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31
0330 취미입니다만?(1)
“은수야! 나중에 데리러 올게!”
“아뿌, 빠빠!”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은수에게 마주 손을 흔들었다.
“은수다!”
“은수야!”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은수 주변으로 여자아이들이 몰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음……. 나중에 하렘 같은 걸 차리는 건 아니겠지.”
그랬다간 누나한테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건데-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십 년은 더 있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동물원에 가서 할 것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재빨리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온 다음, 조금 늦은 일과를 시작했다. 아이들의 등교 등원 준비를 하다 보니 평소보다 시간이 조금 늦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물원을 돌며 뒤늦은 점검을 하고 있으니, 처참한 광경 하나를 목격할 수 있었다.
바로, 동물원에 있는 조형물 중 하나가 박살 나 있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 배경으로 쓸 만하게 만들어놓은 조형물이었는데, 그게 중심부가 뻥- 뚫린 채로 박살 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몇 명의 직원들이 그 잔해들을 열심히 치우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 명이 오열하면서 뚫린 조형물을 복원하는 듯하고, 나머지가 바닥에 널브러진 잔해들을 치우는 중이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죠?”
“사장님. 그게…….”
내 물음에 근처에서 잔해를 치우고 있던 호랑이 담당 사육사, 이범이 슬쩍 다가와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호돌이가 토끼즈한테 벽돌부수기를 배웠잖습니까. 아직 적응을 못했는지, 나비를 쫓아가다가 조형물을 부쉈습니다.”
“…….”
이범의 말에 반사적으로 마른 세수를 하게 됐다. 도대체 뭘 어떻게 쫓았길래 조형물이 박살 나는 거야.
그렇게 마른 세수를 하던 나는 은근슬쩍 도망치려던 호돌이의 목덜미를 콱 붙잡았다.
“어딜 도망가려고.”
“잘못했습니다…….”
잘못을 시인하는 녀석을 붙잡아, 자기가 부숴버린 조형물 옆에서 벌을 서게 만들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앞발을 들고 있는 벌이었다. 인간으로 치자면 뒤에 나가서 손들고 있어- 정도 될 것이었다.
“힘쓰는 건 이런 거에 하지 말고, 너 괴롭히는 남캣한테나 해. 그렇다고 먼저 때리려 하지는 말고.”
“크릉!”
조만간 냥호상박의 대결이 펼쳐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시설관리팀이 오열하면서도 열심히 복구하고 있었으니 더 이상 신경 쓸 것은 없었다. 물론, 오 분 정도 있다가 호돌이를 풀어주라는 지시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갑작스레 벌어진 일도 해결하고, 원래 해야 하는 일들도 해결하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을 앞두게 되었다.
“……뭐 하지?”
하지만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동물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이미 끝냈고, 서류 업무도 쌓인 것이 하나 없는 상태였다.
평소라면 은수를 데리고 화단을 가꾸거나, 소은이와 놀아주고 있을 시간이었는데 둘 다 없다 보니 시간이 남아버린 것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아이들에게 맞추게 되어, 시간이 더 오래 걸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잠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점심시간도 다가오고 있으니, 누나랑 시간이나 보내다가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
“왔어?”
“어. 애들이 없으니까 시간이 너무 남더라고.”
“은수가 유치원에 갔으니까 그렇겠네. 화단 관리하는 거 엄청 빨리 끝났겠네?”
“맞아. 물 한 번 그냥 쭉 뿌리고 나면 끝이니까.”
나는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 안에 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은수와 함께 화단을 관리하면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었다. 아무래도 식물에 진심인 은수와 함께하다 보면, 은수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진드기같이 식물에게 문제가 되는 건 없는지 하나하나 다 확인해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애들도 없는데, 모처럼 우리끼리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갔다 올래?”
“맛있는 거? 좋아!”
