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19
0418 외전 – 판타지(3)
마왕을 퇴치하는 것에 협조하겠다고 한 뒤, 곧바로 퇴치의 준비를 돕겠다며 수많은 이들이 몰려왔다.
각종 무기류를 들고 있는 이들부터 시작해서, 정말 온갖 사람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영감님은 그런 이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내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혹시, 전투에 얼마나 능하신 것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전투요?”
전투라는 말에 의문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왕 퇴치라는 게, 말로 ‘돌아가주면 안 되겠니?’하고 묻지는 않을 것이 뻔했다. 그러니 싸워야 할 것인데, 그 수준을 묻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잘하는 편은 아니네요. 대인전은 그래도 좀 할 수 있긴 한데.”
대인전은 나름대로 약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언제나 경호원들에게 의존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경호원들에게 약간의 훈련을 받았었다. 내 초능력 덕분인지는 몰라도 초능력자가 아닌 사람 기준으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선에 있는 격투기 선수와 비슷한 실력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당연히, 이들이 원하는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내가 배운 것은 호신을 위한 것이었지, 마왕 퇴치를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감님을 비롯한, 이곳의 사람들은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마왕 퇴치라면 무력이 최고 아닌가- 싶었기에, 곧바로 그에 관해 물어보았다.
“근데, 제가 할 수 있는 대인전이라고 해봐야 평범한 사람이 단련을 했을 때의 기준인데……. 괜찮나요?”
“예. 괜찮습니다. 여신께서는 모든 것을 고려하여 용사님을 소환하시기 때문입니다. 소환되었을 때 아무리 허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훈련을 통해 엄청난 강함을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마왕을 퇴치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소리였다.
“여기 있는 무구들을 한 번 둘러보시고, 마음에 드는 것을 한 번 골라 보시겠습니까? 전대 용사님들의 무구이자, 저희 교단의 성물인 것들입니다. 용사님께 가장 걸맞은 무구를 먼저 찾아보도록 해야겠습니다.”
영감님은 사람들이 가져온 무구들을 가리키며 얼마든지 둘러보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백화점에서 편한 대로 구경하라 해놓고 빤히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무구들을 둘러보았다.
검, 도, 창, 도끼, 메이스, 철퇴, 방망이 등등……. 정말 온갖 무구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중에서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내가 무기를 잡아 볼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무기로 쓸 수 있는 것을 잡아 본 거라고는 주방의 식칼, 야구 타격 연습장에서 잡았던 야구 방망이, 골프 연습장에서 잡았던 골프채 같은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그것들은 나쁘게 사용했을 때나 무기였지, 평범하게 쓰면 무기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느낌이 오는 무구가 없으십니까?”
“어……. 일단은 그렇네요.”
“그럼 무투보다는 다른 쪽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런 무기도 고르지 못했으나, 영감님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손짓했다. 그러자, 무구를 들고 있는 이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른 이들이 채웠다.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조금 색다른 물건들을 가져왔다. 아니, 색다른 것을 떠나서 도대체 뭐 하는 물건인지도 모를 것들이었다.
웬 해골바가지부터 시작해서 연리지처럼 서로 다른 나무의 나뭇가지가 소용돌이처럼 엉킨 지팡이, 투명한 수정구, 정체 모를 언어가 빼곡한 책 같은 것들이었다.
게임으로 치자면 조금 전에 보았던 물건들은 물리 무기라고 할 수 있었고, 지금 것은 마법 무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세계에 마법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편하게 보십시오.”
백화점에 입점한 옷가게 직원 같은 영감님의 말을 뒤로하고, 다시금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 조금 달랐다. 묘하게 내 시선을 잡아 끄는 물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본능이 이걸 들어라- 하고 속삭이는 느낌이었다. 그러한 본능 탓인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팡이 하나를 붙잡았다.
서로 다른 나무의 나뭇가지가 소용돌이처럼 엉킨 그 지팡이였다.
“역시, 여신께서 선택하신 용사님이 맞습니다.”
