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 * *
시현은 잠시 고민했다.
지금 산에 오른 인원은 하늘인 호위대까지 합쳐 백오십여 명.
이것만 해도 길이 제대로 나지 않은 산중에서는 통솔하기 쉽지 않은 인원수였다.
특히 45인의 법군 부대는 돌 인간과의 싸움에 변수가 많은 것을 감안하여 순발력이 뛰어난 최정예만으로 구성했다.
실력이 떨어지는 인원으로 숫자를 늘리면 그만큼 인명피해가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아끼다가 법군의 최정예를 잃으면 그건 더 큰 타격이었다.
총치총령인 자영이나 헌수는 말할 것도 없다.
시현은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어렵군. 나는 항상 수성하는 입장이었지 공격전을 이끈 경험이 없소. 더구나 무리를 이끌고 산정 가까이의 요새로 진군한다는 건….”
“예. 피해가 클 겁니다. 제 생각엔… 증원을 하되 이 자리에 방어선을 치고 내려오는 적을 맞아 싸우면 어떨까요? 마침 장소도 상대적으로 넓고 완만합니다. 갑병의 수를 조금이라도 더 줄인 후에 요새를 공략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헌수가 말했다. 하지만 자영은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다.
“적을 기다릴 것이라면 애초에 산 아래에서 기다렸겠지요.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싸우면서 전진해야 합니다. 지금쯤 후발대가 산중턱에 도착하여 진을 쳤을 테니, 이리로 부르면 곧 도착할 것입니다.”
“적이 옵니다!”
몫꾼 하나가 소리쳤다. 거석이 몰려오는 땅울림은 이미 누구에게나 들릴 정도로 커져 있었다.
전방의 높은 고개에서, 듬성듬성 자란 나무 위로 거대 갑병 여러 놈의 상체가 불쑥 솟아올랐다.
처음 싸웠던 작은 갑병도 떼를 지어 오고 있었다.
저런 것들이 200개가 온다 이거지. 호란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각오는 했지만 새삼 질렸다.
다행히 이쪽도 만만한 전력은 아니었다.
“발부터 묶겠습니다!”
자영이 외치면서 호위가 든 큰 마력석에 손을 얹었다.
몰려오던 거석들의 발밑 지면이 푹 꺼지고 그 앞에 단단한 흙벽이 올라와 적의 전진을 막았다.
시현도 바로 주문을 맺었다.
곧 전장을 폭음이 수놓았다.
무리에는 하늘인 호위대의 숫자가 더 많았지만 전투는 마법 위주로 흘러가고 있었다.
몫꾼들의 역할은 대량의 마력석을 운반하고 돌발 상황에서 마법사들을 호위하는 것이었다.
시현 옆에 딱 붙어 있는 호란의 뒤쪽에 단이 와서 섰다. 그가 몸을 낮추며 호란에게 말했다.
“호란 호위가 나리님께 말씀드려주십시오. 감람과 운모에게 시간을 너무 많이 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응?”
작은 목소리였지만 바로 곁의 시현도 당연히 들었을 것이다. 주문을 외우는 시현의 음성이 잠시 끊겼다 이어졌다.
“감람은 처음에 새벽을 틈타 몰래 산을 오르려고 했습니다. 그자의 성격상 싸움을 피하려고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전 놈이 다천관을 공격하기 위해 요새 내부에 있는 거석을 데리러 가는 건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굳이 요새까지 안 가도 얼마든지 거석들을 불러낼 수 있지 않습니까. 잘은 모르지만 요새에 감람이 목표로 하는 뭔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현은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보았다. 당장 나타난 갑병 떼는 고개를 다 못 내려오고 박살이 나고 있었다.
하지만 멀찍이서는 또다시 지면의 울림이 들려오고 있었다. 고개 너머 산 위로부터 계속 적이 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감람은 충동적이고 자만심이 강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요새 앞에서 싸우는 게 자기들에게 유리하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단의 말이 맞았다. 적은 시간을 끌고 있었다. 전력을 일부 희생시키면서까지 이쪽이 요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현은 방금 주문 하나를 맺은 자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자인! 부대를 이끌고 후발대가 있는 중턱까지 내려가 방어선을 굳히시오. 요새에는 내가 가겠소!”
“문께서 단신으로 말입니까!”
자인이 경악했다. 시현이 빠르게 말했다.
