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22
0321 기우제의 여파
“우욱!”
소은이가 쏜 물이 내 목젖을 치는 바람에 순간 구역질이 느껴졌다. 까딱 잘못했으면 토할 뻔했다. 목구멍이 쓰라린 게 반쯤 올라왔던 건지, 아니면 물이 목젖을 때려서 그런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소은아, 아빠가 물총을 사람들 눈, 코, 입, 귀 같은 곳에는 쏘지 말라고 한 거 기억나?”
“아, 마따!”
“……물총 압수.”
“힝. 아라써.”
소은이는 아쉬움 가득한 모습으로 물총을 내게 반납했다. 자기도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혼자서도 자기 잘못을 반성할 줄 아는 착한 어린이인 소은이를 더 혼내는 대신 물총 압수로 끝을 내기로 했다.
나는 아쉬워하는 소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서,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기상예보를 확인했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쨍쨍할 것이라 예정되어 있던 날씨가, 비가 오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도 한두 시간 비가 오는 게 아니라, 사흘 내내 비가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무리 기상청이 오보를 자주 낸다고 해도, 이건 좀 심한 게 아닌가 싶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다시 바라보니, 쨍쨍하던 해는 어느덧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푸르르던 하늘에 잿빛 구름이 가득 생겨난 것이었다.
“에이, 기우제 때문은 아니겠지.”
솔직히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불이 꺼지며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화로를 말끔히 정리하고, 우리 동물원의 마크가 떡하니 박혀 있는 자그마한 우산을 관람객들에게 선물했다. 원래는 우산까지 제공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비가 오기 시작했으니 주기로 한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모처럼 내리는 비가 반가웠기에, 이유야 어찌 되었든 기분은 좋았다.
“삐! 삐!”
비가 온다며 좋다고 콩콩 뛰는 은수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비가 오는 것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 나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기우제 행사를 진행한 그 당일 저녁부터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기우제가 끝나자마자 바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엄청난 논란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군다나, 기상청에서는 한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 예보한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논란이 되고 있었다.
[드루이드의 기우제, 정말 비를 부르나?] [기상청의 예보와는 전혀 다른 결과. 드루이드의 힘?] [기상학자들, 이미 고기압이 소멸 과정에 접어들던 중이었다며 드루이드의 기우제로 인한 효과가 아니라는 의견.] [정말 비를 부른 드루이드의 기우제!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초능력이 과연 지역의 기후에 간섭할 수 있냐부터 시작해서 우연의 일치다, 미리 예측된 정보를 이용해서 날짜를 맞춘 거다, 드루이드의 힘이다 등등. 온갖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직 비가 오지 않은 타 지역에서는 나를 불러서 당장 기우제를 지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충청 지역의 농민 협회입니다! 제발 한 번만 와서 기우제 좀 지내주세요!] [강원 농민들의 대표 강보리가 인사드립니다.]충청과 강원부터 시작해서, 국내 곡창지대로도 유명한 호남이나 나주평야가 있는 전라도까지 전국에서도 많은 요청이 오고 있었다. 그나마 경상도 지역에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에 경상도 지역에서는 요청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 비가 점점 퍼지듯이 전국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덕에 기우제 요청은 쏙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연구를 위해 피 50ml만 제공해 주십시오!]마치 맡겨 놓은 걸 찾아가겠다는 듯이 내게 피를 요구하는 놈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내 팬들에게 피를 보았던 본보기가 있었기 때문인지 그런 반응이 없었지만, 가까운 몇몇 국가들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다.
“이 새끼들 진짜 미친 거 아닌가?”
대놓고 내 피를 연구하겠다는 소리에, 내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없었다. 말이 피를 연구하겠다는 거지, 여차하면 인체실험도 해보고 싶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는 그것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초능력자 인체실험 금지 국제 협약 효력 다 했나요? 이런 요청 황당하네요.]피를 달라며 요청한 이들이 보낸 메일을 그대로 냅다 SNS에 공개했다. 해당 기관과 요청한 사람의 이름이 아주 잘 보이도록 말이다.
이렇게 해둔다면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나를 대신해 해결해 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생각한 대로 아주 잘 움직여주었다. 말도 안 되는 요청을 한 곳들이 일제히 사과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며, 그 요청을 한 사람과 동조한 이들을 모두 쳐내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정말 온갖 방법으로 공격당했으니 당연한 모습이었다. 단순히 우편을 보내는 것부터 서버를 공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불법 실험을 하고 있을 수 있다며 국제적으로 감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생겨나니 꼬리가 아니라 하반신을 다 잘라내서라도 사과해야 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도 괜한 소리가 나오면 이렇게 될 것이라는 본보기가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오인사격을 하는 것은 막을 필요가 있었다.
