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83
0082 네가 거기서 왜 나와?
“멈춰!”
당장이라도 새를 향해 딸랑이를 내려칠 것 같은 대포동의 모습에 나는 재빨리 녀석의 움직임을 막았다.
아무리 저 녀석이 소은이를 울렸다고는 하지만, 딸랑이로 처형할 수는 없었다.
“얌마, 그 녀석 때리면 안 돼.”
“?!”
내 말에 대포동 녀석은 바닥에 깔려 있는 새를 향해 침을 퉤, 뱉고서는 몸을 돌렸다. 그러더니 소은이에게로 다가가 딸랑이를 딸랑딸랑 흔들어댔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가이드는 무척 놀란 모습을 보였다. 난데없이 새의 처형식을 구경할 뻔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놀라지 않는 게 이상했다.
“테라스에서 딸한테 과자를 좀 주는데, 저 새가 가로채더라고요. 거기서 딸이 울고, 얘들이 뛰쳐나가서 잡은 거죠. 얘들이 제 딸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나는 최대한 우리에게 잘못이 없음을 어필했다.
사로잡은 새 역시 딱히 다치거나 한 것은 아니었기에, 가이드는 새를 풀어주라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무어라 말을 하지 않았다.
“유부야, 걔 놔줘.”
“처형하지 않는 것이오?”
“……안 해.”
“?!”
소은이의 간식을 훔쳐간 녀석을 가만둬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유부는 대포동처럼 침을 퉤 뱉었다.
“끄아아앙!”
그리고, 그렇게 두 번의 침을 맞은 새는 유부의 발톱에서 벗어나자마자 포로록 날아서 도망쳐버렸다. 거의 우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봉지에 아직 남아 있는 마지막 과자를 집어 소은이의 입에 물려주었다.
하나를 빼앗기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금 제 입에 과자가 들어오는 것에 소은이는 만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는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제 입 주변을 두 손으로 붙들고서 오물오물 씹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촉촉한 눈망울이 특히나 더 귀엽게 보였다.
“따님이 참 귀엽네요. 부럽습니다. 저희 집은 아들이 하나 있는데, 어찌나 사고를 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하는 가이드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그 새는 뭐죠? 뭐랄까, 색깔이 좀 비둘기 같던데. 부리는 전혀 아니었지만요.”
“용암갈매기입니다. 크기로 봐서는 완전한 성체는 아니고, 아성체쯤 되겠네요. 참고로 멸종위기 취약종입니다.”
멸종위기 취약종이라는 소리에, 대포동과 유부를 말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갈매기라고 사람들이 과자 같은 걸 조금씩 주다보니 따님이 먹으려는 과자를 가로챈 것 같네요.”
“쩝……. 아무래도 간식을 주는 건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겠네요.”
“이게 다 사람들의 행동으로 인해서 학습한 거니까요. 녀석들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이 된 거죠.”
가이드의 말에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고 또 소은이의 과자를 빼앗길 생각은 없었다. 배부른 소은이의 빵실빵실한 웃음을 보면서 뽈록한 배를 만지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데. 그건 포기 못 하지.
“그럼, 아무 문제가 없으신 것 같으니, 저희는 이만 내려가보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거나 외출하실 거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잠깐의 소동이 있긴 했지만 별 일이 아님을 확인한 가이드는 경호원들과 함께 돌아갔다.
“갑자기 피곤해지네. 한 숨 잘까?”
“그럴까? 소은이도 갑자기 울어서 그런가, 피곤한 거 같아.”
볼을 살며시 부풀린 채로 눈이 반쯤 감긴 소은이의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고, 나와 누나는 잠깐의 낮잠을 자기로 결정했다.
나와 누나는 소은이를 가운데에 두고서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 ○ ◑ ● ◐ ○
“아빠 미워!”
“안 돼에에에에!”
나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소리에,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순간 비몽사몽한 와중에도, 조금 전의 그 소리가 꿈이었음을 바로 인식할 수 있었다.
워낙 충격적인 소리였어야지.
“압쁘아!”
“어, 엉?”
충격으로 인해 꿈에서 깨어난 나는, 내 가슴팍에 올라와서 엎드려 있는 소은이를 볼 수 있었다.
괴상한 꿈을 꾼 이유가 가슴을 압박하는 소은이의 영향이라는 것을 금세 눈치챘다. 가슴팍에 올라타서 짓누르고 있으니 가위에 눌리는 것처럼 악몽을 꿀 수밖에.
하지만 그렇다고 소은이에게 화를 낼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그저 꿈이라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왜 안 자고 아빠 위에 있을까?”
“꺄앙!”
소은이는 내 물음에 답하는 대신,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그거면 됐지.
“일어났어?”
해맑은 미소를 짓는 소은이를 안아드니, 먼저 깨서 씻고 있던 건지 누나가 욕실에서 나왔다. 머리에는 새하얀 수건을 휘휘 휘감은 상태로.
“호오, 먼저 씻었겠다? 이제 내 차롄가?”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얼른 씻고 나와. 밥 먹으러 가자.”
누나의 말에 반사적으로 휴대폰에 떠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딱히 굶을 생각은 없었기에, 재빨리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누나와 소은이가 외출 준비를 끝마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시리 다급해진 나는 대충 잡히는대로 반팔과 반바지를 챙겨입고서 누나와 소은이는 물론, 동물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누나가 미리 연락해둔 건지, 경호원들과 가이드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나오자, 곧바로 우리 주변을 에워싸며 보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경호원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듯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경호원들과 마찬가지로 가이드 역시 가이드의 임무를 제대로 하려는 모습이었다.
