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2
0041 이야기 좀 할까?
“누나, 오늘 진상도 퇴치한 김에 저녁은 고기나 구워 먹을까?”
아무런 문제도, 걱정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보니, 뭔가 묘하게 고기가 땡겼다.
“고기? 갑자기?”
“어. 진상 퇴치에 수고한 나를 위한 상이랄까?”
“푸흐흐, 그게 뭐야. 차라리 그냥 먹고 싶다고 말 하지.”
내 말에 웃음을 터트린 누나는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당도 있는 집인데, 그릴과 숯도 있는데다 냉장고에는 고기를 먹는 동물들을 위해서 언제든지 품질 좋은 고기가 가득했으니 어려운 것도 없었다.
심지어, 마당 한 켠에 있는 화단에는 상추와 고추까지 자라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그 자리가 토끼즈의 참외 습격과 거위즈의 꽃 습격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는 게 아쉽긴 했지만.
“언니, 형부! 나도요!”
“그래. 영지도 같이 먹자. 아니, 그냥 오늘 자고 갈래?”
영지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와 둘이서 먹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처제라고 할 수 있는 영지와 함께 먹는 것도 좋았다.
햄스터마냥 볼 가득 음식을 집어넣고 꾸역꾸역 씹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은근히 귀여웠다. 더군다나, 동물들을 엄청 좋아하는 영지였으니, 나와 누나가 고기를 구워 먹는 동안 동물들을 케어해줄 수도 있으니 나쁠 것 하나 없었다.
“히히, 고기다! 치킨이도 고기 좋지!”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그리도 좋은지, 영지는 치킨이를 높게 치켜들며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휴, 그렇게 좋아?”
누나는 영지의 그런 모습을 보며 작게 고개를 내저었으나, 그런 누나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그리고, 저녁에 대한 기대감을 품었기 때문인지 시간이 참 느리게 흘렀다.
동물들의 피로도 등을 이유로 저녁까지만 영업하는 카페였지만, 그 시간이 되기까지 시간이 엄청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느리든 빠르든 시간을 흘러가기만 했고, 어느덧 카페 영업을 종료하는 시간이 되었다.
“사장님! 사모님! 내일 뵙겠습니다!”
“들어가요.”
마감을 하고, 퇴근하는 직원들을 배웅해주었다. 바로 옆이 집인 우리와 다르게, 직원들은 우르르 몰려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어우……. 저 사모님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적응이 안 돼.”
“뭐 어때? 맞는 말이잖아. 사장님 와이프면 사모님이지.”
“맞아요! 우리 언니는 사모님!”
“나이 들어보이잖아.”
누나의 말에 나와 영지는 피식피식 웃어 보였다. 내년이 되어야 한국식 나이로 서른인 사람이 나이 들어보인다는 타령을 하고 있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누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한 살이지만 나이가 많으니, 그걸 신경쓰는 것이었다.
“수십 년 뒤에도 계속 사모님 소리 들을 거니까, 그냥 지금 적응 해.”
내 말에 누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으나, 본인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는지 어깨를 으쓱이며 집으로 향했다.
나와 영지는 그런 누나의 뒤를 따라 동물들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영지가 쓸 방 좀 정리하고 있을 게. 고기 구울 준비 좀 해줄래?”
“엉.”
누나는 영지가 오늘 자고 갈 방을 정리해준다며 영지를 데리고 갔다.
덩그러니 마당에 남게 된 나였지만, 나는 익숙하게 구석에 위치한 창고에서 그릴과 숯을 꺼냈다.
거기에 곁에서 앉아 먹을 수 있도록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까지 설치하니 캠핑장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 만들어졌다.
“벌써 준비 다 했네?”
숯에 불까지 피웠을 때 즈음 방 정리가 끝났는지, 누나는 영지와 함께 마당으로 나왔다. 각종 음식들을 한 보따리를 들고서 말이다.
“고기!”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그리도 좋은지, 영지는 해맑은 웃음으로 내 곁에 고기 뭉텅이를 내려놓았다.
어서 구워달라는 듯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영지의 모습에 가볍게 웃는 나는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숯불에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니 동물들이 몰려왔다. 물론 토끼나 거위 같이 채식을 하는 이들의 경우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주인님! 저도 줘요!”
“맛있는 고기!”
“내도 도!”
“참 맛있게 생겼소이다.”
숯불 위에 익어가는 고기 냄새에 찾아온 동물들은 저마다 군침을 줄줄 흘려댔다.
그래도 불이 위험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주었기에 갑자기 달려든다거나 하는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형부. 얘들 고기 줘도 돼요?”
내가 고기를 구워, 먹으라고 접시에 내려놓으니 영지가 고기를 줘도 되는지 물었다.
“식혀서 주면 돼. 대신 소금 같은 건 뿌리지 말고, 지방 부분도 좀 잘라내서.”
내 말에 영지는 고개를 파닥파닥 끄덕이며 고기를 후후- 불며 식히기 시작했다.
“남캣이 먼저 먹자!”
카페에 있는 동물 가운데서 남캣을 제일 아끼는 영지는 남캣에게 고기를 내밀었다.
당연히, 남캣은 그 고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입 크기에 맞게 자른데다 적당히 식혀진 고기를 받은 남캣은 찹찹 소리를 내며 고기를 먹었다.
그 이후로도 영지는 자신이 먹는 것 이상으로 동물들에게 고기를 먹여주고 있었다.
“자, 너도 먹어.”
그리고, 그렇게 동물들을 챙기는 영지를 보고 있으니, 누나가 내게 고기가 들어 있는 쌈을 내밀었다.
두 사람에다 여러 마리의 동물까지 먹이기 위해 고기를 굽다보니 누나가 나를 챙기는 것이었다.
“음, 맛있네.”
