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 * *
호란이 감람에게 접근하면서 직선 경로를 택하지 않은 데 딱히 이유는 없었다.
굳이 이유가 있다면 감이었다.
바닥에 깔린 마력회로의 기운이 공간을 꽉 채우고도 남아 넘쳐흐르는데도, 호란에겐 감람의 존재가 더없이 크게 느껴졌다.
이 공간에서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기운을 가진 건 감람이었다.
정면으로 덤벼들어선 안 된다. 그리고 시문 님과 단에게서 놈의 시선을 돌려야 한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그렇게 판단한 호란은 일부러 크게 고함을 치면서 사선으로 우회했다.
“덤벼!”
감람은 호란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호란을 향해 한 손을 펼쳐 들었다.
그는 아까와 달리 손목이 아니라 손바닥에 얇고 작은 패를 달고 있었다. 패 한가운데의 동심원이 빛을 발하더니 붉은 광선이 쏘아져 나왔다.
“윽!”
호란은 가까스로 몸을 낮춰 광선의 직격을 피했다.
어깨 위쪽에 타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지만 상관하지 않고 앞으로 달렸다.
감람은 다시 광선을 연사했지만, 손바닥의 방향이 보이는 만큼 두 발째는 더 피하기 쉬웠다.
먼저 움직이길 잘했다. 감람이 시현과 단 쪽으로 이런 광선을 쏘아댔다면 전부 대응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이게…!”
호란이 간격 안으로 파고들자 감람은 반대쪽 손을 펼쳤다. 오른손에도 왼손과 마찬가지로 작은 패가 달려있었지만, 그 패에서는 광선 대신 굵은 빛덩어리가 터져 나왔다.
“윽!”
호란은 황급히 돌격의 진로를 비틀었다.
감람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손을 감싼 빛의 덩어리도 함께 움직여 호란을 내리쳐왔다.
열과 살기로 찬 빛의 덩어리를 호란은 아슬아슬 피해내며 몸을 굴렸다.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거리를 벌리면 광선의 표적이 되고, 좁히면 빛덩이에 맞는다.
“호란 호위님! 물러나세요!”
“본령으로 화하라!”
단의 외침에 호란이 몸을 빼고, 거의 동시에 시현이 주문을 외쳤다.
우릉 소리와 함께 뻗은 굵은 전광은 정확하게 감람의 두 손을 표적 삼고 있었다.
하지만 공간을 울린 맹렬한 번개는 감람에게 닿기 직전 사방으로 흩어졌다.
감람의 양손에 이번에는 보호막이 펼쳐져 있었다.
몸을 감싼 은은한 빛의 구 안에서 감람이 씨익 웃었다.
“후….”
호란은 감람과 몇 걸음 거리를 둔 채 숨을 골랐다.
오래 대치할 자신이 없었던 상황이라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시현이 지원에 나온 것은 의외였다.
자신이 시간을 버는 사이 시현이 법력진부터 부수리라 생각했었다.
앞으로의 대응을 맞추기 위해 시현 쪽을 본 호란은 조금 놀랐다.
호란은 더욱 신중해져서, 감람에게서 다시 한 발 더 물러나며 물었다.
“시문 님. 왜… 마력석을 쓰세요?”
처음에 호란은, 지하 석실에 내려가자마자 상황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바닥의 마력회로에는 호란도 느낄 정도로 마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지하 깊은 곳의 광맥에서도 기운을 길어 올리는 시현이다. 회로를 타고 흐르는 마력을 시현이 사용한다면 법력진은 물론 산을 통째로 날리고도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현은 마력회로도 건드리지 않고 주위에 넘치는 기운도 사용하지 않은 채, 호위가 지고 온 마력석을 손에 쥐고 있었다.
시현은 호란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감람을 노려보았다.
“이 거대한 마력회로는 도대체 뭐냐. 이 지하 석실은 무얼 위한 시설이냐?”
감람이 빙글빙글 웃었다.
“하하. 네가 눈치가 빨라서 다행이야. 우리한테도, 너희한테도. 네가 다짜고짜 여길 부쉈다면 다 같이 곤란해질 뻔했거든.”
