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68
0067 최연소 초능력자
“역시 내 딸이야. 미칠듯이 귀엽구만.”
왜건 밖으로 불쑥불쑥 손이나 발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며 흐뭇하게 바라본 나는, 누나가 새롭게 가져다 준 차가운 음료를 들이켰다.
“시원해?”
“어. 역시 더울 땐 아이스지.”
“……넌 한 겨울에도 아이스잖아.”
“당연하지. 얼어 뒤져도 아이스라고.”
“흥.”
누나는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그렇게 콧방귀를 뀐 누나가 내 곁에 살포시 앉더니 유부에게 부채질 받고 있는 소은이를 가리켰다.
“수환아. 우리 소은이, 초능력자인 게 아닐까?”
“초능력자? 갑자기?”
“응. 아무래도, 동물들이 저 정도로 좋아하는 건 초능력 같은 이유가 아니면 힘들잖아. 동물들이 너랑 소은이 한테 보이는 태도도 다르잖아.”
“하긴…….”
누나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빨래하듯이 동물들을 모조리 씻긴 것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평소의 동물들은 내가 목욕하자고 해도 순순히 응하는 녀석들은 많지 않았다. 붙잡고 시키면 순순히 하는 청호나 물에 친숙한 거위들, 거기에 한무나 라쿤들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소은이만 들먹이면 비협조적인 녀석들도 협조적이다 못해, 아주 적극적이게 바뀌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남캣 녀석은 나를 후려치길 주저하지 않는데 반해, 소은이에겐 가벼운 터치도 아주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건드리면 깨질까, 아주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었다.
“이거도 한 번 볼래?”
나는 누나가 내미는 휴대폰의 액정을 바라보았다.
[초능력의 유전에 관한 통계와 초능력 유전자에 관한 고찰] [……이로서, 부모가 고등급의 초능력자일 수록 자녀가 초능력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증명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결과로, 학계에서는 초능력자들에게 소위 초능력 유전자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하여 최근들어 초능력 유전자에 대한 연구를 하는 연구팀이 급증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초능력을 갖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 마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으로 인해 초능력자들의 특권 의식과 비초능력자의 기피현상이 발생하는 것 또한 걱정된다.]논문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기사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뭔가 조금 애매하게 전문적인 내용의 칼럼이었다. 아니, 칼럼이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했다.
전체적으로 애매하기 그지 없는 내용이었지만, 거기 있는 내용 만큼은 내 시선을 확 잡아끌고 있었다.
“수환이 네가 복합 초능력자에, 최상급 초능력자잖아. 그럼 소은이도 초능력자인 게 아닐까?”
“흐음……. 불가능한 것도 아닌 거 같긴 한데…….”
누나의 말에 나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누나의 말에 넘어가게 된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뭐 하게?”
“그 사람한테 전화하려고.”
“그 사람?”
“왜, 내가 정밀 검증할 때 만났던 사람 있잖아. 자기 부하 직원들한테 쫄쫄이 입히고, 뭐…… 좀 그렇던 사람.”
“아!”
정밀 검증을 할 때 누나 역시 같이 갔기에, 내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누나도 금세 알 수 있었다.
초능력 연합회의 정밀 검증 부서 장일운 대리라는 사람이었는데, 꽤나 즐겁게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부하 직원들을 괴롭히면서 즐거워 하는 좀, 그런 사람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휴대폰을 꺼내든 나는 곧바로 연락처 목록을 뒤지며 장일운 대리를 찾았다. 이전에 명함을 받고 등록해두었기에 금세 찾을 수 있었다.
뚜루루- 하고, 통신사 기본 컬러링이 잠깐 들리더니 딱- 소리와 함께 전화가 연결 되었다.
“예- 정밀 검증 부서 장일운 대리입니다.”
“아, 저 신수환입니다. 기억하시나요?”
“당연히 기억하고 말고요. 따님 출산 전에 한 번 뵙지 않았습니까.”
그 말대로, 장일운 대리는 저번에도 한 번 만났었다.
간혹 초능력이 약해지거나 더 강해지는 경우가 있다며 찾아온 것이었는데, 내가 보기엔 그 핑계로 우리 카페에 놀러온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장일운 대리와 전화가 연결 된 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혹시, 일 년 미만 영아도 초능력 검증이 가능할까요? 정식으로 검증할 건 아니고, 초능력의 여부만 확인하고 싶거든요.”
“……예? 자, 잠깐만요. 일 년 미만 영아라고요? 혹시, 따님이……?”
내 말에 장일운 대리가 무척 당황한 듯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반응이었다. 어떤 인간이 한 살도 안 된 아기의 초능력을 검증하려고 하겠나.
“확실한 건 아니고, 그냥 검사나 해볼까- 해서요.”
“따로 뭔가 능력이 발현 된 겁니까?”
“조금 애매해서 말이죠. 그래서 한 번 검사를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흐음…….”
장일운 대리는 잠시 말 없이, 무언가를 뒤적이는 듯한 소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락사락,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나 타다다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넘어왔다.
그런 장일운 대리를 재촉하지 않고 잠시 기다리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일단, 초능력 측정에 대한 연령 기준은 없네요. 규정만 따르자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 그런가요?”
“다만……. 이 경우에는 저희가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없기 때문에, 모든 비용을 부담하셔야 합니다. 장비 이용료, 이동에 드는 유류비, 출장비 등……. 괜찮습니까?”
“그런 거야 뭐. 얼마가 들든 상관 없어요.”
이럴 때 쓰려고 돈을 버는 거지. 돈 좀 아끼겠다고 소은이를 데리고 시청까지 갔다가, 또 거기서 이런저런 검증을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바로, 장비를 이용해서 검증하는 것이 나았다.
