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1
011화
* * *
약간 떨어진 바위 그늘에서 한 장쯤 되는 거석 한 놈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하는 모양이 이상했다.
사람을 보면 무작정 달려드는 여느 거석과 달리, 놈은 호란 일행을 눈치챘을 텐데도 상관하지 않고 남쪽으로 걷고 있었다.
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덤빌 생각이 없어 보이지 않느냐.”
추선이 고했다.
“하지만 저놈이 우리가 가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치워야겠구나.”
호란과 몫꾼들은 명만 떨어지면 달려갈 태세였다. 하지만 시현이 만류했다.
“두어라. 너희가 힘쓸 것도 아니다.”
그가 한 손을 들어 올리고는 거석을 향해 명령했다.
“서로 밀어라.”
시현이 손을 내리는 것과 함께, 나선무늬를 가운데 두고 거석의 몸통이 깨끗하게 반쪽으로 딱 갈라졌다.
몫꾼들은 감탄조차 쉽게 내뱉지 못했다.
남운관에 시문의 위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점심을 먹고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하지만 분지로 가는 사이 비슷한 일이 또 생겼다.
거석 둘을 더 만났지만, 놈은 일행에게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고 남쪽으로 걷고 있을 뿐이었다.
거석을 처리한 후 시현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거석의 행동이 이상하구나. 방향을 보면 놈들이 분지로 모이는 게 아닌가 싶은데.”
“소인의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추선이 답했다. 시현이 심각하게 말했다.
“조짐이 심상치 않으니 서둘러야겠다. 이제부터는 최대한 속도를 내서 달리거라.”
“그러면 여에서 내리소서. 소인에게 업히시는 쪽이 낫겠습니다.”
시현이 추선의 등에 오르는 사이 호란이 제게 업힌 단에게 말했다.
“이제부턴 뛸 거야. 꽉 잡아.”
“네? 지금까지도 뛰어오신 게….”
“이제까진 쉬엄쉬엄 온 거고.”
추선의 명이 떨어지자 호란이 탕 바닥을 찼다.
소녀의 몸이 번개처럼 앞으로 뛰쳐나갔다.
등 위에서 단이 헉 소리를 내며 호란에게 꽉 매달렸다.
“나, 나리! 너무 빨라요! 떨어지면 전 골로 간다고요!”
“그러니까 꽉 잡으라니까.”
호란은 투덜거리면서도 단이 붙어 기댈 수 있게 몸을 낮춰주었다.
제대로 속도를 내자 금방 더그레 분지가 나타났다.
작은 바위 동산에서 누가 윗부분을 떼어 버린 듯 돌산 가운데가 우묵하게 패여 있었다.
경사를 오르며 호란은 안 좋은 기분이 온몸을 감싸는 걸 느꼈다.
분지 안쪽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절그럭절그럭하는 거 같기도 하고, 달그락달그락하는 거 같기도 하고, 마치 무수한 자갈돌이 서로 부딪히는 것 같은….
마침내 동산 꼭대기에 올라섰을 때, 호란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바로 뒤에 시문께서 계신다는 것이었다.
시문이시라면 어떻게든 하실 것이다.
시문을 호위하는 게 자기 몫이다.
그 생각이 아니었더라면 이미 호란은 걸음아 살리라고 도망치고 있었을 것이다.
분지는 빛나는 나선무늬 돌로 가득 차 있었다.
팔다리가 붙어 온전한 거석이 된 것도, 그저 나선무늬만 난 것도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돌덩이들이 분지 안에 빼곡히 쌓여 서로 부딪히며 달각대고 있었다.
진동과 열기가 훅 끼쳐왔다.
뒤따라 올라온 일행도 모두 경악할 뿐이었다.
“저게 무엇이냐? …아니, 누구냐?”
추선의 등에서 내린 시현이 입을 열었을 때에야 호란은 분지 한쪽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돌들이 쌓인 한가운데에, 날렵한 체구의 사람 하나가 처음 보는 옷차림을 하고 서 있었다.
여러 겹 의복은 알록달록한 색실로 짜여 화려한 무늬가 있었고, 목에는 세 줄 구슬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여자? 아니, 남자? 잘 구별이 가지 않았다.
