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 * *
처음 작전을 짤 때 시현이 말하기는 했다.
상대는 기운의 움직임도 주문이 엮이는 모양도 못 읽으니 간파당할 걱정은 없다고.
하지만 호란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제껏 본 돌 인간은 다들 땅에 든 기운을 제 것처럼 다뤘다.
맨땅에서 거석을 마음대로 일으켜 세우고 다양한 방식으로 흙과 돌, 모래를 부렸다. 모새의 경우엔 지반 깊숙한 곳 마력석 광맥의 기운까지 꺼내다 썼다.
힘을 쓰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읽는 건 전혀 못 한다니, 그건 마치….
“우 씨!”
감람의 목소리에 호란의 의문은 바로 사라졌다. 그는 곧바로 의식을 전장에 두었다.
흙더미에 직격당했던 감람이 짜증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양 손목에 찬 사각 패가 주홍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엇을 느꼈는지 법군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헌수가 큰 소리로 외쳤다.
“법술을 방해하는 법력진이 펼쳐졌다! 당황하지 말고 명을 기다리라!”
“정말로 법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군요. 세상이 흐름이 전부 멈춘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럴 수가.”
자인이 작게 말했다.
운모가 시현을 보고 미소 지었다.
“눈치가 썩 좋은걸. 정렬영역이 펼쳐질 걸 미리 알았나? 우리가 몰린 걸 보고 신나서 주문을 퍼부어댈 줄 알았는데.”
“너희가 무엇을 다루는지 이미 안다고 하지 않았느냐. 뻔한 술책에 걸려 귀한 마력석을 낭비할 턱이 없다.”
시현이 말하면서 옆으로 손을 뻗었다.
곁에 있던 하늘인 호위조가 마력석 대련을 열었다. 굵은 마력석 몇 개가 시현의 손에 넘어왔다.
감람이 코웃음을 쳤다.
“난 네가 마력석 낭비를 즐기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힘으로 밀겠다고 할 거 아니야?”
“글쎄.”
“아, 말해두지만 저번에 훔쳐간 패는 여기 안 통해. 이건 명령 계통이 달라.”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시현이 대답했다. 운모가 눈을 가늘게 했다.
직전에 호되게 당한 탓인지, 아니면 시현의 태연한 모습에 경계심이 생겼는지 운모는 바로 공격해오지 않았다.
움직임을 보인 것은 감람 쪽이었다. 손목의 패가 빛을 내자, 뒤쪽 산 위에서 굉음이 울렸다. 마치 여러 개의 큰 화포를 한꺼번에 쏘는 것 같은 소리였다.
산 쪽 하늘에서 거대한 구체 다섯 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구체는 쾅 쾅 소리를 내면서 감람의 뒤편에 떨어졌다.
낙하해온 물체의 정체는 둥그런 거석이었지만 이제껏 싸웠던 네 발 거석과는 달랐다.
몸체만 해도 서너 배는 더 크고, 여섯 개의 굵고 흉흉한 다리가 달려 있었다.
놈들이 몸에 붙였던 다리를 사방으로 뻗었다.
낙하의 충격으로 깊게 팬 땅으로부터, 거대한 몸체가 천천히 들어올려졌다.
“어때? 얘들도 한번 힘으로 밀어볼래?”
감람이 빈정대듯 말했다. 시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단.”
시현이 부르자 단이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밀도는 양 35, 강도는 312입니다.”
단의 손에는 유가 만들어준 기량계가 들려 있었다.
주위 기운의 밀도를 읽는 도구로, 얼핏 보면 큰 나침반에 해시계를 합친 듯한 형태였다.
단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시현이 한 팔을 크게 휘저었다.
“비워라.”
시현이 지닌 마력석이 불타 사그라졌지만 눈에 보이는 변화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시현의 머리 위를 중심으로 마치 바람이 불듯 보이지 않는 기운이 움직였다.
법군 사령이 외쳤다.
“기운이 다시 흐른다! 갑병의 다리를 노려라!”
“극열의 심이여!”
가장 먼저 공격 주문을 완성한 것은 헌수였다. 고밀도의 불꽃이 막 일어선 거석의 갑주 틈을 찔렀다.