내 말에 누나가 반색했다. 소은이는 몰라도 아직 많이 어린 은수를 데리고 우리 입맛에 맞는 곳을 가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콤하고 짭짤한, 한 마디로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싶었다.
“바로 가자!”
그리고, 그런 음식을 한동안 먹지 못하다가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누나는 냅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물론, 매콤하고 짭짤한 음식은 대부분 안주로 많이 팔리기에, 점심시간에 먹을 수 있는 메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것도 조금 이른 점심으로는 말이다. 결국 우리는 당장 먹을 수 있는 닭갈비 집으로 향했고, 오랜만에 아주 자극적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짜 좋다. 맵고 짜고. 엄청 그리웠어.”
“어우, 난 매운 걸 한동안 안 먹었더니 엄청 맵네.”
“푸흐흐, 수환아. 너 입술 엄청 빨개.”
“누나 입술도 빨갛게 만들어 줄까?”
“야아,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모처럼 우리 취향에 맞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인지, 누나는 내 팔을 톡톡 두드렸다. 밖에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힘껏 두드리는 게 아니라, 부끄럽다는 듯이 말 그대로 톡톡 두드린 것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다시금 동물원으로 돌아왔다.
“이제 뭐 할 거야?”
“누나 옆에 있을 건데?”
“……할 거 없어?”
“어.”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할 것들을 모두 다 했음에도 시간이 아주 여유로웠다. 나중에 은수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것이 할 일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앞으로 몇 시간 동안은 할 게 없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정말 옆에 있을 거야?”
“응. 할거 해.”
신경 쓰지 말라고 손을 휘휘 내젓고선, 누나가 업무를 보는 자리 옆으로 의자를 끌어와 놓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에 누나가 의아함을 한가득 담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하니?”
“이렇게 하려고.”
의자를 끌어온 나는 누나를 앉게 한 다음, 누나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여전히 말랑말랑한 다리를 베고 누우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신경 쓰지 말고, 할거 해.”
모종의 이유로 누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자 누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내 머리를 헝클었다. 그래도 비키라고 하지는 않았기에,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잠시 누나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으니, 잠이 솔솔 쏟아졌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누나. 허리 잠깐만 숙여봐.”
“응? 허리를?”
“응. 해봐.”
내 말에 누나가 의아해하면서도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뵈는 게 없어졌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시야가 캄캄해졌다.
하지만 새카맣게 변했던 시야가 돌아오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빛이 눈으로 쏟아졌고, 금세 시야가 회복되었다.
그리고, 시야가 회복된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손바닥이었다.
“으앗!”
이마를 차-악! 하고 두드리는 손바닥에, 화들짝 놀랐다. 예기치도 못한 공격이었기 때문인지, 아프지 않았음에도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내가 진짜 애를 셋 키우는 느낌이야.”
“응애.”
“……그건 좀, 아니잖아.”
누나가 정말 질색이라는 듯이 내 볼을 꼬집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멀쩡한 행동은 아니었기에,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물론, 그렇다고 일어나진 않았다.
“차라리 가서 게임이라도 하는 게 어때?”
내가 또 이상한 짓을 할까, 누나는 나를 내보내려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할 게 없으면 가서 게임이라도 하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누나의 그 의도는 안타깝게도 실패하게 되었다.
“지금 점검 중이라서 게임 못해.”
“에이…….”
아쉽다는 듯이, 누나가 내 머리를 다시금 헝클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정확히는 얼굴이 누나의 아랫배에 닿도록 몸을 돌린 것이었다.
그러고 숨을 크게 들이쉬니, 누나가 간지럽다며 나를 바로 눕게 만들었다. 덕분에 귀가 많이 얼얼했다.
“이러고 있지 말고, 차라리 다른 취미라도 하나 만들어보는 건 어때? 앞으로 애들 방학하기 전까지 매번 이렇게 할 거야?”
“그건 아니지.”
