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 * *
유등 불빛이 안 닿는 바람에 보지 못했다. 닫힌 입구의 바깥쪽, 봉인고의 높은 천장 가장자리에 마력포가 여섯 개나 심어져 있었다.
그중 호란의 바로 위에 있던 한 개가 빛을 발했다.
반투명한 원구에서 발사된 굵은 빛줄기가 호란이 서 있던 장소와 그 주위를 세 차례에 걸쳐 꿰뚫었다. 마지막 한 발을 피하기 위해 호란은 거의 구르다시피 했다.
다행히 공격은 그것으로 그쳤다.
벽면의 마력회로에는 여전히 은은한 빛이 감돌고 있었지만, 천장의 마력포에선 빛이 꺼졌다.
마력포가 확실히 잠잠해진 것을 확인하고 호란은 숨을 뱉었다.
“후….”
“야 이 미친아!”
가슴을 쓸어내릴 틈도 안 주고 단이 폭발했다.
쏟아지는 쌍욕에 호란은 귀를 막았다.
“내가! 내 목숨에 충분히 안 진지한 것 같이 보이냐? 어? 이제껏 온갖 더러운 꼴 다 보면서 아득바득 살아남은 게, 너랑 이런 데서 폭사당하려고 그런 줄 알아!”
“아니, 잘 피했잖아….”
“유등 터질 뻔했잖아! 나 짐 안에 화약 더 있는 거 몰라?”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그걸 이해 못 하겠다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왜 일단 저지르기부터 하는데?”
“난 잘될 줄 알았지….”
“그러니까 대체 왜…. 아, 시발.”
단은 갑자기 고함치길 멈췄다. 그는 크게 숨을 내쉬더니 반쯤 얼굴을 쳐들며 중얼거렸다.
“아니지. 지금 내가 너한테 지랄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후….”
단은 호흡을 가다듬고 바닥에 굴러 있던 유등을 집어 들었다.
무슨 장치가 되어있는지, 각도가 기울면 불이 꺼지게 되어 있고 기름도 밖으로 새지 않았다.
단이 다시 등불을 살렸다.
호란이 동정적인 어조로 물었다.
“단, 단은 성질이 그 모양인데, 평소에 다른 하늘인이나 땅님 앞에서는 대체 어떻게 참고 살아?”
“말 안 했냐…. 나는 진짜로 내 목숨 부지하는 데 진심이라고….”
“맨 처음 단을 봤을 땐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인 줄 생각도 못 했어.”
“너 때문에도 화가 늘어난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 벽면의 동심원에서 차례차례 빛이 빠져나갔다.
마력회로의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봉인고 안에는 다시 유등 불빛만이 남았다.
단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동력원이 뭘까?”
“응?”
“방금 발사된 마력포도 그렇지만, 법력진… 이 공간의 마력 밀도를 유지하는 장치 말이야. 그 장치가 힘을 발휘하려면 연료가 필요해. 어디에서 동력을 얻는 걸까?”
“…….”
호란은 조금 주저하다가 말했다.
“이거, 이제까지 일부러 생각 안 하려고 했던 거기는 한데.”
“뭔데?”
“내 생각에… 돌 인간들은, 땅의 힘을 마음대로 쓰는 것 같아.”
“?”
단은 의아한 얼굴로 호란을 보았다.
“그건 그냥 보면 아는 거 아냐? 생각씩이나 할 게 있나. 걔들은 아무 땅에서나 거석을 막 일으켜 세우잖아. 걔들 자체가 돌이기도 하고.”
“으응.”
“근데 그건 돌 인간들이 자기 능력을 써서 하는 거고. 이 봉인고는 다르지. 감람이 이걸 만든 뒤에 200년 넘게 내버려뒀는데 혼자 알아서 돌아갔잖아.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그 지씨옥의 엄청난 힘을 오랫동안 억눌러왔어. 뭔가 특별한 동력 없이는 불가능할 거야.”
“마력석을 쓰는 걸까? 왜 모새가 지하 광맥을 쓴 것처럼.”
“그건 아닐걸. 이 동네 마력석 광맥 같은 게 있었으면 애저녁에 사람들이 파헤쳤지. 그리고 웬만한 양으론 200년이나 유지될 리도 없어. 마력석을 숨기기 위해 막대한 마력석을 쓴다는 것도 말이 이상하고.”