“혼자 가겠다는 것은 아니오. 하지만 수가 많아져도 빠르게 돌파하기 어렵소. 명령 없이도 움직일 줄 아는 법군 한두 사람과 호위 몇을 붙여주시오.”
“…….”
자영은 생각을 다지는 것처럼 잠시 눈을 빛냈다. 그가 헌수와 사령을 불렀다.
“문의 명을 들었느냐? 최 사령은 적과 맞서며 후퇴할 준비를 하라. 방 도총관은 나와 함께 문을 보좌한다.”
“자네들이?”
시현은 약간 놀랐다. 헌수도 당황했다.
“저는 기꺼이 가겠습니다. 하지만 총치총령께서….”
헌수는 말을 하다 말았다. 시현이 직접 가는 상황에서 자인더러 높은 사람이니 위험한 데 가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자인이 시현에게 물었다.
“문께서 직접 가신다는 것은 가능한 최강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아닙니까?”
“맞소.”
“그러니 저와 방 도총관이 가는 것이 맞습니다.”
자영의 태도는 단호했다.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 사령은 이미 군말 붙이지 않고 호위대를 꾸리고 있었다.
가장 강한 법술사가 가장 위에 오르는 것이 땅인의 이치다.
하지만 실제 전장에서는 강한 법술사일수록 지휘보다 전투에 총력을 다해야 할 때가 잦다.
사령과 총사령은 그럴 때를 위해 있는 지휘관이었다. 처음 자인이 산을 오르기로 했을 때부터 전군의 지휘권은 산 아래 본진에 있는 총사령에게 넘어가 있었다.
“단. 경로를 제안하거라.”
시현이 말했다.
다천관에서도 길잡이를 겸한 몫꾼을 데려왔지만, 그 역시 홍릉 가까이 들어가본 일이 없기는 단과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지도만 보고 길을 찾을 것이라면 시현 입장에선 단이 미더웠다.
지도를 펼쳐 든 단이 물었다.
“위의 명을 받들기 전에 질문 올리는 것을 허하소서. 요새를 향할 총 인원이 몇 분입니까?”
자인이 대신 대답했다.
“네가 길잡이로 따를 것이냐? 그러면 호위와 너를 합쳐 열다섯이다.”
단은 이미 편성을 끝내고 대기하고 있는 하늘인 호위조 열 명을 흘끗 쳐다보았다. 열 명 중 네 명이 커다란 등짐을 지고, 나머지 여섯도 각각 몸에 붙게 바짝 묶은 걸낭을 메고 있었다.
설마 저거 다 마력석이야? 최강의 전력은 둘째치고 하유관 이래 최대 물량이 동원되는 건 확실하군.
단은 다시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남은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지형이 더러웠다.
홍은산은 낮은 봉우리 여러 개가 무리 지은 형상으로 가파른 곳과 완만한 곳, 오르락내리락하는 굴곡이 섞여 있었다.
당연히 요새는 그 지형을 다 거쳐야 접근이 가능한, 최고 거지 같은 장소에 위치했다.
최단 경로로 가면 불리한 지형에서 내려오는 갑병 떼를 돌파해야 한다. 갑병 떼를 피해 길을 돌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단은 마력석 보따리를 한 번 더 곁눈질해보고 결심을 굳혔다.
본의는 아니지만, 정말로 그러고 싶지 않지만, 자기도 이제 완씨 시문에 적응할 때가 됐다.
단은 시현 앞에 지도를 받쳐 들고 말했다.
“말씀 올립니다. 산을 좀 깎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마. 어디를 허물어야 하겠느냐?”
시현이 선선히 대답했다.
잠시 후, 홍은산 위로부터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났다.
산 아래에 주둔한 병사들은 다들 산사태를 각오하고 잔뜩 긴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땅이 무너지고 밀려나는 것은 산 위쪽에 한정되었다.
언덕과 벼랑이 허물어지고 내리막이 메워졌다. 나무가 쓰러져 땅 밑으로 묻히며 시야를 틔웠다.
시현은 눈을 감은 채 땅바닥에 한 손을 대고 주문을 외우는 중이었다.
그 앞에서 넓고 편평한 흙길이 산 위를 향해 죽죽 뻗어나가고 있었다.
떨어져 선 자영이 헌수에게 작게 속삭였다.
“나는 말이네. 내가 문처럼 온갖 과목을 자유자재로 다루지는 못하지만… 토 과목 하나만 놓고 보면 문과 내가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안 나리라고 생각했네. 음, 했었네. 오늘 아침까지만.”
