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47
0346 스포츠(4)
온몸에 동물들의 발자국이 가득한 원숭이 녀석의 모습에, 측은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원숭아, 괜찮냐?”
“끼익……. 일부러 한 것도 아닌데 너무한 거 아니냐끽.”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훌훌 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딱히 다치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녀석의 등에 있는 일기토의 것이 분명한 발자국을 탁탁 털어주었다.
“그래도 지금 맞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축구화 신은 상태로 맞았다고 생각해 봐. 그냥 몸에 발자국 남는 정도로는 안 끝났을걸?”
“…….”
축구화가 무엇인지 알려주었기에, 원숭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소은이한테 가자. 실수라도 사과는 해야지. 사과 안 하면, 나중에 사과 안 했다고 또 맞을걸.”
소은이를 매우 아끼는 우리 동물원의 동물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상하게 소문이 나서 다른 동물들에게도 맞을지 몰랐다.
흰손긴팔원숭이인 원숭이는 온몸이 새하얗고 얼굴이 까만 편이었는데, 내 말을 듣더니 얼굴도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정말 잘못했다끽! 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끽!”
원숭이 녀석은 진심을 다해 소은이에게 사과했다. 아니, 이건 사과라기보다는 사죄에 가까웠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동물들이 ‘당연히 그래야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소은이는 그런 동물들과 달리, 거의 절을 하듯 몸을 굽히고 있는 원숭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나 갠차나! 안 아파!”
공이 강하게 튕긴 것도 아니고 반쯤 스치듯 머리에 닿은 것이었기 때문인지, 소은이는 여전히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거 먹어!”
그리고, 그렇게 원숭이를 용서……. 아니, 원숭이의 목숨을 구해 준 소은이는 자기가 끌고 온 카트에서 바나나 하나를 꺼내, 원숭이에게 주었다.
“공주-!”
무척 감동한 듯,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원숭이 녀석은 소은이가 주는 바나나를 붙잡고 오열했다. 그렇게 잠시 오열하던 녀석은 바나나의 껍질을 순식간에 벗겨, 과육을 먹어치웠다.
“너희도 배고프지? 많이 먹어!”
순식간에 바나나를 먹어치우는 원숭이의 모습을 보고 녀석이 배가 고팠다고 생각했는지, 소은이는 다른 동물들에게도 먹이를 내어주었다. 견과류, 고기, 건초, 사료 등등. 동물들에 맞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그릇에 담아 바닥에 내려놓는 것이었다.
갑자기 시작된 식사시간이었지만, 동물들은 곧바로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녀석들도 이리저리 움직이며 배가 꺼진 상태였던 것 같았다.
“……원숭이는 괜찮은 건가요?”
예비 선수도 없는데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라도 벌어질까, 걱정하는 듯한 안박손 감독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쟤들도 진심으로 팬 건 아니니까요.”
다른 동물들이 원숭이를 진심으로 공격한 거라면, 원숭이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종의 경고에 가까웠다. 소은이한테는 실수도 하지 말라는 경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동물들이 갑작스러운 식사 시간을 갖는 동안, 안박손 감독은 다른 동물들에게도 어떤 식으로 훈련을 시켜야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기토와 남캣은 작은 덩치를 이용해서 은밀한 움직임으로 최전방까지 끌어올려진 공을 빠르게 공격한다느니 하는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원래라면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것들이었지만, 방송을 오래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동물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혼잣말을 하던 안박손 감독은, 동물들의 식사가 끝난 것을 눈치채고서 벌떡 일어났다.
“자, 훈련에 앞서 준비운동부터 시작하죠.”
안박손 감독은 이제 배를 채운 동물들의 상태를 고려해, 준비운동부터 시작했다. 개과 동물들은 기지개를 켜듯 몸을 풀었고, 다른 녀석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몸을 풀었다.
그렇게 동물들이 혹시 모를 부상을 입은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준비운동을 끝낸 안박손 감독은 동물들에게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마루, 청호, 공돌이는 드리블 연습! 너희는 캥거루들이 막혔을 때, 최전방까지 공을 끌고 올라갈 수 있어야 해. 그리고, 그때를 가정해서 공을 가볍게 띄우는 연습도 같이!”
“남캣과 일기토는 슛을 때리는 연습을 하자. 따로 샌드백처럼 허공에 공을 달아줄 테니까 계속 두드려. 빠르게 움직이는 공까지 칠 수 있어야 돼.”
“캥거루 너희들은……. 일단 움직이면서 공을 차는 방법을 훈련해 보자. 너희도 공을 달아줄 테니까, 흔든 다음에 공을 차 봐.”
“원숭이랑 구박이, 짜몽이는 공을 띄우고, 패스하는 걸 위주로 훈련하자. 셋이서 공을 주고받으면서 띄우기도 하고, 뺏어보기도 하고.”
“누렁이 너는 공을 차줄테니까, 막는 걸로 하자.”
안박손 감독은 동물들에게 저마다 알맞은 훈련을 제시했다. 물론, 지금 당장 녀석들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안박손 감독 혼자였기 때문에, 직접 봐주는 것은 누렁이였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 옆에서 안박손 감독이 말하는 것을 통역해 주고 있었다.
“발을 봐! 공이 어느 방향으로 날아갈지 예측해!”
골키퍼의 포지션을 맡을 누렁이에게, 공을 보다 확실하게 막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박손 감독이었다.
