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 * *
이제 와서 사람들이 접근하는 걸 막는 이유가 뭐지. 단은 생각에 빠져 얼굴을 찡그렸다.
봉인고에는 이미 지씨옥이 없다. 감람도 그걸 안다.
봉인고에 지씨옥 말고 뭐 별다른 게 숨겨져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봉인고가 열렸다는 걸 돌 인간들이 알게 된 것은 하유관에서 금강, 녹렴을 상대로 싸웠을 때다.
그리고 하유관을 떠난 후 일행은 천천곡에서 꽤 오래 발목이 잡혀 있었다.
봉인고 안에 돌 인간들에게 중요한 물건이 있었다면 그사이 가지고 나올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면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건가?
봉인고에 특수한 장치가 있는 걸까?
아니, 꼭 봉인고나 요새 설비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장소 자체가 중요할 수도 있다.
슬슬 생각에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다. 단은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강력한 석갑병이 있는데 다천관을 치는 데 쓰지 않고 계속 봉인고를 지키게 두었다.
요새 앞에서 싸우는 게 유리한데 요새로 유인하기보다 사람의 접근을 막는 걸 우선시한다.
아마도 봉인고나 그 주변에, 꼭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지고 나오거나 이동시킬 수 없다.
또 한 가지, 요새의 잇점을 포기하면서까지 접근 자체를 막는 것을 보면 의외로 돌 인간들은 그걸 완전히 지켜낼 자신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건 충분한 약점이 된다.
전부 조각조각 난 추측이지만… 젠장. 단은 앞서가는 시현의 뒤통수를 보며 불쑥 치솟는 짜증을 삭였다.
저 녀석하고 이야기해서 앞뒤를 맞춰 보면 틀림없이 뭔가 걸려 나올 텐데, 남들 앞에서는 시현에게 말조차 제대로 걸 수가 없었다.
하물며 의견을 내? 시현이야 들어보고 싶어 하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내용이 뭐건, 시현이 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따르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반발을 산다는 걸 단은 알았다.
그리고 총치총령 심씨 자인은 아무리 시현이라도 쉽게 묵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영은 이제껏 지극히 우호적이고 협조적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현이 그의 목표를 이뤄주고 있기 때문이다.
요새와 갑병들을 파괴하는 데 집착하는 사람인 만큼 ‘요새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있을 수 있다’ 같은 이야기엔 반감을 느낄 것이다.
더구나 무슨 물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민 길잡이가 머리 굴려 내놓은 얘기라면 말해볼 것도 없었다.
그런 자기 처지를 알기 때문에 단은 이제까지 시현이 하는 일들에 대해 깊은 생각을 안 하려 했다. 세상이 망하건 관성이 무너지건 내 알 바냐고. 나 같은 게 이리저리 생각해 봐야 소용도 없는데.
근데 또, 생각이 나는데 어떻게 생각을 안 해? 빤히 보이고 들리는 게 있는데.
단이 대상이 불분명한 분노와 짜증에 빠져 있는데 달리던 몫꾼들의 발걸음이 멎었다.
시현이 호위의 등에서 내려와 땅을 딛었다. 시현이 깎아놓은 경사길이 두어 장 앞에서 끊겨 있고, 완만하지만 바위투성이의 고개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 앞에는 법술을 막는 법력진이 또 있어서 주문이 닿지 않았소. 그래도 거의 다 왔소.”
시현이 말하고 품에서 감람의 흰 패를 꺼냈다.
그는 패를 조작해보고서 얼굴을 찌푸렸다.
“이번엔 법력진의 해체식이 듣지 않는군. 여전히 요새 쪽의 기운을 전혀 읽을 수가 없소. 이 앞에선 싸움이 격해질 텐데.”
“그러면, 아까처럼 문께서 법력진을 파훼하시고 저와 총치총령이 주문을 쓰는 방법으로….”
헌수가 말하는데 맨 앞의 호란이 소리쳤다.
“시문 님! 적이 와요!”
네 발 거석 여럿이 언덕 위에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호란은 주저 없이 적을 향해 달려 나갔다.
호위대의 머리는 윗전들에게서 떨어져도 좋을지 어떨지 망설이느라 움직임이 늦었다.
