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71
0370 털(1)
“더 가져올 짐은 없어요?”
무하마드가 직원용 숙소를 확인하고, 짐을 내려놓는 것을 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바로 온 탓에, 짐이라고는 짐가방 하나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제 비서들이 가지고 올 거예요.”
“하긴, 아까 비서 몇 명이 어디로 가긴 했죠.”
분명 기차를 타고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같이 있던 비서 몇 명이, 집을 확인하자 어디론가 사라졌었다.
“아, 그리고 가구 같은 건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교체해도 돼요. 아무래도 가구 같은 건 익숙한 게 좋을 거 아녜요. 그냥 내 집이다-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써요.”
“고마워요.”
내 말에 무하마드가 감동했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건강을 회복한다고 오랜 시간 있으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상 같은 것들을 들은 것 같았다. 슬쩍 못 같은 걸 박아도 되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세를 들어 살 때 벽에 못 하나 박지 못 하게 한다는 걸 도대체 누가 알려준 거야?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으니, 무하마드가 남아 있던 비서에게 무언가 지시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어도 영어도 아니었기에, 무어라 말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느낌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비서에게 자기가 애용하는 가구들을 들이라는 지시라는 것을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가구를 주문한 무하마드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딱히 무언가 뷰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물원의 일부가 보이고 있었다.
“…….”
다만, 그것도 잠시였다. 할 게 없어진 우리는 조금 뻘쭘하게 서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제 무하마드의 집인 곳에서 멍하니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나는 슬쩍 현관으로 향했다.
“저는 이만 가도록 할게요. 편히 쉬고 있어요.”
“아……. 차라도 대접을 해야 하는데…….”
“에이, 방금 들어온 집에 그런 걸 바랄 수는 없죠.”
내 말에 무하마드가 그것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같이 가는 걸로 하죠. 뽀니에게도 여기가 집이라는 걸 알려줘야 하니까요.”
“그럴래요? 보나 마나 소은이가 뽀니에게 새롭게 들어온 동물 친구들을 소개해 주고 있을 거예요.”
뽀니가 떠난 이후로 들어온 동물들을 소개해 준다면서 동물원을 돌고 있을 것이 뻔했다.
나는 곧바로 무하마드와 함께 소은이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잠시 동안 동물원을 거닐고 있으니, 내 예상대로 뽀니를 데리고 동물원을 돌고 있는 소은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압빠! 와! 무하마드 아저씨다!”
뽀니와 함께 동물원을 거닐던 소은이는 나와 무하마드를 발견하더니, 쪼르르- 달려왔다. 당연히 뽀니 역시 소은이의 속도에 맞춰서 달려왔다.
소은이는 무하마드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자주 만난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선물을 주는 아저씨라고 좋아했기 때문이다. 소은이도 여러 목걸이나 머리핀 같은 것들을 받았었다.
아무튼, 그렇게 달려와 인사한 소은이는 내게 찰싹 달라붙었다. 아니, 내 몸을 타고 올라왔다. 영차영차 힘차게 내 몸을 타고 올라온 소은이는 내 목덜미에 매달렸다.
“압빠! 이제 뽀니도 우리랑 같이 있는 거야? 예전처럼?”
“응. 그런데, 예전처럼은 아니야. 무하마드 아저씨가 직원 숙소에서 지낼 거거든. 뽀니가 무하마드 아저씨랑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 그렇게 할 거야.”
“그래도 좋아!”
소은이는 뽀니와 계속 시간을 같이 보낼 수는 없어도, 함께 다시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좋다는 듯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꼬마 공주. 뽀니가 꼬마 공주를 무척 그리워했어요. 뽀니와 잘 놀아줘요.”
“뽀니랑 노는 거 엄청 좋아요!”
약간 걱정 섞인 무하마드의 말에, 소은이가 마치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소은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한 뽀니는, 소은이에게 아주 절친한 친구였다. 함께 노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긴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무하마드와도 인사한 소은이는 다시금 뽀니를 데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뽀니에게 소개해 줄 동물들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소은아, 이제 어떤 동물 소개해 줄 거야?”
