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96
0395 라떼(2)
“맛있냐.”
“우어어어워어웅.”
“꾸르어어워응!”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내 초능력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괴상한 소리를 내뱉은 곰돌이와 백설기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었다.
슬쩍 벌어지는 주둥이 사이로 벌집과 꿀이 뒤엉켜 껌처럼 늘어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으아아아! 양치 지옥이다!”
뒤에서 잠깐 술렁대는 느낌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이유가 사라졌다.
신경 쓰기에는 두 마리의 곰이 너무나도 빠르게 벌집을 해치웠기 때문이다. 내 머리보다 더 커다란 벌집이 순식간에 두 녀석의 주둥이 사이로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이미 이빨에 낄 것이 다 끼어 있는데, 이빨이 끼는 것을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곰돌이와 백설기의 벌집먹방을 잠시 관람한 뒤, 나는 백설기에게 다가갔다.
백설기는 현재 곰돌이와의 사이에서 생긴 새끼를 배고 있는 임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백설기 역시 크게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편이었다.
“몸은 어때?”
“언제나처럼 최고!”
꿀 범벅이 된 이빨을 씩- 드러낸 백설기는 몸 상태가 최고라며 한껏 살이 오른 듯한 몸으로 춤을 췄다. 이족보행하듯 일어난 녀석은 몸을 꿀렁꿀렁 흔들어대며 기분 좋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와아! 최고!”
그리고 몸 상태가 최고라는 백설기의 말에 소은이도 신이 난 건지, 백설기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귀엽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한동안 소은이와 백설기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백설기를 진정시켰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북극곰이라 해도, 진정할 때는 진정해야 하는 법이었다.
“아무튼, 출산 예정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몸조심해.”
“에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무리 건강한 동물이라고 해도 출산할 때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야.”
“잔소리는 우리 곰돌이가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오…….”
잔소리를 듣기 싫다는 듯이 두터운 앞발로 머리에 있는 귀를 틀어막는 백설기였다. 그래도 잘 알아들었겠거니- 생각하며 영양제 몇 개를 챙겨주었다.
귀를 틀어막은 채로 주둥이에 들어오는 영양제를 날름 삼킨 백설기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쉬고 있어.”
“안녕! 나중에 또 놀러 와! 귀염둥이도!”
백설기의 상태도 확인했고, 녀석에게 영양제도 먹였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얼음궁전에서 빠져나왔다. 아무리 방한복을 입어도 어마어마하게 추운 곳은 오래 있을 곳이 아니었다. 당연히 성인인 내게도 그런 얼음궁전이었기에, 소은이도 데리고 나왔다.
아쉽다는 듯이 손을 흔드는 백설기를 뒤로하고 얼음궁전에서 빠져나왔다. 내부와 다른 어마어마한 열기가 후끈후끈하게 밀어닥쳤다.
“압빠! 빨리 에어컨!”
“그래, 그러자.”
나는 곧바로 소은이를 데리고 가장 근처에 있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인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는 벌써부터 열기를 피해서 도망친 관람객이나 동물들이 많았다.
“와! 엄마다!”
그리고, 그곳에는 누나가 은수를 데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곁에 영지도 같이 있는 걸 보니, 잠깐 쉬면서 수다도 떨 생각으로 온 것 같았다.
소은이는 그런 누나의 모습에 호다닥 달려가 안겨들었다. 갑자기 소은이가 안기는 것에 누나가 놀라는 듯했지만, 이내 웃으며 소은이의 입에 자그마한 쿠키를 넣어 주었다.
“누나도 여기 있었네?”
“응. 영지랑 잠깐 수다도 떨면서 놀 겸. 밖에 있으면 덥잖아. 여기는 은수도 놀 공간이 있고.”
누나의 말에 은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생과일주스가 들어 있는 컵을 야무지게 붙잡고 있는 은수는 아주 열심히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카페 구석에 있는 놀이시설에 가 있었다.
분명 음료를 다 먹으면 가서 놀게 해주겠다고 했고, 은수는 놀기 위해서 음료를 열심히 마시는 중인 게 분명했다.
