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 * *
“야아!”
호란이 다시 한번 벽에 붙은 동심원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처음 한 방에는 금만 가고 형태를 지켰던 반투명한 원판이 산산이 박살 나면서 파편을 튀겼다.
깨어진 벽 안쪽으로 원판의 금속부가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두 번째로 주먹이 닿으니 확실해졌다.
동심원 형태의 회로 부속은 거석의 기결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웬만하게 쳐서는 금도 안 갈 만큼 단단했지만, 내부에 흐르는 기운을 읽고 치면 부속 안쪽 석벽까지도 충격을 전할 수 있었다.
완전히 감을 잡은 호란은 다른 동심원으로 표적을 옮겼다.
이번에는 일격으로 원판의 석재 부분과 뒷벽까지 산산조각이 났다.
“제길! 이것들이!”
감람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며 호란에게 직접 덤벼들었다.
하지만 시현의 주문이 그를 앞질렀다.
“강벽으로 둘러치라!”
두터운 기운의 장벽이 감람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감람은 한 손에 구현시킨 마력구로 장벽을 때려 부쉈으나, 계속 제2 제3의 장벽이 일어섰다.
그사이 호란은 또 하나의 회로 부속을 파괴했다.
회로와 함께 파손된 석실 벽이 사방으로 금 가며 파편을 뿌렸다.
“그만하지 못해!”
“발하라!”
발이 묶인 감람이 악을 쓰는 사이, 시현은 또 하나의 주문을 터뜨렸다.
폭발은 크지 않았지만 정확한 지점에서 정확한 강도로 일어났다.
감람의 오른손이 박살 나고 손에 매어둔 패가 반쪽이 되어 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왼손의 패를 시현에게 향했다.
“아악!”
“발하라!”
다시 한번 폭음이 일었다.
두 손을 다 잃은 감람이 질린 얼굴로 몇 발짝 물러섰다.
불타버린 양쪽 소매 안쪽으로 찰흙이 끊긴 듯한 단면이 보였다.
시현은 불타버린 마력석 무더기를 발치에 떨구고 단에게서 새 마력석 걸낭을 건네받았다.
감람을 노려본 채 시현이 말했다.
“지하에 네가 모아둔 이 힘, 이 마력회로란 것을 무사히 해체할 방법을 말해라.”
감람은 이제까지 하던 것처럼 펄펄 뛰거나 화내지 않았다.
그가 얼굴을 실룩이더니, 오히려 웃음 비슷한 표정을 보였다.
“아까부터 마력회로라는 말을 하던데. 그건 마력이 돌아가는 길이란 뜻이야? 재미있는 이름이네. 네가 붙인 거야?”
“묻는 말에 대답해라.”
“흠. 역시 이름 붙이는 건 인간이 잘한다니까. 난 만드는 건 해도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시간 끌지 말고 답해라. 당장 너를 죽이고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다.”
시현이 차갑게 말했다.
감람이 혀를 차더니 옆을 곁눈질했다.
그사이에도 호란은 계속 벽에 있는 회로 부속들을 부수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의 호위 역시 느리게나마 동심원의 석재 부분을 깨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법력진과 연결된 회로 부속이 몇 개 안 남은 것을 보고 감람은 오히려 홀가분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느리고 귀찮아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체. 이 난리를 피우고도 결국 여길 포기하게 될 줄은…. 뭐 됐어. 지금 상황만 봐도 시문한테 그만한 가치는 있을 것 같군.”
감람이 시현을 보았다. 입꼬리가 웃는 듯 마는 듯하게 비틀렸다.
“자존심 상하지만 인정할게. 녹렴 말이 맞아. 넌 지나치게 큰 변수야.”
감람의 두 눈이 주홍빛으로 빛났을 때, 시현은 이미 주문을 펼치고 있었다.
“가로서라…!”
서두르느라 보호막의 형태도 다 못 갖춘 기운의 덩어리가 감람을 석실 한쪽으로 밀어붙였다.
불타는 듯한 광채가 눈을 찌르고 폭음이 뒤따랐다.
보호막과 벽 틈새로 밀려 나온 충격파가 석실 안을 휩쓸었다.