“직접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은 많이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말일세. 나는 준비한 마력석의 용량을 얼추 보고 받았단 말이네. 방금 드린 돌도 어느만큼인지 아는데, 그걸로 어떻게 저런…. 아니, 법력의 양보다 효율이 더 중요한 건 아네. 아네마는 그래도 정도란 게 있지….”
“변고 이후로 줄곧 마력석을 쓰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요령?”
“평소엔 안 그러신데, 의외의 부분에서 말주변이 부족하실 때가 있습니다.”
헌수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쨌든 그는 완씨 시문에게 한 번 적응을 마친 뒤였다.
그리고 시현이 열두 살 꼬마였을 때에 비하면 지금이 한결 대하기가 편했다. 일단 외견만 놓고 보더라도.
일행은 아까의 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이쪽 방면에는 중간에 절벽처럼 푹 꺼진 지형이 있어 갑병이 내려오기 어려울 거라며 단이 고른 장소였다.
방금 이동하기 쉬운 지형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어쨌든 당장은 시야에 잡히는 놈들이 없었다.
다른 방면으로 산을 내려오는 갑병들은 후발대와 합류한 다천관군이 상대할 것이다.
주문을 끝맺은 시현이 사그라진 마력석 꾸러미를 버리고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뻔히 보이게 길을 냈으니 곧 이쪽으로도 적이 몰려올 것이오. 다들 서두르게.”
“예!”
변고 이전 남운관은 왜 세계정복을 시도하지 않았는가 고민하고 있던 자영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역할을 맡은 호위조가 각각 윗사람들과 단을 업었다. 호란이 맨 앞에 서서 경사를 달렸다.
길은 편평하고 하늘인들의 발은 빨랐다. 방해만 없으면 곧 문제의 요새가 눈에 보일 것이다.
단은 맨 뒤의 호위에게 업힌 채 빠르게 지나가는 지면에 눈길을 보냈다.
한번 완전히 뒤집어졌다 다시 굳어진 땅바닥에 드문드문 흰 돌이 보였다.
얼핏 밖에 못 봤지만 표면에 금속선과 투명한 판 따위가 있었다.
깨어진 채 지표에 드러나 있는 흰 석판들은 유가 가지고 있던 정체불명의 석판과 비슷한 물건이었다.
시현이 산을 허물 때 요새 바깥에 감람이 만들어놓은 장치들까지 휘말려 부서진 모양이었다.
아마 그 마법을 차단하느니 마력의 밀도를 맞추느니 하는 장치의 일부일 것이다. 다른 장치일 수도 있고.
뭐가 됐든 적의 설비가 부서진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단은 왠지 모를 찜찜함에 얼굴을 굳혔다.
요새로 간 감람과 운모를 놓아둬선 안 된다고 말한 건 자신이었다. 그렇지만 상황의 앞뒤가 딱 떨어지지 않았다.
요새에 있는 뭔가가 그렇게 중요하면, 감람은 왜 이제서야 찾아왔지?
지난 며칠간은 뭘 했고, 오늘은 왜 요새부터 가지 않고 우리 앞을 막아섰지?
돌 인간들은 매사에 꾸물거리는 놈들이라, 이제까지 다천관에 돌 인간이 안 나타난 데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현이 홍은산을 조사하겠다고 마음먹은 날 감람과 딱 마주친 것도 우연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완전히 우연만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감람이 산을 오르려 하기 전, 호란이 먼저 산속에서 갑병을 만났다.
온성은 갑병이 금표 구역 경계까지 나오는 것은 이제껏 못 본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금표 구역 안에는 갑병만 있지 않았다. 도총관 방헌수가 부대를 거느리고 와 있었다.
총령부 도총관은 위계만 보면 총령 바로 아래다.
그 정도 지위를 가진 사람이 그저 순찰을 하고 있었을 리는 없다. 아마 요새 공략을 위한 사전 조사를 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조사를 명한 사람은 자영이었을 것이고.
다시 말해 감람이 산에 숨어든 건 자영의 주도로 요새 공략이 시작된 것과 같은 때였다.
물론 전부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면, 감람은 다천관을 치러 온 게 아니었다.
그가 자영이 요새에 손대는 걸 막으러 온 거라고 하면 대강 앞뒤가 맞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