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76
0375 한우(3)
“갑자기 들어와서 놀랐지?”
놀란 듯한 녀석들을 가볍게 토닥이니, 금세 진정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좀 진정됐어?”
“그래요우우우.”
완전히 진정한 듯, 칡소가 편안한 모습으로 므우웅- 길게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순박한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색깔만 좀 바꾸면 호랑이의 것이랑 비슷했을 무늬를 잠시 구경했다.
이 소에게 칡소라는 이름이 붙은 것처럼, 비슷한 무늬를 가진 호랑이를 칡범이라고도 불렀으니 무척 유사한 무늬였다.
“너네 무늬 엄청 진하네.”
“고마워요우우우!”
“괜찮나요오우우우?”
나름대로 자신들의 무늬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건지, 두 녀석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귀와 꼬리를 파다닥 움직였다.
그런 녀석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녀석들의 상태를 한 번 확인했다. 연구원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문제점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딱히 문제라고 할만한 것들은 없었다. 너무나도 건강한 상태였다.
결국, 나는 두 녀석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너희, 서로 어때?”
“뭐가요우우우?”
“아니……. 왜, 그 있잖아. 짝으로 삼기 좋은지 아닌지 같은 거.”
아무리 동물들에게 말하는 거라고 해도, 교미 상대라고 대뜸 말하려니 어색했다. 괜히 낯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내 물음에 곧장 답을 주었다.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말이다.
“나쁘진 않은 데 제 취향이 아니에요우우우.”
“나쁘진 않은 데 제 취향이 아니에요우우우.”
내가 보기엔 참 잘 맞는 것 같은데 말이지.
어떻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동시에 말할 수가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녀석들이 번식에 성공하지 않는 이유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었기에, 녀석들과 조금 더 대화를 이어갔다.
“요즘 좀 어때? 뭐, 건강 상태라던가. 아니면, 여기에서 지내는 게 어떻다던가.”
녀석들의 뿔 사이 이마를 슥슥 쓰다듬으며 질문을 던지니, 녀석들이 하나둘씩 이야기를 꺼냈다.
두 녀석들의 말은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먹이도 맛있고, 비바람을 막아줄 곳도 있고 하니 무척 좋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 두 녀석의 반응이 갈라지는 부분이 있었다. 정확히는 수컷 녀석만이 말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살던 곳에서 여기로 옮겨와서, 아직 적응을 못 하겠네요우우우.”
“그래?”
타 지역에서 이곳으로 옮겨 온 수소 녀석이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문제가 드러났다.
번식에 실패한 건 단순하게 두 녀석이 서로를 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수소 녀석이 이 장소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원인인 것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확인한 다음, 곧바로 연구원에게로 다가갔다. 원인은 파악이 되었으니, 해결하는 일만 남았다.
“큰 문제는 아니었네요.”
“정말인가요? 도대체 왜 번식에 실패했던 건가요?”
연구원은 어서 알려달라는 듯이, 살짝 흥분한 듯한 모습으로 나를 초롱초롱하게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그 이유를 알려 주었다.
“연구원 님은 갑자기 어디론가 이동하게 되고, 거기서 갑자기 번식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나요?”
“쌉 가……가 아니라, 힘들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데 동물들은 어느 정도 유도가 가능하지 않습니까?”
연구원은 조금 억울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동물들의 경우에는 발정기를 유도할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망가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처럼 미친 듯이 교미를 하게 유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유도는 가능한 편이었다.
“유도가 가능해도, 긴장한 상태라면 잘 안될 수밖에 없죠. 낯선 곳으로 갑자기 이동하게 됐으니, 한껏 긴장하고 있는 상태잖아요? 암컷들도 처음 보는 녀석들이 난데없이 들이닥치니 놀란 상태고요.”
“아…….”
“그리고, 중요한 게 또 있어요.”
“그게 뭔가요?”
“바로, 암소와 수소 둘 다 서로가 취향이 아닌 거죠.”
“……예?”
내 말에 연구원이 이해하지 못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결코 예상하지 못한 대답인 것 같았다.
“아까 들어간 곳에 있는 두 녀석이 좀 사이가 떨어져 있길래 물어보니, 서로가 취향이 아니라 하더라고요.”
두 녀석이 아주 동시에 말한 것이었다. 다른 방은 아직 들어가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들어간 방에서 번식이 실패한 이유는 두 녀석이 서로가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서로가 취향에 맞았더라면, 두 녀석은 발정 유도의 유무와 상관없이 번식에 성공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그럼 방법이 없는 걸까요? 다른 곳에서 그러는 것처럼 인공 수정으로 번식을 할 수밖에 없나요?”