“알파카!”
알파카를 소개해 줄 거라는 소은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하마드와 함께 소은이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잠시 동안 동물원을 돌던 소은이는 찾으려던 알파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알파카를 발견하고 도도도- 달려가는 소은이와 다르게, 뽀니 녀석은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내게 슬그머니 다가왔다.
“저 동물이 설마 공주님을 태우고 다니는 건 아니겠죠?”
질투심으로 가득 찬 것 같은 뽀니의 모습에,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녀석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은이가 폭풍 성장을 하고 있는 덕분에, 지금의 뽀니는 소은이를 태우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꼭 타자면 탈 수는 있지만, 그렇게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뽀니에게 무리가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당연히 소은이를 태우지 못하게 된 뽀니는 무척이나 실망한 상태였다. 소은이를 태우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던 뽀니였는데,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말이랑 신체 구조 자체가 조금 비슷한 알파카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자기보다 덩치가 더 커서, 소은이를 태울 수도 있을 것 같은 알파카를.
엔초를 보자마자 냅다 결투부터 신청한 뽀니답게 알파카를 향해 질투심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자기는 소은이를 태우지 못하는데, 알파카는 소은이를 태울 수 있을 것처럼 생긴 탓이었다.
나름대로 진지한 뽀니의 모습에 한참 웃음을 터트리던 나는 뽀니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저 동물은 알파카인데, 다리랑 허리가 조금 약한 편이라서 사람들을 태우거나 짐을 끌지 못해.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으니까, 가서 사이좋게 지내자고 해봐.”
“오!”
내 말에 뽀니 녀석이 무척 다행이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자기가 태우지 못하는 소은이를 알파카가 태울 수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좋은 건가 싶었다.
그리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녀석은 소은이를 따라 알파카에게 호다닥 달려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단순히 반갑게 인사하는 하는 수준이 아니라, 서로를 칭찬하는 수준이었다. 털이 예쁘다는 뽀니의 칭찬을 시작으로, 다리가 튼튼해 보여서 부럽다는 알파카의 답신이 이어졌다. 그 이후로도 눈에 보이는 여러 장점들에 대한 칭찬이 줄을 지었다.
“머리를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주는 그 털이 참 잘 어울리네요.”
“뽀니 씨도, 목에 자라나는 갈기가 참 예뻐요. 저한테도 그런 갈기가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마치 칭찬 릴레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의 칭찬을 이어가는 두 녀석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대로 놔뒀다간 서로의 이빨 까지 칭찬할 기세라, 두 녀석 사이로 난입해서 녀석들을 말렸다.
“이렇게 칭찬을 할 정도면, 앞으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겠지?”
“당연하죠.”
두 녀석은 마치 절친한 친구라도 된 것처럼 반응했다. 한 녀석은 애초에 소은이를 태우지 못하는 신체구조를 가진 채로 태어났고, 한 녀석은 소은이의 성장으로 인해서 소은이를 태울 수 없게 됐다는 아쉬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도 동물들끼리 사이가 좋다는 것을 나쁘게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기에, 두 녀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음……?”
그런데 알파카의 머리를 쓰다듬던 나는 묘하게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어제 만졌을 때보다도 더 털이 수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 털이 좀 더 자란 거 같다?”
“털이야 매일 자라는 거죠.”
“그건 그런데……. 묘하게 좀 많이 자란 것 같아서.”
내 느낌인지는 몰라도, 알파카의 털이 어제보다도 조금 더 수북한 느낌이었다. 머리에도 나 있는 털들 때문에, 머리가 어제보다 더 커진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소은아, 알파카 털이 더 풍성해진 느낌 안 들어?”
“우움……. 맞아, 더 풍성해!”
그리고, 그것은 소은이 역시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다. 분명 알파카의 털이 더 풍성하게 자라났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아, 설마 그거 때문인가……?”
