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 * *
그가 말했다.
“생각보다 어려워지기는 하겠지만, 큰 틀에서는 계획대로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남은 마력석이 아예 없지야 않을 것이고. 휘무에게는 진짜 마력석이 있으니….”
신경 쓰이는 말이 섞여 있었다. 호란이 물었다.
“진짜 마력석이요? 마력석은 다 진짜 아니에요?”
시현이 뭔가 말하려는데 멀리서부터 딱딱이 소리가 다가왔다.
누가 골목마다 외치고 다니고 있었다.
“위께서는 총령부로 오십시오! 적도로부터 지켜드리겠습니다! 위께서는 총령부로 오십시오!”
소리가 지나가자 시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인이 몸이 바짝 달았구나. 대놓고 우리를 찾기 시작했다. 하열이 피하라 경고한 데 이유가 있을 것이니 어서 움직여야겠다.”
단이 얼른 일어나 짐을 챙겼다. 시현도 대련을 메었다.
단은 만일을 위해 총통을 장전하고 다시 천으로 싸 보이지 않게 들었다.
준비를 마친 단이 물었다.
“어디로 가지요? 총치부로 가는 건 쉽지 않을 듯한데요. 지금 상황에 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우리가 총치부로 돌아가는 겁니다. 총치부 주위에 사람을 쫙 깔아뒀을 겁니다.”
“그렇구나. 같은 이유로 금탑으로 가는 길에도 사람을 풀었을 것이다.”
시현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동문 주각루로 가자. 거기에는 돌 인간과의 충돌을 대비해 마력석을 상당히 배치했을 것이다. 그걸 얻으면 몸을 지킬 수 있다.”
호란이 물었다.
“거기 있는 땅님들이 우리 적이면요?”
“그것은… 어떻게 잘 해봐야지.”
시현의 대답에 단이 눈을 가늘게 했다. 뭘 어떻게 잘 할 건데?
그는 제 앞에 있는 양반이 얌전한 얼굴을 하고선 매사 들이박고 보는 사람이란 걸 깨달은 지 오래였다.
일단 직진해서 정면으로 갖다 박고 그래서 안 되면 힘으로 다 밀어버린 다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표정을 했다.
이제까지 여행에서 단이 한 일은 대체로 그걸 어르고 달래서 약간씩이라도 돌아가게 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하긴 이번에는 단 입장에서도 크게 상관 없었다.
잘 되면 마력석을 많이 얻고 더 잘 되면 첨 보는 땅인들이 마력석 네 개에 다 쓸려나가는 꼴을 보겠지. 남는 장사가 별 게 아니었다.
단의 표정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시현이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잘못하면 녹렴과 금강의 코앞에서 꼴 같지 않은 꼴을 보이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 망신살 따질 때가 아니다.”
“예. 그럼 금탑을 피해서 작게 돈 다음 시장 거리 인파에 섞이겠습니다. 시장을 빠져나간 다음에는 호란이 나리님 모시고 직선 거리로 뛰는 걸로.”
“알겠다.”
“알았어!”
둘이 대답했다.
열의 집을 나간 단은 담이 높고 통행이 적은 길을 골라서 앞길을 잡았다.
멀지 않은 데서 딱딱이 치는 놈들 소리가 들렸지만, 요령과 운이 적당히 맞아준 덕에 마주치지 않고 상당히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 거리에 들어선 단은 낭패를 깨달았다.
어제보다 사람이 훅 줄어 있었다. 가게도 반이 넘게 닫혀 있었다.
인파에 섞이려는 계획이 빗나갔다.
원래 하유관 곳곳의 시장은 거석에게 포위당한 후에도 철시하지 않고 있었다.
총치가 생업을 계속할 것을 명한 데다가 난에 대비하여 물건과 양식을 사 모으려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단이 어제 지리를 확인하러 갔을 때만 해도 사람이 평시에 지지 않게 많았다.
하지만 어젯밤 총치부에서 꽤 큰 소란이 있었다.
지금은 총령부 사람들이 시현을 찾으러 다니고 있다.
안 좋은 낌새를 챈 사람들이 극상격에게 관련되지 않으려고 집에 들어가버린 것이었다.
완씨 시문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소문이 빠르게 돈 모양이었다.
단은 갈래가 많은 골목으로 들어갈 생각으로 발걸음을 서둘렀지만 몇 걸음 못 갔다.
시장 초입에서 관군 복색을 한 하늘인 한 무리가 몰려나왔다.
