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6
0035 새로운 사고뭉치들
“동생, 카페 영업은 좀 잘 돼?”
“네, 뭐. 사람들이 잘 오긴 하네요. 첫 날에 아침부터 웨이팅한 사람까지 있다니까요?”
“이야……. 나는 못 가겠다. 나 같은 아저씨는 웨이팅하면 죽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웨이팅은 고기가 구워지는 걸 기다리는 거 뿐이야.”
아저씨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오픈시간에 그랬다는 거지, 하루 종일 웨이팅이 있던 건 아니에요.”
“그래. 나중에 한 번 찾아갈게. 얘들도 보내는데, 한 번은 보러 가야지.”
“아저씨는 언제 오든 환영할게요. 영업시간 안에 온다면요.”
아저씨는 내 말에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네 영업시간이 내 근무시간이랑 비슷한 건 알지? 오지 말란 거냐?”
“에이, 좀 쉴 때도 있을 거 아녜요. 무슨 일주일 내내 근무해요?”
그래도 쉬는 날은 좀 쉬어야지- 하며 말한 아저씨는 가속 페달을 밟으며 부드럽게 가속했다.
“와따. 겁나 막히네.”
하지만 차는 금방 서버렸다. 출근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데다, 상습적으로 정체되는 구간에 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차로를 지나는 순간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빠아아아앙!
“이런 씹! 뭐야! 미친 새끼가 유도선을 왜 안 따라가! 지가 유도미사일이야 뭐야!”
아저씨는 앞에서 라인을 이탈해 교차로를 통과하는 차량을 향해 경적을 울렸다. 당장 차량끼리 갖다 박을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그 차량은 경적음 덕분에 제 차선을 찾아 이동했다.
“휴…….
“이놈의 교차로는 유도선을 그리면 뭐 하냐고. 인간들이 눈깔이 없는지 보질 않는데!”
아저씨는 이미 몇 번이나 겪었던 일인지 성을 내며 소리쳤다.
“그래도 사고는 안 나서 다행이네. 얘들 다치면 어떻게 됐을지…….”
아저씨는 룸미러로 뒤를 보며 다치거나 놀란 아이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나 역시 살펴보니 딱히 다치거나 놀란 녀석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편하다는 듯이 쿨쿨 자는 녀석들이 태반이었다.
기껏해야, 거위가 놀랐다는 듯이 거북이 등껍질을 쪼고 있었다.
‘아니, 거북이는 무슨 죄라고 껍질을 쪼고 있냐. 너 그러다가 부리 나가 임마.’
황당함에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옆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빠아아앙! 빠아아아아아앙!
“야! 창문 내려! 씹새야! 너 거기 서!”
다름이 아니라, 조금 전 우리 앞을 틀어막다가 경적을 얻어먹은 차량의 운전자가 옆에 붙어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하……. 똥 밟았네.”
아저씨는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러면서 그 차량을 따돌리려는 모습을 보이길래, 내가 말렸다.
저런 놈들은 따라온답시고 오히려 사고를 유발하는 놈들이다. 웬만하면 그냥 원하는대로 해주는 것이 낫다.
지이잉- 소리가 나며, 창문이 내려가자 상대방이 욕하는 것이 더 직설적으로 들려왔다.
“차 세……!”
“운전 좀 똑바로…….”
상대 운전자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내 품에 안긴 라쿤을 보며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운전자를 보며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이어진 라쿤의 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야이 혓바닥 쪽 뽑아갖고 냇물에 씻어벌라. 어디서 시끄럽게 지럴이여!”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상대 운전자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손발을 휘적거렸다. 게다가 말을 할 때마다 드러나는 날카로운 이빨은 꽤나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뛰쳐나가려는 라쿤을 붙잡아 튀어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운동부족에 사료는 잘 먹었는지 폭신폭신한 뱃살을 잡으니 저항을 한 방에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압 된 것은 몸뚱이였지, 사납게 짖어대는 주둥이와 앞발이 아니었다.
“죄, 죄송합니다!”
크하악, 크하악! 위협적으로 울어대며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자랑하는, 사납기 그지 없는 라쿤의 모습을 확인한 상대 운전자는 창문을 올리더니 냅다 도망쳤다.
그 모습을 바라본 아저씨는 무척 웃기다는 듯이 푸하핫- 웃음을 터트렸다.