내가 지팡이를 쥐는 것을 바라본 영감님이 가볍게 감탄하더니, 이런 절차를 진행한 이유를 알려주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는데, 여신이 만들어낸 물품으로 용사의 재능을 감별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했다.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에 본능적으로 이끌리게 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 돌잔치를 할 때 돌잡이를 해서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나, 실제로 재능을 판별한다는 게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신기하긴 하네요. 그래서, 이 지팡이를 잡았다는 건 어떤 부분에 재능이 있는 거죠?”
그저 보고, 잡는 것만으로 재능을 판단한다는 것도 무척 신기했지만, 그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은 내게 과연 어떤 재능이 있냐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용사라고 부를 정도라고 한다면 엄청난 재능이 있을 거라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도대체 무슨 재능을 어느 정도로 갖고 있길래, 용사까지 되는 건지 궁금했다.
“그 지팡이는 자연과의 교감을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자만이 들 수 있는 성물입니다. 역대 그 어떤 용사님들도 들지 못했는데, 용사님을 위한 여신님의 안배였군요.”
“자연과의 교감……?”
영감님의 말에 단번에 떠오르는 것에 내 초능력이었다. 일단 동물들과 대화가 되었고, 식물 같은 경우에도 대화가 통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많은 부분이 초능력에 영향을 받았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자연과의 교감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도 할 수 있었다.
결국 용사니 뭐니 하며 다른 세계로 납치된 게, 전부 초능력 때문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초능력을 가진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초능력이 없었으면 누나와 아이들과 이렇게 마냥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게 뻔하니까.
아무튼, 그렇게 초능력이 곧 내 재능이라는 소리에,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내 초능력이 대단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이걸로 어떻게 마왕을 퇴치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조금 더럽긴 해도, 새똥에 파묻혀서 질식사나 하라고 저주라도 걸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자면 어마어마한 수의 새들을 동원해야 할 건데, 그게 가능할 것인지도 솔직히 의문이었다.
그런데 마왕 퇴치 방법을 고민하고 있으니, 영감님이 큼큼- 헛기침을 하며 내 주의를 돌렸다.
“용사님. 혹시, 정령이라는 것에 대해 아십니까?”
“정령이요? 무슨 물의 정령이니 불의 정령이니 하는 그런 거 말하는 건가요?”
“예, 맞습니다. 알고 계신 겁니까?”
영감님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정령이라 하니 판타지 소설과 만화나 게임에서 나오는 것들이 떠올라서 말했을 뿐이지,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한 내 고갯짓에 영감님이 아쉽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정령이란, 여신께서 만든 피조물입니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을 관리하는 생명체에 가깝습니다. 물, 불, 바람, 땅 정도가 정령의 대표 격이지만 그 외에도 빛이나 어둠 등 여러 정령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정말 판타지나 다름없는 세계였다. 마왕이나 여신부터 시작해서 용사와 정령 등등…….
“그런데, 그 정령은 왜 묻는 거죠?”
“자연과 교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령들을 쉬이 부리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을 관리하는 이들이니만큼 자연에 속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보통, 엘프들이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엘프들이 정령을 부리는 편입니다.”
내 초능력이 판타지 세계의 정령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소리도 놀라웠고, 이 세계에 판타지 매체의 단골인 엘프까지 있다는 소리도 놀라웠다.
그렇다 보니,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과거에 어떤 사람이 용사로 소환됐다가 귀환해서, 내가 사는 세계에 관련 내용을 퍼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판타지 매체에 나오는 것들과 꽤나 많은 것들이 비슷할 이유가 없었다.
“……저기, 이 세계에 온 용사들이 지금까지 몇이나 되는 거죠? 아니, 그전에 여러 용사가 같은 세계 출신일 수도 있나요?”
“기록된 역사에 따르자면 지금까지 백여 명에 달하는 용사님들이 이 세계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세계에서 여러 용사님들이 오시기도 했었습니다. 용사님의 세계에서도 저희 세계를 구원해 주신 분들이 확실히 계실 겁니다. 마왕은 한 번 노린 세계를 계속해서 노리기에, 용사님의 세계에서도 많은 용사님들이 소환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영감님의 말을 들으니 내가 생각한 것이 사실이라고 느껴졌다. 분명 누군가가 이곳에 용사로 소환됐고, 귀환한 사람이 경험한 것을 풀어낸 것이었다. 사람들이 믿지 않았기에 공상과학 같은 판타지 취급을 받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가 귀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럼 그 정령이라는 걸 이용한다면 마왕을 퇴치할 가능성이 있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정령이 내는 힘은 그와 교감하는 이의 능력에 따라 다릅니다. 용사님이시라면 충분히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이네요. 그래서, 그 정령이라는 건 어떻게 부리는 거죠?”
