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69
0368 퉤에잇
“아아아알파아아아카아아아. 알파카, 알파카.”
흥얼흥얼, 알파카 노래를 부르며 알파카처럼 뛰노는 소은이를 보니 흐뭇한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소은이가 ‘알바’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위해 애쓰던 도중에 알파카 이야기가 나왔고, 그대로 키우기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그 알파카가 동물원에 오는 날이었다. 학교 가는 평일이 아니라 토요일인 덕분에 소은이가 아침부터 알파카가 온다고 기분이 한껏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새로운 동물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 소은이는 마냥 해맑은 미소를 뿌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는 상태였다.
아침을 먹고 난 뒤,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는 누나 옆에 가서 ‘엄마! 오늘 알파카 오는 날이야!’하고 알짱거리다가 엉덩이를 찰싹 맞고 쫓겨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쫓겨난 소은이는 은수를 붙잡고 열심히 알파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은수야. 알파카느은, 털이 엄청 많아!”
“털 많으면 더워!”
“웅웅. 그치그치. 덥지.”
털이 그득한 동물들과 한여름에 부대끼면 덥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여기 책에 있는데. 알파카를 키우면 털을 깎아야 한다고 나와 있어!”
“털? 그럼 미용실 가?”
“미용실 안 가구, 술빵이처럼 사육사 언니오빠야들이 깎아주지 않을까? 미용실에는 알파카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잖아!”
“마자. 의자 업서.”
딱 아이들이 할 법한 대화를 나누는 두 아이의 모습에 정말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감춰지지 않는 미소를 머금은 채,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나중에, 알파카들 털 깎을 때 직접 해볼래? 소은이랑 은수가 같이.”
“진짜?”
“지인짜?”
지금까지는 아이들에게 강아지를 비롯한 동물들의 미용을 맡긴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날카로운 가위를 이용해야 하고, 실수라도 했다간 본인이나 동물들에게 상처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파카는 그냥 양털을 깎듯이, 기계를 이용하면 수월하게 잘라낼 수 있었다. 그것도 잘못 사용하면 위험하기는 하지만, 안전장치가 있긴 했으니 조금만 조심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도 충분히 체험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 보통 여름이 되기 전에 털을 깎아야 하니까, 알파카들이 동물원에 적응하면 바로 시원하게 밀어줄까?”
“좋아!”
“와앙!”
두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로 손을 잡고 방방 뛰었다. 마치 강강술래라도 하듯 빙글빙글 돌면서 폴짝폴짝 뛰는 게 어찌나 귀여운지 광대가 아플 정도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광대가 아프게 만들던 아이들은 잠시 방방 뛰다가, 다시금 자리에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소은이가 가지고 있는 동물 백과사전 같은 것이었는데, 그 책에 나와 있는 알파카에 대한 부분을 사이좋게 보고 있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머리를 맞댄 상태로 책을 보고 있었다. 알파카의 먹이는 어떻고, 어디서 살던 동물인 것인지 등등이 나와 있었다.
“압빠! 알파카 털로 옷도 만들 수 있대!”
덕분에, 소은이가 알파카의 털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맞아. 전에, 엄마가 입던 옷 중에 베이지 색깔 코트 있었지? 엄청 부드러운 거.”
“웅! 엄청 부드러웠어!”
“그 옷이 알파카 털로 만든 거야. 알파카 털 말고 다른 거도 섞여 있긴 하지만.”
소은이와 은수가 내 말에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알파카 털 밀어주면 옷 만들자!”
그리고, 소은이는 알파카를 키우게 될 거니, 알파카들의 털로 옷을 만들자고 외쳤다. 어차피 밀어야 하는 털이니, 그걸 활용해서 옷을 만들자는 소리였다.
한국의 무더운 여름을 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털을 밀어야 하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밀어낸 털을 그냥 버리기엔 아까웠으니, 모아뒀다가 옷을 만드는 데 써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소은이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양말 만들자! 양말!”
“……소은이 너, 그 양말로 집에서 스케이트 타려고 그러는 거지? 안 돼.”
“힝.”
요즘에 우다다다 뛰다가 급정거하면서, 부드러운 양말을 이용해 쭈욱 미끄러지는 놀이를 즐기는 소은이였다. 위험한 행동인지라 못 하도록 하고는 있지만, 하지 말란다고 안 하면 애가 아니지.
