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 * *
온의는 자기가 말을 하고선 자기가 놀란 듯했다.
그는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엉뚱한 말을 꺼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딸애는 나를 참 많이 닮았던 거 같아. 말 많고 수선스럽고, 일 만들기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친구가 정말 많았다네. 나이도 출신도 안 가리고 오만 사람들하고 어울렸지.
그래서… 그 애가 대체 어디 가서 지씨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온 건지, 나는 지금도 짐작이 안 간다네.”
헌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시현이 조심스레 말끝을 흐렸다.
“그 말은, 그대의 딸이 죄를 받은 건….”
온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 과목 공부하는 학생 애들하고 어울려서, 홍은산 금표 구역을 발굴하자고 이야기하고 다녔다는 게야. 이젠 지씨옥도 팔아버리고 없으니까, 홍은산을 계속 금구로 둘 필요가 없다고 그랬다더군.
때마침 홍은산에 도굴 미수 사건이 났는데. 그걸 기화로 딸애가 있던 모임 애들이 줄줄이 연루되었네. 죄가 많이도 걸렸네. 관성의 기밀을 팔았다, 중시조가를 모욕했다, 불온한 도당을 결성했다…. 보통은, 어느 정도 집안 되는 아이들은 그런 죄에 안 걸리는데. 그때만은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었어.”
온성은 당시가 떠올랐는지 막막한 얼굴을 했다.
“파벌 다툼에 바쁘던 길사들이 갑자기 한목소리가 되어 물어뜯는 걸 보고 겁이 더럭 났네. 이건 죽고 사는 문제구나. 우리 애가 입에 담은 비밀이 누구의 목숨줄을 흔들었구나.
당시엔 일이 그렇게까지 커진 게 다 지씨옥 때문이라고 생각했네. 물 때문에 조씨 휘무에게 지씨옥을 몰래 내어준 건, 팔대관성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일이 맞았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모든 일이 드러나고 보니… 진짜로 문제가 된 건 홍은산의 금표를 해제하자는 주장이었던 것 같으이. 그렇지 않은가?”
“그랬겠지…. 그랬을 것이네.”
시현이 쓰게 대답했다. 헌수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저는 누님이… 홍릉 도굴범하고 어울려 다녔고, 군 기밀을 팔았다고 들었습니다. 금표 구역을 조사하려고 하셨다는 이야기는 전혀….”
“당연히 그 이야기는 공공연하게 나오지 않았지. 그 이야기를 하고 다니지 못하게 하려고 죄를 준 게 아니냐. 당시 사람들이야 대충 알았지만, 너는 그때 너무 어렸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누님은 누명을 쓴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헌수가 정색이 되자 온성은 곤란한 낯을 지었다.
“어…. 그런데 도굴범하고 연관이 된 것은 맞긴 했다. 그쪽에도 친구가 있었거든. 그래서 더 죄를 빠져나갈 길이 없었지. 말했지만 선이는 정말로 친구가 많았단다. 아무래도 나를 닮은 탓 같아.”
“…….”
헌수의 표정은 정말로 복잡했다.
시현이 심각하게 말했다.
“그래도 따님은 죄가 없네.”
“음. 지씨옥의 비밀을 흘린 것은 대역이 맞지.”
“하지만 지씨옥은 명목상의 죄였잖은가. 따님은 은폐를 위해 희생된 거야. 더구나 따님과 학생들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네. 그때부터라도 홍은산의 금표 구역을 해제하고 봉인고를 조사했다면, 분명 많은 것이 달라졌을 걸세.”
시현의 언성이 살짝 올라갔다.
“따님 일이 있었던 게 26년 전이라 들었네. 그때라도 돌 인간의 일이 세상에 드러났다면, 분명 변고를 막을 기회가 있었을 텐데…!”
온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그게 자네 생각과는 좀 상황이 달라. 일이 터졌을 때 딸애는 그저 당황하기만 했네. 내가 이야기를 들으러 갔더니 다짜고짜 울음부터 터뜨리더군. 이번 일 때문에 올해 격 시험을 못 치르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자기 공부 정말 많이 했다고, 이번에는 정말 붙을 자신 있었다고….