선두에 선 머리가 시현에게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
“거기 계신 분께서는 문이시지요. 위를 뵙습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저희를 따라오십시오.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호란이 앞으로 나서며 크게 소리쳤다.
“거리를 두고 물러나! 열다섯 걸음 밖으로! 이건 법도야!”
“상황이 위험합니다. 위를 지키기 위해선 저희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머리가 그렇게 말하자 뒤에 선 무리가 슬금슬금 움직였다.
세 사람을 포위하려는 태세였다.
“물러나지 않겠느냐. 내가 아니고 너희를 위해서.”
시현이 낮지만 뚜렷한 소리로 말했다.
“네 윗사람이 뭘 약속했든 믿지 마라. 극상격에게 손을 대고 나면 너희는 도저히 명을 부지할 수가 없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마찬가지다.”
하늘인들의 눈이 흔들렸다. 다들 두려워 보였다.
머리가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이건, 이건 하유관을 위한 일이오. 총치의 명이오!”
“그렇지 않다. 너희는 속고 있다.”
머리가 무얼 말하려고 입을 벌렸다.
그 입에서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호란이 탄환같은 기세로 돌격했다.
그에게 직선으로 걷어차인 머리가 뒤에 선 놈과 얽히면서 나가떨어졌다.
호란은 착지와 동시에 옆에 선 이들에게 치고 들어갔다.
급소를 노리고 끊어치는 주먹이 한 명 한 명을 빠르게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는 혼자였고 상대는 열이 넘었다.
호란이 한가운데로 쳐들어간 사이, 양 끝에 포진했던 놈들이 호란의 범위를 피해 시현의 좌우로 덤벼들었다.
한 손에 마력석을 쥔 시현이 다른 손을 가로로 그으며 외쳤다.
“화하라!”
시현의 양쪽에 벼락의 막이 날개처럼 펼쳐졌다.
좌우로 덤벼들던 하늘인들은 한 놈도 남김없이 전격에 걸려들었다.
다만 적의 수가 많아선지 마력석이 작은 것이어선지 치명타는 되지 못했다.
놈들은 비틀거리며 물러섰을 뿐 쓰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호란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벼락이 끊기는 것과 동시에 호란이 한쪽 무리로 쳐들어갔다.
질풍처럼 휘돌아쳐 순식간에 네 놈을 쓰러뜨린 그는 몸을 솟구쳐 시현과 단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반대편의 세 놈은 겨우 자세를 잡은 참이었다.
막아선 호란을 뚫고 시현을 공격하기는커녕 공격을 한두 합 버텨내지도 못했다.
잠깐 사이에 열 명 좀 넘는 하늘인들이 모두 바닥에 누웠다.
“또 옵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단이 외쳤다.
장거리 건너편에서 하늘인 다섯 명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무리는 한달음에 근처까지 다다랐지만 더 거리를 좁히지 않고 정자세로 서서 예를 갖췄다.
“문과 그 수행이십니까!”
황색 띠를 한 머리가 예를 올린 후 씩씩하게 외쳤다.
다섯 하늘인들은 방금 부딪힌 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기세가 좋았다. 태도도 가지런했다.
다들 몸이 건장하고 눈빛이 또렷했으며, 상의 위에 황색 천을 가로질러 두르고 있었다.
머리가 말했다.
“문이시여! 저희는 금탑의 파수입니다. 총치께서 급히 명을 내리셨습니다. 문을 안전하게 모시고 총치부로 오라 하셨습니다.”
시현은 잠자코 마력석을 쥔 손을 뻗었다. 앞쪽으로 세 갈래 벼락이 뿌려졌다.
이번 공격은 앞서와는 달랐다. 단발에 머리를 절명시키고 좌우의 둘을 의식불명으로 만들었다.
호란이 곧바로 달렸다. 그는 남은 둘 중 한쪽을 힘껏 차 바닥에 굴려 놓고 다른 하나와 붙었다.
놈이 내지른 주먹을 팔을 휘둘러 떨쳐버리고 옆으로 돌아 귀와 턱이 이어지는 부분을 강하게 가격했다.
돌던 바람으로 동작을 이어 뒷머리에 돌려차기를 꽂았다. 그것으로 놈은 완전히 쓰러졌다.
호란이 바닥에 내린 것과 동시에 처음 상대가 일어나 덤벼왔다.
뻗어온 주먹을 피하면서 아래로 파고든 호란은 명치와 갈비뼈 아래에 연타를 먹였다.
