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 * *
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풍관 하늘인 지도부가 불가침 협약과 우호 교류를 조건으로 기술을 이전해줬대. 그러고서 실비는 실비대로 받아내고. 물론 재료도 팔아먹고.
지들은 공짜로 얻은 기술 가지고, 아주 우릴 거 안 우릴 거 다 우려먹었더만. 그렇지 뭐. 이 세상에 나 혼자만 호구지.”
그가 분한 듯이 말했다.
주각루 오른쪽 포대에서 유독 큰 포성이 울렸다.
발사된 포탄이 대장석 하나를 정통으로 때렸다.
단이 포대를 건너다보며 투덜댔다.
“와, 후장식 화포는 설계까지만 그려주고 왔는데 벌써 지들끼리 다 만들었네. 역시 관성 하나 역량이 통째로 투입되니까 혼자 붙들고 있는 거랑 비교가 안 되는구나.
탄도 보니까 강선도 구현한 것 같고. 포신 흔들리는 것도 많이 잡아놨고. 그럼 명중률도 올라갔겠지. 약올라….”
“그래도, 처음에 단이 알려준 기술이잖아! 그걸로 다들 거석하고 싸우고 있어. 이것도 단이 한 거나 마찬가지야!”
호란은 괜히 자기가 뿌듯하고 들뜨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신이 나서 말했다.
“이제 보니까 기술이란 거 진짜 굉장하구나. 한번 알려주면 누구든 어디서든 다 쓸 수 있잖아. 더 좋아지기도 하고!”
단이 볼멘 소리를 했다.
“그렇지. 굉장하지. 근데 그렇게 다 퍼주고 오만 데 퍼뜨리고 나면 나는 뭐 해서 먹고 살라고?”
“단이라면 뭐든지 할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안 되면 내가 먹여살려 줄게.”
호란은 그저 기분이 좋아서 말했다.
단은 어젯밤 머리 아플 때 짓던 표정을 다시 짓더니 호란을 외면했다.
각루 앞쪽에서 다시 커다란 폭음이 일었다.
억지로 전진하던 장군석이 비스듬히 기울어지다 결국 뒤로 넘어갔다.
시현과 휘영은 그 사이 장군석 두 개를 더 거꾸러뜨리고 있었다.
이제 남은 장군석은 녹렴과 금강을 보호한 푸른 장군석뿐이었다.
녹렴은 푸른 장군석의 손안에 똑바로 선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한 기색이었지만 동요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금색 눈동자가 한결같은 색으로 빛났다.
금강이 녹렴의 곁에 섰다.
그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한 손을 들어 녹렴에게 건넸다.
금강이 녹렴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유구하며 무한한 길을 함께 걷는 이. 나의 동행자.”
녹렴은 살짝 웃은 것 같았다.
그가 금강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맞잡은 손에서부터 녹렴의 전신에 푸른 광채가 휘감겨갔다.
푸른 빛에 싸인 녹렴이 정면을 보았다. 그 눈동자에 타오르는 푸른색이 깃들었다.
같은 순간, 주위에 허물어져 있던 거석들의 기결에 주홍색 불길이 돌아왔다.
푸른 장군석을 중심으로 두고, 땅바닥의 거석들이 차례로 금가고 부서졌던 곳을 이어 붙이며 다시 몸체를 쳐들기 시작했다.
“저, 저럴 수가…!”
각루에 섰던 법군 상급관 하나가 경악한 소리를 냈다.
당황과 술렁거림이 퍼져나갔다.
방금 허물어놓은 장군석이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몸을 세우는 것을 보고 시현도 표정을 굳혔다.
“저건… 금강의 능력인가? 아니면….”
그가 함 안의 가장 커다란 마력석에 손을 대었다. 금강과 녹렴을 먼저 칠 생각 같았다.
시현이 빠르게 주문을 읊었다.
푸른 장군석 주위에 타오르는 빛의 덩어리가 여럿 생겨났다.
지난번 금강을 공격했던 것과 같은 마법이었지만 그때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녹렴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가 한 손은 여전히 금강과 맞잡은 채 다른 손을 가볍게 털었다.
곧바로 두 사람 주위의 허공에 푸른색과 주홍색의 광채가 함께 엮이며 휘장처럼 펼쳐졌다.
광채의 휘장에 닿은 순간 시현이 만들어낸 빛덩어리는 그대로 흐트러지며 공중으로 녹아 사라졌다.
