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82
0081 안 됩니다!
“헝…….”
바다사자의 황당한 태도에, 나는 나도 모르게 괴상한 소리를 냈다.
“수환아, 바다사자가 뭐래?”
“아니……. 그게, 좀…….”
그리고, 동물의 울음소리만 들었다 하면 무슨 말을 하냐고 묻는 누나는 바다사자의 울음소리를 통역해주길 원했다.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딱히 숨긴다고 좋을 것도 없었으니 통역을 해주기로 했다.
“뭘 봐?”
“……뭐?”
“아니, 저 녀석이 그랬다고. 뭘 보냐고.”
내 말에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던 누나는, 이내 내가 보인 반응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어떡하죠? 저희가 준비한 숙소는 이 길이 아니면 세 배 이상 돌아가야 하는데…….”
“세 배요?”
조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많이 돌아가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나는 결심했다.
이 전문 길막꾼들을 치워버리기로. 물론, 내가 직접 할 생각은 없었다.
“한무야. 부탁 좀 하자. 저것들 다 밀어버려.”
“허허.”
내 지시에, 한무가 자그마하게 웃더니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괘, 괜찮은 겁니까? 아무리 바다사자들이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는 해도, 거북이는 어떻게 대할지 모릅니다만…….”
“아, 괜찮아요.”
가이드가 한무의 모습을 보며 걱정스럽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바다사자도 사자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맹수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집의 개성 넘치는 동물들처럼, 한무도 평범한 거북이는 아니었다.
한무는 가이드의 걱정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느릿한 걸음을 열심히 움직여 바다사자들에게 다가갔다.
멍하니 바닥에 드러누워 도로를 점령하고 있던 바다사자 중 가장 앞에 있던 녀석은 무언가가 자신의 몸통을 꾸욱- 누르는 것에 반응했다.
“으엉? 뭐, 뭐야!”
고개를 슬그머니 들어올려, 자신의 몸을 누르는 것을 확인한 바다사자는 꽤나 놀랐는지 퍼드득거리며 경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내 자신을 밀어내려는 것이 거북이라는 것을 확인한 바다사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한무를 바라보았다.
“거북이 주제에 나를 밀겠다고? 흥, 네가 밀려날……. 끄으으으응!”
자신을 밀어내려는 한무의 모습에 가소롭다는 반응을 보이던 바다사자는 되려 한무를 밀어내려했다. 하지만, 아무리 바다사자라고 해도 한무를 밀어내지 못했다. 되려 낑낑거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허허허.”
한무는 힘을 쓰는 바다사자의 모습에 웃음을 흘리며 느긋한 걸음을 이어갔다.
“어, 어어?”
그리고, 그런 한무의 진격에,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바다사자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한 마리가 밀려나고, 두 마리가 밀려나며 바다사자끼리 뒤엉키기 시작할 정도였다.
“이, 이이이익!”
“허허허허!”
한무는 제게 밀려나는 바다사자들을 보며 더 힘차게 걸음을 내딛었다.
녀석이 한 걸음 내딛을 때 마다 둥글둥글한 몸체를 가진 바다사자들이 이리저리 구르고 서로 뒤엉켰다.
“바다사자가 절대 가볍지가 않은데…….”
가이드는 밀려나는 바다사자들을 보며 경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갈라파고스에서 우리를 경호해줄 경호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호원들은 저들끼리 수근거리며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뭐라는 거예요?”
“저 거북이가 사실은 로봇이 아닌가 하고 있습니다.”
“로봇이요? 아, 하긴. 저 모습을 보면 신기하긴 하겠죠.”
한두 마리도 아니고, 열 마리가 넘는 바다사자들이 한무에게 밀려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도, 카페 입구를 막고 쌓여 있던 사료포대 수십 개를 밀어내며 카페에 들어가던 한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한무가 열심히 움직이니 서서히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둥글둥글한 바다사자들이 데굴데굴 굴러가며 생각보다 널찍한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끄앙! 구른다!”