그리고, 그런 안박손 감독의 가르침을 누렁이가 아주 쏙쏙 흡수하기 시작했다. 공을 차는 족족, 몸을 튕겨올리며 공을 붙잡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 골키퍼였으면 놓치는 것이 있었을 공까지 모두 몸으로 잡아채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뱀이라는 종이 가지는 특별한 신체기관을 이용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 신체기관을 이용해, 선수의 발이 공을 찰 때 발생하는 충격을 적외선으로 감지하여 찾는 것이었다. 평범한 뱀이라면 그 범위가 매우 좁겠지만, 누렁이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안박손 감독은 누렁이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며 감탄하고 있었다. 페이크를 섞어가면서 공을 날려도, 100% 공을 막아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누렁이는 훈련할 게 아니라, 바로 경기에 투입돼도 될 정도네요.”
당장 경기를 뛰어도 될 것 같다며 누렁이를 칭찬한 안박손 감독은 다른 동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완성형이나 다름없는 누렁이를 가르친다고 붙잡고 있는 것보다 다른 녀석들을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른 동물들에게로 다가간 안박손 감독은 아주 열성적으로 동물들을 가르쳤다.
어찌나 열성적으로 가르치는지, 본인으로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자기가 아는 축구 선수들까지 호출해서 가르치고 있었다. 동물들에게 맞는 멘토를 붙여줘가며 공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가르치는 맛이 있다며 근처에 숙소까지 잡아가며 교육을 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정말 쉼 없이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고생하는 것은 촬영 스태프들이었다.
“저 왔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훈련이 이어지는 사흘이 지났을 때, 훈련장으로 공 피디가 들어왔다. 무언가 할 게 있다며 호다닥 나갔다가, 품에 큼직한 상자를 안아들고 돌아온 것이었다.
“그건 뭐죠?”
“저희 PPL 제품입니다!”
공 피디는 품에 안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아, 축구화.”
그가 꺼낸 것은 바로, 동물들을 위한 축구화였다. 동물들이 경기를 할 때 신을 축구화를 만들기 위해 동물들의 발을 측정해 갔었는데, 그게 완성된 것이었다.
곧바로 상자로 다가가 확인하니, 열한 마리 동물들과 소은이를 위한 축구화가 담겨 있었다.
“바로 신겨봐야겠네요.”
축구화를 확인한 나는 동물들을 불러, 축구화를 신겼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장면이 아주 상세하게 카메라에 담겼다.
그런데, 축구화를 신고 있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신이 난 녀석이 있었다. 통통 튀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녀석이었다.
“누렁아, 그렇게 좋아?”
신이 난 녀석은 바로, 누렁이였다. 가장 처음에는 제게 발이 없음에 시무룩해 했으나, 꼬리 끝을 측정해 가는 사람들의 행동에 기뻐하던 녀석이기도 했다.
그리고, 누렁이는 지금 꼬리 끝을 감싸는, 축구화 같은 것을 보며 스프링처럼 통통 튀고 있는 중이었다.
꼬리 끝부분에 축구화처럼 생긴 것이 꼬리를 감싸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는 스파이크까지 박혀 있었다. 제자리에서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식으로 움직일 누렁이에겐 제법 어울리는 축구화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신발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긴 했지만.
“이렇게 선물까지 받았는데, 다들 열심히 할 수 있지?”
통통 튀는 누렁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제법 기뻐하는 티가 나는 동물들의 모습에,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녀석들은 내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도 새롭게 얻게 된 축구화를 자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처럼 축구화까지 신었는데, 진짜 필드에서 한 번 훈련을 해보도록 할까요?”
동물들이 축구화를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을 확인한 안박손 감독이 근처에 있는 축구장에서 훈련을 하자며 우리를 이끌었다.
동물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일종의 사설 축구장이 있었기에 그곳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하나의 팀이었는지, 동일한 형태의 유니폼을 갖춰 입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쪽은 제가 따로 섭외한 초등학교 축구부예요. 실전보다 좋은 훈련은 없다는 것이 제 신조라서, 한 번 실제 경기를 펼쳐볼 생각인 거죠.”
아직 어리고, 완성된 선수들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마냥 쉽게 볼 상대들은 아니라며 안박손 감독이 동물들에게 주의사항 같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물론, 그 통역은 내 몫이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난데없이 훈련이 아니라 실제 경기를 펼치게 된 동물들은 살짝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시작된 경기에서는 그 긴장한 모습이 싹- 사라졌다. 지난 사흘간 안박손 감독이 아주 열심히 훈련을 한 보람이 있는 모습이었다.
“으앙! 무슨 고양이가 나보다 더 잘 차!”
오히려 초등학생 축구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 정도였다. 초등학생들이 차는 공들은 누렁이에게 막혔고, 어떻게든 막으려 하는 초등학생 골키퍼는 일기토와 남캣이 날리는 공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동물들이라고 해서 초등학생들에게 뒤처지는 녀석들은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시무룩해진 초등학생 축구부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 치킨을 그득하게 시켜줘야 했다.
“신수 아저씨! 동물들 축구 엄청 잘해요!”
소은이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나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던 아이였으나, 치킨 통다리 하나를 물고서 엄지를 들고 있는 상태였다.
그 모습에 피식 웃고 있으니, 또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번에는 중학교 축구부와 경기를 해보죠. 다음은 고등학교 축구부랑…….”
안박손 감독은 모처럼 축구장에 나와 있으니, 실전 경험을 최대한 쌓아보자며 경기를 연달아 진행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중학교는 초등학교보다 더 실력이 좋았고, 고등학교는 중학교보다 더 실력이 좋았다.
이후로는 다른 고등학교, 아니면 대학교나 사회인 축구단 같은 이들과도 경기를 펼쳤다.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했을 때는 5 대 0이라는 압도적인 결과로 승리를 따냈었다. 하지만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대학교로 갈수록 결과가 조금씩 변했다. 5점을 얻은 것이 4점으로, 3점으로. 심지어, 한 점이긴 하지만 실점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