빠져나오면서 등을 한 번 더 쳐서 바닥에 처박았고 상대는 그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쓰러진 금탑 파수들을 내려다보며 시현이 말했다.
“휘무가 미쳤느냐. 왜 금탑의 파수를 나한테 보낸단 말이냐. 차라리 직접 오면 모를까.”
시현이 단을 돌아보았다.
“단, 네가 옳았다. 휘무를 믿더라도 금탑의 파수는 믿을 수가 없다. 하유관의 병폐가 생각보다 더한 모양이다.”
“이자들은 총치 직속이라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마는. 말로는 직속이라 해도 실제는 관리하는 사람이 끼기 마련이다. 아마도 부정에 연루된 총치부 조씨 혈맥이 계인과 손을 잡았을 것이다. 이제 하유관 관과 군의 반절 가까이가 내 적이겠구나.”
“다가 아니고요?”
단이 뾰족하게 물었지만 시현은 여전히 태연한 빛이었다.
“다는 아니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지 않으냐.”
나머지 반절은 조씨 휘무의 통제 하에 있으리라는 뜻이었다.
당장 온 놈들은 해결했지만, 단은 거리 저쪽에서 하늘인 한둘이 눈빛이 변하여 어디로 뛰는 것을 보았다. 딱딱이 소리도 멈춰 있었다.
이대로는 계속 적이 몰려올 터였다. 시현의 마력석은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단이 시현에게 물었다.
“나리님, 법술로 뭔가 눈가림 같은 게 가능합니까?”
“지금 바로 말이냐?”
“되면 바로요.”
시현이 대련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우리 시야도 가려질 것이다. 미리 방향을 보아두어라.”
마력석을 가슴께에 쥐어든 시현이 넓고 휑하게 트인 시장 거리의 대로에 시선을 건넸다.
그가 작게 읊었다.
“흐름의 처음 된 그릇, 모으고 이끌어라. 기운의 본령, 담기고 모으고 이끌어라. 본데와 이미 떨어진 모두, 힘을 타고 이끌려라. 그릇에 담겨라.”
주문이 이어지는 사이 큰길 전체의 공기층이 들떴다.
땅바닥에서 마른 흙과 모래가 융단처럼 두텁게 층을 이루어 훅 떠올랐다.
“휘돌아라.”
시현이 명한 순간 바닥의 모래 융단이 비산하며 춤췄다.
흙먼지와 모래가 몰아치는 바람을 타고 시장 거리를 뿌옇게 뒤덮었다.
호란은 눈에 모래가 들어갈까 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얼굴에 끼쳐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눈을 다시 떠 보니 세 사람의 주위만 잔으로 덮은 듯 비워두고 사방을 모래바람이 돌고 있었다.
흙먼지 장막 너머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지만 모래와 흙을 뒤집어쓰는 정도니까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다.
혹시 음식이나 곡식이라도 내어놓고 팔던 사람이 있으면, 정말 미안하게 되었지만.
“갑시다.”
단이 미리 잡아놓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바람이 닿지 않는 공간도 따라 움직였다.
시현은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법술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호란이 그의 손을 잡아끌어 단을 따라갔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도 단은 용케 좁고 긴 골목 입구로 일행을 이끌었다.
몇 걸음 더 들어가니 골목 안쪽은 모래바람이 거의 닿지 않았다. 단이 물었다.
“범위는 여기까집니까?”
시현이 고개만 끄덕였다. 단의 걸음이 빨라졌다.
세 사람이 골목 깊이 들어갔을 때쯤엔 대로의 모래바람도 잦아든 것 같았다.
집중을 푼 시현이 입을 열었다.
“모래바람이 우리를 따라오면 눈가림이 의미 없지 않으냐.”
“그건 그렇네요.”
단이 말하면서 계속 걸었다. 시현이 안타까운 듯 어깨너머로 돌아보았다.
“상인들에게 민폐가 심했을 것이다. 미안한 일이다.”
“전 안개 같은 걸로 어떻게 하시려나 했는데.”
“함부로 물을 다루면 이후에 민폐가 더욱 심하다. 마력석도 더 들 것이고.”
“그건 안 되죠.”
골목을 빠져나가자 장인들의 가게와 크고 작은 공방이 번갈아 선 공방 거리가 나왔다.
이쪽은 시장 거리보다 사람이 더 없었다.
닫혀 있는 가게가 대부분이고 공방 울 안도 거의가 비어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