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77
0076 무승부
“부르셨슴까?”
내 외침에, 청호가 순식간에 다가왔다. 태권도를 할 때 도복 스치는 소리같은 것이 파라락- 나더니, 청호가 곁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순간 흠칫하고 놀랐지만, 티내지 않기 위해 애쓴 나는 곧바로 남캣을 가리켰다.
“쟤랑 대련 좀 할래?”
“대련말임까?”
“그래. 저 녀석, 살이 부쩍 올랐는데, 빠지질 않네.”
“알겠슴다. 안 그래도 요즘 심심했는데, 잘 됐슴다.”
청호는 흔쾌히 내 요구를 받아들였다. 오히려, 녀석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 바로 함까?”
“음……. 남캣,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바로 해도 된다.”
남캣은 당장이라도 청호와 한 판 붙겠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런 남캣과 청호를 카페 잔디밭으로 이끌었다.
남캣의 다이어트로 시작 된 일이지만, 이걸 그냥 놓칠 수는 없지!
나는 두 녀석을 잔디밭에 잠시 내버려두고서, 카페에서 자그마한 이벤트를 열었다.
“지금부터 남캣과 청호의 대련이 있겠습니다! 대련의 승자를 맞춘 손님들 중에 추첨을 통해서 여러 굿즈나 음료 등을 선물해드릴 예정이니, 참가하실 분은 참가하세요!”
급조된 추첨상자와, 대충 A4용지를 잘라내어 만든 추첨용지를 팔락팔락 흔들었다.
순식간에 카페의 손님들이 몰려, 남캣과 청호의 대련에 대한 예측을 하기 시작했다.
“청호가 이기겠지. 저번에도 이겼잖아. 청호가 바로 이길 걸?”
“야, 그래도 남캣인데? 어느 고양이가 부엉이를 때려잡아.”
“그래도 난 갓댕이파라서. 좆냥이는 갓댕이한테 안 된다고.”
“뭐? 너 좆댕이파였냐. 어디서 개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니가 짖는 거였구나?”
“……말하는 싸가지 보니까 너는 좆냥이파겠네.”
친구사이로 보이는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일이 있긴 했지만, 카페에 있던 손님들 전원이 저마다 승부를 점쳤다.
손님들의 예측은 80% 정도가 청호의 승리를 점쳤고, 15% 정도가 남캣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남은 5%는 두 녀석의 승부가 무승부로 끝나리라고 예상한 사람들이었다.
남캣을 선택한 20%의 손님들에게 약간의 미안함이 들었다. 예전에도 이기지 못했는데, 살까지 쪄버린 남캣이 청호를 이길 가능성이라곤 없었기 때문이다.
‘뭐……. 다들 알고도 선택한 거니까.’
하지만 그 미안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캣을 선택한 손님들은 하나같이 승패를 확신하기 보다는, 남캣이 이겼으면- 한다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약간 있던 미안함을 털어낸 나는, 그대로 남캣과 청호에게로 다가갔다. 기다리라는 말을 지키고 있던 두 녀석은 내가 다시 나타나자, 당장이라도 부딪힐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곧바로 두 녀석의 대련을 시작하려던 나는 순간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곧바로 청호에게만 속삭였다.
“진짜로 함까?”
“그래.”
“알겠슴다.”
내 말을 들은 청호는 무어라 반문하는 대신, 알겠다며 말하고서 남캣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자 그럼 시작하기 전에. 둘 다 규칙은 알지?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되는 거.”
“걱정마십셔!”
“흥. 힘들겠군. 저 녀석을 다치지 않게 하려면.”
나는 상반되는 두 녀석의 반응에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살며시 거리를 벌렸다. 그 이후, 시작하라는 신호를 주니, 곧장 두 녀석이 격돌했다.
두 녀석 다, 개와 고양이라는 종 자체를 초월했다고도 할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덕분에, 두 녀석은 가만히 있던 상태였음에도 최고속력까지 가속하는 것이 무척 빨랐다. 눈 한 번 깜빡이고 다시 떴을 뿐이었는데, 2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던 두 녀석이 맞붙어 있었다.
파바바밧!
