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22
0421 외전 – 판타지(6)
“흠……. 어떻게 됐으려나.”
동물들이 마왕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생긴 여파로, 그 주변 일대는 엄청난 수준의 흙먼지가 피어오른 상태였다. 소리만 들어보면 동물들이 마왕을 개박살 낸 것이 분명한데,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 조금 답답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지, 한무 녀석이 하늘을 향해 바람을 쏘아낸 덕에 흙먼지가 모조리 쓸려나갔다.
그리고, 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야, 뒤졌냐?”
턱 부위가 날아가고, 눈구멍이 있는 곳을 기준으로 절반으로 깨진 두개골을 툭툭 치는 남캣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녀석의 앞발이 두개골을 몇 번 더 두드리며 안 그래도 박살 나 있던 두개골이 한 번 더 쪼개졌다.
“요, 용사님! 저기 보세요!”
“저기? 아, 확실히 퇴치됐나 보네요.”
그리고, 남캣의 발길질에 두개골이 한 차례 더 쪼개지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 남아 있던 해골들이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뼈가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동물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얘들아, 고생했어.”
동물들에게 다가간 나는 녀석들을 열심히 쓰다듬고, 녀석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주었다.
“쥔님. 그럼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검까?”
“그래. 집으로 가야지. 이놈 때문에 여기로 오게 된 거니까.”
내 말에 네 마리 동물들이 곧바로 반색했다. 새로운 곳에 와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있긴 했지만, 그게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좋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기쁨을 표출한 동물들은 내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올 때처럼 구조물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에로흐, 저쪽 방향이죠?”
“어……. 네.”
마왕이 동물들에게 개박살 나는 꼴을 보며 넋을 놓은 듯한 에로흐는 멍하니 있다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자기 볼을 자기가 꼬집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에로흐에겐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고, 에로흐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남은 힘을 몽땅 털어 넣기라도 한 건지, 신전에서 이곳으로 이동할 때보다 더더욱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불과 삼십 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정도로 말이다.
“요, 용사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마왕을 퇴치하러 가겠다며 불쑥 떠났던 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것에, 사람들이 무척 당황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문제라도 생긴 건가- 저들끼리 심각하게 떠들고 있었다.
타고 돌아온 구조물이 다시금 땅으로 녹아들듯 사라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니, 영감님이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용사님! 큰 문제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뇨, 그 마왕이라는 걸 퇴치했다고 알리러 온 거예요.”
“……예?”
내 말에 영감님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한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내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은 듯, 눈이 점점 커지고 입이 떡 벌어지기 시작했다. 저러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턱이 빠지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정말이십니까? 정말, 마왕을 퇴치하셨단 말입니까?”
“네. 증인도 있어요.”
곁에 있던 에로흐를 가리키니, 영감님의 시선이 에로흐에게 날아가 꽂혔다. 에로흐는 제게 꽂히는 시선에 잠시 당황하다, 자기가 본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타고 간 구조물을 갖다 박는 것으로 시작해서 동물들이 집단으로 마왕을 린치 해서 박살 낸 것을 설명한 것이었다.
아무리 장황하게 설명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짧은 내용이었기에, 설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허어……. 여신께서 정말 어마어마한 분을 용사로 소환하신 것이군요…….”
그리고, 그런 설명을 들은 영감님은 믿기 힘들다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에로흐가 여신에게 맹세를 한다느니 하며 거짓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를 한 탓인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광신도가 따로 없는 이들이었기에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마냥 믿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던 건지, 영감님이 마왕이 있던 곳으로 가서 확인을 하고 오라는 지시를 내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름대로 강자에 속하는 이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영감님에게 본론을 꺼냈다.
“마왕도 퇴치했겠다, 이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요.”
“아……. 그, 그게…….”
그런데, 내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니 영감님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런 영감님의 변화에, 나는 곧바로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인간들, 이상한 꿍꿍이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에 동물들 역시 슬쩍 힘을 내뿜을 준비를 했다.
