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 * *
“저도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다고요. 완전, 와. 진짜 완전. 보자마자 알았어요. 이건 법력을 사용해서 뭔가를 하는 장치구나. 최소한, 그 장치의 일부분이구나.”
시현이 심각한 얼굴이 되어 대답했다.
“그렇다. 기작은 법술과 많이 다른 것 같다만, 방금 그것은 미약해도 엄연한 뢰법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진짜 대단하지 않나요?”
유가 꿈꾸는 얼굴로 웃었다.
“세상이 뒤바뀐 기분이었어요. 와, 이게 되는구나. 법술사님들의 주문만이 아니라 인공적인 장치로도 법력을 다루는 게 가능하구나. 누가 뭘,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제가 딱 생각한 게요, 이런 장치를 만들 수 있다면, 누구….”
“잠깐!”
그때 단이 말을 가로막았다. 말하던 유는 물론이고 시현과 호란까지 놀란 얼굴이 되었다.
단이 유와 시현 사이를 갈라놓듯 양팔을 펼치고 다급하게 말했다.
“잠, 잠깐만요. 잠깐만요. 지금 하려던 말 하지 말아요. 이 얘기 더 들으면 안 되겠어요. 그만하죠. 딱 여기까지만 하죠.”
하던 말이 막히자 유는 안달 나는 얼굴이 되었다.
“조금만 들어주세요. 이건 나쁜 얘기가 아니거든요. 이런 장치를 만들 수 있으면….”
“아니 말하지 마시라고요! 됐으니까 말하지….”
“누구든지 법력을 쓸 수 있다.”
“그 말을 하지 말라고!”
단이 버럭 소리쳤다.
그가 목소리를 낮추어서 유에게 빠르게 쏘아붙였다.
“미쳤어요? 대역죄가 무섭지도 않아요? 땅님은 마법을 쓰니까 땅님이잖아요! 가능 불가능은 둘째치고, 장치만 있으면 반민이고 아무고 다 마력을 다룰 수 있게 하는 연구를 한다고요? 세상에 어느 땅님이 그걸 용납합니까!”
“온의 어른께서….”
“그 어르신은 별종이시라 그렇다 치고, 왜 처음 보는 우리 앞에서 그 얘길 다 늘어놓는데요! 지금 누구를 엮어 넣으려고!”
“그러니까… 온의 어른께서 그러셨어요….”
유가 더듬더듬 말했다.
“손님으로 오신 나으리께서 이해심 깊고 아주 좋은 분 같으니까, 보여드리고 한번 잘 말씀드려보라고, 그러면 무슨 허가 비슷한 걸 내주실 수도 있다고….”
“미친!”
단이 방바닥을 쳤다.
너구리 같은 영감쟁이가. 작정을 하고 사람을 엮어 넣고 자빠졌어.
잘못하면 관성의 정치판보다 더한 수라장에 끌려 들어갈 참이었다.
듣고 있던 시현이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나는 타관 사람이라, 다천관에서는 그런 허가 내기가 쉽지 않다마는.”
단은 눈을 감아버렸다. 맞다. 애초에 이 인간이 원흉이었지. 이걸 어디다가 내다 버리고 올 수도 없고.
방금 딱 한 문장으로 어디 다른 관성에서는 아무 허가나 다 낼 수 있는 사람임을 밝혀버린 남운관 총치부 대리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단의 말대로 민감한 문제다. 잘하면 공익이 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땅인의 이득과 권위 문제가 뚜렷하게 얽혔다. 반대와 분란이 큰 정도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사방에 마력석이 모자라고, 법력 소모를 늘리는 것이 세상의 멸망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 아니냐? 당장 무슨 이득이 있는지 명확한 것이 아니면 함부로 해보자 할 일이 아니구나.”
유는 무척 실망했다. 그가 눈치를 보며 시현에게 물었다.
“그래도 제가 이런 거 하는 게, 그 대역… 그런 무서운 죄는 아니지요?”
유가 잔뜩 주눅 든 것을 보고 시현이 웃어주었다.
“연구하는 것만으로 죄까지야 되겠느냐. 연구 과정에서 누구를 해쳤다거나 써선 안 될 재화를 썼다거나 하면 모를까.”
옆에서 단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아주 기나긴 한숨을 토했다. 울화가 섞여 있었다.
그가 손 밑에서 중얼거렸다.
“나리님… 세상에선 그런 말 안 통합니다…. 심지어 여긴 상방… 그, 천천곡 이북이구요.”
“뭘 그리 전전긍긍이냐. 그래도 저 양반 말씀은 어디서든 좀 통할 거 같은데.”