풍성해진 알파카의 모습에, 나는 녀석의 털이 왜 급격하게 자랐는지 어느 정도 이유를 유추할 수 있었다. 내가 분명 알파카 녀석들을 보며, 털이 부드럽게 잘 자랐으면 하는 생각을 무심코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가볍게 생각한 것이 무의식적으로 초능력으로 발현된 것인지, 알파카 녀석들의 털이 벌써부터 자라나고 있는 것이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럽기도 한 걸 보면 뭐, 빼박이네.”
아무리 그래도 동물의 털인지라, 가공하기 전에는 조금 부드럽지 못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알파카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고, 전체적으로 부드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 보더라도 내 초능력의 영향임이 분명했다. 아무리 모직을 위해 가축화된 동물이라 할지라도, 털이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는 것은 내 초능력의 영향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딱히 문제가 될만한 것은 없었다. 털이 조금 더 잘 자라게 만든다고 해서 수명이 깎이는 등의 일은 없으니 말이다. 그저, 조금 귀찮아질 뿐이었다.
“그럼 슬슬 털을 좀 밀어야겠는데? 털이 조금만 더 자라면 눈도 가릴 거 같네.”
빠르게 자라난 털을 조금 더 자주 밀어줘야 할 뿐이었다. 알파카가 원래 살아가는 고산지대와 다르게, 이곳은 계절이 극명하게 바뀌는 곳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봄과 가을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지만, 그만큼 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극심한 상황이었다. 두터운 털을 가지고는 곧 다가올, 무더위가 지속되는 여름을 버티기 힘들었다.
“압빠, 알파카 털 미는 거야?”
“응. 소은이가 한 번 해볼래?”
“와! 할래 할래!”
그리고, 소은이는 알파카의 털을 직접 밀어볼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기대된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무척 기대된다는 듯한 소은이가 벌써부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검지와 중지를 뗐다 붙이는 걸 보면, 가위질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 난 여기서 도망쳐야겠어!”
하지만 정??털이 밀리게 될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알파카는 그 모습을 보고서는 몸을 휙 돌렸다. 이대로 있다간 자신의 털이 빡빡 밀리게 될 거라는 것을 직감한 듯했다.
순식간에 몸을 돌린 알파카 녀석은 파도가 치는 것처럼 몸을 움직이며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뽀니야! 잡아!”
“멈춰요!”
물론, 그런 도주극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은이의 외침에 달려나간 뽀니에게 도주로가 틀어막혔기 때문이다. 도망칠 길 자체가 막힌 알파카 녀석의 털이 소은이의 자그마한 손에 아주 야무지게 붙잡혔다.
“뽀니…… 당신마저!”
그리고, 뽀니에 의해 도망칠 길이 막힌 알파카는 배신감에 몸서리쳤다. 그렇게 칭찬을 주고받았는데, 어떻게 자신이 도망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냐는 것이었다.
뽀니는 그런 알파카의 시선을 슬그머니 회피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한 알파카를 배신한 건 안타깝게 느끼긴 했지만, 그보다는 소은이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금세 바뀌게 되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던 무하마드가 다가온 것이었다.
“드루이드, 알파카의 털을 정리할 건가요? 그럼 미안하지만 우리 뽀니의 갈기와 꼬리도 같이 정리해 줄 수 있나요? 병원에 있느라 관리를 해주지 못했거든요. 조금 너저분하니, 이참에 정리를 하고 싶어요.”
“뽀니의 갈기랑 꼬리 정리요? 어렵지 않죠.”
무하마드는 뽀니의 갈기와 꼬리의 털들을 정리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내 말을 통해 그 사실을 유추한 뽀니 녀석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소은이가 원하는 대로 알파카의 도주로를 막으려던 뽀니가 이젠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물론, 뽀니가 도망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히히, 못 가!”
자신의 털이 밀리는 것이 확정되었음을 확인한 알파카 녀석이 혼자 죽을 수 없다는 듯이 뽀니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결국, 뽀니는 자신이 붙잡으려 했던 알파카에게 되려 붙잡힌 처지가 되었다.
나는 도망치려 했던 두 녀석을 붙잡으며, 동물들의 미용을 담당하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