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90
0089 관광지 메이커
홍학들을 반쯤 조형물처럼 부려, 사진 수백장을 찍은 그 날 이후로도, 우리는 여러 관광을 했다.
근처 다른 섬에 있는 찰스 다윈 연구소라는 곳에서 여러 거북들이나 동물들을 보기도 했고, 여러 동물들의 표본 같은 것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관광지들을 둘러보며 갈라파고스 제도에서만 거의 열흘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당연히 우리들은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을 만날 수도 있었고, 여러 체험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즐겁고 색다른 경험을 하며 보낸 우리는 큰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 밤을 보냈다.
“저…….”
그리고, 마지막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귀국하기 위해 짐을 바리바리 싼 우리는 꽤나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이드를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 짐이 너무 많아졌나……?”
“우리는 왜 여행만 갔다 하면 짐이 늘어나지? 가져온 걸 쓰고나면 줄어들어야 할 건데.”
“기념품이라고 이것저것 싸그리 사버려서 그런 게 아닐까? 여기서 산 모자가 여덟 개에, 스카프가 스무 개……. 인테리어 소품이 한 서른 개 되던가? 거기에 ”
가이드를 앞에 두고, 우리는 잠깐의 만담을 나눴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만담에도 가이드의 표정은 풀릴 줄 몰랐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가이드를 바라보니, 가이드가 무척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시는 날에 정말 죄송합니다만…….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부탁이요? 어떤 건데요?”
“거기 있잖습니까. 바다거북이랑 바다사자 같은 애들한테 묶인 해양 쓰레기를 풀어준 곳 말입니다.”
“아, 거기요…….”
까딱 했다간 문어 같은 해산물에 둘러싸일 뻔한 기억을 끄집어내니 내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일그러지는 내 표정 때문인지, 가이드가 조금 더 미안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거기는 왜요?”
“사실, 지금 거기가 반쯤 관광지화 되고 있어서……. 도움을 좀 받고자 합니다.”
“도움이요? 아니, 것보다 관광지화?”
내 물음에 가이드는 이런저런 말로 설명하기보다 직접 가서 보는 것이 더 좋을 거라며, 잠시만 동행해주길 바랬다.
나는 딱히 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덕분에 누나는 시간에 쫓기듯이 마무리 하지 못했던 출국 준비를 다시 하겠다며 기껏 쑤셔넣은 짐들을 다시 풀어헤쳤다.
“다녀와!”
“뺘!”
갈 때는 가방에 담겨서 가고 싶다는 건지, 소은이가 캐리어 안에 앉아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누나와 소은이의 배웅을 받으며 가이드와 함께 길을 나섰고, 금세 물놀이를 하던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나는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곳에 수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같이 손바닥보다 조금 자그마한 칼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 어디 무슨 칼부림 하러 온 건가요?”
“칼부림이라……. 어떻게 보면 칼부림은 칼부림이죠.”
가이드의 말에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니 히죽히죽 웃는 가이드의 얼굴이 보였다.
장난하지 말고 어서 설명하라는 듯이 그를 바라보니, 히죽히죽 웃던 가이드가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었다.
“그 때 바다거북 같은 동물들을 구해주셨잖습니까? 그렇게 동물들을 구해주고, 보답을 받는 모습을 누가 촬영을 했나봅니다.”
“윽…….”
문어를 받고 기겁하던 내 모습이 찍혔다니, 괜히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은 이어진 가이드의 말에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그 영상 때문에 사람들이 조금 더 이곳을 찾았는데, 누군가가 우연히 줄에 묶인 바다거북을 발견했답니다.”
“……설마, 아니죠?”
“왜 아니겠습니까. 바다거북을 묶은 줄을 잘라주니, 조금 뒤에 물고기 한 마리를 물어왔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사람들이 저렇게 칼을 들고 기다리는 거죠. 바다거북이든, 다른 동물이든 해양 쓰레기에 몸이 얽힌 동물들을 기다리겠다고요.”
“그 사람 말고도 성공한 사람이 있어요?”
“제법 있다고 하네요. 대부분 보답을 받기도 했고요. 대부분 물고기나 조개 같은 거지만요. 문어를 안 받고 가셔서, 문어는 안 주는 게 아닐까요?”
“…….”
황당함에 무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그걸 따라할 생각을 한 거지?
내가 그렇게 말을 잇지 못하고 황당하다는 듯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잠시 기다리던 가이드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쪽 정부에서 좀 부탁을 했습니다. 일종의 관광지처럼 만들고 싶다고, 동물들에게 소문을 좀 내달라고 말입니다.”
“……예?”
“해양 쓰레기는 치워도 치워도 끝 없이 밀려듭니다. 그러니, 동물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구조하기 보다는, 직접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겁니다. 덤으로 일종의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하고 말이죠.”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어느정도 납득할 수가 있었다. 생명이 위험한 동물들을 찾아나서는 것 보다, 동물들이 직접 찾아오게 하는 편이 더 좋긴 하지.
