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13
0412 동물세끼(1)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동물원을 순회하고 있으니, 처제인 영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영지야.”
“형부우. 그 피디님 왔어요!”
“그 피디?”
“하루세끼랑 우주게임센터 피디님이요!”
“무슨 일로 온 거지? 알았어. 지금 갈게.”
피디가 왔다는 소리에, 나는 곧바로 카페를 향해 움직였다. 그런데, 카페 내부로 들어갔음에도 피디가 보이지 않았다.
“저기, 안쪽에 있어요.”
“안쪽? 노애니멀존?”
“네에.”
동물은 좋아해도, 동물들의 털 문제로 인해 식사 등의 음식류 섭취를 같이 하기를 꺼리는 이들은 언제나 있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카페와 식당 내부에는 노애니멀존이라고 하는 별도의 공간이 있었다.
바람으로 털을 다 날리고 입장하는 독립적인 공간이었는데, 카페에서는 꽤나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이었다. 물론, 그 이유는 단순했다. 디저트를 먹으려 하면 옆에서 애절한 눈빛으로 ‘한입만’을 요구하는 동물들 때문이었다.
맛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은 디저트였기에, 오롯이 혼자서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들어가는 곳이었다. 동물들이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걸 무시하면서 먹기에는 심적으로 부담이 됐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런 노애니멀존에 있다고 하니, 곧바로 그곳으로 들어갔다. 마치 소독실처럼 되어 있는, 바람이 뿜어지는 통로를 통과한 뒤에 도착한 노애니멀존에는 사람들이 제법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피디 역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셨으면 연락이라도 주시지 그랬어요.”
“어? 안녕하세요. 오늘은 그냥 개인적으로 온 거라 따로 연락을 안 드렸어요.”
나를 발견하고 놀란 듯한 피디는 멋쩍게 웃으며 딸기 타르트를 입으로 밀어 넣었다.
“흐흐흐. 이 맛이 너무 좋아서 또 왔네요. 저번에 게임 상품으로 나온 걸 먹었는데, 엄청 맛있어서 자꾸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부산 근처에 촬영을 온 김에 먹으러 왔죠.”
“저희 디저트가 맛있긴 하죠.”
순식간에 타르트 하나를 먹어치우고, 다른 종류의 디저트 상자를 개봉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카페에서는 나와 은수, 무하마드가 공들여 키운 작물들로 만든 디저트들이 많았는데, 그것들은 어마어마한 맛을 자랑하고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피디처럼 오로지 디저트만을 위해 동물원에 찾아오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하아아아. 진짜 맛있네요. 제가 참외를 솔직히 말해서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이 참외로 만든 잼은 엄청 맛있네요.”
“그 참외도 제가 키운 거예요. 제가 참외를 좋아하거든요. 꽤 공들여서 키웠죠.”
“오, 진짜요? 그래서 더 맛있나 보네요.”
폭신폭신한 식빵에 잼을 발라 한 입 먹은 피디는 두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무척 맛있게 느끼고 있는 건지, 음음- 흐으음- 하는 소리를 계속 내고 있었다.
그런 피디의 모습에 가볍게 웃고 있으니, 어느새 입안에 있는 것들을 꿀꺽- 삼킨 피디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아이템이 하나 떠올랐는데……. 혹시, 동물원에서 한 번 더 촬영해도 될까요?”
“촬영이요? 어떤 아이템인데요?”
다시 한번 촬영을 해보고 싶다는 피디의 말에 호기심이 들었다. 흥행성 좋은 피디이고, 저번에 촬영을 한 뒤로 꽤나 방문객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루세끼 아시죠? 저번에 촬영도 하셨잖아요.”
“잘 알죠. 그럼, 하루세끼를 동물원에서 찍으려고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죠.”
애매모호한 말에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맞으면 맞는 거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건 뭐냐고.
하지만 내 의문은 금세 해소되었다.
“정확히는 하루세끼의 스핀오프 형태로 진행될 거예요. 동일 프로그램으로 계속 우려먹는다고 자꾸 기획서가 반려당해서…….”
“그 소문이 사실이었어요? 몇 년 하면 못 하게 한다는 그거요.”
“뭐, 공식적으로 발표된 건 없어요. 저희도 그냥 유추하고 있을 뿐이죠. 기획서를 제출해도 식상하다는 이유로 반려당하니까요.”
