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91
0090 귀국
“네가 문제일까? 아니면 동물들이 문제일까?”
숙소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뒤, 어떻게 된 일인지 누나에게 설명해주니 누나는 황당하다는 듯하면서도 슬며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일단, 내 문제는 아닌 걸로.”
당연하지만, 나는 결백함을 주장했다.
난 그냥 관광을 한 거 뿐이라고.
내가 가볍게 즐긴 관광이, 관광지로 탈바꿈 된 건 내가 노리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 탓은 아닌 거지.
당당하게 결백함을 증명한 나는, 어느새 정리가 끝난 짐들을 이끌고 정말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이드 역시 내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섬을 벗어나 에콰도르로 돌아간 다음 귀국하기 위한 절차까지 모두 도와주었다.
물론, 그런 가이드는 한국에 발을 딛을 때 까지 동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갈라파고스로 갈 때는 물론이고, 한국으로 귀국할 때 까지 에콰도르 측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아무런 문제도, 어려움도 없이 귀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끄으으으응…….”
하지만 마음이 편해야 할 귀국행 비행기에 탑승했음에도, 우리는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두 번의 비행으로 인해 비행기에 탔을 때 귀가 아프다는 것을 어느새 학습해버린 소은이가 벌써부터 촉촉한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급히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운 좋게도 승무원 가운데 한 분이 도움을 주셨다. 비록, 외국인이라 가이드를 끼고 대화를 해야 했지만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기들이 비행할 때 울면, 코를 꼬집어주거나 코를 풀게 해주면 좋아요. 성인들은 반쯤 본능적으로 기압차를 조절하는데, 아기들은 직접 해줘야 하거든요.”
“오…….”
승무원으로부터 방법을 전해들은 우리는 비행기가 어느정도 떠오르며 소은이의 표정이 찌푸려질 때, 소은이의 코를 잡았다.
“흥!”
“흐웅!”
시키는대로 잘 하는 소은이답게, 우리의 말을 따라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묘하게 시원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두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진짜 되네?”
나와 누나는 소은이가 울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근처에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승무원을 향해 쌍따봉을 날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소은이 역시 두 손을 뻗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총 여섯 개의 따봉을 받게 된 승무원은 코를 부여잡으며 웃더니 승무원들의 공간으로 슥 사라졌다.
그 모습에 가벼운 웃음을 터트린 우리는, 아프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해맑은 소은이와 함께 잠깐동안 놀아줘야 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야 소은이가 울면서 체력이 빠져 금세 잠들었지만, 지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물들까지 합세해서 잠깐 놀아주니, 소은이는 금세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우리 딸이지만 너무 귀엽다고 생각되지 않아?”
토끼들과 펭귄 사이에 파묻혀서, 그 주위로 다른 동물들에게 보호받는 듯한 소은이의 모습을 보면 무척 귀여웠다. 더군다나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더더욱 귀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소은이를 동물들 사이에서 꺼내어 품에 안으니 잠이 솔솔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기의 따끈한 체온과 달짝지근한 살내음이 풍겨오며 절로 잠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나둘씩 졸기 시작하는 우리 모습을 발견한 승무원이 센스 좋게 조명까지 어둡게 해주니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 ◑ ● ◐ ○ ◑ ● ◐ ○
“드디어 한국이다!”
“집에 가자!”
“찝!”
경유지까지 거쳐, 거의 30시간에 달하는 시간을 비행한 우리는 공항의 땅을 밟는 것과 동시에 외쳤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온다는 것이 무척 아쉽긴 했지만, 기나긴 비행은 그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귀국했다는 기쁨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였다.
“돌아가즈아!”
“나는 먼저 날아가도 되겠소이까?”
“넓어! 달려!”
“새하얗고 크고 길쭉하고 날렵한 비행에 어울리는 몸매라니! 우리의 이상형이다!
“쥔님. 저기 거위들이 튀고 있슴다.”
“으에……. 여기 이상한 거양.”
“애기 아직 졸린 거 같샤!”
다름이 아니라, 수 많은 동물들이 공항의 땅을 밟자마자 개별행동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버드스트라이크 같은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유부 녀석을 제일 먼저 잡아채고, 그 다음으로는 넓은 활주로를 탐내고 있는 마루를 붙잡았다.
그 뒤로는 비행기를 향해 구애의 몸짓을 보이기 시작하는 거위들을 붙잡았고, 다시금 비행기에 올라타려 하는 라쿤들을 붙잡았다.
요주의를 요망하는 동물들을 붙잡고 나니, 더 이상 산만해지지는 않았다.
“후……. 집에 가자. 너희들은 도망칠 생각하지 말고!”
한 손에 다섯씩, 양 손에 열 개의 목줄을 쥔 나는 동물들을 이끌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입국할 때 너무 많은 기념품들 때문에 문제가 될뻔했지만, 어떻게든 문제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어떻게 안 건지는 몰라도 나와 동물들의 팬이라는 사람들이 몰려와 출구에서 잠깐 소란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의 휴대폰에서 터져나오는 플래쉬와 셔터음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꺄아아악! 신수님! 여기 봐주세요오오오!”
“공주님이다!”
“유부님 고개 돌리신다!”
“청호 하사님께 경례!”
“쟤가 그 페엥인가보네. 어리둥절한 모습 귀여워!”
“역시 뗑컨이야. 뒤뚱거리지.”