내가 정령을 부릴 수 있을 거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 정령을 어떻게 부려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이만 쉬시고, 내일부터 정령술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저희 교단에는 엘프 분들도 계시니, 그분들에게 배우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정령을 부리는 것을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쳐 준다고 하니, 조금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그렇게 걱정을 덜고 나니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고, 영감님의 말대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난데없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려 피곤함이 절정에 이른 상황이었다.
중간 정도 위치로 보이는 이의 안내를 받아 나름대로 큼직한 방으로 들어간 나는,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는 듯한 동물들을 끌어안으며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탓인지는 몰라도, 이른 아침에 벌어진 잠깐의 소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살려주세요……! 엘프 살려……!”
깊게 잠들어 있던 나는 귓가를 간지럽히는 듯한 누군가의 미약한 소리에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일어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상황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게 꿈이 아니었구나-로 시작한 상황파악은, 한무가 웬 사람 하나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끝을 맺었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바닥에 퍼져 있는 것과, 얇은 팔다리, 하이톤의 목소리까지 들어 보면 침입자는 여성으로 추정됐다.
아니, 머리카락 사이로 삐쭉- 삐져나온,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다란 귓바퀴를 보면 어제 말했던 엘프 같았다.
“뭐야?”
“두 시간쯤 전에 침입한 괴한임다. 한무 씨의 도움으로 포박하고 있는 상태임다.”
“……저걸 포박으로 볼 수 있을까?”
포박이라고 하기엔, 그냥 무게로 찍어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포박이라기엔 조금 애매했지만, 일단 포박한 것과 똑같은 효과였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침입자 엘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지, 단어 사용의 올바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근데, 분명 내가 자기 전에 문을 잠그지 않았었나? 이 사람은 어떻게 들어온 거야?”
“제가 그렇게 노크를 했는데도 못 들었잖아요! 이래서 인간들이란! 게을러! 아아아악! 무거워!”
청호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침입자의 입에서 터져나온 것이었다. 물론, 그런 외침을 괘씸하게 여긴 건지, 한무가 무거운 무게를 조금 더 강하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노크를 했다고? 청호야, 사실이야?”
“옙! 그런데, 노크 몇 번 하다가 문을 따고 들어왔슴다.”
“아니, 이 세계는 노크에 반응이 없으면 문을 따고 들어오는 게 예의인가?”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정말 죄송하니까 이 동물을 조금 치워주시면 안 될까요? 이제는 숨 쉬는 것도 힘들거든요.”
여자의 말이 사실인 듯, 얼굴이 점점 새파랗게 질려가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말을 할 때도 조금씩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데, 정말 힘에 부치는 것 같긴 했다.
“한무야, 살짝만 들어. 움직이진 못해도 숨은 쉴 수 있게.”
한무는 내 말을 듣고 정말 아주 조금만 몸을 움직였다. 말 그대로 숨통을 조이던 것을 숨만 쉴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얼굴색이 돌아온 여자는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이런 상황이 된 건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해요. 노크했는데도 반응이 없어서, 용사님께서 도망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전 역사에 따르면 의심하던 용사님들 중 몇 분이 도망친 전적이 있어서…….”
“그래서, 그쪽은 누구죠?”
“이런 상황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건 처음이긴 한데……. 용사님께 정령술을 가르칠 에로흐예요.”
“……에로프?”
“저기, 발음이 틀렸어요. 에로프가 아니라, 에로흐예요. 에로흐. 풍요의 숲 출신 엘프 에로흐, 꼭! 기억해 주세요.”
발음이 틀린 게 아닌데…….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딱히 신경 쓰지는 않기로 했다. 지금은 이름이 에로프든 에로흐든 상관없이, 정령술을 배우는 것이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