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 * *
결전을 결심하고, 다천관에서는 전군의 반 이상을 동원해 홍은산 주위에 진을 쳤다.
이번에는 방어가 아니라 공세를 위한 준비였다.
산 전체를 둘러싸고 감시선이 쳐지고, 하늘인 정예대가 금표 구역 안팎을 수색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감람은 보이지 않았다. 네 발 거석들도 모두 안쪽 수비구역까지 물러갔는지 한 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전, 시현은 총령부 상명전에서 열린 회의에 참가하고 있었다. 총치부와 총령부의 고관 여덟 남짓이 모인 회의였다.
회의가 지지부진해지자 자영이 채근조로 말했다.
“이제 준비는 충분하지 않소. 산을 올라 선공에 나서야 하오.”
총치부 태보가 반론을 말했다.
“봉인고 주위는 적에게 유리한 장소입니다. 적을 기다렸다가 수비 구역 바깥에서 싸워야 합니다.”
“상대가 움직이지 않는데, 언제까지 기다리자는 것인가.”
“하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 요새에 얼마나 가공한 설비가 있을지….”
자영과 태보의 논쟁을 지켜보던 시현이 의자에서 등을 떼었다.
그가 발언하려는 것을 알고 좌중이 조용해졌다.
시현은 짐짓 날 선 소리로 말했다.
“자꾸 논점을 벗어나는군. 애초에 나는 적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리자 한 일이 없소. 그대들이 봉인고의 방어 설비에 대해 기록을 더 찾아보겠다 하여 시일을 둔 것이 아닌가. 진전이 더 없는가?”
태보를 비롯한 몇몇 관료들이 눈을 깔았다.
이틀간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성과는 많지 않았다.
멋모르는 도굴꾼이나 옛 군벌이 금표 구역에 침입했다 전멸당했다는 기록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이 실려 있지 않아 참고가 되지 않았다.
요새에 대해서도 정보가 없었다. 봉인고 출입구를 감싸고 한쪽이 트인 고리 형태로 지어져 있다는 것, 마력포 여덟 대가 있다는 게 다였다.
요새에 주둔해 있다는 거석 200기에 이르면 목격 기록조차 없었다.
“중시조가에 따로 전승된 내용이 정말로 없었는가? 그 언약이란 것에 대해서도?”
시현이 재차 물었지만 이번에도 관료들은 대답을 못 했다.
대신 자영이 입을 열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마는, 실인즉 다천관 중시조 홍채호 인의 직계가는 이미 대가 끊겼습니다.”
“자, 자인이시여, 어찌 문 앞에서 그런….”
나이 든 고관 하나가 책망하는 목소리를 냈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시현은 놀람을 내색하지 않았으나 의외이기는 했다.
관성 중시조가의 대가 끊기다니.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자영이 계속 말했다.
“현 가주는 홍채호 인의 윗대에서 갈라져 나온 방계가 후손입니다. 성주관 제례를 주관하는 형식상의 역할일 뿐, 봉인고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피 이어진 자손이 없더라도 누구에게든 유훈을 남겼을 것이 아닌가.”
“알기 어렵습니다. 대가 끊긴 것은 백 년도 더 이전의 일인지라.”
자영의 태도는 차분했지만 다른 관인들은 모두 시현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들을 보니 상황이 짐작이 갔다.
다천관에서 정변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중시조가를 완전히 몰락시킬 정도의 정변이.
중시조가의 권세가 예전만 못한 것은 다른 관성도 대개 마찬가지였다.
남운관 중시조 차씨 가문도 수 대에 걸쳐 완씨에게 밀려난 결과 지금은 이름만 내세우는 쭉정이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중시조는 관성 자치에 명분과 권위를 제공하는 존재였다.
대가 끊길 정도로 격한 숙청을 당했다는 것은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다천관 사람들이 외부에 쉬쉬하려 들 만했다.
자영이 좌중을 둘러봤다.
“논의만으로는 더 나아질 일이 없어 보이오. 방 도총관, 토벌군 준비 상황은 어떠한가?”
헌수가 말했다.
“전군의 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특별부대도 훈련을 마쳤고, 작전 예정지의 벌채도 오늘 아침에 끝났습니다. 명하시면 당장이라도 진군할 수 있습니다.”
“좋소.”
“하오나 자인이시여. 토벌군을 너무 급히 꾸리지 않았습니까. 무슨 일이든 서두르다 보면 그르침이 있기 마련입니다.”
태보가 또다시 끼어들었다. 다른 관인 몇몇도 좋지 않은 얼굴이었다.