“이건 고작 지씨옥의 힘을 감추거나 금표 구역에 법력진을 펼치기 위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이 힘은… 하루 이틀 모아들인 것도 아니고, 단번에 터뜨린다면 관성 하나를 뒤집고도 남을….”
시현의 목소리가 얕게 떨렸다. 그가 감람을 향해 불꽃 같은 눈빛을 쏘았다.
“벽명관에 지진을 일으킨 것은 너로구나. 아마도 너와 운모겠지.”
“하하. 정말 눈치 빠르다니까. 눈치만 가지고 뭐가 되지는 않겠지만.”
감람이 놀리듯이 말했다.
* * *
“전속력으로 하산하라! 홍은산 아래의 수비진과 합류한 후 퇴각하여 관성의 수비에 들어간다!”
큰 가마 위의 자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처음 산을 올랐던 정예부대와 나중에 올라온 후발대를 이끌어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시현이 뚫어둔 길로 달려 내려온 자영과 호위 무리는 순식간에 교전이 벌어지는 산중턱에 도착했다.
다행히 법력진이 다시 펼쳐진 후에도 상황은 그렇게 악화되지 않았다.
홍은산 요새에서 내려온 거석 무리는 대부분 법력진이 펼쳐지기 전에 처치된 후였다.
몇몇 남은 갑병들이 있었지만, 다행히 후발대에는 하늘인 대열의 수가 충분했다.
다천관군은 고전하면서도 적을 모두 쓰러뜨렸고, 이제는 자영과 함께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문제는 거의 산밑에 이르도록 법력진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마에 자영과 함께 탄 부총관이 두려운 듯이 말했다.
“이 법력진은… 어디까지 닿는 것입니까? 이미 금표 구역을 빠져나온 지도 한참 되었는데….”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리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자영이 작은 소리로 답했다. 부총관이 다시 말했다.
“이대로는 법군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력석에서 기운을 끌어내어도, 곧바로 주위로 흩어져버려 주문을 다룰 수가 없습니다. 주위의 기운도 전혀 읽을 수가 없어서….”
부총관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흔들렸다.
말하지 않아도 땅인이라면 모두 느끼고 있는 일이었다. 자영은 굳이 수선을 떨어 불안을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총사령의 마음도 모를 것은 아니었다.
눈앞에 수많은 하늘인 대열이 있는데도 그 기운이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땅인에게 있어 눈이나 손발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제 산을 다 내려왔다. 어서 관성으로 돌아가서 수비 태세를 굳히면 최악의 상황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돌 인간을 추적 중인 시현 쪽에서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다.
자영이 초조함을 억누르는데 무리의 선두가 술렁거렸다.
아래에서 하늘인 전령 둘이 달려와 무슨 보고를 하는 듯했다. 전갈을 들은 총사령이 허둥지둥 자영에게 달려왔다.
“관성이… 다천관이 습격받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수없는 거석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자영은 상체를 곧추세웠다. 나쁜 소식은 그것으로 다가 아니었다.
“더구나 마력석이 있는데도 법군들이 주문을 못 쓴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다천관에까지 문제의 법력진이 깔린 모양입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자인이시여!”
총사령의 음성은 보고가 아니라 부르짖음에 가까웠다.
우려했던 최악의 사태였다.
* * *
“어떻게 된 겁니까. 이 마력회로를 부수면 안 되는 겁니까?”
단이 시현 곁에 붙으며 물었다.
시현은 정색을 한 채 감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내키지 않는 듯 말했다.
“회로가 모아들인 법력이 대지의 기운과 단단히 얽혀 있다. 함부로 부수면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
“영향이라면…?”
“폭삭!”
감람이 유쾌한 어조로 말을 가로챘다.
“이 일대가 다 무너지는 거지. 알지? 땅속의 마력은 대지의 대들보나 마찬가지야. 일정 이상 기운을 잃으면 대지가 형태를 유지할 수 없어.”
단은 인상을 잔뜩 썼다. 대지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말은 어떻게 들어도 좋게 해석할 여지가 없었다.
최소 산사태, 최대 지진이다. 홍은산은 물론 다천관까지 범위에 들어갈지도 몰랐다.
시현이 이를 갈았다.