보나 마나 부드러운 양말이라면 마찰력을 더 줄일 수 있을 거고, 그러면 더 길게 미끄러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대신, 나중에 겨울 되면 소은이랑 은수가 쓸 수 있는 모자랑 장갑부터 만들어 줄게. 대신 양말은 안 돼.”
“아라써…….”
“히히.”
시무룩한 소은이와 다르게, 은수는 부드러운 모자와 장갑을 낄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은 것 같았다.
저나바다아아!
그리고, 그 순간 내 휴대폰이 진동을 울리며 벨소리를 토해냈다. 벨소리 좀 바꾸라는 누나의 요구대로, 은수의 목소리로 녹음한 전화받으라는 벨소리였다. 은수 목소리여서 그런지, 자다가도 벨소리가 들리면 벌떡 깰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사장님. 알파카 도착했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곧바로 알파카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곧바로 가겠다고 답을 해준 뒤,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알파카 왔다는데, 같이 갈까?”
“와! 갈래갈래!”
“웅.”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아이들을 데리고 알파카가 도착한 후문 쪽을 향해 움직였다. 동물 운송용 대형차량과 사람들이 많은 곳인지라, 은수는 안아들고 소은이의 손은 꼬옥 붙잡은 상태로 말이다.
“압빠! 저기 알파카 있어! 알파카!”
후문에는 벌써 알파카들을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발견한 소은이가 알파카라며 방방 뛰었다. 튀어나가지 못하게 손을 꼬옥 붙잡고 있는 나를 질질 끌면서.
그런 소은이에게 끌려 알파카 하역 장소로 다가간 나는, 건초를 들고 알파카를 유혹하고 있는 사육사 한 명을 바라보았다. 먹을 걸로 꾀어내어 차에서 스스로 내리게 만드는 게 여러모로 편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동 과정에서 기분이 나빠졌던 건지, 알파카는 그런 건초를 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들이밀면 저리 치우라는 듯이 고개를 거칠게 돌릴 뿐이었다.
아무리 알파카가 침을 잘 뱉지 않는다고 해도 귀찮게 구는 사육사에게 조만간 침을 뱉을 것 같았다. 괜히 사육사가 침을 맞고 시무룩해 하는 꼴을 볼 생각은 없었기에, 곧바로 사육사를 내려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신 소은이를 투입했다. 어린아이에게 위험한 일을 시킨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었지만, 소은이에겐 전혀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잠자는 호랑이 코털을 뽑아도 멀쩡할 수 있는 사람이 소은이였다.
“짜잔!”
알파카들이 있는 차량으로 다가간 소은이는 미리 가져간 상자의 뚜껑을 열고 휘휘 흔들었다. 그 안에는 손가락 길이 정도로 다듬어진 건초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소은이는 그런 건초를 한 줌 쥐어, 알파카들을 유혹하듯이 내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평범한 건초가 아니었다. 나와 은수가 직접 기르고 말린, 알팔파라고도 하는 식물인 자주개자리였다. 우리 동물원의 초식 동물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였다. 살이 찌기 쉬운 것인지라 자주 주지는 않지만, 한 번 줬다 하면 순식간에 먹어치울 정도로 좋아하는 것이었다.
간식도 자주 접하는 우리 동물원의 동물들이 달려들 정도로 좋아하는 먹이인 만큼, 외부의 동물들에게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마, 맛있는 냄새……!”
알파카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소은이의 손에 들린 상자와 건초에 시선을 집중했다. 물론, 뒤쪽에 있어서 그 건초를 보지 못한 알파카들은 소은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따라와!”
제게 시선이 집중된 것은 확인한 소은이는 천천히 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알파카들은 홀린 것처럼 소은이를 따라 이동 차량에서 내려왔다.
암수 세 마리씩, 총 세 쌍의 알파카들이 이동 차량에서 무사히 내려왔다.
“내가 먹이 줄 땐 꺼지라는 거 같았는데…….”
“아가씨에 도련님표 알팔파 조합! 이거 못 이기거든요.”