“은수야, 눈나랑 놀자!”
“소은이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음료 마시고 놀아야지?”
“엑.”
그리고, 그런 은수처럼 소은이 역시 음료에 포박되었다. 엄마 옆에 앉은 은수처럼, 영지 이모 옆에 앉은 소은이는 제 몫의 음료를 열심히 마셨다.
어떻게든 놀겠다는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나도 음료를 하나 주문했다. 사장이라도 1인 1음료였다.
“압빠, 그거 뭐야? 압빠가 맨날 먹던 거 아닌데.”
“이거? 아이스크림 카페라떼야. 한번 먹어볼까 해서.”
약간의 달달함을 느끼고 싶어서,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라떼로 음료를 선택했다. 새하얀 우유와 커피의 색깔이 묘하게 섞여 있는 것이 꽤 예뻤다. 덕분에 소은이가 꽤 관심을 가졌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린이에게 카페인은 좋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갑작스럽지만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됐다.
아이들은 음료를 원샷 하듯 마시고서는 실내 놀이터로 뛰어갔고, 나는 누나와 영지의 수다에 동참했다. 요즘 뭐가 유행이니, 어떤 동물이 카페에서 손님들의 이목을 끄니, 새로운 음료가 인기 없다느니 같은 이야기들을 떠들었다.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열심히 뛰어놀던 아이들도 지친 듯이 옆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시원한 물을 들이켜고 있었고 말이다.
전화받어어어어- 전화아아아- 받어어어어어-
그런데 수다가 약간이 소강상태를 맞이했을 때, 갑작스럽게 전화가 걸려왔다.
“정말, 그 벨소리는 바꿀 생각이 없는 거야?”
“아, 이거? 바꿔야지 생각만 하다가 까먹게 되네.”
솔직히 벨소리나 컬러링은 바꿔야지 마음을 먹은 순간에 하지 않으면 자꾸 까먹는 것 같았다.
아무튼, 어서 받아달라는 듯이 지잉지잉 진동까지 울리는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화면에 떠 있는 발신자의 정보가 우리 직원이었으니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장님-!”
“어우, 깜짝아. 무슨 일 있어요?”
전화를 받으니 직원의 다급한 외침이 먼저 들려왔다. 순간 당황했으나, 평범한 일로 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설기, 설기가 출산하려 합니다!”
“……네? 백설기가요? 아니, 아까까지만 해도 딱히 분만 증상은 없었잖아요?”
“그건 그런데, 갑자기 분만이 시작됐습니다. 지금 수의사 팀에서 들어가려 하는데, 사장님께서도 바로 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 네. 바로 갈게요.”
전화를 끊은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예정일보다 빠르게 분만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지금 당장 백설기가 있는 곳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내가 분만을 직접 지휘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만을 앞둔 백설기에게 내가 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 별명 중 하나인 건강과 풍요의 토템이 되려는 것뿐이었다. 단순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사히 출산을 끝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다녀올게.”
나는 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곧바로 백설기가 있는 얼음궁전으로 향했다. 아무리 분만 상황이라 해도 외부의 열기는 백설기의 체력을 앗아가기 때문에 분만 역시 얼음궁전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나는 곧바로 카페에서 얼음궁전으로 내달렸다. 뜨거운 열기가 몸을 한껏 뜨겁게 만들었지만, 방한복을 챙겨들고 달려들어간 얼음궁전의 냉기가 열기를 모두 식혀주었다.
“끄르으어어어엉!”
그렇게 얼음궁전 내부로 들어가니, 내부에서 백설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꽤나 급한 상황인 듯했기에, 더더욱 빠르게 달렸다.
그곳에는 백설기 녀석이 힘겹다는 듯한 모습으로 끙끙거리는 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옆에는 곰돌이 녀석이 안절부절못하며 수의사를 툭툭 건들고 있었고 말이다. 마치 어떻게 좀 해달라는 것처럼.
“사장님, 오셨습니까!”
“백설기 상태는요?”
“분만 직전입니다. 조금 있으면 시작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수의사들이 백설기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을 보며, 백설기에게 다가갔다.