“그래. 그러니까 시간을 보낼만한 취미를 만들어 봐. 게임 말고.”
“취미라…….”
누나의 말에 고민이 됐다. 솔직히, 시간이 남는다고 누나의 곁에 매일 붙어 있을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누나도 누나가 할 일이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누나의 손길을 만끽하며 잠시 고민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가려고?”
“응.”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몰아온 의자를 원위치에 되돌리고서 사무실을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은 계속되고 있었다. 내게 맞는 취미가 하나 더 있으면 살아가는 것이 더 즐거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으흠…….”
한동안 내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취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하며 동물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그런데 동물원을 이리저리 거닐고 있으니, 약간의 소란이 들려왔다.
“크하하하하! 인간 놈들아! 내 집이 그리 쉽게 무너질 것 같으냐아아악!”
“비담! 거기 좀 더 당겨봐!”
“당기고 있거든?! 누가 가서 콩콩이 좀 불러와! 콩콩이라도 있어야지!”
소란의 근원지는 바로 동물원을 한 바퀴 도는 수로였다. 그중에서도 비버의 집이 만들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오늘이 수로를 청소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류를 만들어내어 물이 끊임없이 흐른다고 해도, 물때나 이끼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관이나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로를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해서는 비버의 집을 철거해야 했다. 비버의 치아 건강과 운동을 위해 주기적으로 하는 철거 시기가 아니었음에도 비버의 집을 철거해야 하는 것이었다.
철거 대상에 포함된 비버의 집은 비버 담당 사육사와, 시설관리팀에 의해 철거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어찌나 잘 지어둔 건지, 네 명이 달라붙어 나뭇가지 하나를 당기는데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뽑았다!”
“안 된다 인간 놈들아아아악!”
다만,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고, 네 명이서 합심해서 나뭇가지 하나를 당기니 조금씩 뽑혀 나왔다. 비버의 집을 지탱해 주는 메인 기둥이 뽑힌 것이었다.
덕분에 비버가 만들어낸 집이 와장창 무너졌고, 의기양양하던 비버 역시 무너져내렸다. 뽑혀버린 나뭇가지를 부여잡은 비버가 사육사들에게 들려 어디론가 향했다. 깨끗한 물에 깨끗한 녀석이 들어가도록 비버도 씻기러 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곳에는 수로를 이용하는 다른 동물들이 씻겨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자, 최대한 빨리 청소하고 소독까지 마무리합시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축 늘어진 비버가 사라진 다음, 시설관리팀에서 열심히 수로를 쓸고 닦기 시작했다. 물때가 순식간에 벗겨지고, 이끼가 뜯겨져 나갔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수로를 청소하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엇, 사장님!”
“고생하시네요.”
“에이, 이거 치우는 건 일도 아닙니다. 비버 집 철거하는 게 더 힘들죠. 건축 기술이 날로 발전해서, 이제는 맨손으로 철거하기가 힘들 정도거든요.”
“하, 하하…….”
나는 조금 전에 네 명이 합심해서 나뭇가지 하나를 뽑던 모습을 보았기에,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보양식으로 외식권이랑 휴가같이 챙겨드릴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기뻐하는 시설관리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도중, 청소용 솔이 달린 밀대에 슥슥- 밀려나가고 있는 이끼가 눈에 들어왔다. 녹색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탁한 색으로 더러운 느낌이었는데, 그걸 보니 무언가 떠올랐다.
그리고, 머릿속에 팍- 하고 떠오른 생각에, 벌떡 일어나 시설관리 팀장을 불렀다.
“우리 지금 부지 남는 곳 있죠? 당장 건물 올릴 수 있는 땅으로요.”
“어……. 예, 있긴 있습니다. 따로 건물이라도 지으실 생각입니까?”
“크게 지을 건 아니에요. 좀 하고 싶은 게 생겨서요.”
취미 삼기 딱 좋은 것이 떠올랐으니, 취미를 즐길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