창호를 열고 끼어든 것은 온성이었다.
언제부터 돌아와 있었는지 쪽마루에 소쿠리를 두고 앉아 밤을 깎고 있었다.
단은 억울한 얼굴이 되어 온성에게 호소했다.
“어르신. 정말 너무하십니다. 전 그저 반가워서 인사드린 건데, 밥만 먹자 부르시곤 사람을 이렇게 이용하실 수가 있습니까?”
온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럴 생각으로 집에 오라 한 건 아니야. 밥 먹자고 부른 것 맞다. 근데 저 양반하고 말 나누다 보니까 사람이 꽤 융통성이 있어 뵈길래. 한번 찔러나 볼까 싶어져서.”
단이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제가 앞으로 어딜 가서도… 상단 사람을 믿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때마다 뼈를 하나씩 꺾을 겁니다. 진짜로.”
“아이고, 그렇게까지 속상할 일이냐. 난 그냥 연 닿은 김에 서로서로 돕자는 거다. 내가 저 양반한테 의료소 대기 줄도 빼 줬잖냐.”
“어르신…. 어떻게 그거를 여기다 가져다 대세요….”
아무리 상인 이문은 남기기 나름이라지만 정도란 게 있다.
동네 의료소 새치기 시켜주고 문령을 얻어냈다고 하면 그건 상거래의 역사를 새로 쓸 일이었다.
온성이 난처하게 웃었다.
“말만 해본 거라니까는. 너도 너무 걱정 마라. 내가 그래도 마력석 군납하던 사람 아니냐. 지금도 고문 일 맡고 있고. 내가 여기 관인들 상대로 밑밥도 많이 깔고, 쟤 지켜줄 구실은 여럿 만들어 놨어. 어디 가서 말만 잘못하지 않으면 대역까진 안 걸린다.”
“저 장유라는 친구 어딜 가서도 말 잘못하고 올 사람인데요.”
“음….”
온의는 부정하지 못했다. 그가 말했다.
“그거는 그렇지. 유도 유지만 일 자체가, 진행이 될수록…. 영락없이 대역 감은 맞더라고.”
유가 철렁한 얼굴을 했다. 온의가 눈을 감고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가 팔짱을 낀 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마음 한구석에서… 이게 이게 어떻게 돈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밑도 끝도 없이 계속 들어서.”
단은 무심결에 웃고 말았다. 그가 물었다.
“이제 상단은 접으셨잖아요?”
“상단을 접었지 돈 안 벌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온성이 눈을 부릅떴다. 단은 다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온성만큼 돈 버는 데 진심인 사람은 별로 없었다.
상단을 끌고 낙후된 지역을 다니거나, 기근 구제에 돈을 펑펑 쓰는 걸 보고 잘 모르는 사람은 온성을 자선사업가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상단 물 좀 먹었다는 사람은 누구나 다 방씨 온의야말로 진짜배기 장사치라 평했다.
이름만 상단주지 아쉬운 놈들 갈취하는 게 돈 버는 건 줄 아는 폭력배들 사이에서, 온성은 거의 유일하게 사업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이문과 이자를 계산할 때 그는 항상 새 판로, 새 상품, 새 사람을 생각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상단 안 다니는 동네를 자꾸 갔고 세 번째쯤 갈 때부턴 이익이 될 상품을 찾아가지고 돌아왔다.
물론 자선사업도 진짜로 했다. 온의는 버는 것만큼 쓰는 걸 좋아했다.
제일 좋아하는 건 오지랖 부리는 거였다.
악착같이 벌어서 남들한테 펑펑 쓰고 늘어난 신용과 인망으로 거래처를 넓히고 또 악착같이 벌어서 남들한테 펑펑 썼다.
그가 도와준 사람, 구휼한 지역은 다 그의 판로가 되었다.
상단을 돼지우리처럼 천시하는 땅인들도 방씨 온의라 하면 일단 한번 만나보고 싶어 했다.
백희상단은 상행 경로에 있는 모든 지역에서 관과 직거래를 했다. 조건도 다른 상단과 비교할 수 없이 후했다.
각지의 격 있는 땅인들과 숱한 인맥을 만들었다.
방씨 온의의 백희상단이라고 하면 아무도 상품의 질을 의심하거나 상인들이 대는 가격을 후려치려 하지 않았다.
한번 맺은 거래가 수년씩 이어지다 고정 유통망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변고 전까지, 방씨 온의는 직접 끌고 다니는 백희상단 외에도 경로가 고정된 중소 상단 세 개, 그리고 북방과 중서부를 잇는 수많은 유통망의 주인이었다.