“최후의 수단을 쓰면 되는 거지?”
남캣은 당장이라도 이 주변에 있는 모두를 때려눕히겠다는 듯이 냥냥펀치를 날릴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여차하면 쓰려했던 최후의 수단을 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껏 당황한 표정의 영감님이 미안하다는 듯한 모습으로 사정을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용사님께서 마왕을 퇴치하는 것이 너무 빨랐습니다. 용사님의 귀환을 위한 준비를 이제 막 시작한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용사님들이 한 달 이상 기간을 소모하기에, 그에 맞춰서 준비를 했던지라…….”
한 마디로 내가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너무 빨리 움직여, 미처 준비를 끝내지 못했다는 소리였다.
“그럼, 집으로 돌아가려면 시간은 얼마나 걸리죠?”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만, 일주일은 걸리는 상황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일주일 후에는 반드시 귀환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하는 영감님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미루기로 했다.
공격을 준비하던 남캣을 덥석 붙잡아, 품에 안은 채로 살살 쓰다듬었다. 녀석은 난리를 치지 못해 아쉬워하면서 내 손길을 잠자코 받아들였다.
“용사님! 귀환하실 때까지 일주일 남았는데, 저희 마을에 구경 가시지 않을래요?”
그리고, 영감님이 귀환 준비를 서두르겠다며 다른 이들을 데리고 우르르- 몰려가고 나니, 근처에 있던 에로흐가 활기차게 다가왔다. 마왕이라는, 세계의 위협이 되는 것이 사라진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무척 편해진 것 같았다.
“마을에요?”
“네! 저희 마을이 숲 속에 있어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안식처거든요.”
이곳 신전에서 기다리는 것도 괜찮겠지만,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조금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왕을 퇴치하기 위해 이런저런 기술들을 익힌다고 고생 아닌 고생을 했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동물들과 함께 며칠 정도 에로흐의 마을에서 지내기로 하고, 에로흐의 마을로 이동했다.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기에, 금세 에로흐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인간이 왔다며 난리가 났으나, 용사라는 말에 며칠간 마을에서 지내는 것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자그마한 통나무집 하나를 배정받아 그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영감님을 비롯한 인간들이 있던 신전과 다르게 무척이나 자연친화적인 느낌이었다. 집 앞에는 텃밭도 있고, 뒤로는 원시림에 가까운 자연 그대로의 숲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여유를 갖게 된 나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 세계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원시림의 숲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하늘을 통해 날아드는 새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지구와는 다른 세계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동물이나 식물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가족 모두가 함께 왔다면 나름대로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 함께 올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구경을 하던 도중, 엘프들이 마을에서 함께 경작을 하고 있는 듯한 밭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몇몇 엘프들이 열심히 작물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키우는 것은 꽃처럼 생긴 것이었다.
“오, 이 꽃 신기하게 생겼네요?”
“용사님의 세계에는 장작꽃이 없나요?”
“장작꽃? 이 꽃 이름이 장작꽃이에요?”
“네. 어느 정도 키우면 장작으로 쓰기 참 좋기 때문에 장작꽃이에요. 불이 붙기 힘들긴 한데, 한 번 붙으면 오랫동안 타올라서 연료로 쓰기 딱 좋거든요. 키우는데 크게 힘이 들지도 않고요. 잘 키운 장작꽃이 더 잘 타긴 하지만요.”
“신기하네.”
장작이라고 하면 보통 큼직한 나무를 베어서 만드는 것인데, 이 세계에서는 나무가 아니라 꽃을 이용한다고 하니 무척 신기했다.
“그런데, 이 꽃의 다른 이름은 생명꽃이에요. 제대로 키워낸 꽃은 뿌리에 자그마한 덩이가 생겨나는데, 그게 엄청 강력한 영약의 재료가 되거든요. 엘프들도 쉽게 키우지 못할 정도라서, 저희는 단순히 장작의 용도로 키워내는 중이죠.”