누나가 싸준 쌈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마늘이나 쌈장, 고기의 비율도 괜찮았고 상추의 크기도 나름적절했다. 십 년 동안 함께 했으니, 내 입맛을 잘 알고 있었다.
내 말에 가볍게 웃은 누나는 또 다시 쌈을 싸주었고, 나는 무척 행복한 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언니, 형부! 안녕히 주무세요!”
저녁을 맛있게 먹고, 디저트로 과일까지 챙겨먹은 우리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영지는 잘 때도 동물들과 뒤엉켜 잘 생각인지, 개와 고양이에 토끼와 라쿤까지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심지어 유부 녀석도 슬그머니 따라 들어갔다. 야행성인 주제에 낮에 카페에서 놀고 밤에 자고 있네.
나는 유부의 뒷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누나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 잘 준비를 했다.
“누나, 어때?”
잘 준비를 끝마치고 침대에 다이빙하기 직전, 나는 누나에게 백허그를 하며 살며시 들러붙었다.
그런데, 누나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평소라면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마주 안아주었을 누나가, 입술을 가볍게 물더니 내게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왜 그래? 아, 영지 때문에 그래?”
누나는 내 말에 고개를 슬며시 가로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망설이길 몇 번, 누나는 곧 결심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조금 진중한 표정을 지은 누나는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내가 뭐 잘못했던가?’
누나의 모습에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몰래 폰게임에 현질 한 게 걸렸나? 아니면 누나가 아끼는 컵 깨먹은 거 들켰나? 뭐지? 카페에서 어떤 여자가 번호 달라고 해서 그런가? 그것도 아니면 아빠의 조언대로 비상금 만든 게 들켰나?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이 지나쳤으나,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한껏 긴장하며 누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누나는 내게 무어라 말을 하는 대신, 몸을 돌려 화장대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수환아. 이거…….”
그러면서 누나는 두 손으로, 자기 손에 들려 있는 것을 숨긴 채 내게 내밀었다.
그게 뭐지- 하고 궁금함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누나를 바라보며, 누나의 손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끄집어냈다.
“이거……!”
그리고, 누나의 손에 가려져 있던 것을 꺼내어 확인한 나는 두 눈을 크게 치켜뜨며 경악했다.
“시, 싫은 건 아니지……?”
그런 내 모습을 확인한 누나는 조금 전 내가 보였던 걱정하는 듯한 모습보다도 더 걱정하는 듯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누나가 내민 그 물건이 임신 테스트기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퍼백 안에 밀봉되어 두 줄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
그것을 확인한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무어라 말을 하지도, 아니 말을 하기는 커녕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릿속이 백지 그 자체가 된 느낌이었다.
“수환아……?”
잠시동안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누나의 떨리는 목소리에 조금 정신을 차렸다.
‘아니……. 결혼하기로 한 다음엔 딱히 피임하지 않긴 했는데…….’
이 집으로 들어와, 동거를 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사실상 피임을 하지 않았었다. 어차피 결혼도 할 거고, 아이를 가지지 않을 생각인 것도 아니었으니 피임하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었다.
그렇지만, 아이가 생길 수 있다- 라고 생각만 하던 것에 지나지 않던 일이 직접 내 앞에 펼쳐지게 되니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됐다.
“싫은…… 거야?”
“아, 아니야!”
머릿속이 뒤죽박죽이긴 했지만, 나는 또 다시 들려오는 누나의 목소리에 번뜩이며 정신을 차렸다.
“……정말?”
“그래! 내 자식이 생긴다는데 어떻게 싫겠어? 그냥, 조금 놀랐을 뿐이야. 누나가 워낙 갑자기 알려준 거잖아. 깜빡이라도 좀 키면서 들어와야지.”
나는 누나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꽉 끌어 안아주니 차츰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도 사흘 전에 알았어. 그래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네가 마침 그러길래…….”
하긴, 누나도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결혼하기로 이야기는 했지만, 실제로 식을 올린 것도 아니었으니 누나로서는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 부담되었겠지.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누나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절대 싫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놀란 거지. 오히려 지금은 더 기쁜데? 누나와 내 자식이 생긴다는데,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어.”
“다행이다.”
다행이라고 중얼거린 누나는 내 품에 파고들었다. 나는 그런 누나를 토닥였다.
“아들일까 딸일까?”
“바보야, 그걸 어떻게 벌써 알아.”
누나는 내 말에 푸흐흐- 웃으며 가슴팍을 탁탁 때렸다. 꼬집는 거랑 다르게 아프지 않았기에, 나는 웃음 지으며 누나의 아랫배를 살짝 만져보았다.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아랫배였지만, 만지면 만질수록 가슴 한 켠이 간질거렸다.
‘여기에 내 아이가 있다니…….’
단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 없던 일이 벌어진 것에 당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황은 점차 기쁨과 행복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쁨과 행복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누나를 꼭- 끌어안고서 잠을 취했다.
덕분이라고 해야할지, 나는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너 이 식기……. 내 따알- 울리믄 디진다……. 냥냥펀치가 아니라 라이트훅을 쳐 맞는 거야…….”
뭔가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가득한 꿈을 꾸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흐릿해서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지만, 뭔가 기쁜 감정이 가득 느껴지는 꿈이라는 것 만큼은 기억났다.
그런데, 기쁨과 행복에 파묻혀 아침을 일깨운 내 기분은, 카페로 나서기 위해 대문을 활짝 여는 것과 동시에 고꾸라졌다.
“이건 또 뭐야…….”
웬 차량 한 대가, 큰 길에서 카페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목을 아주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다. 그 뒤로는 아침부터 대기하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의 차량으로 추정되는 네 대의 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동물들을 카페에 들어가게 해주고서, 길목을 아주 단단하게 틀어막고 있는 차량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