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30
0329 꽃에는 꿀벌이 꼬인다
무더운 여름은 우리가 토끼즈에 대한 신경을 쓴다고 빠르게 지나갔다.
매번 주말마다 토끼즈의 상태를 확인한다고 진화의 섬을 찾아가다 보니, 안 그래도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이 더더욱 빠르게 흘러간 것이었다.
심지어, 돌아온 토끼즈가 만들어낸 사건사고들도 적지 않았으니 시간은 더, 더, 더 빠르게 흘렀다.
낙엽이 지는 가을과, 소은이를 눈사람처럼 만들어주는 하얀색 패딩을 입게 하는 겨울도 지나갔다.
그렇게 두 개의 계절이 지나고, 다시금 새싹이 피어오르는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봄의 시작에는 새로운 이벤트가 있었다.
“우리 은수, 유치원 가는 거 기대되지?”
“유치워언!”
바로, 은수의 유치원 입학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은수의 매력 중 하나인 기저귀로 빵빵하던 엉덩이도 더 이상 볼 수 없어졌고, 은수의 말도 많이 늘었기에 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심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이벤트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소은이가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이벤트 역시 있었다.
“소은이도 이제 2학년이 되는데, 어때?”
“히히, 나도 이제 선배님이야!”
어디서 배웠는지 선배님이라는 소리를 하는 소은이의 외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저러다 나중에 5학년이나 6학년쯤 되면, 1학년 아이들 보고 귀엽다고 할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런 두 개의 이벤트가 생겨났기에, 나와 누나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소은이야 2학년이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은수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부모와 떨어져서 유치원에 가서 몇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냥 보낸다고 해도 유치원의 선생님들이 잘 케어해주겠지만, 그래도 은수가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면 미리 적응시키는 것이 좋았다.
“은수야, 유치원 가면 엄마랑 아빠랑 누나도 없는데 괜찮아?”
“아무도 업써?”
“대신, 은수를 챙겨줄 선생님들이랑,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을 거야.”
“우웅…….”
내 물음에 은수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갠차나!”
“정말?”
“웅!”
정말 괜찮다며 말하는 은수의 모습에, 나와 누나는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언제나 엄마- 아빠- 하면서 우릴 찾을 것 같던 아이가 어느덧 혼자서도 괜찮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이가 성장하는 것임을 알기에 애써 아쉬움을 억누른 우리는 은수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은수를 혼자 놔두고 어딘가에 숨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유치원에 보낸다고 아이가 혼자 있게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미리 계획해둔 것이 있었다.
나는 곧장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던 사육사 한 명을 호출했다.
“사장님.”
“혜진 씨. 오전에 부탁했던 거 좀 해주실 수 있죠?”
“걱정 마세요. 은수 안녕?”
정혜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육사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주니, 은수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마주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은수야, 여기 사육사 이모랑 같이 산책하고 올래?”
“산책?”
“아까 은수가 아빠한테 그랬잖아. 엄마랑 아빠랑 누나 없어도 유치원에 있을 수 있다고.”
“웅!”
은수는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우리는 곧바로 은수를 사육사와 함께 산책을 다녀오도록 시켰다. 당연한 말이지만 은수만 딸랑 보내고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
나와 누나는 재빨리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끼고서 사육사와 동물원 산책을 나간 은수의 뒤를 미행했다. 예전에 소은이에게 첫 심부름을 보낼 때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차이점이라면 ‘엄마’, ‘아빠’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게 수상쩍은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는, 사육사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는 은수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은수야, 어디 가고 싶은 곳 있니?”
“으우웅.”
“없어? 그럼……. 저쪽에 캥거루한테 갈까?”
“웅.”
은수는 사육사의 손을, 정확히는 새끼손가락을 붙잡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캥거루를 구경하러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캥거루에게 다가간 은수는 캥거루의 육아낭에서 뽈록- 튀어나온 새끼 캥거루를 볼 수 있었다.
“꺄앙!”
자기보다 자그마한 캥거루의 모습에 은수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캥거루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배춧잎 조각을 꺼내, 캥거루에게 먹여주었다.
캥거루가 순식간에 배춧잎을 먹어 치우는 모습을 바라본 은수는 곧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거위도 보고, 사올라도 보고, 붉은 여우 가족도 보고 여러 동물들을 구경했다.
그런데, 여러 동물들을 구경하던 은수가 우뚝- 멈춰 섰다.
“아뿌.”
“은수야, 아빠 보고 싶은 거니?”
“웅. 아뿌.”
다름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다며 멈춘 것이었다. 하지만 은수에겐 미안하게도, 아직 은수와 만날 수가 없었다. 미리 약속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 십 분만 이모랑 더 놀다가 아빠한테 가면 안 될까? 아빠가 할 일이 있다고 했거든.”
“웅. 십 분.”
은수는 딱 십 분 더 놀아주겠다는 듯이 손가락 열 개를 다 펼쳐 보이고선, 사육사의 새끼손가락을 다시 붙잡았다.
그렇지만 따로 시계가 없는 은수는 십 분이 훌쩍 지났음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사육사를 잘 따라다녔다. 도중에 걷기 힘들었는지 안기긴 했지만, 그래도 사육사를 잘 따라다녔다. 특히, 자연 구역에 들어갔을 때는 십 분이고 뭐고 행복에 겨운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즐겁게 사육사와 산책하는 은수의 모습에, 유치원을 보내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수야!”
“엄마! 아뿌!”
이 정도면 은수를 유치원에 보내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여긴 우리는 곧바로 은수에게 다가갔다. 은수는 우리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달려왔다.
은수가 넘어질까, 누나가 잽싸게 달려나가 은수를 안아들었다.
“후히히. 엄마다!”
“은수 잘 놀았어?”
“웅!”