“당연하지만, 동물들의 안전을 위해 상주하는 직원도 파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없을 때 동물들의 구조를 하기도 하고, 동물들을 위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지하기 위해서죠.”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받은 것도 많은데, 겨우 펭귄만 챙겨주는 건 좀 마음에 걸리긴 했거든요.”
아무리 최상급 초능력자의 몸값이 높다고는 하지만, 갈라파고스 쪽에서 봐준 편의나 약속한 보수가 결코 적지 않았다. 심지어, 펭귄인 페엥까지 데려갈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니 더더욱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나에게 갈아입을 옷 한 벌을 준비해달라는 부탁을 하고서, 곧바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바닷물에 몸을 담궜다.
도중에 누가 새치기 하지 말라는 듯한 외침이 있었지만,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길을 터준 덕분에 어려운 일은 없었다.
해변가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니, 그곳에는 이미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파도를 버티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Oh!”
그리고, 그 가장 앞에서 칼을 들고 기다리고 있던 한 백인이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Divine beast!”
내 뮤튜브 채널명의 신수를 고스란히 직역한 디바인 비스트라는 단어를 외치는 백인이었다.
그러더니, 내 구독자라며 악수를 요청하고, 사진까지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엉겹결에 사진까지 찍어주고 난 다음, 나는 조금 더 앞으로 헤엄치고 나갔다. 거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 먼 거리에서부터 바다사자 한 마리가 느릿느릿하게 헤엄쳐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으엉?”
그런데, 그 바다사자가 나를 바라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으니, 나는 녀석을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야, 너지? 그 때 펭귄 잡아온 놈.”
“으헝!”
바다사자는 내 말에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녀석의 지느러미 같은 다리와 몸통을 옥죄고 있는 해양 쓰레기로 인해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나는 재빨리 녀석을 붙잡았다.
“어딜 도망가!”
“놔, 놔줘! 예쁜이 없으면 볼 일 없어!”
“내 딸을 니가 왜 찾아!”
“몰라! 놔!”
바다사자 녀석은 꾸엉꾸엉 울며 내게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고, 힘이 빠진 녀석이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나는 물속에 있어, 그나마 가볍게 들 수 있는 녀석을 질질 끌고서 내 구독자라는 백인에게 다가갔다.
“엄……. C, Cut!”
“Okay!”
짧다 못해 단어 하나의 영어를 내뱉었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전달 된 듯했다.
백인은 내가 잡은 바다사자를 보더니 약간의 두려움을 담아 다가와, 녀석의 몸통을 옥죄고 있는 해양 쓰레기를 잘라냈다.
“우오오옷! 고맙다!”
해양 쓰레기에서 풀려나게 된 녀석은 곧바로 도망치려 했지만, 나는 녀석을 놓치지 않았다. 곁에 있던 백인도 얼떨결에 나를 따라 바다사자를 잡았기에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좀 놔줘!”
“너나 좀 기다려봐.”
“꾸으응…….”
강하게 붙잡으며 기다리라고 하니, 바다사자가 다시금 탈주를 포기했다.
나는 그제서야 녀석을 붙잡은 이유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너, 바다사자랑 바다거북 같은 애들한테 이야기좀 전해라.”
“이야기?”
“조금 전의 너처럼, 쓰레기에 몸이 엉킨 녀석들은 이쪽으로 오면 인간들이 풀어줄 거라고 전하면 돼.”
“그것만 하면 돼?”
“아니지. 그렇게 풀려나게 되면, 적당히 보답을 하라고도 전해. 작은 물고기라던가, 바닥에 있는 조개 같은 거 있잖아.”
바다사자는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하며, 그 커다란 몸을 펄떡였다.
“너도 해야 하는 거니까, 물고기나 조개 가져와서 여기 있는 인간한테 줘.”
“알았어!”
알겠다며 대답하는 바다사자를 놓아주니, 녀석은 금세 빠른 속도로 헤엄쳐서 사라졌다.
곁에 있던 백인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그를 가리키며 무어라 말을 했던 것에 기대감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았다.
“Wait.”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해주니, 백인은 바다를 빤히 바라보며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함께 기다리고 있으니, 사라졌던 바다사자 녀석이 다시금 돌아왔다. 주둥이에 자그마한 물고기 하나를 물고서.
“슨믈!”
“……이거 엿 먹이는 건가?”
선물이라며, 빵빵하게 부푼 복어를 가져온 바다사자의 모습에 황당함을 느꼈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곁에 있던 백인은 오히려 좋다는 듯이 빵빵하게 부푼 복어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런 백인의 행동에,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박수를 짝짝 치거나 무척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 몰라.”
복어를 받고도 좋아하는 모습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갈라파고스 쪽에서 원하던대로 동물들에게 소문도 내줬으니, 이 이후로는 내 알 바가 아니지. 선물이랍시고 복어를 먹고 둥둥 떠다니는 인간이 생기든 말든 알 게 뭐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다시금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까 말씀드리는 걸 잊었는데……. 홍학 호수도 지금 사람들의 포토존이 되었답니다. 포즈를 취해주면 먹을 걸 준다고 학습한 홍학들을 찍는 게 유행이 됐다네요. 벌써 홍학이 좋아하는 먹이를 파는 상인도 자리했다고…….”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