자영이 차가운 눈으로 관인들을 보았다.
“그러면 확실하게 말해 보시오. 시문께 며칠을 더 기다리시라는 것이오? 설마 문께서 우릴 위해 한정 없이 이곳에 머무시길 바라는 것인가?”
“가, 감히 그러겠습니까!”
태보가 당황한 낯이 되었다. 자영이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제때 의무를 못 한 탓에 문께 수고를 끼치게 된 것이오. 이 이상 다천관의 부끄러움을 키우지 말아주시오.”
관인들이 모두 머리를 숙였다.
반대가 사라지자 자영은 토벌 개시를 선언했다. 그는 일사천리로 세부 지시를 내리고 회의를 파했다.
회의장을 나선 뒤 자영이 한탄조로 말했다.
“문께는 계속 부끄러운 꼴만 보이는군요. 변고 전에 관료 생활을 오래 한 이들일수록 토벌에 소극적입니다. 봉인고를 방치한 일이 잘못이란 걸 인정하기 싫은가 봅니다.”
“그러한가.”
“덕택에 자리에 오른 이래 매일이 싸움입니다만, 어쩌겠습니까. 노인네들 기분 맞춰주려고 관성이 함락되게 놔둘 수도 없지 않습니까.”
시현은 쓴웃음을 짓고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총치총령이 바뀐 것이 의아했는데, 지켜보니 빤한 이유였다.
지난 일을 책임지고 물러날 사람도 필요했고 새로이 책임을 짊어질 사람도 필요했을 것이다.
자영이라고 지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나, 최소한 그는 이제부터라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토벌이 시작되었다.
시현은 호란과 단, 관병 호위대와 함께 산을 올랐다.
금표 구역 안에 들어가자 선발대로 먼저 와 있던 자영과 헌수가 일행을 맞았다.
헌수가 시현에게 감람의 패를 돌려주며 말했다.
“예측하신 대로입니다. 패를 조작하자 갑병들이 바깥 수비구역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척후의 보고로는 열여덟 기가 근처까지 왔고, 그 뒤에도 다가오는 무리가 있다고 합니다.”
헌수가 산 위쪽을 가리켰다.
벌채가 끝난 산면이 완만한 굴곡을 지으며 멀리까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시현이 남여에서 내려 호위에게 손짓했다.
호위대의 한 명이 곁에 와서 마력석 함을 열었다.
시현이 마력석을 고르자 자영이 만류했다.
“법군의 선봉이 준비를 마쳤습니다. 시작부터 문께 수고를 끼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도 마력석은 아낄수록 좋지 않겠는가.”
시현이 가볍게 말하고 마력석 몇 개를 손에 들었다.
때마침 산면 위쪽에서 네 발 거석 십여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현은 곧바로 거석들을 향해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네 발 거석 무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자영은 약간 불안한 눈으로 헌수를 보았다.
휘하에게 추가로 공격 명령을 내려야 하는지 망설이는 듯했다.
헌수가 보일락말락 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짧은 사이 시현의 주문이 완성되었다.
“따르라. 파탄하라!”
스무 개 가까운 네 발 거석이 일제히 폭발을 일으켰다.
몸체 내부에서 불꽃이 솟고 두꺼운 껍데기가 탕탕 소리를 내며 떨어져나갔다.
기세 좋게 몰려오던 거석들이 연기를 뿜으며 산면을 굴렀다. 무사한 놈은 한 놈도 없었다.
압도적인 위력에 주위의 하늘인 부대가 함성을 질렀다.
반면 자영을 위시한 땅인 법군은 모두 죽음 같은 침묵에 휩싸였다. 환호는커녕 감탄조차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들 얼어붙은 가운데 자영만 흘긋 곁눈질해 시현이 쥔 마력석의 크기와 개수를 확인했다.
시현이 헌수를 돌아보았다. 그가 평소의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어제 설명했던 방법이 이것이네. 어떤 요령인지 알겠는가?”
헌수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문이시여. 5년 전에도 어제도 거듭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봐도 모릅니다!”
“하지만 화법술의 응용이네. 화법술은 자네도 조예가 충분하지 않은가….”
시현의 뒤에 있던 호란이 몇 발짝 물러나 단에게 붙었다. 호란이 가능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이거 시문 님이 일부러 이러시는 거는 아니지?”
단은 굳이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시현은 빈정 상하는 인간이 맞았고 다시 생각해도 자기는 잘못한 게 없었다.
부서져 굴러내려오는 거석들을 선두의 하늘인 대열이 받아내서 옆길로 치웠다.