“!”
여기에는 시현도 크게 동요했다.
그가 다른 마력석에 손을 가져가며 짧은 주문을 외쳤다.
“발하라!”
하지만 이번 주문도 닿지 않았다.
불덩이는 빛의 장벽 바깥에서 크게 폭발했을 뿐 녹렴과 금강에게는 바람조차 끼치지 못했다.
푸른 장군석이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 주위에서 계속 바닥의 거석들이 일어났다.
둘은 계속 손을 잡은 채였다. 녹렴의 몸을 둘러쌌던 푸른 광채는 사라졌지만, 두 눈동자엔 아직도 짙푸른 빛이 머물고 있었다.
“큭!”
시현이 짧게 신음을 흘렸다. 그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외쳤다.
“저 둘을 떼어놓아야 한다!”
“제가 갈게요!”
호란이 곧바로 답하고 각루 벽으로 뛰어올랐다.
금강과 녹렴이 빛의 장벽을 펼치는 한 마법으론 놈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잠깐만, 호란!”
아래로 뛰어내리려는 호란을 시현이 소리쳐 불렀다.
호란이 돌아보자 시현이 말했다.
“지면에 내려서면 주위의 거석이니 대장석 따위에게 가로막힐 것이다. 내가 받쳐 올려줄 테니 위쪽으로 가거라.”
“위쪽이요?”
시현은 마력석을 집으며 호란에게 빠르게 말했다.
“잘 들어라. 눈으로 무엇을 보려 하지 말고 기운을 읽어라. 기운으로 꽉 뭉쳐진 작은 땅을 밟는다고 생각하거라. 아니면 튀어오르는 기운의 덩어리나. 알겠느냐.”
“네? 시문 님? 네?”
호란은 시현이 무얼 알겠냐고 물은 건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일단 자기는 모르겠다는 것만 알았다.
하지만 시현은 호란이 더 물을 틈을 주지 않고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흐름의 처음 된 그릇, 뭉치고 또 뭉쳐라. 형상 없는 만유여, 비운 곳이 길이 되어….”
시현은 주문을 읊으면서 호란에게 푸른 장군석 쪽을 손짓해보였다.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호란이 얼어붙은 얼굴로 뛸 자세를 갖췄다.
호란은 두터운 각루 벽 위에서 몇 발 물러섰다가 앞으로 닫고 허공을 향해 직선으로 힘껏 뛰었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기 전, 단이 비명을 참는 소리를 낸 걸 분명히 들었다.
텅 빈 하늘에 몸이 뜬 짧은 순간 호란의 평생에 머리가 가장 빠르게 돌았다.
하유관 성벽은 높았다. 진짜 높았다.
아무리 하늘인이라도 중간 중간 벽을 디뎌 타지 않고 이 높이에서 그냥 떨어지면 반죽음일 거였다.
잘못 생각했다. 반보다 더 죽을 것이다.
그래도, 시문 님이 위로 가라고 했으니까. 시문 님은 틀리는 법이 없고, 나는, 항상, 시문 님을….
고점을 넘은 몸이 중력에 끌려 하강하기 시작하고, 시현을 처음 만났던 순간이 눈앞에 펼쳐지려는 참에 뒤에서 시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휘몰아 뻗으라!”
아래쪽에서 한 점에 모인 기운의 덩어리가 호란을 향해 탄환처럼 치솟아 오는 게 느껴졌다.
호란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잡으며 기운이 뭉친 중심을 내려차듯 밟았다.
몸이 훅 떴다. 발로 디딘 기세와 함께 강한 바람이 호란을 위로, 그리고 앞으로 밀었다.
눈 아래 땅 위에 잔뜩 포진한 거석 무리가 빠르게 호란의 밑을 지나쳐갔다.
푸른 장군석도 그만큼 빠르게 가까워졌다.
하지만 아직 거리가 있었다.
아래쪽에서 다시 바람과 함께 기운의 덩어리가 다가왔다.
“으아아아! 와아아아!”
호란은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힘껏 발밑을 찼다.
한 번 더 몸이 떴고 이제 푸른 장군석은 코앞에 있었다.
적이 범위에 들어오자 머리에 들끓던 흥분이 한순간에 목표를 찾았다.
호란은 공중에서 태세를 고쳤다.