“역시 최상급 초능력자군요. 이 정도 비용은 아무것도 아니다! 역시, 부럽습니다.”
“하, 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인간,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눈치는 제법 좋은 건지 장일운 대리는 금세 주제를 벗어났던 이야기를 다시 원 위치로 되돌렸다.
“일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재 저희가 남아 있는 일정이 다음 주 수요일, 그 다음 주 금요일과 토요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널널하고요.”
“검증 장비들 가지고 오시는 거죠? 저번처럼요.”
“예. 그래서 출장비가 잡혀 있죠.”
“그러면……. 최대한 빠른 날짜로 하죠. 다음 주 수요일.”
“휴, 다행이네요. 토요일 근무할 뻔.”
“…….”
이 인간은 진짜, 뭔가 좀……. 장난을 치는 건지, 쓸데없이 솔직한 건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래도 어떻게 검증 예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예약한 거야? 다음 주 수요일?”
“응. 저번에 내가 했던 거 있지? 그런 식으로 장비 가지고 올 거야. 그 때 소은이 초능력을 검증하면 돼.”
“빨리 왔으면 좋겠네.”
소은이가 초능력자인지 아닌지 그리 궁금한 건지, 누나는 기대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누나의 바램대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 소은이의 초능력 검증이 있는 수요일이 되었다.
“이야, 여긴 어째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네요!”
카페 주차장에 장비가 실린 차량을 세워두고 카페로 찾아온 장일운 대리는 반가워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평일, 그것도 주의 중간인 수요일임에도 사람이 바글거리는 모습을 보니 신기한 것 같았다. 주변에 뷰가 좋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동물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반응이 아니었기에, 나는 왜건에서 토끼즈에게 파묻혀 있는 소은이를 꺼내들었다.
“꺄우아앙!”
“응, 그래. 토끼들이랑은 조금 있다가 놀자?”
토끼들을 잡지 못해 투덜거리는 소은이를 안아든 나는 곧바로 카페 밖으로 향했다.
동물들이 무척 아쉬워 했지만, 나는 누나와 함께 장일운 대리를 따라 장비가 실려 있는 차량으로 다가갔다.
“일단, 저희 장비가 영유아용으로 만들어진 게 없다는 걸 조금 참고해주세요. 그래도 측정에는 문제가 없으니, 어머님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아, 어머님은 초능력자가 아니시죠?”
“네. 저는 초능력자가 아니에요. 혹시, 초능력자면 관계가 있나요?”
“초능력자가 근접해 있으면 그 영향이 조금 있습니다.”
누나는 장일운 대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은이와 함께 검증 장비에 다가갔다. 미리 대기중이던 장일운 대리의 부하 직원이 검증 장비의 사용을 도왔다.
인바디 측정기 같은 것의 막대기에 소은이의 손을 얹어주고, 누나가 살포시 소은이의 손을 감싸듯이 잡아주었다. 그러자 곧바로 직원이 장비의 작동을 시작했다.
우웅- 소리가 나며 작동을 시작하니 소은이가 잠깐 놀란 모습을 보였지만, 엄마인 누나가 손을 잡아주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장비를 바라보았다.
“첫 측정은 됐습니다. 그럼 다음 측정을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소은이의 머리에 밴드 같은 것을 둘렀다. 헬맷을 썼던 나와 다르게, 머리가 무척 작은 소은이에게 맞춰 헬멧 내부의 밴드만 분리해서 씌운 것이었다.
“으우으으!”
“불편하대.”
“으응, 소은아 조금만 참자. 미안해.”
누나가 소은이의 볼을 가볍게 쓸며 달래주니 소은이의 투덜거림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이번 작동 역시 금세 끝이 났다. 누나는 작동이 끝났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소은이의 머리에 둘러진 밴드를 벗겨내고 안아들었다.
소은이를 안아든 누나는 곧바로 장일운 대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됐나요?”
누나는 기대를 가득 품은 모습을 보였다.
그런 누나의 모습에, 장일운 대리가 모니터에 나온 여러 수치들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박수를 짝짝- 치기 시작했다.
“축하드립니다. 최연소 초능력자의 부모님이 되셨네요. 전 세계인지는 몰라도, 일단 국내 최연소는 확실합니다. 어떻게 아빠는 국내 최초고, 딸은 국내 최연소일까요.”
“정말요?!”
누나는 장일운 대리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더니, 모니터의 수치를 가리키는 장일운 대리의 손짓에 맞춰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여기 보이는 수치가 초능력자들에게서 감지가 되는 특정 파장입니다. 따님에게서 이 파장이 옅게 검출되고 있죠. 사실 너무 어린 탓에 수치가 조금 정확하지는 않지만, 초능력자가 아니면 수치 자체가 나오지 않으니 초능력자인 건 확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초능력의 종류나 등급이나 자세한 부분은 알 수 없다는 거네요?”
“예. 사실, 등급은 파장의 수치도 수치지만 능력의 활용 수준에 따라 갈리는 편이 강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초능력의 종류는 카테고리가 나뉘어지긴 했지만 실제로 정형화 된 건 아닙니다. 초능력자가 직접 알아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할까요?”
누나는 장일운 대리의 설명을 듣고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고 있던 소은이를 높게 들어올렸다.
“꺄웅!”
하늘 높게 들어올려진 것이 좋은지, 소은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우리 소은이 대단하네!”
“꺄아아우아!”
자기가 칭찬 받은 걸 아는 듯, 소은이는 더더욱 미소를 지으며 누나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누나는 그런 소은이를 끌어안으며 행복하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도 그 모습을 보다가 참을 수 없어, 누나와 소은이를 한 번에 끌어안았다.
“……하. 나도 딸 있으면 좋겠네.”
“저도 말입니다.”
옆에서 장일운 대리와, 그 부하 직원이 부러워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가볍게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