격돌한 두 녀석은 말 그대로 바람을 가르는 소릴 내며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묵직하게 내려꽂히는 청호의 앞발을 가볍게 피한 남캣이 그대로 몇 번의 냥냥펀치를 날리고, 청호는 그런 냥냥펀치를 물흐르듯이 피해냈다.
이후에도 비슷한 수준의 공방이 펼쳐지며, 그 모습을 직접 관람하게 된 손님들이 감탄사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남캣한테 십 초 안에 질 자신이 생겼습니다…….”
“청호 이겨라! 나한테 상품을 줘! 청호코인 떡상 가즈아!”
“와, 가슴이 웅장해지네. 어지간한 UFC 저리가라는 수준이잖아.”
“야랄하고 있네. 가슴이 옹졸해지겠지. 조금 전까지 남캣이 바로 진다고 한 놈 어디갔냐?”
“거기서 그렇게 들어가면 안 되지! 빈틈을 노리고 파바박! 어!”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며 환호했다. 심지어, 동물들에게까지 훈수를 두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은 이어진 청호의 모습에 통일된 반응을 보였다.
“저기……. 청호가 비웃는 거 맞지?”
“내 눈이 삔 게 아니라면 맞는 거 같은데.”
다름이 아니라, 청호가 고개를 까딱이며 웃음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거 밖에 안 됨까? 저번보다 너무 약해진 거 아님까? 이거, 준비운동도 안 되겠슴다.”
그리고, 실제로도 청호는 남캣을 비웃고 있었다. 기다란 주둥이의 입술이 슬며시 호선을 그리고 있었고, 동그란 눈동자가 살짝 접히며 웃음 짓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청호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내가 지시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캣이 보다 더 열심히 움직이며, 그 풍만해진 뱃살을 좀 빼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었다. 살이 찌면서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건 남캣 역시 마찬가지였던 탓이었다. 턱 밑까지 숨이 차오를 정도로 움직이게 만들려면 이렇게라도 해야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남캣은 내가 예상하고, 또 원했던 반응을 보였다. 청호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하악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리 살이 쪘다고는 하지만 도도하게, 제 위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살아오던 녀석이 이런 수모를 겪었으니 좋아할 리가 없었다.
“……지금, 나를 비웃은 거냐?”
“푸흐흥.”
“가만 안 두겠어!”
확인사살을 하듯, 청호는 남캣의 물음에 대답 대신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에, 애초부터 바닥을 보이는 인내심의 소유자인 남캣답게 인내심이 사라졌다.
녀석은 청호가 다치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겠다는 듯이 발톱을 내세우며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청호 역시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가볍게 놀아준다는 듯한 움직이었다면, 지금은 마치 진심을 다하는 듯한 모습인 것이었다.
“흥흥, 할 수 있잖슴까. 좋슴다. 더 힘내보는 검다!”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흘린 청호는 남캣과의 대련을 즐기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발톱이 곁으로 스쳐 지나감에도 눈 하나 꿈뻑이지 않고서 방어하고, 반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즐기는 청호에게 맞서던 남캣 역시 서서히 즐겁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살짝 방심해서 얻어맞는 순간 큰 고통을 느낄 것이 분명한 공격을 주고받으니, 이전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한 것이었다.
야생……보다 더한 길거리를 배회하며 살던 남캣이 그 감각을 되찾기 시작하니, 움직임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공격이 막히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아주 약간 스치는 수준에 지나지 않던 공격이 드디어 제대로 들어간 것이었다.
“끄응, 뾰족한 귀는 제 자랑이지 말입니다…….”
바로, 청호의 뾰족하게 솟아 있던 귀의 끝이 살짝 잘려나간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귀가 잘렸다기 보다는, 귀의 끝 부분을 더 뾰족하게 해주던 털이 잘려나간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스스로의 자랑이던 귀의 끝이 잘려나간 청호는 더 이상 놀듯이 남캣을 상대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저도 이제 놀지 않고, 제대로 하겠슴다.”
“흥, 누굴 상대로 논다는 소리를 해?”
남캣은 청호에게 받은 비웃음을 갚듯이 입꼬리를 씨익- 말아올렸다.
그리고, 그런 두 녀석은 곧바로 충돌할 듯이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두 녀석 모두 뒷발에 강한 힘을 주며 잔디를 짓밟고 있었다.