“아쉽네요. 어쩐지 안 그래도 요즘 익숙한 건 별로 없고, 다 새로운 형태만 하더라.”
“어쩔 수 없죠. 지금 자리를 잡고 앉은 분 생각이 안주하면 도태된다는 거라.”
절레절레 내젓는 피디의 모습에 호응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스핀오프는 어떤 내용이죠?”
“간단해요. 사람들이 세 끼를 챙겨 먹는 게 아니라, 동물들한테 세 끼를 챙겨주는 거죠. 거기다가, 자연구역에 있는 밭에서 나오는 작물들도 동물들한테 많이 준다면서요? 그럼 거기서 재배도 직접 해보고요.”
“직접 캐서 먹는 것처럼, 직접 길러서 먹이는 걸 찍겠다는 거죠?”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하듯이 손짓한 피디는 흐뭇한 표정으로 다시금 디저트 하나를 해치웠다.
그런데, 그 순간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이전에 하루세끼를 촬영하던 당시, 세진 형이 투덜거린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었다.
“전에 세진 형이 동물들한테 세끼 챙겨주는 아이템 하기만 해보라고 했던 거 때문에, 진짜 만드는 거예요?”
“오! 그런 이야기도 있었죠. 잊고 있었네요. 실제로 만들면 그 부분을 프로그램 시작할 때 자료화면 형태로 넣어야겠어요.”
피디는 좋은 생각이라며 싱글벙글 웃으며 메모를 하고 있었다.
괜한 아이디어를 준 것 같아 세진 형에게 아주 잠깐 미안함이 들었다. 물론, 어차피 아이디어가 피디에게서 나온 것이라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여기서 촬영이 가능해야 한다는 거겠죠. 어떻게, 촬영을 해도 괜찮을까요?”
“음……. 정확히 어떤 형태로 진행될지 저한테도 좀 기획서 같은 형식으로 주실 수 있을까요?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는 저도 뭔가를 보고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당연하죠! 금방 보내드릴게요.”
피디는 당연한 일이라며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나가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 앞에 있는 디저트와 음료를 완벽하게 해치우고서 떠났다.
그리고, 그렇게 디저트를 해치우고 떠난 피디는 며칠 뒤, 자신이 말한 대로 기획서를 보내주었다.
기획서에는 여러 내용들이 있었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출연진들이 동물원에서 상주하면서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었다.
밭에서 노동을 해서 작물을 재배하고, 그 밭에서 수확한 것들을 이용해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형태였다.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노동에 따라서 식재료 등을 제공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 내용의 촬영은 2주 내지는 4주에 1회로 3박 4일 촬영을 총 3개월 동안 할 예정이라 되어 있었다.
“음, 괜찮은 것 같네.”
딱히 문제가 될만한 내용은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촬영을 허가했다. 특히, 우리 동물원의 사육사들이 꿀을 빤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기획서를 확인하고 허가를 해준 뒤, 한 달 정도가 흘렀을 때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 ○ ◑ ● ◐ ○
“이야! 수환아! 오랜만이네!”
하루세끼의 스핀오프 외전, 동물세끼라는 이름으로 확정된 프로그램의 촬영을 위해 가장 먼저 찾아온 출연자는 바다 형이었다.
여름이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키우는 애견인이라,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거나 부산 근처로 촬영을 올 일이 있으면 가끔씩 찾아오는 편이었다.
그 뒤로 세진 형이나 성원 형, 해준 형까지 모두 도착했다.
“하아……. 내 밥 세 끼 챙겨 먹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이제는 동물들 밥 세 끼까지 챙겨줘야 해?”
물론, 차에서 내리는 것부터 세진 형은 열심히 투덜거렸지만 말이다.
그래도 딱히 촬영을 거부하지는 않았기에, 금세 촬영이 시작되었다. 직원용 주차장에서 모인 그들은 곧바로 피디의 인솔을 따라 자연구역 근처에 조성되어 있는 밭으로 향했다.
“이, 이 넓은 곳을 다 하라고?! 너 진짜 미쳤냐!”
그리고, 그 밭을 본 세진 형은 피디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참에 밭을 확장해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넓었던 밭을 더더욱 넓게 만들어둔 상황이었다. 네 명이서는 관리하기도 힘들 정도로 넓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피디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하하하! 형, 걱정하지 마. 나도 저길 넷이서 다 하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 다 생각이 있어.”