“그래도 역시 땅의 힘이겠지. 난 잘 모르지만, 그 지맥이라든가 뭐라든가 하는 것도 있잖아.”
“그 힘도, 변고로 마력이 사라진 후엔 다 없어진 거 아냐? 음….”
단은 말을 멈추고 잠깐 생각에 빠지더니 다시 벽의 복잡한 회로에 불을 비췄다.
“네 말이 맞겠다. 땅의 힘이란 말이지.”
“저거, 보면 뭔지 알겠어?”
호란이 기대에 차서 물었다.
유가 시현이 부탁한 기량계를 만드는 동안, 단은 유와 싸움싸움하면서도 유의 작업을 돕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호란은 하나도 못 알아들을 이야기였지만, 단이라면 뭐든 배운 게 있을 터였다.
“저게 다 뭐 하는 건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힘이 흐르는 방향은 알아보겠다. 전부 아래에서 위로 동력이 전해지는 형태야.”
단이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어쨌든 동력원은 아래쪽에 있을 거야. 바닥을 깨보자.”
“그건 못 해.”
“엉?”
단은 눈을 깜박였다. 호란이 딱 잘라서 뭘 못 한다고 하는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호란이 아까 두 사람이 섰던 장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바닥 봐. 마력 광선이 세 발이나 꽂혔는데 멀쩡하잖아. 그걸로 못 부수는 바닥은 내 주먹으로도 못 부숴.”
“아아….”
호란의 말대로였다. 광선이 내리친 자리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바닥 자체도 튼튼하게 만들어졌고, 광선의 각도와 강도 역시 침입자를 처치하려다 봉인고까지 부수는 일이 없도록 섬세하게 조절된 것이 틀림없었다.
마력 회로가 설치된 벽면은 물론이고, 바닥도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 이거지.
봉인고 바닥을 파괴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방법이 마땅찮았다.
“네 주먹으로 금도 안 가면 화약으로도 쉽지 않겠지.”
“아마도…? 이거 듣고 또 화내면 안 돼. 아까 그 마력 광선에 담긴 기운이 진짜 엄청났거든. 피할 때 등줄기 쭈뼛했어….”
호란은 단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단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잠깐. 뭐라고?”
“어쨌든 피했잖아. 이젠 안 그럴게.”
“그게 아니라, 방금 뭐랬어? 너 광선의 기운을 느꼈어? 이 봉인고 안에서?”
“어….”
호란이 어물대자 단은 걸낭을 뒤져 기량계를 꺼내 들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바늘을 본 그의 얼굴이 확 찌그러졌다.
“뭐야. 봉인고 내부엔 법력진이 없었잖아?”
“어?”
“마력 흐름을 막는 법력진이 이 안에는 없다고! 하긴 당연하지. 그게 있었으면 마력 광선 자체도 못 쐈겠지!”
“하지만 바깥에 있을 때, 시문 님이 법력진 있다고 그러셨잖아. 그것도 엄청 센 거.”
“바깥에는 있는데, 이 안에는 없다고. 젠장. 난 멍청인가? 유가 처음부터 보여줬는데. 작업대 바깥쪽만 차단 장치로 둘러싸 놓고 안에서는 마법 잘만 쓰는 거.”
단은 머리를 벅벅 긁고 입구에 드리워둔 밧줄을 가리켰다.
“쓸데없이 삽질했네, 얼른 가서 나리님 불러 와!”
* * *
단과 호란이 봉인고에 들어간 후, 시현과 다른 사람들은 일단 구덩이 위쪽으로 돌아갔다.
자영은 구멍 뚫린 봉인고를 초조하게 내려다보고 있었고, 시현은 조금이라도 주위에서 잡아낼 수 있는 낌새가 있을까 해서 눈을 감고 기운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헌수가 시현에게 물었다.
“첫 보고가 늦어지는군요. 역시 하늘인 병사를 몇이라도 더 보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 호위 아이가 실력이 대단한 것은 압니다만.”
“음….”
시현이 얼굴을 흐렸다. 다른 호위를 딸려 보내지 않은 건 단이 편하게 움직였으면 해서였다. 하지만 위험할 것도 걱정되었다.
“그 말이 맞소. 몇 사람이라도….”
