람들이 거대한 불꽃을 향해 물을 뿌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은수를 안아든 채로 나도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물뿌리개에 달린 트리거를 꾹- 당기니 물이 거대한 불길을 향해 쏘아졌다. 워낙 거대한 불길에 소량의 물이 뿌려졌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잠깐 불길이 흔들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물을 뿌리니 불길이 크게 흔들리며 조금씩 약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불길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워낙 많은 장작과 착화제가 있다보니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기획한 것이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우비를 챙겨 입고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다음으로 장치의 가동을 지시했다. 바로 주변에 미리 설치해둔 스프링클러였다.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주변 일대에 많은 양의 물을 분무기처럼 뿌리려는 것이었다.
덕분에 불길이 빠르게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강렬한 불길도 많은 양의 물 앞에서는 버티지 못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언제 온 건지 소은이도 뿌우뿌우를 통해 많은 양의 물을 열심히 뿌려대고 있었기에, 강렬한 불길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이내 활활 타오르던 불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완전히 꺼지며 새하얀 연기를 피워 올렸다.
“와아!”
맹렬히 타오르던 불이 사그라들자, 열심히 물을 뿌리던 관람객들이 환호하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족하는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해맑게 웃음을 짓는 은수를 바라보았다. 불도 꺼지고, 주변에 물이 한가득 뿌려지니 기분이 좋은 듯한 은수는 물뿌리개에 남아 있는 소량의 물을 착착 털어내며 만세 하듯 손을 들어 올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주변에 있던 직원에게 스프링클러의 작동을 멈추라고 지시했다.
“예? 사장님, 스프링클러 이미 껐다는데요?”
“뭐?”
나는 직원의 말에 곧바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직원이 말한 것처럼 주변에 설치해둔 스프링클러들은 이미 작동을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부슬부슬한 물방울들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왜 진짜 비가 오는 거지? 오늘 기상예보에 비가 온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나는 분무기처럼 뿌려지는 것이긴 하지만, 빗방울 같은 것들이 내리는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진짜 비가 왜 내리는 거야?
기저귀로 빵빵한 엉덩이를 흔들며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은수에게 신경도 쓰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비가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우제를 지내긴 했는데, 이게 정말 비가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생각도 못 한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나는, 소은이가 내 입에 물총을 쏠 때까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