“애초에 번호를 차단했어야 하는 건데…….”
세진 형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렇지만 이미 시작된 것을 멈추거나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촬영은 다시금 재개되었다.
“이곳이 앞으로 촬영하는 동안 여러분이 지내게 될 장소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건 조악한 농막 같지만, 내부는 무척 쾌적한 곳입니다.”
밭 근처에 제작진들이 따로 준비해둔 임시 거처부터 시작해서, 밭을 소개하거나 하는 과정이 지나갔다.
“솔직히, 이 큰 밭을 여러분끼리 관리하긴 힘들잖아요? 그래서 특별히 모신 분이 계십니다. 이곳에서 밭에 대해서는 세 번째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분입니다.”
“세 번째? 첫 번째랑 두 번째는?”
“아, 첫 번째 권위자께서는 촬영을 도와주시는 분이고, 두 번째 권위자께서는 안타깝게도 지금 촬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 권위자라는 사람이 수환이 아냐?”
세진 형이 의심쩍다는 듯이 물어보니, 피디는 대답하는 대신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는지, 세진 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두 번째는 누구야?”
“첫 번째 권위자의 아들이죠.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식물에 관한 지식과 사랑이 엄청나죠. 안타깝게도 지금은 유치원에 있는 시간이라, 여러분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그럼 그렇지.”
세진 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어서 그 세 번째 권위자라는 사람을 데려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세진 형의 반응에 가볍게 웃은 피디는 곧바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사람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대기 중이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농사를 도와줄 무하마드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바로, 밀짚모자와 삼베옷을 챙겨 입고 있는 무하마드였다.
지금 우리 동물원 내에서 출연진들의 밭일을 도와줄 사람 중에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 무하마드였기 때문이다. 나는 할 일이 있었고, 은수는 유치원에 가야 하는 아이였다. 그렇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무하마드였다.
이후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난 뒤, 몇 가지 규칙 같은 것을 지정하고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은 밭에 이미 자라나고 있는 알팔파의 수확이었다. 꽤나 많이 자라난 알팔파를 수확해서 건조하는 과정까지가 목표였다.
“자, 이 기계를 잡고 쭉 밀어줍니다. 그러면 알팔파가 베어지는데, 베어진 알팔파를 따로 건조기로 옮기면 됩니다.”
무하마드는 간단하게 시범을 보여준 뒤, 수확을 위한 기계들을 출연진들에게 넘겨주었다. 출연진들은 금세 곧잘 따라 했고, 일정 수준의 알팔파들을 수확할 수 있었다.
알팔파를 제대로 건조해 줄 기계에 알팔파를 집어넣는 작업까지 마무리한 출연진은 한껏 지친 모습을 보였다.
“어후우……. 이거 생각보다 힘드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우리 도련님이 생각보다 열심히네? 난 우리 도련님이 또 뺀질거릴 줄 알았는데.”
“아익, 내가 뭐 맨날 뺀질거리는 건 아니라고요. 예전에 저놈 때문에 고생한 게 있어서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하는 거예요. 수수랑 옥수수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한숨을 푹 내쉰 세진 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예전 기억이 떠오르는 듯, 살짝 몸서리까지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휴식 시간이 끝이 났고, 피디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자, 그럼 동물들의 밥도 구했겠다, 동물들 첫 끼를 챙겨주러 가보죠. 시간이 늦어져서 점심이지만요.”
“어떤 동물들 밥을 챙겨줘야 하는 건데?”
“그건 여러분들이 선택하셔야죠. 자, 여기에 여러분들이 제공해 줄 끼니를 기다리는 동물들의 목록입니다. 동물들에게 밥을 제대로 챙겨줄 때마다 그에 맞는 포인트를 제공할 겁니다. 포인트를 이용해서 여러분들이 드실 식품이나 식재료를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피디는 큐카드라고 부르는 종이를 출연진들에게 내어주었다.
그런데, 그 큐카드를 유심히 바라보던 성원 형이 이상한 것을 발견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자기야, 호랑이들 밥 주는 게 10 포인트인데 왜 라쿤한테 밥 주는 건 300포인트나 되는 거야?”
“흐흐, 해보면 알아요. 어서 골라보세요.”
아주 해맑게 웃은 피디는 어서 골라보라는 듯이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