하지만 두 녀석은 이전처럼 격돌할 수가 없었다.
삑삑삑삑삑삑!
바로, 영지가 선물해준 야광 삑삑이신발을 신고 있는 소은이가 발소리를 내며 열심히 걸어온 것이었다.
“으우으응!”
아장아장 걸어온 소은이는 그대로 남캣과 청호 사이로 파고들어, 두 녀석의 격돌을 제지했다. 마치 싸우지 말라고 두 녀석을 말리는 듯한 소은이의 모습에, 나는 물론이고 남캣과 청호의 대련을 구경하던 모든 사람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아가씨……. 결판을 내야 함다.”
“맞아. 꼬맹이, 너는 비켜.”
“으우우!”
“으부으그!”
“느르!”
소은이는 제게 항명하는 걸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듯, 애웅애웅- 멍멍- 소리를 내는 두 녀석의 주둥이를 콰악 붙잡았다. 주둥이를 제대로 붙잡지 못할 손의 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녀석들의 털을 붙잡은 것이었다.
덕분에 두 녀석은 제대로 입도 벌리지 못한 채 웅얼거리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소은아, 얘들 싸우면 안 돼?”
“꺄!”
내 말을 이해한 건지 아닌지는 몰라도 소은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소은이를 안아들었다. 그제서야 소은이는 두 녀석의 주둥이를 놓아주었다.
“어쩔 수 없네. 남캣, 네가 살을 뺄만한 건 따로 찾아봐야겠다. 소은이가 너희 싸우는 거 싫다니까, 어쩔 수 없잖아?”
두 녀석은 실망했다는 듯이 고개를 푸욱- 숙이며 털레털레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언제 싸웠냐는 듯, 서로를 위로하듯이 머리를 비벼댔다.
나는 그런 두 녀석을 뒤로하고, 카페 내부로 들어갔다.
“끄어어어……. 청호코인 떡라아아악……!”
“무승부라니!”
“믿고 있었습니다! 공주님!”
“그래, 차라리 잘 됐어. 최소한 남캣이 진 건 아니잖아?”
카페 내부에는 소은이의 난입으로 인한 무승부로 인해 손님들의 반응이 갈렸다. 80%가 아쉬워했고, 15%가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5%가 환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소은이와 함께 이벤트의 당첨자들을 추첨하기 시작했다. 무승부를 예측한 사람들의 추첨번호가 적힌 상자를 이용한 것이었다.
“소은아 여기서 한 개만 뽑아볼래? 이렇게.”
손을 넣을 수 있게 만든 자그마한 상자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니, 소은이는 상자에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뺘!”
상자에 손을 넣은 소은이는 휘휘 내젓더니, 손을 빼내었다. 그런 소은이의 손 안에는 두 개의 종이가 잡혀 있었다.
“주세요.”
손을 내밀며 종이를 달라하니, 소은이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내 손에 종이를 내려놓았다.
“7번! 13번!”
“오예!”
“감사합니다, 공주니이임!”
내가 종이에 적힌 번호를 부르니, 두 명의 손님이 튀어나오며 환호했다.
나는 그들에게 자그마한 선물들을 전해주었다. 따로 정식 굿즈를 판매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은이 돌잔치 때 만들어둔 물건들 중 남아 있는 일부를 선물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몇 번 더 추첨을 하며 사람들에게 간단한 선물을 준 나는 소은이가 잠들 때 까지 가볍게 놀아준 다음, 남캣의 다이어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나를 닮은 건지 누나를 닮은 건지는 몰라도 은근히 고집이 센 소은이다보니, 또 남캣과 청호의 격돌을 보고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나는 식단 조절에 집중하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시작은 간식의 제한이었다.
“뭐……? 츄르를 안 주겠다고……?”
“그래. 네가 살이 좀 쪘어야아아악!”
덕분에, 반바지를 입고 있어 드러나 있던 정강이에 세 줄의 붉은 선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상처보다도 나를 황당하게 만드는 것은, 츄르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미친듯이 움직이며 일주일만에 원래의 체중으로 돌아온 남캣이었다.
‘괜히 고민했잖아.’
남캣이 살 찐 것을 고민한 것이 후회됐다. 그냥 처음부터 츄르를 제한할 걸. 캣휠도 괜히 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