우리 품에 안긴 은수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놀았던 건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누나에게 무엇을 했는지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은수를 데리고 다닌다고 고생한 직원을 돌려보냈다. 따지자면 일종의 특근이었기에, 그만한 보상을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은수의 유치원 등원을 준비했다.
유치원에서 제공해 준 가방에 GPS를 달아둔다거나, 경호원들이 매일 은수의 유치원 등하원을 보호하는 경로 같은 것들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딱히 어려운 것은 없었다. 이미 소은이가 유치원에 다니면서 다 거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뽀니를 타고 다닌 소은이와 달리 내가 등하원 시켜준다는 차이점이 있었기에, 약간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그래도 은수가 다닐 유치원의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고, 우리는 은수의 첫 등원을 시작했다.
입학식을 시작하는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출발하며, 소은이까지 차에 태운 채로 차를 움직였다. 은수가 다닐 유치원이 소은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은이는 은수와 작별 인사를 하고, 뒤따라오는 엔초를 타고 등교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차를 타고 잠시 움직이니, 소은이가 다녔고 이제는 은수가 다닐 유치원의 모습이 보였다.
입학식 때문인지 입구에는 이미 선생님들 몇 명이 나와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소은이가 방방 뛰기 시작했다.
“와앙! 선생님이다! 안녕하세요오오오!”
유치원을 다닐 때를 여전히 기억하는 소은이는 선생님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무척 반가워하며 손을 붕붕 흔드는 소은이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오랜만이네요. 소은이 어머님, 아버님. 안녕? 네가 은수지?”
선생님들은 우리와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누나의 손을 잡고 있는 은수를 바라보았다. 눈높이를 맞춘다고 쪼그려 앉은 선생님들은 은수에게 손을 흔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배운 대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그 모습에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으니, 누나가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소은아! 지각!”
“지각은 안 돼! 학교 갈게요오오오!”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소은이가 지각할 수도 있는 시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눈썹까지는 아니더라도 머리카락이 아주 힘차게 흩날릴 정도의 속도로, 소은이가 엔초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미처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그 모습에 어색하게 웃던 우리는 은수와 함께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입학식이 진행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준비해둔 곳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유치원 원장이 나와 입학식을 진행했다. 바쁜 부모들이 많기에, 무척 간결하게 진행된 입학식은 금세 끝을 맺었고, 우리는 은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은수야, 아빠가 나중에 데리러 올게. 친구들도 사귀고, 재미있게 놀고 있어야 한다?”
“아뿌 빠빠.”
손을 가볍게 흔드는 은수의 모습을 뒤로하고, 우리는 곧장 동물원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가는 것처럼, 우리도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동안 열심히 업무를 해결하던 우리는 유치원이 마칠 시간에 맞춰, 은수를 데리러 나갔다.
아침에 나갔을 때처럼 차를 타고 유치원으로 향하며, 우리는 여러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다.
“은수가 적응 잘 했겠지?”
“그렇지 않을까? 우리 은수가 잘 울지도 않고, 참 의젓하잖아.”
“하긴……. 친구도 많이 사귀었을 거야.”
“그럼그럼.”
은수의 유치원 등원 첫 날인만큼 은수가 유치원에 잘 적응했을지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그렇게 먼 곳이 아니기에 금세 도착한 유치원 앞에는 벌써부터 아이들이 나와 있었다. 부모가 픽업하러 오기로 되어 있는 아이들과, 각 가정으로 등하원 시켜주는 버스를 이용하는 아이들이었다.
“수환아! 저기 은수야!”
당연히 그중에는 은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에 세운 다음, 곧바로 은수에게로 다가갔다.
“어?”
그런데, 우리는 이상한 광경을 하나 보게 되었다.
“수환아, 은수 주변에 전부 다 여자애들이지?”
“……그렇네?”
바로, 은수의 주변에 여자아이들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귀여움을 강조해 주는 옷을 챙겨 입은 여자아이들이 은수 주변에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유치원에 남자아이가 은수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은수 주변에는 여자아이들만 있는 상황이었다.
“소은이……. 아니, 은수 어머님, 아버님 오셨어요?”
“아, 네. 선생님. 고생하셨죠?”
“아니에요. 은수가 얌전히 있으니까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얌전해져서, 오히려 편안했는걸요?”
“저…… 그런데, 은수 주변에 있는 아이들은 다 여자애들인가요? 혹시, 은수가 남자애들이랑은 어울리지 못하던가요?”
선생님의 말에 부드럽게 웃던 누나가 은수에게 시선을 주더니, 살짝 의아하다는 모습을 드러냈다. 은수 주변에 남자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으니, 남자아이들에게서 배척이라도 받는 건가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전부 귀여운 공주님들이죠. 그리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은수가 놀이 시간에 다 같이 즐겁게 놀았거든요. 남아 여아 가리지 않고요.”
“다행이네요.”
안도하는 누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나는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은수를 데리러 갔다.
“아뿌!”
“은수야, 이제 집에 가자. 친구들한테 내일 보자고 인사할까?”
“안녀엉!”
내 품에 안긴 은수는 친구들에게 손을 붕붕 흔들었고, 은수의 친구들 역시 은수에게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은수를 데리고 돌아온 나는, 누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누나는 은수가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는 듯했다.
“우리 은수가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은 걸까?”
누나는 아들인 은수가 여자한테 인기가 많으니 기분이 좋은 것 같으면서도, 나중에 고생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원래 꽃에는 꿀벌들이 꼬이는 법이지.”
“그거, 보통은 여자들한테 쓰는 말 아니야?”
“꽃가루를 모으러 나오는 꿀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암컷인데?”
“…….”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나의 시선이 마당의 화단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은수가 꽃을 보고 있었는데, 유독 그 주변으로 꿀벌들이 많이 날아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