사람들이 격하게 반겨주는 것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런 내 행동에 또 사람들이 열광하며 사진을 찍어댔고, 한동안 동물들과 함께 피사체가 되어주고 나서야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따라오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따돌리고서 주차장으로 향하니, 익숙하디 익숙한 내 차가 주차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웨딩카랍시고 준비되었던 차는 친구들이 당일만 렌트한 차라, 이미 반납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차도 친구 녀석들이 오늘 아침 일찍 가져다놓은 것이었다.
“자, 탑승!”
뒷문과 트렁크 문을 활짝 열어젖힌 다음 외치니, 동물 녀석들이 익숙하다는 듯이 뛰어오르며 차량에 올라탔다.
타지 못한 녀석은 딱 두 마리. 거대한 덩치로 인해 올라타지 못한 한무와, 처음이라 이해하지 못한 페엥이 전부였다.
“이건 자동차라고 하는 건데…….”
자동차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나 싶었지만, 나는 아주 간단한 설명만 하기로 결정했다.
자기들끼리 일종의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동물들이었으니, 적당한 설명은 알아서 해주겠거니- 하는 태평한 마음이었다.
“여기에 타라고 하면, 방금 다른 녀석들이 한 것 처럼 하면 돼. 뛰어서 오르든, 아니면 청호같은 녀석들의 도움을 받든. 알겠지?”
“우웅, 아라쪄!”
잠깐 날개를 파닥거리던 페엥은 이내 충분히 이해했다는 듯한 모습으로 폴짝, 뛰어올랐다.
SUV라 지상에서의 거리가 조금 되는 편이었는데, 페엥 녀석은 요령 좋게도 사이드에 있는 발판을 밟고 뛰어올랐다.
“페엥!”
누나의 도움으로 어린이용 카시트에 몸을 파묻고 있던 소은이는 그렇게 튀어오르는 페엥을 보며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런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한무를 바라보았다. 이 덩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또 고생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허허허.”
느긋한 웃음을 흘리는 한무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이내, 트렁크에 자리한 판자와 고정대를 꺼냈다. 이 덩치를 들어서 올릴 순 없으니, 알아서 올라가게 만들어야 했다.
판자를 트렁크 끝에 고정하고, 그 고정대를 바닥에 놓아 판자가 밀리지 않게 고정했다.
“올라가자.”
한무는 판자를 툭툭 건드리더니, 천천히 발을 딛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녀석의 뒤를 낑낑거리며 밀어주었고, 녀석은 금세 트렁크에 올라설 수 있었다.
200kg에 가까운 녀석의 무게가 트렁크에 실리니 차가 순간 출렁거렸다.
“후, 힘들다.”
한무가 미끄러지지 않고 올라가도록 열심히 밀어준 탓에 흐르는 땀을 닦아낸 나는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럼 집으로 갈까?”
“찌이입!”
집이라는 단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건지, 소은이가 손을 붕붕 흔들며 출발을 요구했다.
누나가 소은이의 안전벨트와 본인의 안전벨트를 한 번 더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서, 나는 곧장 집으로 출발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기위해 많이들 찾아오긴 했지만, 통행량이 많은 시간대는 아닌 덕분에 그리 오래걸리지 않고서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시간을 포함해서 거진 2주만에 보는 집은 어색하면서도 무척이나 반가웠다.
“들어가.”
집 대문을 열고, 차의 트렁크를 열어주니 동물들이 포로록 뛰어내리며 집안으로 빨려들어가듯이 들어갔다.
특히, 제 부하들을 떼어놓고 저 혼자만 여행에 합류했던 유부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다른 녀석들이 이제 막 내려볼까- 하는 사이, 녀석은 이미 차 안에 깃털 하나만을 남긴 채 사라진 상태일 정도였다.
“집합하라!”
유부는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그대로 까치와 까마귀들을 집합시키며 주변을 순찰돌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영역에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나- 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차에 그득한 짐을 꺼내 내려놓고서, 누나와 소은이와 함께 들어가 잠깐의 낮잠을 청했다.
원래 여행을 갔다와서 짐정리도 하지 않고 자는 낮잠이 제일 꿀같은 단잠이라고.
장시간 비행으로 모자라 운전까지 했던 탓인지 금세 잠에 빠져들었고, 정신을 차린 것은 해가 지고 달이 높게 떠오른 시각이었다.
“으엉…….”
반쯤 비몽사몽한 모습으로 잠에서 깬 나는, 내 배 위에서 고롱고롱 자고 있는 소은이를 슬며시 내려놓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자리를 비키니 그 자리를 토끼즈들이 재빨리 차지했다.
소은이가 깨더라도 울 걱정은 없는 것에 안심하고 거실로 나갔다. 그곳에는 먼저 깨어난 누나가 짐정리를 끝낸 상태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아, 일어났어?”
“응. 언제 일어난 거야?”
“얼마 안 됐어. 그거보다, 이거 볼래?”
누나가 티비를 가리키며 말하는 것에, 시선을 돌리니 조금은 충격적인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국내 유일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이자 뮤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신수환씨가 갈라파고스에서 새로운 형태의 관광지를 만들어냈다는 소식입니다. 현지 특파원을 연결해보겠습니다.”
“…………네. 갈라파고스에 나와 있는 이호타 입니다. 여기는 현재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로 알려진 신수환씨가 여행을 다녀간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니, 이게 왜 뉴스로 나오고 있는 거야?”
“나도 모르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갈라파고스에서 관광지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것도 어이가 없었는데, 그걸 귀국해서 뉴스로 보고 있으니 더더욱 황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