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25
0324 토끼즈(1)
“날 좋다.”
“조타!”
“그래, 은수도 좋지?”
은수를 품에 안고, 마당에 놓은 흔들의자에 앉아 여유를 즐겼다.
소은이는 동물원에 찾아온 친구들과 놀겠다고 뛰쳐나간 상황이었고, 누나도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나간 상황이었다. 집에 나와 은수 밖에 없었으니, 무척 조용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꾸어엉!”
그런데, 그런 여유를 방해하는 녀석이 있었다.
우리 집의 상습 침입자이자, 꿀벌들의 경계대상 1위인 곰돌이 녀석이 담벼락을 타고 오르기 위해 애쓰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아니……. 진짜 담벼락에 기름이라도 발라야 하나.”
담벼락에 기름을 발라서 미끄럽게 해, 올라타지 못하게 할까 고민이 됐다.
하지만 내가 그런 고민을 하는 중임을 모르는 곰돌이 녀석이 담벼락 위로 머리를 뿅- 내밀었다.
“안녕하세유!”
“안녕 못 해 임마. 누가 또 담벼락 넘으래?”
“미안해유. 근디, 꿀맛을 잊을 수가 없어유!”
우리 집 꿀이 맛있긴 하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곰돌이가 힘껏 담벼락을 넘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흐아아아아아앙!”
곰돌이 녀석이 담벼락을 넘어 착지하던 그 자리에, 엊그제 은수와 함께 옮겨 심어둔 꽃이 있다는 것이었다.
곰돌이가 착지하며 그 꽃이 깔려버렸고, 그 모습을 똑똑히 보게 된 은수가 울음을 터트렸다.
“하이고야.”
엉엉 울음을 터트린 은수는 내 품에서 벗어나더니, 곰돌이가 깔아뭉갠 꽃을 향해 아장아장 달려갔다.
곰돌이에게 깔린 꽃이 가망 없음을 확인한 은수는 바닥에 손을 짚으며, 흔히들 OTL 자세라고 하는 그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은수는 마냥 절망하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꽃의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곰돌이에게 깔렸던 꽃을 주워든 은수는 그대로 꽃을 곰돌이에게 휘둘렀다. 이전에 캠핑을 갔을 때처럼, 곰돌이를 때리는 것이었다.
쥐포처럼 짓눌렸던 꽃이 흐느적흐느적, 휘둘러지며 곰돌이의 가죽을 두드렸다.
“악! 이게 왜 아픈 거쥬?!”
“아프긴 뭐가 아파. 애가 힘껏 휘둘렀다고 아프면 정상이냐?”
“아니, 진짜 아프다니께유!”
“아프긴 개뿔. 네가 그러고도 곰이야? 그냥 더 맞고 있어.”
아기가 꽃으로 때려봐야 얼마나 아프겠어. 나는 곰돌이의 엄살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꽃잎이 휘날리도록 곰돌이를 패던 은수를 안아들었다.
씩씩- 분에 찬 듯한 숨을 내쉬는 은수를 안아든 나는 은수에게 보란 듯이 곰돌이 녀석의 궁둥이를 팡, 걷어찼다.
“이건 안 아파유.”
은수한테 맞는 건 아프고 나한테 맞는 건 아프지 않다는 녀석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원래 반대로 말해야 정상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곰돌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은수는 내가 걷어차주니 좋다며 박수를 쳤다.
은수가 좋아하니 곰돌이의 궁둥이를 몇 번 더 차주고서, 은수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였다. 품에 은수를 안아들고 둥실둥실 흔들어 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준 것이었다. 게다가, 그것으로는 조금 부족했기에 잘 여물어 있는 오이 하나를 따서 은수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제야 해맑은 미소를 되찾은 은수가 오이를 내게 다시 내밀었다. 반납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고, 먹을 수 있게 손질해달라는 의미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꿀을 탐하려는 곰돌이의 궁둥이를 한 번 더 걷어차고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자, 우리 은수가 좋아하는 오이!”
오이의 가시 같은 부분을 잘라내고, 껍질도 살짝 벗겨낸 다음 부드러운 부분만 골라서 썰어 주었다.
“꺄!”