그러니 온성이 ‘돈을 벌겠다’고 말하면 그건 진짜로 돈을 벌겠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작은 집에서 홀몸처럼 지내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그의 전부일 리는 없었다.
단은 어깨를 으쓱하고 물러났다.
“뭐… 어르신께서야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그냥 저랑 우리 나리님만 엮지 말아주세요. 전 오늘 아무것도 못 봤고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온성이 혀를 끌끌 찼다.
“이그. 젊은 놈이 너무 그렇게 사리기만 하지 말거라. 투자는 초반 맨바닥에 하는 게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단다.”
“저는 보람 필요 없습니다. 재미는 더 필요 없고요.”
단이 전력으로 거부하자 유는 아까보다 더 풀 죽은 얼굴이 되었다.
석판 같은 물체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던 시현이 유에게 말했다.
“네가 찾아낸 이 기물은 무척 중요한 물건이다. 중히 보관하여라. 말했듯이 당장은 때가 좋지 않지만, 언젠가 반드시 유래를 밝히고 원리를 알아낼 필요가 있다.”
“예에.”
유는 시무룩하게 답하고 돌판을 다시 함에 넣었다.
그는 아직 열지 않은 함까지 해서 들고 온 것을 다 챙겨서 터덜터덜 방을 나갔다.
유가 나간 뒤 온성은 방 안을 죽 둘러보았다.
호란과 눈이 마주친 그가 웃으면서 물었다.
“어디, 호란이 지금 한가하니?”
“네!”
뭔가 시켜줄 것 같은 느낌에 호란은 화색을 하고 대답했다.
“잘됐다. 나랑 같이 성 바깥에 밤 주우러 안 가련?”
“좋아요!”
호란은 얼른 일어섰다. 요 며칠 잘 쉰 덕인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좀이 쑤시던 참이었다.
다천관은 산줄기를 끼고 있어 서문을 나서면 오래 안 가 산이었다.
관성 가까운 곳은 다 벗겨졌어도 더 깊이 들어가면 곳곳에 나무와 수풀이 제법 있었다.
두 사람은 고개 두 개를 넘어 홍은산 밑자락에 수레를 세웠다.
홍은산은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굴곡이 많고 골짜기가 깊었다. 산 중턱도 못 미쳐 길이 끊기는 걸 보니 사람 발길이 많이 안 닿는 곳 같았다.
길을 벗어나 조금 걷자 곧 밤나무 몇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만, 호란아. 거기 아니다.”
자루를 벌리려는 호란을 온성이 말렸다.
“네?”
“길에서 가까운 데는 남들이 줍게 놔둬. 우린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네.”
온성은 산속으로 쑥쑥 들어갔다. 따라 걸으며 호란이 말했다.
“다천관은 진짜 살기가 좋은가 봐요. 열매가 막, 땅에 떨어지는데도 사람들이 안 줍고 남겨두다니.”
“아이고, 남방보단 낫지만 여기도 그 정도는 아니다. 당연히 웬만한 밤나무는 익기가 무섭게 다 털지. 여기 홍은산은 금표 구역이 있어서 그렇단다.”
“금표 구역이요?”
“출입 금지 구역 말이야.”
온성이 말했다.
“산 전체가 금지인 건 아니고, 어디서 어디까지더라? 여튼 가면 안 되는 데가 있어. 금표비 세워놓은 안까지 들어갔다가 들키면 사형이거든. 금표비 바깥쪽만 다녀도 경비군 만나면 괜히 욕먹고. 사람들이 조심하느라 잘 못 온단다.”
“사형이요?”
호란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산에 들어가기만 한 걸 갖고 사형을 당한단 말이에요?”
“괜찮아. 금표비 안으로만 안 들어가면 괜찮다!”
온성은 쾌활하게 말했다. 하지만 호란은 얼굴이 파래졌다.
“나으리, 아까 길 끊어진 데 무슨… 무슨 비석 같은 거 서 있지 않았어요? 글자 써진 거요. 혹시 그게 금표비 아니에요?”
“그랬느냐? 나는 못 봤는데.”
온성이 눈을 껌벅였다.
“못 보셨을 리가 있어요? 그렇게 컸는데! 거기 글씨 많이 있었잖아요. 뭐라고 써 있었어요?”
“글쎄 난 못 봤다니까는.”
“으아아, 온의 나리!”
안달하는 호란에게 온성이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괜찮다. 후딱 줍고 후딱 나가자!”
“우으….”
온성이 짐짓 엄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 기껏 열린 걸 다 떨어져 썩게 놔두겠느냐? 지금도 먹을 게 없어서 굶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깝게스리. 누구는 가서 주워야지.”
“그건 그렇지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