그 외에도 신기한 설정이 붙어 있었기에, 나는 이곳에서 지내는 며칠만이라도 장작꽃을 키워보고자 몇 뿌리를 받아 통나무집 앞 텃밭에 심었다. 동물들이 어마어마한 힘을 내는 것처럼, 내 초능력도 엄청나게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 초능력은 아주 확실하게 효과를 발휘했다. 엘프들이 아무리 정성과 노력을 쏟아서 키운다 하더라도 장작에 지나지 않던 것이었는데, 내가 가볍게 관심을 쏟는 것만으로 벌써 평범한 장작꽃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이게 그건가?”
이름처럼 말라비틀어진 듯한 장작꽃과 달리, 지금 내가 키워낸 것은 영양분을 아주 가득 머금은 것처럼 싱싱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슬쩍 뽑아내니, 뿌리에는 감자와 비슷한 외형이지만 새빨간 색을 자랑하는 열매가 맺혀 있었다.
“용사님! 신전에서 귀환 준비가 다 됐다고 전하라……. 어, 어? 그거!”
그리고, 그 뿌리 열매를 구경하고 있으니, 귀환 준비가 끝났다는 소식을 전하러 에로흐가 나타났다.
다만, 소식을 전하려던 에로흐는 내 손에 들린 열매를 보더니, 꽤액- 소리를 내질렀다.
“여, 열매 떴다아아아아아아!”
말은 다르지만, 느낌상 ‘심봤다’하는 외침 같은 소리를 꽥 내지른 것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는 마을에 있는 엘프들을 모조리 불러 모으는 마법의 단어였는지, 엘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열매? 열매라고?!”
열매라는 소리에 우르르 몰려온 엘프들은 내 손에 들린 열매를 보며 하나같이 경악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더니, 내게로 몰려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용사님! 이거 어떻게 키우신 건가요!”
“딱히 별 거 없는데요? 그냥 내 초능력으로 키운 건데…….”
내 능력을 이용했다는 소리를 하니, 엘프들이 무척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내 초능력은 어떻게 가르쳐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집으로 갈 수 있는 준비가 끝났다고 하니, 불가능한 걸 가르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에로흐, 지금까지 이것저것 가르쳐준다고 고생했으니, 이건 선물로 드릴게요. 다음에 또 볼 수는 없겠지만, 잘 있어요.”
집으로 갈 시간이었기에, 나는 뿌리 열매가 맺힌 장작꽃을 에로흐에게 선물로 주었다. 어차피 귀환할 때는 올 때와 동일한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에, 무언가를 가져갈 수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버리느니 고생한 사람에게 주는 게 낫지.
그렇게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동물들을 불러 모아 집으로 귀환하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갑자기 슬라이딩을 하듯 달려든 에로흐가 내 발목을 잡기 전까지는 말이다.
“으에에엑! 용사님! 가지 마요! 어떻게 키우는지 알려줘요!”
“아니, 이건 내 초능력이라서 가르치고 말고 할 게 아니라니까요?”
“그래도 가르쳐줘요! 저 어때요? 이쁘지 않아요? 아니면 다른 언니들은 어때요? 이참에 저희 마을에 정착하세요!”
“맞아요! 용사님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엘프들은 갑자기 내게 매달리며 몸매를 자랑하듯 어필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남자다 보니, 몸으로 유혹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난 가정이 있다고! 이것들아! 다 비켜! 애초에 이름이 에로프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이 마을에서 신기한 동물과 식물들을 본 것이 즐겁긴 했는데, 이런 상황에 처하니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에로프가 아니라 에로흐라고……. 아니! 제가 이름을 바꿀게요! 용사님이 말한 대로 에로프로 이름 바꿀 테니까 가르쳐줘요오오! 도대체 어떻게 키운 거예요!”