은수는 제 앞에 놓인 오이를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냅다 하나를 베어 물더니, 양손에도 하나씩 오이를 쥐고 기쁨을 느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도 오이를 하나 집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예전엔 오이가 싫었는데, 내가 키우는 것들은 맛이 좋았기에 제법 먹을만했다. 묘하게 청량감이 느껴지며 갈증이 해소되는 맛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쪄!”
“맛있어?”
“우으움.”
입안 가득 오이를 물고서 우물거리는 은수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집안을 울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도도도도- 빠르게 뛰는 소리였는데, 가벼우면서도 빠른 소리였기 때문에 그 주인이 누군지 보지도 않고 알 수 있었다.
“압빠! 압빠! 압빠!”
“소은아 왜? 친구들이랑 다 놀았어?”
“압빠! 큰일나써!”
“큰일?”
소은이가 호들갑을 떠는 것에, 무슨 큰일인가 싶었다. 혹시 동물들이 사고라도 친 것인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일기토가 밥을 안 머거!”
“응……?”
나는 소은이의 말에 그게 왜 큰일인가 싶었다.
동물들도 저마다의 생각이라는 게 있고, 저마다의 기분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동물들도 기분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소은이의 말을 들어 보면 그렇게 단순한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구! 털도 엄청 빠져써!”
“털도 빠졌다고?”
“웅!”
털도 빠졌다는 소리에, 나는 가장 먼저 일기토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우리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내 초능력의 영향으로 털이 쉽게 빠지지 않는 편이었다.
애초에 털이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동물들인 탓에 완전히 빠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동물들에 비하자면 거의 빠지지 않는 수준에 가까웠다. 우리 집에 매일매일 수십 마리의 동물들이 드나드는 게 아니었다면 동물 털이 옷에 묻어 있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털이 많이 빠진다는 것은 털갈이를 하는 것이거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털갈이는 애초에 잘 하지도 않지만, 이미 여름 직전에 더워질 즈음부터 시작해서 끝난 상황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털갈이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소은아, 일기토 어디 있어?”
“자연구역에!”
“아빠랑 같이 가자.”
나는 오이를 쥐고 있는 은수를 안아들고 소은이와 함께 자연구역으로 향했다. 일기토의 상태가 어떤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요량이었다.
매일매일 확인하기는 하지만, 동물원이 워낙 넓다 보니 며칠 눈에 띄지 않는 동물들도 있었기 때문에 일기토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동물들을 하나하나 다 찾아다니며 상태를 확인하려면 하루 종일 움직여야 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앞장서는 소은이를 따라 일기토가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이십여 분 가량 소은이를 따라 걷고 있으니, 소은이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자연구역에서 조금 구석진 곳이었는데, 그곳에 토끼즈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힘 없샤?”
“자고 싶은 거샤.”
“맛있는 거 가져 왔샤. 조금 먹어보라는 거샤.”
토끼즈는 일기토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유심히 바라보니 일기토를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일기토! 아픈 거 아니지? 아프면 안대!”
소은이가 그런 토끼즈에게 다가가, 일기토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나 역시 은수를 데리고 다가가, 토끼즈의 상태를 살폈다.
이기토부터 오기토까지는 딱히 이상한 부분이 없었지만, 일기토는 조금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디 아파?”
“그런 거는 아닌 거샤. 그냥, 조금 기운이 없는 거샤.”
소은이에게 안겨 있는 일기토는 내 물음에 힘없이 귀를 축- 늘어트렸다. 대충 봐도 정말 힘이 없어 보이는 녀석의 상태는 그렇게 좋다고 할 수가 없었다.
곳곳에 털이 한가득 빠져 땜빵이 몇 개나 있었고, 털도 전체적으로 고르지 못했다. 삐죽삐죽, 듬성듬성. 정말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일단 건강 체크를 좀 하러 가자. 너희도 다 같이 가자.”
나는 곧바로 토끼즈를 데리고 수의사에게로 향했다. 나는 은수를 안고, 소은이는 일기토를 품에 안은 채로 나머지 네 마리의 토끼즈가 우리의 뒤를 따르는 형태였다.
“선생니이임! 일기토 아파요!”
“나 아픈 건 아닌 거샤.”
아프지 않다고 일기토가 항변해도 들리지 않는지, 소은이는 수의사들 중 한 명에게 일기토를 봐달라며 들어 올렸다.