바다사자 한 마리는 특히나 둥글둥글했는데,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저 멀리 해변까지 나뒹굴었다.
“자, 가죠. 저 앞쪽이 숙소라고요?”
“……어? 어, 네! 네, 네!”
멀리까지 구르는 바다사자를 무시하고, 나는 한무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무가 열심히 움직인 덕분에, 길을 꼼꼼하게 틀어막던 바다사자들 사이로 길이 생긴 상태였다. 저들끼리 이리저리 엉키고 뒹굴고 있으니, 지나다닐 공간이 넉넉하게 만들어졌다.
내가 앞장서니, 소은이를 안은 누나와 다른 동물들이 내 뒤를 따라왔다. 바다사자들은 저들끼리 뒤엉킨 상태 그대로 다시금 햇빛을 쬐고 있어, 아무런 방해도 없이 길을 건넜다.
“잘했어. 덕분에 편하게 왔네.”
“허허, 얼마든지 부탁하시게나.”
잘했다고 한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한무가 커다란 눈을 느릿하게 꿈뻑이며 기분 좋음을 표시했다.
“저기, 저곳입니다.”
한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조금 더 걷고나니 가이드가 우리의 숙소를 안내했다.
호텔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그러한 곳은 아니지만, 새하얀 색의 건물은 꽤나 깔끔하고 단정하게 보였다. 내부도 잘 꾸며진 것이, 정말 여행지에 왔다는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이곳이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사용하실 숙소입니다. 전체를 대여한 상황이니, 여러분을 제외한 분들은 경호원과 저 밖에 없을 겁니다. 특히, 여러분이 머무실 윗층은 아무도 올라가지 않을테니, 편안하게 쓰시면 됩니다.”
신혼부부를 배려하는 듯한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누나와 함께 윗층으로 올라갔다.
객실마저도 원하는 것을 쓸 수 있었기에, 나와 누나는 적당한 객실을 선택해서 들어갔다. 객실로 들어가니 테라스를 통해 조금은 거리가 있긴 하지만 푸르른 바다가 보여졌다.
“와, 바다도 보이네? 뷰 좋다.”
소은이를 침대에 내려놓은 누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들어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댔다.
그 모습에, 나는 누나를 뒤에서 살며시 끌어안았다.
“흐흐. 어때, 슬슬 둘째를 가질까?”
“뭐래.”
누나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이 내 팔뚝을 찰싹! 때렸다. 그래도 기분나쁜 것은 아니었던 건지, 팔뚝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리고, 침대위에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바라본 건지 소은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으우웅!”
“자기도 안아달라네. 우리끼리 안고 있으니까 싫은 거 같은데?”
“소은이는 동생 얻긴 글렀네.”
누나는 가볍게 웃으며 소은이를 안아들었다. 소은이는 내게도 같이 안기고 싶은지, 누나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내게로 손을 뻗었다.
그런 소은이를 누나와 함께 안아주니, 그제서야 소은이가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테라스에서 잠깐 쉴래? 테이블도 있으니까. 간단하게 음료수나 마시자. 바람도 시원한 거 같네.”
“그러자. 소은이 데리고 나가있어. 간식이랑 음료 챙겨서 갈게.”
“소은아 밖에 구경할까?”
“쁘아!”
누나에게서 소은이를 받으니, 소은이가 내 얼굴을 향해 손을 뻗어 주물럭거렸다.
턱 아래를 슬슬 문질러대는 소은이의 손길에 간지러움을 느끼며 테라스로 향하니 더우면서도 땀을 식혀줄만한 바람이 불어왔다.
딱히 아기용 의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소은이를 품에 안고서 의자에 걸터 앉았다.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만든 듯한 의자는 생각보다 딱딱하고 불편했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풍경이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자, 오렌지 주스. 콜라는 없더라.”
“그래? 아쉽네.”