그가 무리의 반을 데리고 한발 늦게 뒤를 따랐다.
“마력석을!”
마음이 급해진 시현이 짐을 진 호위에게 말했다. 그가 패를 넣으려는데 자영이 손을 내밀었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해체식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시현은 자영에게 패를 건네고 호위에게서 마력석을 받았다. 헌수도 공격을 준비했다.
번개같이 달려간 호란은 선두에서 오는 갑병의 몸통과 다리를 잇는 부분에 직선으로 발차기를 꽂았다.
아래를 향해 달려오던 갑병의 속도에 호란의 힘이 더해져 다리는 한 방에 떨어져 나갔다.
한 다리를 잃은 갑병은 다른 세 발을 넓게 딛으며 버티고 서서 쓰러지는 걸 면했지만 그 때문에 뒤에서 오던 다른 놈들도 줄줄이 멈춰서야 했다.
호란 입장에선 딱 좋았다. 물론 그는 갑병 한 놈 한 놈을 다 부숴버릴 생각으로 덤비고 있었지만, 최우선 순위는 시현이 주문을 쓸 준비가 될 때까지 놈들의 접근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착지했다 다시 땅을 박찬 그가 대각선 쪽 다리 관절을 다시 걷어찼다. 쩍 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걷어차! 밀어버려!”
호위대의 발소리가 지척에 온 것을 듣고 호란이 외쳤다.
머리는 바로 알아듣고 몸을 날렸다.
다리가 둘이나 꺾인 데다 몫꾼의 발차기를 정통으로 먹은 갑병은 커다란 쇠공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놈은 뒤에 있는 다른 갑병에 쾅 충돌했다가 튕겨 나와 산면을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울퉁불퉁한 산길에서도 잘 움직이라고 길고 날렵한 네 다리를 달았겠지만, 몸통을 동그랗게 만든 건 그렇게 똑똑한 일은 아니었다.
그 사이 호란은 또 다른 놈의 진로를 가로막고 다리에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호란이 하는 걸 보고 공략법을 눈치챈 호위대 머리가 외쳤다.
“다리를 공략해라! 윗전들 쪽으로 가는 놈들은 옆에서 걷어차서 사선으로 굴려 버려!”
호란이 또 갑병의 다리 한 짝을 공중에 띄웠다.
호위대도 둘과 셋으로 짝을 지어 갑병의 전진을 막았다.
호란처럼 한 방에 다리 하나씩 날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들도 총치총령의 호위로 모자라지 않은 최정예였다.
제 몸을 지키면서 적의 전진을 막는 정도는 충분히 했다.
“전원 물러나라!”
헌수의 외침이 있고 시현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본령으로 화하라!”
콰르릉 소리와 함께 벼락이 머리 위를 메웠다.
갈라진 빛줄기들은 거석들의 갑주 틈새를 정확하게 파고 들어가 움직임을 봉했다.
호란과 몫꾼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거리를 벌렸다. 곧바로 다음 주문이 울렸다.
“파탄하라!”
언덕 위에 나타난 열 남짓한 갑병이 모두 기능을 잃고 주저앉았다.
호란과 몫꾼들은 놈들이 시현 쪽으로 굴러내리지 않게 좌우로 뻥뻥 걷어차 버렸다.
언덕 아래 있던 이들도 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시현이 자영에게 말했다.
“그대가 아는 해체식이 통해서 다행이오. 마력석을 훨씬 아끼게 됐군.”
“예. 안쪽 방비 구역의 법력진은 범위에 따라 해체식도 다릅니다. 비상시에 해체식을 이중 삼중으로 거는 경우도 있습니다.”
“패를 빼앗긴 후 감람이 무엇이든 손을 써 놓았을 줄 알았는데, 요새에 딸린 법술진은 변경하는 게 그리 간단치 않은 모양이오.”
“그런가 봅니다.”
말은 추측하듯 했지만, 시현은 이제 그 법력진이라는 것의 실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유가 만든 장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석판에 수놓아진 금속선이 주문 역할을 했고, 물리적인 수정 없이는 주문의 효과나 발동 방식을 변경할 수 없었다.
