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 * *
시현은 모두의 이름을 묻고 인사를 나누며 앞으로를 부탁했다.
서형이 데려온 대열은 남녀가 반반이었고 나이도 십 대부터 사십 대까지 다양했다.
다들 기세가 좋고 눈빛이 밝았고, 합을 다 맞추었는지 하나같이 머리인 서형을 신뢰하는 느낌이었다.
좋은 대열과 동행하게 된 것 같아 호란은 마음이 든든했다.
호란은 금세 대열 몫꾼들과 친해졌다.
다들 호란을 허물없이 대했다.
스무 살 여자 단채와 열아홉 살 남자 강호하고는 첫날부터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몫꾼이 잔뜩 붙자 여행은 놀랄 만큼 빠르고 순조로워졌다.
적색대 몫꾼들은 시현이 탄 수레든 일꾼들이 탄 수레든 수레 끄는 것을 전혀 싫어하지 않았다.
평지에 나오면 자기들이 먼저 뛰자고 했다.
말을 보살피며 다닐 때보다 속도도 붙고, 샘을 덜 들르니 경로도 단축되었다.
마을에 머물기도 훨씬 더 나았다.
거인교가 와해되었다고 해도 여파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소읍이나 작은 마을에는 아직 땅인 꺼리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꽉 짜인 몫꾼 대열을 앞세운 일행에게는 아무도 싫은 태 낼 생각을 못 했다.
어딜 가든 사람들이 달려나와 맞았다.
호란 입장에선 딱 하나, 단이나 시현과 전처럼 지낼 수 없는 것만은 섭섭했다.
일행이 늘자 단은 곧바로 태도가 조심스러워졌다.
항상 말을 깍듯하게 했고 시현은 물론 호란에게도 일 없이 말을 걸지 않았다.
시현 역시 주위의 모두에게 부드럽게 거리를 두었고 아무도 특별 취급 하지 않았다.
마음이 아쉽기는 했지만 호란은 상황을 납득했다.
앞으로는 앞으로대로 지내는 법이 있을 거였다.
* * *
“왜 거석이 안 나타나지?”
하유관을 떠나고 닷새째 날, 아침밥 먹는 자리에서 대열 머리 서형이 좀이 쑤신다는 얼굴로 말했다.
호란은 무심코 웃어버렸다.
“그런 말이 어딨어? 안 나타나면 좋은 거지.”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시문 님께 우리 실력을 보여드릴 기회가 없잖아! 한 거라곤 밥 먹고 수레 끈 거밖에 없네. 이러다가 몫으로 말먹이나 달라고 해야 되게 생겼다!”
서형이 소리 높여 투덜거렸다.
몫꾼 중에 서형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해영이 말했다.
“포위당하기 전 두어 주간 성 주위에 거석이 싹 없어졌었잖아. 그거 그 돌 인간이 수작 부린 거였다며? 아직도 영향이 남아 있는 거 아니야?”
“이미 성에서 한참 멀리 왔잖아.”
“속령 포함 아니야? 아직 우리 속령 안이잖아.”
호란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분명 녹렴이 하유관 속령에서도 거석을 빼겠다고 했던 것 같았다.
여덟 개 관성 중에 하유관은 윤지관과 더불어 가장 속령이 넓었다.
정말 하유관 속령에 거석이 하나도 없다면, 다천관까지의 여정은 반 넘게 평화로울 거라는 뜻이었다.
서형이 말했다.
“도로 생길 때가… 되지 않았을까?”
말 끝나기가 무섭게 주위의 몫꾼들이 한꺼번에 야유했다.
“인성 봐, 인성 봐!”
“바랄 게 없어서 거석 생기길 바라냐!”
“이 인간이 우리 대장이라니!”
“덩치만 인간 아닌 줄 알았더니 인성도 인간이 아니네!”
서형이 정색하며 항변했다.
“생기라고 치성한 게 아니거든! 그냥 가능성이 있지 않냐고 말한 거야!”
“생기면 대장이 다 치워, 진짜로.”
“안 그래도 내가 다 치울 거거든! 니놈들한테 한 조각도 안 남겨준다!”
서형이 식식거리며 그릇 바닥을 긁었다.
호란은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
* * *
서형이 치성한 덕은 아니겠지만 그날 정말로 거석을 만났다.
정오 가까울 쯤, 시현의 시중을 전담한 남자 일꾼 김준이 수레 들창을 열며 외쳤다.
“위께서 행렬을 멈추라 하십니다!”