“저녁식사는 어떤 메뉴로 하시겠습니까? 버거도 있고, 양식이나 해산물 요리도 많습니다.”
“흐음……. 누나, 뭐 먹을래?”
“양식도 괜찮은데, 여기까지 왔으니까 해산물도 먹어야하지 않나 싶어. 수환이 너는 뭐가 먹고 싶어?”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치기가 어디있어.”
“질문에 받아친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게 어디있어.”
“쳇.”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답이나 하라는 듯한 반박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이드를 바라보았다.
“양식도 하고, 해산물도 잘 하는 맛집 있나요?”
“푸흐흐, 예. 있습니다. 거기로 안내할까요?”
“부탁드릴게요.”
가이드는 솔로몬이나 다름없는 내 선택에 감탄하며 우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런 가이드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해변가에 위치해 있는 식당이었다. 마치 반쯤 바다위에 떠있는 듯한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 건물이었는데, 맛집은 맞는지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가 맛집으로 꽤 유명한 곳입니다. 파스타도 제법 잘 하고, 해산물 요리가 일품이죠. 개인적으로는 바닷가재를 추천드려요.”
“오, 바닷가재!”
“그거 먹자!”
바닷가재라는 말에 나와 누나가 반색하며 반응했다. 한 번 정도는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었는데, 지금까지 먹을만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약에 실패한다던가, 재료가 소진 됐다던가 하는 이유로 먹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결정한 우리는 비어 있는 바닷가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망설이지 않고 주문을 했다. 바로 옆에서 메뉴판을 통역해주는 가이드가 있으니 무척 편했다.
“여기. 버거랑, 파스타랑, 아까 말했던 바닷가재랑……. 어, 또 뭐 하지?”
“카레 소스를 곁들인 생선찜? 이것도 한 번 해보자.”
두 명이서 먹기에는 조금 많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음식들을 시키게 되었다.
“좀 많이 시켰나?”
“다 먹으면 되지 뭐. 근데, 그렇게 많지도 않을 거 같아.”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요리 하나의 양이 많지 않아보였다.
그렇게 걱정을 떨치고,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고 있으니 금세 요리가 나왔다. 버거를 시작으로 파스타나 바닷가재, 생선찜이 테이블 위를 채웠다.
“와! 수환아, 이거 먹어봐. 맛있다?”
누나가 내미는 생선살을 받아먹은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맛이 좋았다.
그리고, 다른 음식들 역시 하나같이 기대한 것 이상의 맛을 보여주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무척이나 만족스럽게 저녁식사를 마무리지었다. 숙소도 마음에 들고, 중간에 소동이 있긴 했지만 저녁까지 즐겁게 마무리하니 여행을 온 보람이 느껴졌다.
“수환아. 잠깐 해변 산책이나 하고 돌아갈까?”
“좋지.”
식사를 마무리하고, 식당에서 나온 누나의 제안에 우리는 그대로 해변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
당연히, 삑삑이신발을 신고 걷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소은이 역시 즐겁게 뛰듯이 걷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걸을 때마다 번쩍번쩍 빛이나며 삑삑 소리가 나는 그 신발은 어그로를 무척이나 잘 끈다는 것이었다.
“Look at that baby!”
“¡Ese beb? es muy lindo!”
“Holy! She’s so cute!”
주변에서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던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 끌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귀엽다 말하며 소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은이의 삑삑이 신발이 끄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저게 뭐냐?”
“빛……!”
무슨 노숙자들 마냥, 벤치란 벤치는 죄다 점거하고 있던 바다사자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아 끌고 있는 것이었다.
“수환아! 소은이! 소은이!”
바다사자들이 순식간에 소은이에게로 몰려가는 모습에, 누나가 다급히 외쳤다.
나 역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재빨리 소은이를 안아들었고, 청호를 비롯한 동물들 역시 주변으로 다가와 경계하기 시작했다.
으르렁거리는 울음소리와, 날카롭기 그지 없는 이빨이 드러나며 청호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 모습 때문에 바다사자들이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지만, 녀석들의 시선은 소은이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나, 사랑에 빠졌어.”
그리고, 그런 바다사자들 중 한 마리가 갑자기 괴상한 소리를 지껄이더니 바다를 향해 뛰어갔다.
“……?”
갑작스런 상황을 순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잠시동안 멍하니 바다사자들을 바라보았다.
잠시동안 멍하니 있는 사이, 바다로 달려갔던 그 바다사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주둥이에 꽤나 큼지막한 물고기 한 마리를 문 채로.
“이거 받아주라!”
녀석은 내 앞에. 정확히는 소은이에게 주겠다는 듯이 물고기를 탁 내려놓았다.
“에헷, 헹, 헤헹.”
물고기를 내려놓은 바다사자는 마치 쑥스럽다는 듯이 몸을 베베 꼬아댔다. 꾸엉- 꾸엉- 울음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다른 바다사자들이 단체로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당연히, 돌아온 녀석들의 주둥이에는 물고기 같은 해산물이 하나씩 물려 있었다.
“삐엑! 살리죠! 살리죠!”
심지어 그 가운데에는 내가 갈라파고스에 오게 된 원인인 ‘갈라파고스 펭귄’마저 있었다.
‘네가 거기서 왜 나와.’
나는 황당함을 가득 담아, 바다사자들과 펭귄을 바라보았다.
“살리죠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