호란과 비슷한 키에 몸이 가늘었지만 얼굴선은 각이 져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짧게 깎은 머리칼은 무기질적인 은회색이었고, 짙은 색의 피부는 어딘가 남들과 달랐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다갈색 피부와는 다르게 은근한 회갈색을 띠었다.
그런 피부를 호란은 본 적이 있었다. 호란은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그가 일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 귀찮은 게 왔네.”
그의 시선은 시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금색 눈동자에 비친 것은 명백한 적의였다.
“얘들아, 미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움직이자.”
색실 옷의 사람이 몸을 숙여 발밑의 돌들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구우웅. 대답이라도 하듯 그의 발밑에서 돌들이 울림소리를 냈다.
돌무더기로부터 수 덩어리의 거대한 거석이 일어났다.
다들 두 장이 훌쩍 넘는 대장석이었다.
거석들이 굉음을 올리며 일행을 향해 쿵쿵 달려왔다.
“어딜!”
시현이 황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날카롭게 외쳤다.
“쓰러져라!”
그 한마디에 대장석의 몸체에서 빛이 피식 새어나갔다.
몸통에 붙어 있던 다리가 엇나가면서 거석들이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기운으로 가득한 분지에서의 싸움은 남운관 앞마당에서와는 달랐다.
빛이 꺼졌던 돌들이 땅에 닿자 다시 빛이 차올랐다.
무너졌던 돌들이 다시 우릉우릉 일어서고, 뒤쪽에서도 더 많은 거석이 일어서고 있었다.
하늘인 몫꾼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동요하지 말아라. 이 정도는 다룰 수 있다.”
시현이 말했다. 그가 눈을 지그시 감더니 두 손을 가슴께로 들어 올렸다.
“성하라.”
순간 호란의 심장이 쿵 하고 크게 뛰었다.
눈이 더 밝게 열리고, 코로 들어오는 숨이 더 생생했다.
눈앞의 황폐한 땅에까지 이상한 생동감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시현이 계속 말했다.
“뭉쳐라.”
“뭉쳐라. 더욱 뭉쳐라.”
법력이니 기운에 대해서 오늘 처음 들은 호란조차 느낄 수 있었다.
주위에 차올랐던 기운이 일행과 거석들 사이로 모이며 두껍고 거대한 힘의 장벽을 만들고 있었다.
거석들이 장벽을 때려 부술 기세로 쿵쿵 달려왔다.
시현이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발하라!”
순간 기운의 장벽이 순식간에 불과 열의 벽으로 바뀌었다.
벽에 다다른 거석들이 전부 용암이 되어 줄줄 녹아내렸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가공할 기운이 호란 일행에게는 전혀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눈앞에서 빛과 불이 벽을 세우고 용암이 분지를 채우는데도 호란이 선 쪽으로는 조금의 화기도 끼쳐오지 않았다.
색실 옷의 사람이 욕을 뱉었다.
“아, 정말 끝까지 이러네! 만고에 해악 같으니!”
그가 다시 돌들을 어루만졌다.
흘러내린 용암에 달궈진 돌이 엄청나게 뜨거울 텐데도 그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가 돌들을 달래듯 말했다.
“괜찮아. 조금만 기다려. 금방 끝나.”
“무엇을 획책하는지 몰라도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시현이 말했다.
“흘러라.”
철그럭!
커다란 소리에 호란은 깜짝 놀랐다.
시현의 말에 반응해 분지를 가득 채운 무수한 돌덩이들이 일제히 흔들린 것이었다.
시현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많은 것에서 흘러나와 적은 것으로 흘러가는 것이 기운의 성질이다. 기운이 많은 것이 기운을 쥐고 내보내지 않으면 충돌이 생기니 이를 압이라 한다. 기운이 적은 곳에 기운이 흘러들지 않으면 충돌이 생기니 이를 핍이라 한다. 압이 과하면 깨지고 핍이 과하면 사그라지니 이를 없게 하고자 흐름이 있다.”
호란은 시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문장 하나가 끝날 때마다 돌덩이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시현은 분지의 무늬돌 전부를 향해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흘러라.”
시현이 다시 명했다.
돌들이 또 한 번 철그럭 흔들리고, 돌의 나선무늬들이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으로부터 빛이 죽죽 빠져나갔다.