곧 세 대의 수레가 멈추고 시현이 수레에서 내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 거석이 있구나. 네 개가 무리로 이동하고 있다.”
시현이 말하면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가 단에게 물었다.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걸 보니 어딘가를 습격할 공산이 크겠다. 저 방향에 거주지가 있느냐?”
단이 해 위치를 흘긋 보면서 지도를 폈다.
“여기서 동북쪽에 작은 마을 하나가 있습니다만, 거리가 십오 리는 될 텐데요.”
단은 지도에 나침반을 맞춰보고 마을 쪽을 가리켜 보였다.
시현이 말했다.
“놈들이 그쪽을 향하는 것이 맞구나. 마을이 작다니 상대하기 버거울 터, 지원을 하러 가야겠다. 전부 움직일 필요는 없겠고 호위 일부만 나와 함께 다녀오자.”
서형이 기운차게 나섰다.
“놈들이 넷밖에 안 되면 시문 님께서 직접 움직이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가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시현은 바로 허락하지 않았다.
“넷이라 해도 기운이 강성하다. 작은 놈들이 아닐 것이다.”
“더 잘 됐네요. 쓸모를 다할 기회를 주십시오.”
서형이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자신 넘치는 태도에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호란, 같이 가거라.”
“네!”
서형은 금방 얼굴이 싱글벙글해졌다. 그가 대열에게 지시했다.
“허리 아래는 시문 님 곁에 남아라. 왼몸조는 나랑 함께 간다!”
“예!”
“예!”
몫꾼 여섯이 먼저 대답하고 수레마다 둘씩 붙어섰다.
남은 대열과 호란은 시현이 가리킨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적색대는 모두 발이 빨랐다. 전력으로 달리자 오래지 않아 구릉을 넘으려는 거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네 놈 다 크기도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서형이 호란을 흘긋 보며 웃었다.
“네 실력도 한번 보고 싶었어. 전부터 소문 많이 들었거든. 시문 나리 호위가 큰몫이라 기결을 막바로 깨부순다고.”
“응.”
“근데 아냐? 그거 너만 하는 거 아니다?”
“어?”
호란이 제대로 대답하기 전에 서형이 대열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나랑 호란이 가운데 두 놈을 하나씩 맡는다! 좌우 두 놈은 알아서 나눠먹어!”
“예!”
“간다!”
서형이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빠르기로 번개같이 뛰쳐나갔다.
거석들도 이쪽을 눈치채고 방향을 바꾸어 달려오던 중이었다.
맨 앞의 제일 큰 거석은 몸 한가운데에 표장처럼 기결을 달고 있었다.
“으랴!”
서형은 거구를 띄워 맨 앞 거석을 정통으로 걷어찼다.
기결이 깨진 건 아니었지만 거석은 공이라도 된 것처럼 뻥 차여 뒤로 날아갔다.
벌렁 나자빠진 거석 위로 서형이 주먹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호란의 앞으로도 큰 놈이 하나 쇄도해왔다.
기세만 높았지 이제 호란에겐 어려울 것 없는 상대였다.
호란은 놈이 뻗은 주먹을 최소 거리로 피하면서 몸체에 다가붙었다.
힘을 다한 주먹이 들이박히자 옆구리의 기결에서 가슴까지 길고 굵은 금이 뻗었다.
몸체가 주저앉으면서 빛이 함께 꺼졌다.
거석이 쓰러지고 옆을 본 호란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서형이 집채만 한 거석을 타고 앉아서 패고 있었다.
주먹이 가는 곳은 기결이었지만 기운을 읽고 파점을 찾고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아무 데를 힘으로 두들기는 중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확실했다.
서형이 한 번 내려칠 때마다 거석의 몸체 전체가 뒤흔들렸다.
기결을 타고 흐르던 기운도 따라서 뒤틀리고 흩어졌다.
팔다리가 성했어도 거석이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몇 번째인가 주먹이 같은 곳을 내려치자 결국 나선무늬가 버티지 못하고 빛을 잃었다.
큰 몸체가 네 쪽으로 갈라지며 내려앉았다.
네 명씩 두 조로 좌우의 거석을 맡은 몫꾼들도 순조롭게 몫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팔다리부터 공격하는 정석으로 나갔지만 공략이 놀랍게 빠르고 능숙했다.
넷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순식간에 거석의 사지를 부숴 움직임을 봉하고, 전력을 합쳐 몸체를 박살냈다.
합을 맞추는 데 구령도 거의 필요가 없었다.