무리 지은 불과 벼락이 뒤를 따랐다. 거대 갑병들은 몸을 세우자마자 쏟아지는 공격에 한 발을 딛지 못했다.
“쳇!”
운모가 땅을 일으켰다. 솟구친 흙과 돌이 창날처럼 시현을 겨냥했다.
하지만 자영이 손을 뻗자 바로 기세가 흩어졌다. 흙의 창날이 무너지고, 공중에 떴던 기세로 떨어지는 바윗돌 몇 개는 호란이 뛰어올라 걷어냈다.
감람은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것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뭐야, 뭘 한 거야? 어떻게 정렬영역을 깬 거야?”
“뭐가 됐든 파훼됐어! 후퇴한다!”
운모가 외치면서 감람의 소매를 붙들었다. 그의 발밑에서 흙더미가 일어나 둘을 감쌌다.
운모와 감람을 실은 지면이 빠르게 움직였다.
주문을 뒤집어쓰고 있는 거석들 뒤편으로 둘의 모습이 빠져나갔다.
“놈들이 도망칩니다! 홍릉 쪽입니다!”
사령이 외쳤다. 헌수가 마력석을 바꿔 들며 명령했다.
“거대 갑병부터 처리한다!”
거석들은 앞쪽 다리가 거의 녹았지만 움직임이 멎은 것은 아니었다. 완파된 것은 헌수의 공격을 맞은 한 놈뿐이었다.
“강도 0입니다. 법력진이 아예 해제된 것 같습니다.”
기량계를 들여다보던 단이 말했다. 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흐름을 유지하는 데 쓰고 있던 기운의 방향을 바꿨다.
“파탄하라!”
가장 뒤쪽에 있어서 공격을 덜 받은 갑병 두 개가 폭음을 울리며 터져나갔다.
나머지 거대 갑병도 빠르게 정리되었다.
운모와 감람은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흙더미가 밀고 나가면서 나무와 덤불을 쓰러뜨린 흔적만 산정을 향해 뻗어 있었다.
“휴!”
자영이 긴장이 풀린 듯 한숨을 토했다.
그는 법군 출신의 토법술사로 전투 경험은 충분했으나 최전선에 나선 경험은 많지 않았다.
그가 밝은 얼굴로 시현을 보았다.
“사전 회의 때 말씀은 들었지만… 정말로 법력진이 깨어지는군요. 대단하십니다.”
“설명을 몇 번이나 듣고 눈앞에서 봤는데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시는 건지.”
헌수도 웃으면서 말했다. 시현이 살짝 눈을 피했다.
“이건 그러니까… 원리를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답지 않게 소극적인 투였다. 다천관 사람들 앞에서 장유의 이야기를 할 수도 없지만, 그의 공적을 갖고 대신 으스대는 꼴이 되는 게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현의 이런 태도는 남들에게 정반대로 읽힐 뿐이었다.
헌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이시여. 몇 번이든 말씀드리지요. 보통 사람은 못 합니다.”
“그게 아니라….”
시현은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사실을 말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은 시현이 한 것이 아니었다.
이틀 전, 마력 차단 장치를 본 시현이 찬탄을 거듭하자 유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니에요. 이건 진짜 대단한 거 아니에요! 해보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데.”
한참을 난처해하던 유는 시현이 거듭 달래고 나서야 더듬더듬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모든 법술의 원리는 사실 똑같잖아요….”
유가 말만 꺼내놓고 시현의 눈치를 보았다. 다른 법술사도 아니고 문 앞에서 마법 지식을 늘어놓기가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그가 무얼 이야기하려는지 눈치챈 시현이 격려하듯 말을 받아주었다.
“기운은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흐른다. 이것을 말하려 했지.”
“예, 예!”
유의 얼굴이 밝아졌다.
“예, 그거요. 기운은 무조건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인다. 땅님들이 기운을 읽는 것도 다루는 것도, 다 그 기운의 밀도 차를 이용하는 거라고 배웠어요…. 책에서요.”
“그렇다.”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지하게 들어주는 게 기뻤는지 유의 말이 빨라졌다.