발목을 잡고 질질 끌려오는 에로프를 뿌리치고, 재빨리 도망쳤다. 이대로 있다간 집으로 귀환하는 것이 더 늦어질 것 같았다. 그런 일은 절대 사양이었다.
“용사니이이이임!”
애절하게 외치는 에로프들을 무시하며 재빨리 신전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신전까지 쫓아오려고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도망치듯 신전으로 이동한 나는, 영감님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귀환을 요구했다. 무언가 급해 보이는 내 모습에 영감님도 덩달아 급해져, 귀환 의식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용사님, 이 세계를 구해주셔서 모두를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바로 눈앞에서 들려오던 영감님의 인사말이 점점 늘어지듯 멀어지더니, 이곳에 올 때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신전에서 눈을 떴을 때처럼 남캣 녀석이 내 이마에 냥냥펀치를 갈기는 것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귀환을 하며 마당 구석에서 널브러져 있던 건지, 몸에는 흙과 잔디가 가득 묻어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잠시 있던 나는 내가 실감 나는 꿈이라도 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판타지 세계에 있던 것과 다르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곁에 있던, 동물들을 보면 결코 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쥔님. 집에 돌아왔슴다!”
“그래, 그렇네. 꿈도 아니었던 거 같고.”
“저는 일단 아가씨한테 가보겠스, 억!”
다른 세계에 있을 때와 다르게, 몸에서 강한 힘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덕분에 청호 녀석은 평소에도 어렵지 않게 넘나들었을 담벼락에 이마를 쿵- 부딪히는 모습을 보였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때를 기준으로 움직인 탓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 분명 집으로 돌아온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나는 급히 현관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비밀번호를 누르니 도어락이 띠리링- 소리와 함께 열렸고, 현관에는 익숙한 신발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방에서 다다다닥- 하며 칼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니 누나가 저녁을 준비하니 늦지 않게 돌아오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곧바로 주방을 향해 달리듯 움직였다.
“왔어? 빨리 왔네? 청호랑 산책……이 많이 힘들었나 보네. 흙이랑 잔디랑, 어디서 구르기라도 했어? 조심 좀 하지. 가서 씻고 와.”
내게는 거의 2주 만에 만나는 누나였기에, 나는 씻고 오라는 누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하지만 누나에게는 헤어져 있던 시간이 30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끌어안고 있으니, 누나가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어유, 등에도 흙이 가득하네. 얼른 가서 씻고 와. 아니다, 모처럼 왔으니까 육수 간 좀 봐줄래?”
나를 욕실로 밀어내려던 누나가 움직임을 멈추고, 보글보글 끓고 있던 육수를 숟가락으로 조금 떠서 내밀었다. 호호- 불어서 내밀어 주는 육수를 그대로 호록 삼켰다.
“어?”
육수를 한 입 맛본 나는 육수에서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세계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마나라고 부르던 힘의 일부가, 육수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누나가 만들고 있는 모든 것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다른 세계에서 느끼던 수준이 아니라, 자동차 전조등 앞의 반딧불이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느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니, 나나 아이들이 이렇게 강한 수준의 초능력을 가질 수 있던 게 누나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맛이 이상해?”
“아냐, 맛있어. 진짜 맛있다. 역시 우리 마누라가 해주는 밥이 최고야!”
내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으니 이상해 하던 누나는, 엄지를 치켜드는 내 모습에 부끄럽다는 듯이 웃으며 어서 씻고 오라며 욕실 방향으로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등 떠밀려 욕실로 들어가서 씻고 나온 나는, 저녁 시간에 맞춰 돌아온 아이들이 질색을 할 정도로 뽀뽀를 퍼부었다. 누나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내 기준으로는 2주만에 만나는 것이다 보니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에로프보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누나와,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잠에 들었던 나는 눈을 떴음에도 함께 있는 가족들의 모습에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