왼쪽과 오른쪽의 거석이 거의 동시에 깨어져나갔다.
제가 부순 거석 옆에 팔짱을 척 끼고 서 있던 서형이 쾌활하게 말했다.
“잘했다, 자식들아! 공략 끝!”
“이야!”
몫꾼들이 주먹을 번쩍 치켜들며 소리쳤다.
서형이 호란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돌아가자!”
“응!”
호란은 일행과 함께 온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호란이 탄복했다.
“다들 굉장하다. 이런 몫꾼들은 처음이야.”
“니가 말하냐.”
서형이 분한 듯이 말을 받았다.
“한주먹에 기결을 깬다더니 진짜 한 방에 보내네. 몸집도 작은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지?”
“힘으로만 하는 게 아냐…. 나는.”
호란이야말로 서형에게, 몸집 좀 크다고 그렇게까지 힘이 나와도 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호란이 다시 말했다.
“진짜 굉장해. 거석을 그렇게 치는 건 처음 봤어.”
“우리 대장 아니면 아무도 그런 꼴 못 보여주지. 우리도 볼 때마다 매번 기겁해.”
바로 뒤를 따르던 왼몸조 차은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서형이 물었다.
“근데 시문 님도 대단하시다. 이렇게 먼 데 거석이 있는지 어떻게 아신 거야?”
“거석의 기운을 읽어서 아셨을 거야. 시문 님은 기운만 읽으면 안 보고도 다 알거든.”
대답은 했지만 호란도 사실 속으로 좀 놀라고 있었다.
시현의 기운 읽는 감각은 언제나 예리하고 정확했지만 호란이 알기론 범위에 한정이 있었다.
기운이 아주 특이하거나 강한 것이 아니면, 시야 바깥까지 읽을 때는 따로 신경을 써서 집중해야 했다.
전에는 이렇게 멀리까지 읽어낸 적이 없었다.
혹시 시문 님이 더 대단해지신 걸까?
거기서 더 대단해지는 게 가능했단 말인가?
오늘은 내내 놀랄 일뿐이었다.
무리로 돌아와 보니 수레는 섰던 곳에서 조금 이동해 있었다.
거석이 다 깨진 걸 알았는지 분위기가 느긋했다.
단이 차양막을 치고 다른 일꾼들이 점심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현은 수레 앞에 서 있다가 몫꾼들의 보고를 받았다.
“잘해주었다. 다친 이는 없느냐?”
“누가 그런 놈들한테 흠집이라도 나겠습니까, 쪽팔리게스리.”
서형이 으쓱거렸다. 시현이 말했다.
“모두 수고가 많았다. 가서 식사하고 쉬도록 해라.”
대열이 물러나자 시현은 차양막 아래로 갔다.
몫꾼들도 다 같이 둘러앉아 식사가 준비되길 기다렸다.
화제는 자연히 방금 전의 싸움으로 흘러갔다.
수레 옆에 남았던 몫꾼들은 호란이 정말로 한 방에 거석을 부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탄만 했다.
“호란은 진짜 대단하구나. 딱 보고도 큰몫꾼이다 싶었지만.”
단채가 눈을 빛내며 말해서 호란은 조금 멋쩍어졌다.
차은이 덧붙였다.
“그리고 호란이 하는 건 대장보다 훨씬 덜 무식해 보이더라고. 깔끔하게 한 방에 끝나고.”
“이게?”
서형이 눈을 부라렸다. 다들 서형을 무시하고 호란에게 물었다.
“진짜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보니까 대장처럼 힘으로 막 때리는 게 아닌 거 같던데. 무슨 기술 같은 게 있어?”
“기술은, 아닌데.”
호란은 잠시 생각했다.
사부는 호란이 약속을 깬 걸 이해한다고 말했다.
사부가 이해한다고 하면 그건 진짜로 이해한다는 뜻이었다.
호란이 결심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이거를 하려면 거석의 나선 무늬에 흐르는 기운을 읽어야 돼. 무늬에 그, 기운이 이렇게 펄떡펄떡 흐르잖아. 거기 이렇게 큰 흐름이 들어오려고 하는 부분을 바로 직전에 이렇게 딱 깨는 거야. 이렇게….”
호란은 말을 하다 멈췄다.
사부가 알려준 걸 몸은 다 기억했는데 그때 사부가 했던 말들은 영 생각이 안 났다.
둘러앉은 몫꾼들은 전부 알쏭달쏭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어. 애초에 기운을 읽는다는 게 뭔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