석실 한가운데 있다 기운에 떠밀린 시현과 단은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시문 님! 단!”
벽 쪽에 있던 호란이 놀라 소리쳤다.
폭발로 부서진 돌가루가 흩날려 눈앞이 뿌옜다.
호란의 목소리를 들은 시현이 소리쳐 답했다.
“괜찮다! 법력진부터 마저 부숴라!”
“아, 네!”
둘에게 달려오던 호란은 발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폭발이 일어난 석실 한쪽은 완전히 무너졌지만, 여파가 닿지 않은 곳에는 법력진 부속이 아직 남아 있었다.
“아윽, 시발….”
바닥에 정통으로 부딪힌 단이 뒷머리를 쥐며 신음했다.
단과 겹쳐 쓰러지며 본의 아니게 그를 방석 삼아버린 시현이 허둥지둥 몸을 비켰다.
“단, 괜찮으냐?”
“아니…. 윽. 감람 녀석, 도망친 겁니까?”
단이 밀려 올라간 안경을 내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감람은 지난번에도 제 몸을 통째로 터뜨려서 도망쳤었다.
하지만 시현은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기결을 불살랐다. 자폭한 것 같다.”
“미친….”
단이 일어난 뒤에도 시현은 땅을 짚은 채 바닥만 보고 있었다.
머리 박은 건 난데 왜 이 녀석이 이러고 있어? 단은 속으로 투덜대며 시현을 부축해 일으켰다.
“나으리, 무사하십니까!”
석실 반대편에 있던 호위가 분진을 뚫고 뛰어왔다. 놀라 혼이 나간 얼굴이었지만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곧 호란도 석실 가운데로 달려왔다.
“시문 님! 다 부순 것 같아요!”
시현은 호위에게도 호란에게도 대답하지 않았다. 표정은 심각했고 시선은 여전히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나리님? 일단 나가시죠. 여기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단이 말하면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폭발의 충격이 지나간 뒤인데도 머리 위로 뚫린 긴 석굴에서는 메아리 같은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호란이 바로 바닥을 차고 뛰어올라 석굴 아래쪽 벽에 매달렸다. 그가 아래로 한 팔을 뻗으며 말했다.
“오세요! 내려올 때 한 것처럼 벽을 타고 올라가면 돼요.”
그렇지만 시현은 호란의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가 여전히 바닥을 주시한 채 말했다.
“아니, 나는 지금 갈 수 없다.”
“네?”
“지하에 모인 막대한 기운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감람이 자폭하면서 석실이 부서진 영향 같다. 일이 어떻게 흐를지 모르니 이대로 놓아둘 수는 없다.”
호란이 도로 천장에서 뛰어내렸다. 단도 질색하는 얼굴이 되었다.
“어쩌시려고요? 잘못하면 생매장이에요!”
“맞아요. 너무 위험해요!”
“당장의 붕괴는 내가 수습할 수 있다. 너희는 먼저 올라가거라.”
“말도 안 돼요!”
호란이 따지려 했지만 시현은 한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집중해야 하니 방해 말거라.”
“시문 님!”
“괜찮다.”
시현은 정신이 온통 다른 데 팔린 얼굴로 천천히 말했다.
“법력진이 사라진 지금은 전부 알 수 있다. 땅 아래 기운이 얼마나 모여 있고 이 회로들이 어디까지 어떻게 뻗어 있는지…. 괜찮다. 내가 막을 수 있다.”
“제 걱정은 그게 아니라, 시문 님이 여기 계시는 게 안 괜찮다고요! 뭘 하실 건지 몰라도 바깥에선 못 하나요?”
호란이 안달했지만 시현은 더 이상 대답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호란이 단을 보았다.
“이거 어떡해? 시문 님이 지금 뭘 막는다는 거야?”
“아까 감람이 말했잖아…요. 이 아래 기운 잘못 건드리면 이 일대에 산사태나 지진 같은 게 날 거라고요. 다천관이 휘말리면 인명피해가 크겠죠. 그걸 어떻게 하시려는 모양인데….”
단은 다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더 지났는데도 석굴의 울림은 그치지 않고 있었다.