주위를 둘러싼 바람이 푸른 장군석을 향해 방향을 잡아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야아아아아아!”
호란은 악쓰듯이 기합성을 내며 돌진했다.
공중에서 던져지듯 떨어져 오는 적의 존재에 녹렴과 금강도 당황한 것 같았다.
푸른 장군석이 뒷걸음질치며 호란을 향해 한 팔을 휘둘렀다.
그대로 부딪히면 보통 충격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호란은 아직 제 몸 주위에 뚜렷한 기운이 모여 따라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상체를 약간 비트는 것만으로 몸이 더 떴다.
의지를 가진 바람의 길이 호란을 장군석의 팔 위로 미끄러뜨리는 것처럼 올려주었다.
호란은 거세게 회전하는 팔을 걷어차듯 밟고 위로 올라탔다.
그대로 멈추지 않고 몸을 낮추며 거대한 팔뚝 위를 달려 내려갔다.
각루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시현이 기쁜 듯 주먹을 쥐었다.
“되었다! 호란이라면 해낼 줄로 믿었다!”
미친. 그 신뢰는 잘못됐어. 그딴 신뢰 세상에서 제일 필요 없어.
단은 속으로 생각하며 일부러 다른 곳을 보았다.
지금 시현을 쳐다보면 표정이 굉장해질 거 같은데 각루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 인간이 이젠 자기가 갖다 박는 걸로 모자라서 다른 사람을 들어다가 박고 있었다.
결단코 가까이해도 될 사람이 아니었다.
호란도 호란이었다. 걔는 사람을 믿는 데 한도란 게 있어야 했다. 한도란 건 모든 일에 있어야 했다.
단은 이렇게까지 잘못된 쌍방 신뢰 관계를 이제껏 본 일이 없었다. 길이랑 류사예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길은 최소한, 사예가 절벽에서 뛰라고 하면, 자기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뛰지 사예가 시킨 거니까 안 죽을 거라고 믿고 뛰진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 단은 그것도 충분히 돌았다고 생각했는데 위에는 항상 더 위가 있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방금 본 광경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고 노력하며 전방에 시선을 두었다.
호란은 날아온 기세를 타고 장군석의 몸통을 향해 번개같이 내달렸다.
푸른 장군석이 금강과 녹렴을 내려놓으려고 몸을 낮췄다.
녹렴과 금강은 장군석의 팔이 충분히 내려가는 걸 기다리지 않고 곁에 선 다른 대장석 위로 뛰어내렸다.
호란이 접근한 이상 장군석 위에 있는 것이 불리하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동작은 호란의 기준엔 확연히 느렸다.
예상이 맞았다. 이 둘에겐 모들 같은 신체 능력이 없었다.
푸른 장군석이 자유로워진 두 팔로 호란을 잡아 누르려 했지만 호란은 이미 같은 자리에 없었다.
호란은 낮추어진 장군석의 몸통에서 거리낌 없이 뛰어내렸다.
다가오는 팔뚝을 디딤대 삼아 한 번 차고 녹렴과 금강이 의지한 대장석을 향해 몸을 쏘아냈다.
녹렴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호란이 처음 접근했을 때부터 주변에 거석과 대장석을 잔뜩 불러모았다.
이미 다른 대장석 하나가 팔을 휘두르며 달려와 호란이 몸을 날린 경로에 끼어들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란에겐 괜찮다는 확신이 있었다.
달려들던 대장석의 몸통 안쪽이 폭음과 함께 흔들렸다.
놈은 호란에게 닿을 듯 닿지 못한 상태로 기울어졌다.
접근하던 다른 거석들도 차례차례 기결에 금 간 데를 보이며 주저앉았다.
각루 위의 시현이 마법으로 지원해 주고 있었다. 주저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호란이 목표한 대장석이 녹렴과 금강을 지면에 내려놓으며 둘을 감싸듯 등을 돌렸다.
“타아!”
호란은 발차기로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그 몸체를 뛰어넘었다.
놈의 발 아래 얼마 못 간 곳에 녹렴이 있었다. 호란과 녹렴의 눈이 마주쳤다.
“하늘인…!”
녹렴의 눈에 분노가 깃들었다. 그가 금강의 손을 놓으며 호란을 향해 한 손을 치켜들었다.
주변에 퍼져 있던 두 색 빛의 장벽이 그 앞에 두텁게 모여들며 큰 방패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