그 모습에, 곁에 있던 사육사들이 감탄하고 있었다. 자기들이 내려오라고 애원을 할 때는 보지도 않던 녀석들이, 홀린 것처럼 얌전히 따라오니 사육사들이 감탄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그 순간 소은이가 갑자기 와하하항- 웃음을 터트리더니 내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그런 소은이가 달려가니, 소은이와 건초에 홀려 있던 알파카들 역시 내달리고 있었다. 마치 파도치는 것처럼 몸을 흔들며 달려나가는 알파카들은 소은이를 따라 동물원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뿌, 눈나 어디 가?”
그리고 그런 광경에 넋을 놓고 있던 나는, 품에 안겨 있던 은수의 물음에 정신을 차렸다.
“소, 소은아-!”
정신을 차린 나는 은수를 안아들고 소은이가 내달린 곳을 향해 달려갔다. 당연히 뒤에 있던 사육사들 역시 나를 따라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었다.
“이, 인수증에 서명해 주셔야죠!”
심지어 동물들을 데려온 운송 기사 역시 따라 뛰었다.
알파카들을 달고 내달린 소은이처럼,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달고 내달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소은이를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후문에서 멀지 않은 훈련장에서 알파카들에게 알팔파를 먹이고 있는 소은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동물원에 동물들을 데려오면, 일단 훈련장에서 동물들을 훈련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압빠! 내가 알파카들 여기로 데려왔어!”
“잘했어. 그래도 아빠한테 어디 간다고 말을 해야지.”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탱글탱글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아프지 않게 해서 그런지, 소은이는 마냥 즐겁다는 듯이 해맑은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일단 알파카들한테 가르쳐야 할 것부터 가르치고 놀자.”
“웅!”
은수를 내려놓으니 소은이가 은수의 손을 잡고, 내가 알파카들을 훈련하는 것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가장 기초적인 배변 훈련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나 동물원에서 유의해야 할 것 같은 것들을 가르쳤다. 여섯 마리에게 모두 가르친다고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소은이와 은수가 나서서 도와주니 생각보다 금세 교육이 끝났다.
“압빠! 이제 얘들이랑 놀아도 돼?”
“응. 대신, 알파카는 타고 놀면 안 돼. 쟤들은 허리가 좋은 편이 아니거든.”
“잉, 아쉽다. 알았어!”
비슷하게 생긴 라마와 다르게, 알파카는 짐꾼으로 쓰기에도 부적합한 동물이었다. 활용하기 좋은 털 때문에 가축화된 동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동물들을 타는 걸 좋아했던 소은이는 조금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래도 동물들과 아주 즐겁게 놀기 시작했다. 탑승하지 못하는 동물이라고 딱히 차별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눈나, 나두!”
“은수도 먹이 줄래?”
“웅!”
“자! 은수가 줘!”
소은이는 은수랑 같이 알파카들에게 먹이도 직접 먹여보고, 복슬복슬한 털도 만져 보며 즐겁게 동물들과 어울렸다.
하지만 단순히 그 정도로만 노는 것으로 끝내면 소은이가 아니었다. 잠시 알파카 한 마리를 데리고 쑥덕거리더니, 기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금세 알 수 있었다.
“알파카 침 뱉기!”
“퉤에잇!”
바로, 명령에 따라 침 뱉는 걸 가르친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중에 알파카들에게 목걸이를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애는 침 뱉어요.’라는 문구가 달린 목걸이를 말이다.
“우엑, 냄새!”
“냄새나!”
하지만 알파카가 내뱉은 침에서 나는 악취 덕에, 소은이가 두 번 다시 알파카에게 침을 뱉게 시키는 일은 없었다. 가까이 있던 두 아이들이 냄새가 심하다며 코를 부여잡았다.
단순히 침만 뱉는 게 아니라, 씹어 삼킨 건초 같은 것들을 되새김질하듯 끌어올려 내뱉는 것이었기 때문에 악취가 무척 심한 탓이다. 라마에 비하면 조금 덜하다는 평이 있긴 한데, 그래도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침 뱉으면 안 돼!”
소은이는 알파카들에게 침을 뱉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서는, 악취가 나는 곳을 모래로 슥슥 덮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니, 목걸이를 만들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동물원의 주의사항에 문구 한 줄이 더 추가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