어디서도 실패하기가 힘든 콜라가 없다는 말에 아쉬웠지만, 그래도 오렌지 주스가 나쁘지는 않았다.
“빠빠, 쭈!”
누나가 내게 내미는 오렌지 주스를 발견한 소은이가 자기도 달라며 손을 뻗었다.
“보니까 소은이가 먹어도 괜찮겠더라.”
소은이가 먹어도 된다는 말에, 나는 뽕- 소리를 내며 유리병을 따고서 소은이 입에 조금씩 흘려넣어주었다.
“조아!”
달달한 주스를 꼴깍꼴깍 마신 소은이는 그리도 좋은지 팔다리를 팔랑거리며 기뻐했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지은 나는 누나가 가져온 과자들 중 하나를 뜯었다.
“소은이, 아.”
“아!”
소은이 전용의 과자를 스윽 내미니, 소은이가 자그마한 입을 벌리며 과자를 앙- 베어물었다. 자그마한 입술이 오물오물 움직이며 과자를 맛있게 먹는 소은이였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하나씩 하나씩 소은이에게 과자를 먹일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부모님들이 자꾸만 뭘 먹으라고 하는 건가?
“까까!”
소은이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잠시 멈추고 있었더니, 소은이가 또 달라며 보챘다. 나는 과자 봉지에 남아 있는 두 개의 과자 중 하나를 집어 소은이의 입가로 가져갔다.
파라라락!
“갓챠!”
“흐아아아앙!”
그리고, 그렇게 집어든 과자는 소은이의 입이 아니라, 웬 새의 부리에 물려 있었다. 당연히 제 앞에서 뭔가 휘리릭 지나간 것은 물론이고 과자까지 빼앗긴 소은이는 우렁차게 울음을 터트렸다.
“이런 씨……!”
“감히 누가 공주님을 울린 것이오오오오!”
“아가씨이이이이! 다 죽여버리겠슴다아아아아!”
“언 놈이 딸랑이로 쳐맞고 싶은기고오오오오!”
나는 갑자기 나타나 소은이의 간식을 빼앗은 새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나보다도 빠르게 움직이는 녀석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튀어나온 유부와, 그 뒤를 따라 달리는 청호. 거기에 딸랑이를 들고 어기적거리며 뛰어오는 대포동이었다.
“야야! 여기 이층이야!”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렇게 뛰쳐나온 녀석들이 여기가 2층이라는 것도 잊은 것인지 테라스의 난간을 뛰어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천만 다행으로, 그렇게 난간을 넘어간 녀석들 중 다친 녀석은 없었다. 유부야 부엉이니 날아다닐 수 있고, 청호는 2층 정도의 높이는 간단하게 뛰어다니는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대포동은…….
“사, 살리도오오!”
난간을 붙잡고 잘 살아 있었다.
나는 대포동 녀석을 건져올리며,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는 세 녀석을 바라보았다. 유부와 청호에게 붙잡혀 있는, 소은이의 과자를 훔쳐간 새를 말이다.
“네놈의 처우는 공주님께서 결정할 것이오!”
유부는 청호가 짓누른 용의자를 잡아채서 날아올랐고, 청호는 대포동이 떨어트린 딸랑이를 물고서 돌아왔다.
그리고, 밖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경호원들과 가이드 역시 찾아왔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창문에서 동물들이 뛰어내렸다가 다시 뛰어 올라가는 모습과, 소은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다가온 가이드는 다급히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누나의 품으로 옮겨가서 훌쩍이는 소은이, 그 주변으로 몰려든 동물들. 그리고, 유부가 발톱으로 꽉 움켜쥐고 있는 정체모를 새와, 그런 새를 딸랑이로 내려치려는 대포동의 모습을 바라본 것이었다.
“아, 안 됩니다!”
대포동의 모습을 오해한 가이드가 다급히 소리쳤다.
“죽어라!”
아, 오해가 아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