연구원이 시무룩한 모습을 보였다. 연구원이 소속된 곳이 나름대로 동물 복지를 모토로 내세우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소들의 번식을 인공수정으로 하면 비용 절감이나 확실한 번식 등의 장점이 있긴 하지만, 당사자인 소에겐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수소에게 발정제를 투여해서 성적으로 흥분하게 만든 뒤, 정액을 채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 좋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잠깐 성욕 해소하고 끝내는 거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스스로 하는 것과 남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에 차이가 없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시무룩해 하는 연구원을 보며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하지 말라 하고, 곧바로 다른 칡소들이 있는 방을 순회 돌듯 하나씩 다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방들은 대부분이 처음 들어간 방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름대로 사이가 좋아 보이는 녀석들이 있었으나, 불안감이나 긴장감 때문에 번식에 성공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전부 다 나와!”
총 열 개의 방을 모두 둘러본 나는 그대로 안에 있던 칡소들을 다 불러냈다. 스무 마리의 칡소들이 내가 열어 둔 문을 통해 느릿느릿 빠져나왔다.
서로가 취향이 아닌 데다 긴장한 녀석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뭉치기 시작했다. 타 지역에서 데려온 수소들과, 이곳에서부터 원래 자리하고 있던 암소들로 말이다.
두 부류로 나뉜 녀석들을 이끌고, 곧바로 입구로 향했다.
“시, 신수 님?”
“걱정 말고 기다려 봐요.”
당황하는 듯한 연구원을 뒤로하고, 곧바로 스무 마리의 칡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덩치 큰 녀석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 나는, 저 멀리서 소은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스무 마리의 칡소를 이끌고 움직이니, 어느덧 소은이를 볼 수 있었다. 칡소의 등에 올라탄 채, 녀석의 뿔을 붙잡고 있는 소은이의 모습을 말이다.
“와! 압빠다! 얼룩아, 저기로 가자!”
얼룩이라 이름 지은 칡소를 타고 있던 소은이는 나를 발견하더니 그대로 소를 탄 채 달려왔다. 그리고, 그런 소은이를 뒤따라 누나와 은수가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우악, 윽, 우으!”
당연한 말이지만, 소는 사람을 태우기에 적합한 동물이 아니었다. 특히 내달리는 상태의 소는 말이다. 소은이는 그 위에서 폴짝폴짝 뛰듯 몸이 휘청거렸다. 그래도 뿔을 잡은 손을 놓지는 않아서 떨어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보인 모습이었는지, 뒤를 따라오는 누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도 보였다. 이젠 잔소리하기도 귀찮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압빠! 쟤들 다 칡소야?!”
“응. 절반은 다른 지역에 있던 소들인데, 아직 여기 적응을 못했거든? 그래서 다른 칡소들이랑도 좀 어울려서 놀 수 있게 해주려고 데려왔지.”
“와! 내가 도와줄래!”
적응하지 못한 칡소들이 있다고 하니, 소은이가 먼저 나서서 적응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런 소은이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애초부터 소은이와 함께 칡소의 적응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얘들아 놀자아아!”
소은이는 조금 어색하게 뭉쳐있던 칡소들에게 다가가더니,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놀자면서 달려가는 소은이를 따라 움직였다.
스무 마리의 칡소들이 칡소 한 마리 위에 올라타 있는 소은이를 따라 방목장은 아주 열심히 내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칡소 한 마리가 소은이를 태우고 있던 칡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잉, 잡혔어! 이제 네가 술래야! 십 초 줄 테니까, 멀리 도망가!”
소은이는 제 곁으로 다가온 칡소를 팡팡 두드리고선, 녀석을 멀리 보냈다. 그리고 다른 칡소들을 데리고 열심히 또 달리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도망치는 술래를 나머지 스무 마리 칡소들이 잡는 것이었다.
정말 아이들이 할 법한 놀이지만, 덕분에 칡소들이 서로 어색함을 푸는 시간이 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녀석들은 소은이와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하나의 무리가 되어갔다.
“저놈 잡우우우!”
“내가 막겠수우우우!”
“잡았수우우우!”
“이건 반칙이우우우!”
어느새, 녀석들은 언제 어색했냐는 듯이 하나가 되어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특히, 기존에 살던 곳이 아니라, 새로운 곳으로 오게 되어 긴장하던 수소 녀석들은 무척이나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신 주변을 경계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다른 칡소들과 함께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긴장감이 풀리니, 수소들이 조금씩 암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열심히 뛰놀다가 지친 녀석들에게 은수가 건초를 나눠주고 있으니, 한 녀석이 제 마음에 드는 암소에게 슬쩍 건초를 양보했다.