“와, 장난 아니네! 나도 차에 라쿤 한 마리 놔둬야 하나? 완전 너굴맨이 따로 없네. 난폭 운전자는 이 너굴맨이 처리 했으니 안심하라고!”
“얘 데리고 있으실래요?”
“아니. 너 데려가. 난 안전운전할게.”
“……떠넘기는 거 맞잖아.”
나는 아저씨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내가 한숨을 내쉬든 말든, 차는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며 우리 카페로 향했다.
“자, 다 왔다!”
“고마워요. 아저씨.”
카페라기 보다는 우리집에 더 가까운 곳에 차량이 멈춰서자, 나는 곧바로 차문을 열며 집의 대문을 열었다. 지금 당장 카페로 데려가는 것 보다는 기본적인 교육 정도는 하는 것이 좋았다.
“자, 너희들은 이제 내리자.”
집의 대문까지 열어젖힌 나는 곧바로 차의 문과 트렁크를 열어, 동물들을 집 안으로 쑥쑥 밀어넣었다.
두 마리의 라쿤을 시작으로, 다섯 마리의 토끼, 여덟 마리의 거위. 그리고 한 마리의 거대한 거북이였다. 덩치만 하더라도 내 상반신보다 조금 작을 정도였다.
“끄으윽……! 왜 이렇게 무거워!”
“야야, 거북이 가볍게 보지마라. 무겁다. 걔가 구십 키로던가……? 새신랑 허리 작살내긴 충분하지.”
나는 아저씨의 말에 기겁했다. 90kg? 어쩐지 들어올리려고 해도 꿈쩍도 안 하더라.
“힉……. 차에 어떻게 올렸어요?”
“어떻게 올리긴. 팔다리 뒀다가 뭐 하냐?”
아저씨는 잘 보라더니, 흡! 힘을 주며 거대한 거북이를 들어올렸다.
반팔 티셔츠 아래로 드러난 팔뚝은 울긋불긋한 핏줄이 돋아나며 엄청난 힘이 발휘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렇게 힘을 자랑한 아저씨는 거대한 거북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쿵, 하고 거북이의 배갑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인간이야 코끼리야…….’
아저씨가 정말 인간인가 싶었으나, 인간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싶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으아아악!”
집 안으로 들어간 나는, 보이는 풍경에 그대로 비명을 내질렀다.
이제 함께 하게 된 동물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노오오오오오오! 내 참외!”
얼마전부터 모종을 사다가 심어서 누나와 함께 애지중지 키우고 있던 참외가……. 토끼 녀석들에게 작살이 나고 있었다.
다급히 달려가서 보니, 벌써 심어둔 것의 절반이 줄기가 뜯겨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뜯긴 줄기들은 토끼 녀석들의 주둥이에서 오물오물 씹히고 있었다. 조막만한 것들이 왜 이렇게 잘 먹는 거야.
“머, 멈춰!”
나는 남은 참외라도 지키기 위해, 토끼 녀석들을 향해 외쳤다.
역시 ‘멈춰’는 동물이라면 항거 불가능한 그런 말인지, 참외 줄기를 씹고 있던 토끼들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휴…….”
더 이상 참외에 피해가 가지 않는 것에, 나는 안도했다.
“동생, 저거는 괜찮나?”
“뭐가……으아아악! 니들도 멈춰! 그냥 전부 다 멈춰!”
곁에 서 있던 고길휘 아저씨의 물음에 무심코 뒤를 바라본 나는 악을 쓰듯 소리쳤다.
두 마리의 라쿤은 탈출을 꿈꾸는 건지, 대문의 아래쪽에 앞 발을 밀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여덟 마리의 거위들은 누나가 가꾸고 있던 화단을 거침 없이 쪼고 있었다.
나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꽃들이었는데, 그 꽃들은 그렇게 거위들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고 있던 거북이는 마당의 정중앙에서 잔디를 야무지게 뜯어먹는 중이었다.
그래도 저항 불가능의 포박기술, ‘멈춰’의 대단한 효과대로 녀석들은 그 모습 그대로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난 간다!”
“어딜 가요!”
“여기 있으면 돌려보낼 거잖아!”
“아저씨 이 녀석들 사고 잘 치는 거 알고 있었지!”
“그럼 모르겠냐!”
아저씨는 어떻게든 도망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힘도 좋아서, 잡아 끌어도 오히려 내가 끌려갈 정도였다.