시현이 말하는데, 구덩이 가장자리에 서 있던 자영이 안색이 변해 이쪽을 돌아보았다.
“문이시여, 기운이!”
자영의 말이 끝나기 전에 시현도 깨달았다. 공간을 둘러싼 기운이 깨끗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감각을 통째로 잃는 듯한 적막감은 아까 봉인고 가까이 접근했을 때 받은 느낌과 같았다.
헌수도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법력진이 펼쳐졌다! 모두 경계하라!”
헌수의 명에 호위들이 바짝 긴장해서 주위를 둘러쌌다.
하지만 감람이나 운모는 나타나지 않았다. 공격이 날아올 낌새도 없었다.
자영이 달려왔다.
“문이시여, 당장 법력진 밖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놈들이 나타나기 전에….”
“잠깐만. 이동하기 전에 이 법력진이 어디까지 펼쳐진 건지 확인해보겠소.”
시현은 마력석 하나를 꺼내 들고 눈을 감았다.
“형상 없는 만유여, 명에 따라 뻗으라.”
시현은 마력석으로부터 풀려나오는 기운의 타래를 단단히 뭉쳐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게 했다.
기운에 실린 감각을 더듬어 법력진의 경계가 어디까지 이르는지 먼저 알아볼 셈이었다.
하지만 굵은 마력석이 다 타들어 가도록 탐색은 끝나지 않았다. 분명히 포착했다고 생각한 경계가 다음 순간 다시 멀어져갔다.
시현은 안색이 변해 눈을 떴다.
“법력진이 끝도 없이 넓어지고 있소. 하늘 위로도, 산 아래로도…. 지금도 계속 경계가 멀어지는 중이오.”
“예?”
자영이 되물었다. 시현이 잔뜩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내 생각엔… 돌 인간들이, 봉인고를 둘러싼 강력한 법력진을 계속 확장시키고 있는 것 같소. 이미 법력진의 범위가 산중턱에 이르렀소.”
헌수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그럼, 지금 아래에서 남은 거석들과 싸우고 있는 법군들은 어찌한단 말입니까! 법술을 쓸 수 없을 텐데, 하늘족만으론….”
자영도 경악했다.
“설마, 이대로 다천관까지 법력진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지요! 그리되었다간, 아무리 마력석이 많이 있어도….”
자영은 이어지는 말을 다 못 하고 가슴만 움켜쥐었다.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가 곧 결심을 굳히고 자영에게 말했다.
“자인. 그대는 다천관의 총치총령이니 만약의 경우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오. 호위대를 데리고 산을 내려가시오.”
“문께서는요!”
“나는 헌의와 함께 봉인고로 가서 돌 인간을 찾겠소. 단의 말대로 놈들은 틀림없이 이곳 어딘가에서 일을 꾸미고 있소. 마력석을 지닌 호위 둘만 남겨주시오.”
“하지만, 하지만 이 법력진은 문께서도 뚫을 수 없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찌 되었건 움직여야 하오.”
시현이 강하게 말했다. 자영이 멈칫했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몸을 사려온 결과가 지금이오. 그대는 산을 내려가시오. 헌의 자네도 뜻대로 하게.”
그는 가장 큰 마력석 짐을 진 하늘인 호위에게 명했다.
“나를 봉인고로 데려가라.”
“예, 예!”
호위는 대답을 해놓고서도 자영의 눈치를 보았다. 자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얼른 시현을 안아 들고 구덩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찔한 낙하감에 시현은 눈을 꽉 감고 숨을 참았다. 그는 마력석 자루에 손을 대 제 기감이 살아있는 걸 다시 확인했다.
호란과 한 몸처럼 전장을 누빈 지도 오래되었다. 이제는 정신없는 움직임에도 추락하는 듯한 감각에도 완전히 익숙해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호란을 믿고 상황을 통제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주위의 기운도 느낄 수 없고, 법력도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은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단의 예측이 맞았어. 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로 이 장소에는 뭔가 있었다. 돌 인간은 시간을 끌면서 무엇을 꾸미고 있었다.
단의 말을 듣고 산을 내려가지 않은 건 잘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전신을 감싼 무력감이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시현은 마력석 자루를 붙잡으며 앞을 보았다.
일단 호란과 단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다음에 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도 정할 수 있을 터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