후방의 다른 대열이 그것을 가져다가 철저하게 파괴했다.
토벌군은 천천히 금표 구역 안쪽으로 전진했다.
네 발 거석은 이후로도 계속 몰려왔지만 시현은 매번 어렵지 않게 치워냈다.
처음에 그저 얼이 나갔던 법군들도 차츰 적응이 되었는지 웅성대며 탄복하는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자영이 투덜거렸다.
“문께서 저를 곤란하게 만드시는군요. 토벌을 차일피일 미루던 자들의 기가 살아날 것 같습니다. 문이 오시기를 기다린 것이 잘한 일이었다고 떠들어대겠지요.”
“수월히 끝날 것을 기대해선 안 되오.”
시현이 경고했다.
“요새의 전력을 모를뿐더러, 이 일에는 돌 인간이 연관되어 있지 않소. 작은 거석 여럿을 다루는 것은 돌 인간의 능력 중 극히 일부일 뿐이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소.”
“예. 경솔했습니다.”
자영의 태도가 바로 진지해졌다. 그가 남여에 발을 딛고 일어서서 사방에 외쳤다.
“전열을 정비하라! 홍릉이 가깝다!”
다소 들떴던 분위기가 바로 가라앉았다.
토벌대는 곧 안쪽 수비구역으로 진입할 참이었다.
벌채해둔 구역이 끝나고, 앞길에 드문드문 나무와 덤불이 보였다.
호위대와 함께 척후로 가 있던 법군 한 사람이 돌아와 보고했다.
“안쪽 영역에 돌 인간의 장막이 있습니다. 여기서 열 장 앞쪽부터는 법술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예의 정렬영역인가. 여기서부터가 진짜겠소.”
시현이 남여를 내려 감람의 패를 꺼내들었다. 자영도 땅에 내려와 가마꾼을 모두 뒤로 물렸다.
시현이 패를 조작하고 조금 후, 망보던 이가 큰 소리로 보고했다.
“척후가 깃발을 올렸습니다! 장막이 사라졌다는 신호입니다!”
자영이 밝은 얼굴로 시현을 보았다.
“말씀하신 그대로군요. 돌 인간의 패는 한 개만 있어도 역할을 하는 모양입니다.”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측이 맞아서 다행이오.”
“문께서 그 패를 얻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요새 근처에서 법술을 쓸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는데….”
“시문 님! 물러나세요!”
자영의 말을 끊으며 호란이 뛰쳐나왔다. 그가 시현의 앞을 막아선 순간, 너덧 장 앞의 땅바닥이 뻥 뚫리며 불길이 치솟았다.
“으헉!”
토벌군의 맨 앞에 있던 하늘인 대열이 혼비백산하며 몸을 피했다. 한발 늦은 몇몇은 불길에 휩쓸리고 말았다.
“후퇴! 후퇴하라!”
헌수가 소리쳐 군을 물렸다. 하지만 시현은 주먹을 꽉 쥔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늘을 찌르는 기세로 솟구치는 불길 속에서 인영 하나가 솟아올랐다.
분화구 가장자리에 발을 딛고 나온 것은 감람이었다.
자영이 숨을 삼키며 물었다.
“저자가 돌 인간입니까!”
“그래. 내가 거석의 주인이다. 너희는 네 번째 성주의 후손들인가?”
시현보다 먼저 감람이 대답했다.
자영은 무심결에 몇 발짝 물러섰다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생각했는지 이를 악물고 다시 앞으로 나섰다.
감람은 방금 불길 속에서 나왔는데도 머리칼도 옷도 상한 곳이 없었다.
복장은 지난번과 비슷했지만 풍안경이 사라지고 무릎까지 오던 치마는 같은 길이의 바지로 바뀌어 있었다.
감람의 뒤에서 치솟던 불길이 잦아들었다.
푹 꺼졌던 땅이 덜 식은 용암으로 검게 메워졌다.
불길에 휩쓸렸던 몫꾼들의 시신도 드러났다.
시현이 정색을 하고 마력석을 들었다. 헌수도 후열에 명령했다.
“1부대, 3부대, 발문을 준비하라!”
감람이 혀를 찼다.
“시문은 그렇다 치고, 다른 놈들도 날 보고 싸울 생각부터 하는 거야? 염치없지 않아? 나는 제대로 된 사과부터 받고 싶은데.”
“사과라고? 무슨 사과?”
자영이 물었다.
“물론 약속을 어긴 데 대한 사과지. 너희 중에 네 번째 성주의 언약을 계승한 사람이 있겠지? 누구야? 앞으로 나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