“그러니까, 어떤 공간의 기운이 모두 똑같은 밀도로 고정된다면요. 흐름이 멈출 거예요. 흐름이 없으면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잖아요. 그 공간 너머에서 기운이 어떻게 움직여도 읽을 수가 없겠죠. 그런 생각이 나서….”
“맞다. 뛰어난 직관이다. 실제로 구현해낸 것은 더욱 대단하다.”
칭찬의 말에 유의 얼굴이 불그레해졌다. 시현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묻고 싶은 게 있다. 이런 공간이 자연적으로 발생했을 때, 내가 그 안에서 주문을 사용하려 한다면….”
“자연 상태에선 이런 공간이 있을 수가 없죠.”
“만약에 말이다. 있다고 치면.”
시현은 돌 인간 이야기를 빼놓고 논의를 진행하려고 무리수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유는 오히려 기뻐했다.
“아, 사고실험이군요! 평소에 많이 해요. 근데 다른 사람이랑 같이 해보는 건 처음이에요!”
“그래. 상상을 해다오. 비유하자면, 기운이 자유로이 흐르는 공간이 기체라면 기운의 밀도가 고정된 공간은 고체와 같은 것이다. 내가 맞게 이해했느냐?”
“형태 면에서는 맞아요.”
“그렇다면 망치로 세게 쳐서 돌을 깨듯이, 마력석으로 강하게 주문을 발해서 그 공간을 뚫어낼 수도 있을 듯한데. …그렇지 않을까?”
시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법 신중해 보이는 것이 실제 그 일을 저질렀던 사람 같지 않았다.
“가능은 한데, 기운을 읽을 수 없는 상태로 주문을 짜는 건 엄청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마력석이 진짜로 왕창 들 거고요. 아! 상상이니까 아무리 많이 써도 상관없구나.”
유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웃었다. 현실의 마력석을 써야 하는 시현의 표정이 어려워졌다.
유가 골똘한 얼굴이 되더니 다시 말했다.
“아니다. 마력석이 있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네요. 마력석의 기운으로 공간에 밀도 차를 만들어내면 되죠.”
“아하.”
“사고실험에 참가하는 법술사님을 두 명으로 늘려도 돼요?”
유가 신나서 물었다. 시현이 미소를 보였다.
“백 명쯤 늘려도 된다.”
“좋아요! 법술사님 한 명이 마력석을 써서, 공간의 일부를 채우거나 비우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서부터 흐름이 생기겠죠. 그 흐름이 유지되는 동안에 다른 법술사님이 주문을 쓰는 게 훨씬 더 쉽죠!”
“밀도 차를 만드는 데 마력석이 얼마나 필요하겠느냐?”
“그건 그 공간의 법력 밀도가 높으냐 낮으냐에 달렸죠.”
“공간 안에서는 기운을 못 읽으니, 밀도도 알 수 없을 텐데.”
“기량계가 있잖아요! 저번에 말씀드렸죠? 기운의 방향 읽는 기향계가 말고, 또 기운의 밀도 재는 도구가 있다고요. 그게 기량계예요.”
시현이 탄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이렇게 감탄한 일이 없다. 유 너는 실로 대단한 이다.”
유가 당황해서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 진짜 이건 아무것도 아닌데요. 땅님들은 기량계나 기향계 같은 거 보통 필요 없으시니까 생각이 안 나신 거죠. 조금만 생각하면, 남들도 다 해요….”
유는 시현이 칭찬할 때마다 그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시현의 질문하는 것에 막히는 일이 없었다.
인위적으로 기운의 밀도를 유지하는 힘의 크기를 알고 싶다고 하자, 하루 만에 기존의 기량계를 개조해 기능을 붙여주었다.
유는 아무리 찬사를 받아도 부족했다. 마음껏 찬사를 받게 해줄 수는 없었지만.
하늘인 호위대의 머리가 다가와 보고했다.
“위쪽에서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거석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헌수가 얼굴을 찡그렸다.
“거석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군. 석갑병 종류인가 본데…. 숫자는 짐작이 안 가느냐?”
“수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큰 놈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척후의 신호가 없습니다. 적에게 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 조 모두 말이냐?”
“예.”
헌수는 심각한 얼굴이 되어 시현과 자영을 보았다.
“좋지 않군요. 산 아래에 전령을 보내 증원을 명령할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