[자, 여기 위성사진에 해당 시간의 기압을 표기해두었습니다. 이쪽을 보시면 기우제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고기압의 소멸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급작스러운 소멸에 가깝긴 하지만, 이는 최근 발생하는 이상기후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고기압이 급작스럽게 소멸하기 시작하며 주변에 있던 찬 공기가……] [ㅈㄹㄴㄴ 이건 드루이드가 기우제를 지내서 그런 거임] [그래서 결론이 뭔데? 기상청보다 드루이드가 예측을 더 잘한다?] [그럼 기우제에서 불이 꺼지자마자 비가 떨어진 건 어떻게 설명하쉴?] [이거 사실상 끼워 맞추기지 ㅋㅋㅋㅋ 드루이드가 비 내리게 했으니까 어떻게든 맞춰야 할 거 아냐 ㅋㅋㅋ] [그 대단한 위성사진만 봐도 기우제 시작하는 순간부터 기압 쫙 떨어지는 거 보이는데?]기후에 관련된 학자들의 이야기에도 우르르 몰려가서 학자들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내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단순히 학문적인 접근을 하는 것임에도 공격하는 중이었다.
특히, 인도 쪽에서 아주 열성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를 신으로 모시니 뭐니 하더니, 숫제 광신도들이 따로 없었다.
솔직히 이런 행동은 빠가 까를 만든다고, 내게 득이 될 것이 하나 없었다. 나는 다시금 SNS를 이용해 무분별한 싸움은 자제해 주길 부탁했다.
그래도 참 착하다고 해야 할지, 내가 자제를 부탁하니 대다수의 이들이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몇몇 거친 반응을 보이던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사과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결된 문제는 수많은 문제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수환아, 이거 봐라?”
누나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그 휴대폰의 화면에는 한 장의 사진이 보이고 있었는데, 내 사진을 놓고 기도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묘하게 인도가 아닌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인도는 이미 나를 신으로 모신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기에,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았다.
“……인도지? 제발 인도라고 해줘.”
“아니? 한국인데?”
“미친다 진짜.”
인도에서는 그나마 신화에 나를 끼워 맞추기라도 했지, 한국에서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건가 싶었다.
“여기 보니까, 너를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웅이라고 하는데?”
아하핫- 웃음을 터트리며 말하는 누나의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니, 도대체 왜 살아 있는 사람을 신으로 여기는 거냐고. 사이비도 아니고!
내가 자그마하게 투덜거리니 누나가 다시금 웃더니, 휴대폰 화면에 보이는 글귀들을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지상에 내려올 때 데려온 사람들 중에 풍백, 우사, 운사가 있다는데 네가 그들을 부려서 비구름을 만들고 비바람이 몰아치게 만들었다고 그러네? 게다가,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가 은수목이라고 이야기도 하고 있어.”
이젠 한국에서도 신화에 나를 끼워 맞추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마를 짚었다. 단군 신화라니. 어릴 때 학교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듯 배웠던 것이 전부여서 기억도 안 나는 건데, 거기에 엮일 줄이야.
“수환아, 호돌이랑 곰돌이한테 쑥이랑 마늘 좀 먹여 보라는데? 사람 될 거 같다고. 아, 곰은 웅녀가 됐다고 하니까 수컷 말고 암컷인 백설기한테 먹이라는 사람도 있어.”
“어억.”
나는 혈압이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기우제를 지내는 게 아니었어. 그냥 은수랑 마당에 물이나 좀 뿌리고 끝낼걸.”
괜히 동물원에 관람객들을 끌어 모으겠다고 기우제 행사를 벌인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워졌다.
어차피 비가 올 거였으면 그냥 은수랑 사이좋게 물이나 뿌릴걸- 하고 무척 후회가 됐다. 왜 과거의 나는 이렇게 일이 커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까.
“와, 이거 보다 보니까 나도 우리 남편이 자꾸 신처럼 느껴지네? 어떡해? 너무 신화랑 착착 끼워지는데.”
“……내가 진짜 신이었으면 기우제 생각하기 전으로 시간을 돌려버렸을 거야. 아니, 처음 아라를 타고 날아다닐 생각을 할 때로 돌렸겠지.”
지금만큼은 내가 진짜 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인도에서 나를 신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그 일부터 하지 않는 것으로 바꿀 텐데.
나는 자그마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내 모습에 누나가 피식 웃으며, 내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니면, 이건 어때?”
누나는 조금 전에 보여주었던 것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하나의 관찰 예능으로, 인플루언서들의 24시간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시청률이 아주 급등하고 있는, 핫한 프로그램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건 왜?”
“상황이 묘하게 맞아서 신처럼 보이는 것뿐이잖아. 방송으로 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거지.”
“오……. 괜찮은 생각인데?”
자꾸 신격화되고 있으니, 이참에 내가 순도 100%의 인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근데 그냥 출연하고 싶다고 해서 출연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당연히 출연 제의는 그쪽에서 먼저 보냈어.”
누나는 제작진이 보낸 메일이라며, 정중하게 섭외를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메일을 보여주었다.
“좋네. 그럼 최대한 빨리 방송 편성되게 하는 걸로 해서 찍는……. 아, 소은이한테도 물어봐야겠네.”
빠르게 방송을 내보내, 한국에서까지 나를 신격화하는 것을 멈추게 하려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내가 보내는 24시간 중에는 소은이와 함께하는 시간도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소은이가 싫다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물어보니, 내가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소은이가 아무런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도 뮤튜브 말고 TV에도 나와보고 싶다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