“중시조들을 위해 봉인고를 지어준 것처럼 온갖 선심 쓰는 척은 다 하더니, 이런 장치를 만들어 이중으로 함정을 팠나? 그러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선조들을 비난한 거냐?”
“무슨 소리야? 우리는 류해선과 한 약속을 지켰잖아. 지씨옥도 감춰주고 너희 멸망도 미뤄줬다고. 이왕 만드는 김에 기능을 좀 추가하는 거야 우리 자유고.”
“그게 기만이라는 것이다…!”
“아뇨. 진짜로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시고.”
시현의 말을 가로막은 건 감람이 아니라 단이었다. 그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한옛날에 죽은 사람들이 뒤통수를 쳤든 맞았든 무슨 상관이에요. 그 양반들은 속 편하게 발 뻗고 죽어서 관짝에 들어갔고, 지금 진짜 뭐 된 건 우린데요. 왜 그딴 일에 신경을 씁니까?”
시현이 단을 쳐다보았다. 단이 말했다.
“요는 이 발밑의 회로하고, 땅 밑의 기운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거 아닙니까. 무슨 일이 날지 몰라서.”
“그렇다.”
“그럼 회로는 안 건드리더라도 법력진이라도 깨부숴야죠. 그거 하러 온 거잖아요.”
단은 손가락을 들어 감람의 등 뒤 벽 쪽을 가리켰다.
“아마 저 벽에 쫙 늘어선 동심원이….”
감람은 조금도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가 낯빛이 바뀌어 소리쳤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아느냐?”
시현도 거의 동시에 물었다.
눈을 크게 뜨고 정색을 한 감람과 시현을 번갈아 쳐다보고서 단이 말했다.
“나리님, 저 돌 인간이랑 의외로 성격 비슷하신 거 아세요?”
“무슨 소리냐!”
“어디가 비슷해?”
이번에도 둘은 동시에 소리쳤다. 단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감람을 빤히 보며 말했다.
“저 동심원들 중에서도 그, 중심부 원이… 작고, 제일 바깥쪽 원이… 넓고….”
“어, 너….”
단이 말하는 사이 감람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시현도 곧 눈치챘다. 단은 유가 만든 마력차단 장치를 관찰한 경험 위에다가, 감람의 반응을 보아가며 답을 찍고 있었다.
“그 사이 선으로 된 원이… 세 개인, 아니다. 쟤 표정 보니까 세 개짜리는 아니고, 아마 선으로 된 원 두 개짜리가 법력진이랑 연결된 거 같네요.”
“너 대체 뭐야!”
얼굴이 새파래진 감람이 곧바로 왼손을 치켜들었다. 패 가운데에서 붉은 광선이 단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시현은 감람과 옥신각신하는 와중에도 그에게 대응할 준비는 모두 갖춰놓고 있었다.
“가로서라!”
넓은 힘의 장막이 감람의 바로 앞에 펼쳐져 광선을 튕겨냈다.
튕겨진 광선은 벽면을 향했지만, 벽을 부수는 대신 벽이 마력회로로 흡수되었다. 석실 안에서 거리낌 없이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무기 같았다.
시현은 감람을 가두는 듯한 형태로 방어막을 조정하며 외쳤다.
“호란! 감람은 내가 막으마! 넌 단이 알려주는 대로 벽의 동심원을 부숴라!”
“네!”
호란이 곧바로 벽을 향해 달렸다. 분명 가운데 원이 작고, 바깥쪽 원이 넓고, 사이의 원이… 뭐랬더라?
“그 옆에 거! 선이 두 줄인 거!”
단이 외쳤다. 호란은 벽 바로 앞에서 방향을 꺾었다.
“알았어!”
달려온 힘까지 더해진 호란의 주먹이 석실 벽에 격돌했다. 동심원의 반투명한 부분에 쩌적 금이 갔다.
“제기랄!”
감람은 호란을 향해 광선을 쏘아댔지만 전부 시현이 친 방어막에 가로막혔다.
시현이 옆에 있는 호위에게 명령했다.
“너도 호란이 하는 걸 보고 반대쪽을 부숴라!”
“예!”
호위도 마력석 짐을 전부 시현 곁에 놓아버리고 석실 반대편으로 뛰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