착, 탁, 착, 탁!
하지만 아저씨를 막는 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대문의 잠금 장치를 푸는 것과 동시에 다시 잠궈버리니, 힘이 좋아도 도망칠 수 없었다.
“다시 데려가라고는 안 할테니까 좀 도망치지 마요.”
“진짜지?”
“에휴. 그래요.”
애초에 이 동물들을 데려올 때 부터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특히나, 이렇게 개성이 강한 녀석들일 수록, 카페에는 잘 어울렸으니 돌려보내기도 아쉬울 정도였다.
“얘들 키우는 방법이나 알려줘요.”
“그래!”
아저씨는 내가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꿀 걸 걱정하는지, 새로이 함께 지내게 된 녀석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토끼들은 렉스 토끼로, 사람들이 ‘토끼’라는 생물을 생각하면 떠올리기 쉬운 외형을 가진 토끼라고 한다.
먹는 건 대충 토끼용 건초를 사서 주면 된다고 했다. 그럼 크게 문제는 없겠네.
“아, 참고로. 얘들은 다 암컷이야. 수컷은 없어.”
“왜요?”
“번식력이 워낙 좋아야 말이지. 거기에 수컷은 발정기에 행동도 좀 그렇거든. 너 감당할 수 있겠어?”
내 머릿속에서, 토끼로 뒤덮인 카페가 잠깐 그려졌다. 토끼의 번식력이 워낙 유명해야지.
“앞으로 수컷토끼는 출입 금지인 걸로.”
“뭐,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거위들은 그냥 거위야. 잡식성이니까, 뭘 주든 다 잘 먹을 거야. 그래도 간이 세거나 한 건 주면 안 되는 거 알지?”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쿤은 뭐……. 알지? 워낙 유명하잖아. 얘들도 잡식성이긴 한데, 웬만하면 사료 먹여. 인터넷에 팔더라. 이건 조금 있다가 내가 챙겨온 거 좀 줄게. 토끼용 건초랑 같이.”
“그럼 저 녀석은요?”
나는 마지막 남은 동물. 한 마리의 거대 거북이를 가리켰다.
내 멈추라는 말에 멈추긴 했는데, 여전히 마당의 잔디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움직이게 허락하는 순간 당장 마당을 모래밭으로 바꿀 모습이었다.
“저 녀석은 알다브라땅거북인데……. 좀 많이 먹으니까 신경 써야 할 거야. 배추 같은 걸 좀 챙겨 주면서, 잔디나 건초도 먹이면 돼. 대신, 저 녀석한테 물고기나 단백질 같은 건 먹이면 안 된다.”
아저씨는 자세한 건 문자로 보내주겠다 말하더니, 차 트렁크 바닥의 숨겨진 공간에서 동물들이 먹을만한 먹이들을 가져왔다. 건초와 사료 포대가 마당 구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동물들과 녀석들이 먹을 먹이를 내려준 아저씨는 이번에야말로 도망치겠다는 듯이 재빨리 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은 나는 곧바로 누나를 불렀다. 직원들이 많은 덕에 누나가 빠져나와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수환아, 벌써 왔……!”
그리고, 대문을 열고 들어온 누나는 엉망진창이 된 마당의 꼴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아!”
절반이 사라진 참외, 꽃봉오리가 없이 줄기만 남은 꽃들, 땜빵이 생긴 마당의 잔디. 그걸 본다면 놀라지 않을 수는 없겠지.
“내가 데려오기 전에 연락하라 했지!”
아, 까먹었다.
“그게, 고길휘 아저씨가 데려다준다고 해서 이야기 하다보니까, 타이밍이 좀 안 맞았달까…….”
“후…….”
누나는 나와 주변을 번갈아가면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화를 삭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화를 풀었다.
“그래, 화 내서 뭐 하겠어. 얘들이 뭘 알고 그런 것도 아니고. 너도 그 아저씨가 데려다준 거면 전화할 시간은 없었겠지.”
금세 화를 푼 누나는, 우리가 가장 아끼던 참외를 작살낸 용의자들에게 다가갔다.
누나는 살짝 움츠러든 토끼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잘 가르쳐줘. 이런 거 막 먹으면 안 된다고.”
“걱정 마. 따로 주는 거 말고는 마음대로 뜯어먹지 않게 할 거니까.”
누나는 내 말에 믿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