아래가 무사한들 위쪽이 무너지면 생매장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천관 호위가 호란 못지않게 안달 난 얼굴로 말했다.
“위가 위험 앞에 계시도록 두라는 것은 아래가 감히 따를 수 없는 영이오. 억지로라도 모셔가야 하지 않겠소?”
“그렇…기는 한데.”
호란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단이 뒤에서 시현을 쏘아보며 중얼거렸다.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킬까요.”
“아니 그건 좀.”
자기가 말해놓고 호위가 허둥지둥 손을 저었다. 하지만 그가 몰라서 그렇지, 한번 작정한 시현을 억지로 데려갈 방법은 그 외에는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자칫 잘못하면 다천관이 통째로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날아갈 위기 상황이다. 어설픈 설득이나 막무가내에 시현이 응할 가능성은 전무했다.
다만 단의 경험상, 시현은 불가능한 도전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얼토당토않아 보여도 대체로 사실적시였다. 정말 재수 없지만 그랬다.
단은 잔뜩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나리님께서도, 감당할 자신이 있으니까 여기 계신다는 거겠죠. 반 각만 있어 봅시다. 정말 무너질 것 같으면 억지로라도 모시고 나가고요.”
“그래야 하나….”
호위는 불안해하면서도 단의 말에 수긍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호란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긴장한 목소리가 되어 빠르게 말했다.
“아니, 아냐. 이렇게 하자. 내가 시문 님 곁에 있을게. 너희 둘은 올라가. 그리고 빨리 다른 땅님들을 불러와.”
“예?”
“다른 분이라니, 어느 분을 말씀이오?”
호위가 물었다. 호란이 초조하게 답했다.
“싸울 수 있는 분이면 누구든지! 운모가 올 거야!”
“그 머리 긴 돌 인간? 다천관에 간 게….”
“여기로 올 거야! 시간 없어 어서!”
* * *
“2군, 3군, 발문!”
자영이 소리 높여 호령했다.
다천관을 향해 접근하던 십여 개의 거석들이 쏟아지는 불과 벼락에 차례차례 주저앉았다.
“1군은 부속 대열과 함께 남은 놈을 정리한다! 나머지 전군, 본성으로 진격한다!”
“와아아!”
부대의 하늘인들이 목소리를 높여 호응했다.
땅인의 가마와 남여를 지지 않은 하늘인 대열은 벌써 저만치 달려나가고 있었다.
바로 직전만 해도 자영이 이끄는 다천관 법군은 반쯤 공황 상태였다.
강력한 법력진 탓에 법술을 아예 못 쓰게 된 데다가, 산을 내려오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다천관을 향해 몰려가는 수십의 거석 떼였다.
당장 도망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거석 떼와 맞닥뜨리기 전, 천만다행으로 법력진의 기색이 사라졌다.
주위를 꽉 채운 적막이 걷히고 대신 땅과 사람의 기운이 머릿속을 간질이기 시작하자 자영은 곧바로 가마에서 일어났다.
“법력진이 사라졌다! 법군 모두는 발문을 준비하라!”
틀림없이 시문께서 손을 쓰신 것이다. 자영은 가슴이 벅차는 것을 누르며 최대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자영의 호령에 다른 땅인들도 상황이 변한 것을 깨달았다.
그 후는 일사천리였다. 눈앞의 거석 떼를 쓸어버린 부대는 공격을 받고 있는 다천관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성이 가까워지자 자영은 어이를 잃었다.
전황은 좋지 않았다. 수십의 거석과 대장석이 성벽 바로 아래까지 이르러 하늘인 대열을 짓밟고 있었다.
그런데 주문을 쏘아대야 할 성벽과 각루가 잠잠했다.
그 탓에 제법 많은 수의 하늘인 대열도 평소만큼 몫을 하지 못하고 피해가 커지고 있었다.
법력진이 사라졌고 다시 법술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지금쯤이면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전투에 나서는 법군이 거의 없었다.
각루에 사람도 적고 깃발도 덜 걸린 것이 자리를 안 지키는 자들이 많은 것 같았다.
법술을 못 써 당황했었다 한들 지금은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자영은 울화통이 터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