새로운 장소에 왔다는 긴장감이나 경계심이 누그러지고, 함께 뛰놀며 생긴 유대감 등으로 인한 결과였다.
그런 녀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두 녀석을 다시금 방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 두 녀석을 데리고 방으로 향했던 연구원이 곧 환한 미소와 함께 달려왔다.
“신수 님! 됐어요! 됐다고요!”
연구원은 방금 방으로 향한 두 녀석이 교미를 시작했다며 무척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어 보이고선, 남은 녀석들도 짝을 찾아주기 위해 움직였다.
물론, 무슨 거창한 방법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녀석들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서로 마음에 맞는 녀석들끼리 짝이 지어지도록 유도했을 뿐이었다.
소은이와 함께 열심히 뛰놀고 은수가 주는 먹이도 받아먹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 덕분인지, 녀석들은 금세 하나둘씩 짝을 지어갔다. 처음에는 조금 데면데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금세 짝이 완성되었다.
건초를 양보해 주는 것으로 짝이 된 경우도 있었고, 서로 몸을 비비면서 짝이 된 경우도 있었다. 아니면 다른 수소보다 더 우람한 뿔을 자랑하는 녀석에게 반한 듯한 암소도 있었다.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총 스무 마리의 칡소들은 하나둘씩 자기들의 짝을 찾았고, 녀석들은 다시금 방으로 돌아갔다.
덕분에 녀석들을 방으로 들어가게 만든 연구원의 입꼬리가 하늘로 승천하듯 올라가고 있었다. 특히, 소들이 본격적인 거사를 치르기 시작했을 때는 입꼬리가 찢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나는 몇 가지 도움을 더 주었다.
칡소 한 마리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이유를 확인해 준다던가, 녀석들이 따로 무언가 원하는 것들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면서 복원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확인해 주는 것이었다.
그런 내 도움 덕분에 복원이 더욱 쉬워질 것 같다며, 연구원이 내 손을 붙잡고 감사 인사를 표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런 요청이었으니까요.”
고맙다고 연신 손을 흔들어대는 연구원을 진정시키며, 다음 할 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칡소에 대한 내용의 뮤튜브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별달리 어려울 것 없이, 소은이와 은수가 칡소와 함께 뛰노는 장면을 찍으면 되는 것이었다. 중간중간 칡소의 외형을 자세히 담으면서 말이다.
일종의 홍보용 영상이었는데, 그것 역시 강원도에서 요청한 것이었다. 칡소에 대해 홍보가 잘 되어야 복원 사업에 대한 예산 확보나, 지지 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칡소를 일종의 관광 상품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었기에, 뮤튜브에 홍보 영상을 업로드하는 것으로 나름대로 큰 금액까지 약속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방목장 겸 칡소 연구소에서 할 일을 마친 나는, 가족과 함께 이런저런 구경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이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끝난 덕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칡소의 방목장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는 양 목장이나 알파카 목장도 둘러 보고, 영화 촬영지나 관광 상품화된 농원 같은 곳들을 둘러보았다.
여러 장소들을 방문한 덕에, 소은이는 물론이고 누나와 은수 역시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농원에서 떠나려 하지 않는 은수를 달랜다고 힘이 들긴 했지만.
그렇게, 모두가 즐겁게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낸 날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금 집을 향해 움직여야 했다.
강원도로 올 때처럼, 먼 거리를 열심히 움직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동물원에 기증받는 형태로 들어오게 된 두 마리의 칡소를 데리고 말이다.
“압빠! 나 칡소랑 같이 가면 안 돼?”
“안 돼. 소은이는 아빠 차 타고 같이 가야지.”
“힝. 지루한데!”
다만, 그 차량과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탓에 소은이가 무척 지루함을 느끼는 듯했다. 강원도로 향할 때는 아주 빠르게 이동하니 금세 이동했는데, 지금은 칡소를 태우고 이동하는 차량의 느린 속도에 맞춰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조금 빨리 가면서, 저기 민속촌 같은 곳이라도 구경하고 갈까? 칡소는 열심히 가라고 하고, 우리는 잠깐 구경하고 가는 거지. 나중에 휴게소에서 만나면 되잖아.”
“와! 좋아!”
물론, 그런 지루함은 중간중간 빠지면서 여러 관광요소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자연 동굴이나 민속촌같이 구경하기 좋은 곳들을 들러 구경하며 이동하니, 우리는 해가 질 즈음에 무사히 동물원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당연히 무사히라는 말에는 두 마리의 칡소도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