“정말 거슬린다, 너.”
색실 옷의 사람이 시현을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제 다 끝이야.”
그는 뭐라고 더 말하려 했다.
그때 세상이 흔들렸다.
우웅. 호란은 발밑에서 땅이 크게 우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이어 무수한 무늬돌로부터 깨끗하게 빛이 빨려 나갔다.
시현이 만들었던 불과 열의 벽도, 움직이던 거석의 빛도 함께 사라졌다.
바닥을 흐르던 용암은 다시 굳어 돌이 되었다.
땅 울림이 가라앉자 사방을 메우고 있던 기묘한 기운은 모조리 사라졌다.
돌멩이로 가득해 평소보다 더 황폐하고 기괴하도록 적막한 분지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와하!”
타호가 신이 나서 외쳤다.
“꼴 좋다! 거석 놈들!”
호란도 허락 없이 윗전에게 말을 붙이면 안 된다는 것도 잊고 뒤돌아 소리쳤다.
“시문 님! 진짜 대단하세요! 그 많은 놈을 한꺼번에!”
그러나 시현의 낯빛을 본 호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색이 흙빛이었다.
두 눈은 크게 열리고, 턱은 내려가 무서운 것을 본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호란은 한 번도 이 소년 마법사가 이토록 흐트러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시현이 빛을 잃은 돌덩이들을 내려다보며 떨리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추선이 당황해서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무늬돌의 빛을 없앤 것은 내 법술이 아니다. 술이 완성되기 직전, 돌이 품었던 기운이 모조리 땅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러더니 시현은 두 팔을 허공에 내밀며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돌이 품은 기운만이 아니라… 이곳 전체의 법력도… 사라져 버렸다.”
“예?”
추선도 몫꾼들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시현이 돌아섰다. 그가 침착하려 애쓰며 설명했다.
“이 주변 땅과 하늘에 돌던 법력이 모조리 사라졌다. 다룰 수 있는 기운이 없으니 나는 지금 법술을 쓸 수가 없다.”
“예에?”
그제야 말뜻을 알아들은 모두가 황겁했다. 소앵은 분지에 더 움직이는 거석이 없는지 재차 확인했다.
시현이 중얼거렸다.
“이것이 이 분지만의 이변일 수도 있으나… 만일 남운관에도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겨우 가다듬었던 시현의 표정이 다시 흐트러졌다. 그가 부르짖었다.
“어서 남운관으로 돌아가자! 서둘러라!”
“아 예….”
추선이 아직 상황을 실감하지 못한 채 시현에게 등을 내밀었다.
타호가 색실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켰다.
“저놈은 어찌합니까?”
돌이 모두 빛을 잃었는데도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될 것을 알았던 듯 비쭉이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시현이 이를 악물었다.
“상대할 겨를이 없다! 서둘러라!”
“후후. 하하하하!”
색실 옷의 사람이 소리 내어 웃으며 시현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가 뭐라 말하고 있었지만 시현은 듣지 않고 소리쳤다.
“상관하지 마라! 가자!”
추선이 먼저 분지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머지도 모두 그를 따랐다.
추선이 뛰면서 외쳤다.
“남운관으로! 전력으로 달려라!”
“네!”
몫꾼들은 힘껏 답하며 속력을 높였다. 순식간에 분지가 멀어졌다.
큰일이 벌어졌다고 듣긴 했지만 다들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남운관의 방비는 탄탄했다. 이대로 달리면 저녁이 되기 전에 남운관에 닿을 터였다.
그러나 남운관으로 길을 되밟아가는 사이 일행의 가슴에는 점점 두려움이 차올랐다.
드넓은 황야에 패이고 갈라진 구덩이가 수없이 생겨나 있었다.
거석이 일어난 자국이었다.
거석의 발자국은 하나같이 남운관을 향하고 있었다.
“어르신, 법술은….”
추선이 남이 들을까 두렵기라도 한 듯 작은 목소리로 시현에게 물었다.
시현이 힘없이 고개를 젓자 일행의 달음질은 더 빨라졌다.
남운관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기울려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구릉에 오른 타호가 달음질을 멈추었다.
그의 입에서 비통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아아!”
장군석이었다. 장군석이 남운관의 성벽을 짓쳐 들어오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