자영이 아는 해체식이 통하는 걸 보면 감람에게 그런 여유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후로도 요새에 설치된 기존의 법력진은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감람이 직접 간섭하여 만들어내는 것만 주의하면 되었다.
“그 패는 자인 그대가 계속 지니고 있으시오. 나보다 더 사용에 자세한 것 같으니.”
“예.”
자인이 법력진에 전부 대응할 수 있다면, 시현이 공격을 맡는 쪽이 효율이 높았다.
언덕 꼭대기에 선 호란이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시문 님! 요새가 보여요! 그리고 거석이 잔뜩 있어요!”
“갑병과 거대 갑병, 대장석이 수십 개 있습니다! 움직임은 없습니다!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호위대 머리가 뒤따라 보고했다. 헌수가 답했다.
“가겠다, 그 자리에 대기하라!”
언덕 위에 오르자 산정까지 뻗은 경사가 훤히 보였다.
경사는 산정에 가까워질수록 완만해져, 윗부분은 거의 평지에 가까웠다.
그 한가운데에 둥근 형태의 요새벽이 불쑥 솟아 있었다.
표면은 흙과 덩굴풀에 덮여 있었지만 틀림없는 문제의 요새였다.
이곳을 전장으로 삼을 셈인지, 갑병과 거대 갑병, 그리고 형태는 보통 거석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단단하게 생긴 대장석들이 살기등등하게 벌여서 있었다. 다 해서 오십이 넘어 보였다.
“법력진이 또 펼쳐져 있군요. 저렇게 적이 많은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다니.”
헌수가 혀를 찼다. 시현이 말했다.
“법력진도 법력진이지만… 감람과 운모가 보이지 않는군.”
“요새 안에 있는 것일까요?”
“글쎄….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더 걱정스럽소.”
시현이 잠시 생각하더니 자영에게 말했다.
“자인, 그대는 먼저 법력진을 해체하고, 그 뒤에는 공격에 나서지 말고 땅속 기운의 움직임을 최대한 주시해주시오. 운모가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올지 모르오.”
“예.”
“헌의는… 요새에 포대가 있다고 했지. 그대는 그쪽에 대비해주시오. 거석 무리는 내가 맡겠소.”
“예.”
윗전들이 주문을 쓸 것을 알고 하늘인 호위들이 등집을 내렸다.
한 사람이 시현에게 꾸러미로 묶은 마력석을 내밀자 시현이 손을 저었다.
“아니다. 몇 개씩 주지 말고 짐을 통째로 열거라.”
몫꾼이 진 짐에는 마력석들이 몇 자루로 나뉘어 들어 있었다. 시현은 그중 한 자루를 풀게 하고 안에 손을 넣었다.
헌수가 물었다.
“그 안에 있는 걸 한꺼번에 쓰시는 겁니까? 기형이 전부 다를 텐데요.”
“마력석의 기운을 읽을 때 꼭 한 개 한 개를 손으로 만져볼 필요는 없더군. 마력석 하나의 기운을 울려서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보면 나머지도 차례로 기형을 알 수 있소. 기운이 약간 소비되지만, 한꺼번에 큰 힘을 쓸 때는 이득이 더 크오.”
시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뜬 후 자영을 보았다.
“자인. 부탁하오.”
“예.”
자인이 손을 움직였다.
법력진이 해제된 순간, 거석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요새 주위에 모여 있어 봤자 더 이상 마법 공격에서 보호받지 못한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뒤편의 요새 역시 쿠릉 진동을 울렸다. 석벽을 덮은 흙이 우수수 떨어지고 벽 상단에서 유리로 된 커다란 원구가 사방으로 튀어나왔다.
“저거! 저 둥그런 게 마법 포예요! 저기서 마법을 쏴요!”
네 발 거석과 싸웠을 때가 기억난 호란이 소리쳤다. 헌수가 마력석을 꽉 쥐었다.
아래에서는 수많은 거석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적의 전력은 압도적이었지만, 두려움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시현의 주문이 완성되었다.
“흐름의 마지막 그릇, 새 혼을 기다리는 백이여. 일어나라.”
땅바닥이 물결치며 사방으로 열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