“끄으으응……!”
“힘들지?”
“괜……찮아앗……!”
백설기는 약한 모습을 보이긴 싫었던 건지, 콧잔등을 쓸어주던 내 손을 슥슥 핥았다.
“조금만 힘 내자. 그럼 너랑 곰돌이의 새끼가 태어날 거야.”
“내 새끼……?”
“그래. 너랑 곰돌이를 닮아서 귀여울 거야. 아마 소은이가 보면 엄청 좋아할걸? 너랑 곰돌이 둘 다 닮았을 거니까.”
“히, 흐히…….”
자기가 낳을 새끼를 생각한 건지 백설기가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기분 좋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녀석을 가볍게 토닥이며, 녀석이 빠르게 새끼를 출산할 수 있도록 옆에서 보조를 했다. 수의사들이 하는 말을 백설기에게 전해주고, 백설기가 느끼는 것들을 수의사들에게 전해주는 식이었다.
그렇게 얼음궁전의 냉기도 잊은 채로 열심히 백설기와 수의사들을 보조하고 있으니, 몇몇 수의사들이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옵니다!”
바로, 백설기의 출산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힘겹게 끙끙거리는 백설기가 안심할 수 있도록, 녀석의 앞에서 곰돌이와 함께 응원을 해주었다. 덕분인지, 처음으로 새끼를 낳는 것임에도 백설기는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수의사들의 조언대로 새끼를 낳을 수 있었다.
“내 새끼…….”
새끼를 낳은 백설기는 한껏 지친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뀨잉뀨잉 소리를 내는 새끼를 핥기 시작했다. 제 앞발 하나만큼도 안 되는 자그마한 새끼였지만, 녀석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듯이 새끼를 열심히 핥았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곰돌이가 백설기와 새끼에게 슬쩍 다가갔다. 곰돌이는 그 자그마한 것이 제 새끼임을 아는지, 아주 조심스럽게 코를 갖다 댔다.
“뀨이앙!”
“애를 너무 세게 만지면 어떡해!”
그리고, 들이미는 코에 담긴 힘이 강했다며, 갓 출산한 백설기에게 한 방 얻어맞게 되었다. 큼직한 앞발이 가볍게 휘둘러지며 곰돌이의 옆구리를 툭 쳤다.
난데없이 한 대 얻어맞은 곰돌이는 억울하다는 듯이 백설기를 바라보았지만, 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솔직히 녀석이 조금 강하게 코를 들이밀은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물론, 반쯤 본능적으로 때려버린 백설기는 놀란 곰돌이에게 다가가 몸을 비벼댔다. 나름대로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곰돌아. 우리 애, 귀염둥이한테도 보여주자.”
“알았어유. 내가 아가씨헌티 다녀올게유.”
소은이에게 새끼를 꼭 보여주고 싶어 하는 듯한 백설기의 모습에 곰돌이가 곧바로 달려나갔다.
제 새끼를 내 딸에게 보여주지 못해서 안달인 백설기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수의사들이 새끼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도중에 백설기가 수의사들을 경계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새끼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라 하니 오히려 백설기가 새끼를 수의사들에게 들이밀었다.
“건강 상태는 양호하네요. 오히려 우량아에 가깝습니다.”
“다행이네요. 아, 그리고 혼혈이라 생기는 문제점 같은 게 있나요?”
“아뇨, 지금 같은 경우에는 없습니다. 불곰과 북극곰의 혼혈은 종종 보고되기도 하니까요. 그롤라, 피즐리, 카푸치노……. 부르는 이름도 여러 가지죠. 게다가, 라이거나 노새 같은 혼혈과 다르게 번식도 가능하고요.”
건강이 무척 좋다는 말에 안도하며, 그 사실을 백설기에게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백설기는 그대로 수의사를 끌어안았다. 임신 상태에서 한껏 잘 챙겨 먹어 덩치가 거대해진 북극곰이 끌어안는 것에 수의사는 기겁했다. 하지만 백설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의사를 슥슥 핥아댔다. 녀석 나름대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