수의사가 내게 시선을 주는 것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픈 건 아니라고 하는데, 기운이 없고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데리고 왔어요.”
“일단 한 번 확인해 볼게요.”
일기토를 데리고 이런저런 검사를 하던 수의사가 일기토에게 영양제와 사료를 살짝 섞어 내어주고선, 내게 눈치를 주었다. 따로 이야기를 하자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은이에게 은수를 안겨주고, 구석진 곳으로 수의사와 함께 이동했다.
“어디가 많이 안 좋은 건가요?”
나는 소은이에게 들리지 않도록 따로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라면 위독한 상황이라 생각했기에,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하지만 수의사는 조금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런 애매한 반응이었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아니, 그렇다고 좋은 건 아니기도 합니다.”
“예……? 그럼, 일기토 상태가 왜 그런 거죠?”
“일종의 노화……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건강이 일시적으로 악화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토끼의 수명이 긴 편은 아니니까요.”
한 마디로 지금 일기토가 수명의 한계를 맞이하는 것 같다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나는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토끼즈는 우리 가족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길고양이 출신인 남캣이나, 유기 동물 보호소에서 데려왔던 개와 고양이들 다음으로 오랜 기간 함께한 것이었다.
심지어, 소은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으니, 소은이보다 우리 가족과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녀석이니만큼, 수명의 한계를 맞이했다는 소리가 마음을 무척 심란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 이야기를 소은이에게 어떻게 해야 좋을까, 고민되었다. 태어난 직후부터 떨어지지 않고 계속 붙어 있던 것이 토끼즈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은이에게 이야기를 숨길 수도 없었기에,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소은이를 따로 불러냈다.
“소은아.”
“웅.”
“소은이는, 토끼즈랑 앞으로 못 만나면 어떨 거 같아?”
“……일기토 많이 아파? 그래서 하늘나라 가는 거야?”
소은이는 눈치 빠르게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금세 짐작하고선,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소리지만, 소은이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었다. 동물원에서 사육하고 있는 동물들 중에서는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은 녀석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이 보자면 꿀벌들이 몇 달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소은이는 토끼즈를 보지 못한다는 소리에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소은이에게 토끼즈를 보지 못한다는 경우는 죽음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언젠간 토끼즈와도 이별할 수 있잖아. 그래서 하는 말이야.”
고개를 내저은 나는 눈물을 글썽이는 소은이를 품에 안고, 여러 이야기를 했다.
“소은이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토끼즈는 소은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곁에 있었어.”
“나두 알아. 토끼즈가 얘기해줘써. 내가 애기일 때 토끼즈를 귀찮게 했었다고해써.”
“그랬지. 그런데 소은이가 지금 여덟 살이지? 보통 토끼들은 소은이가 살아온 시간의 반 정도 밖에 못 사는 편이야. 토끼즈가 소은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태어났으니까, 엄청 오래 살았지?”
“웅…….”
“사람으로 따지자면 할아버지, 할머니들 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거야.”
내 이야기에, 소은이의 눈망울에 차오르는 눈물이 더더욱 많아졌고, 결국 한 방울 한 방울 뚝뚝 흘러내렸다.
토끼즈와의 이별이 그리 머지않았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은이는 토끼즈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지?”
“흐으, 으, 응!”
울면서도 힘차게 대답하는 소은이의 모습에, 눈물을 닦아주며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소은이도 알지? 별장 지어둔 섬.”
“아라아…….”
“토끼즈를 거기에 보내는 게 어떨까? 나이 든 토끼즈가 동물원에서 사람들이랑 계속 마주하면 스트레스도 받고, 좋지 않을 거니까 조용한 곳에서 휴가를 즐기라고 보내주는 거지.”
내 말에 소은이는 좀처럼 대답하지 못했다. 진화의 섬으로 토끼즈를 보낸다면 토끼즈와 더 빨리 헤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소은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급히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도 소은이가 토끼즈를 못 보는 건 싫어하니까, 매주 주말마다 가서 토끼즈랑 놀다 오자. 어때? 토끼즈도 쉴 수 있고, 소은이도 토끼즈랑 놀 수 있잖아.”
“……아라써.”
손으로 눈물을 훔친 소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이도 토끼즈가 진화의 섬으로 가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것이, 토끼즈에게 더 좋은 일임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