망할 놈. 공부를 하긴 뭘 해? 토 과목도 아니면서 엉뚱한 놈들하고 어울려 다녀놓고선…!”
온성의 얼굴이 회한에 찼다. 그가 낮게 말했다.
“그 애는 그때 열여덟 살이었어. 무슨 신념을 갖고 주장을 한 게 아니었네. 홍릉에 호기심이 있었을 뿐 정말로 조사가 이루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생각도 해보지 않은 것 같았네. 더 이상 봉인지에 지씨옥이 없다는 게, 팔대관성의 권위를 얼마나 뒤흔드는 일인지도 몰랐어.”
“그렇다면 더더욱 그런 죄를 받을 일이 아니잖은가.”
“그건 그렇지…. 나도 속으로, 그 애에게 그렇게 큰 잘못은 없다고 생각했네. 애가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일은 벌어졌고, 결국 나는 선택을 해야 했네. 묵묵히 딸의 망신을 무릅쓸지, 아니면 아이를 구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울지. 이래 보여도 내가 친구는 참 많았거든. 내가 딸애를 살리겠다 마음을 먹었다면 대신 죽는 것이 한두 집안이 아니었을걸세.”
온성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가 않았어. 싸우고 싶지 않았네. 내 동료들, 내가 봉사하던 관성, 내가 알던 가치와, 명예와, 권위와… 그런 것들을 적으로 삼고 싶지 않았네. 결국 내 선택은 도망치는 것이었네. 선이에게도, 헌이에게도 미안한 일이었지만.”
헌수가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온성은 시현을 바라보았다.
“자네 말대로, 26년 전에 내가 선이를 위해 싸움에 나섰다면 무언가 바뀌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변고를 막을 길을 찾았을지도 모르고….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그때 싸웠어야 했다고 여기는가?”
시현은 입을 다문 채 온성과 눈을 맞추었다. 상대가 진심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것을 알고 시현이 말했다.
“싸웠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건, 지금 결과를 아니까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헌수가 항의조로 중얼거렸다. 온성이 덧붙였다.
“그때로 되돌아가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걸세. 당시 항변에 나선 다른 집안은 대부분 좋지 않게 끝났어. 심씨 자인의 이모 되는 사람도 그때 죽었네. 그이가 홍릉 일만 되면 눈에 불을 켜는 것도 다 사연이 있는 것이지.”
“그래도 그대는 지금 후회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제 와서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겠지.”
시현이 조용하게 말했다.
온성은 허를 찔린 것처럼 멍한 얼굴이 되었다. 헌수가 당황한 기색으로 온성을 보았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온성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그래. 후회하네. 이제 와서, 봉인고의 진실을 알아서가 아니라. 변고를 막았어야 해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줄곧 후회했네. 왜냐하면 그 애는, 시험을 보고 싶어 했어.”
온성의 말은 그답지 않게 중언부언했다. 그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죄를 인정하자고 설득하면서, 나는 딸애한테 약속했다네. 세상에는 격 얻고 벼슬하는 것보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많이 있다고. 아버지가 다 보여주겠다고.
나는 약속을 지켰네. 온 세상을 돌아다녔지. 정말 좋은 일이 많이 있었어.”
그의 목소리가 추억에 잠긴 듯 아련해졌다. 하지만 그 끝에는 애통이 스며 있었다.
헌수가 말했다.
“아버지는 누님께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셨어요. 거기 대해서는 세상 누구도 뭐라고 못 할 겁니다.”
“그래. 나도 그 애도 많이 노력했어. 지나간 일, 이미 잃어버린 것들은 놓아 주고 기쁘고 즐거운 일을 새로 찾아보기로 약속했지. 백 가지 기쁨을 찾자고, 상단 이름도 그렇게 지었단다. 힘든 날보다는 행복한 날이 더 많았지.
그래도 그 애는 시험을 보고 싶어 했어…. 자신이 땅인으로서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어. 그렇지 않다고, 넌 그렇게 잘못한 게 아니라고 계속 말해줬지만 소용이 없었어. 그럴 만하지. 말하는 나부터가 도망친 사람이었으니까.”
방 안은 조용했다. 대화에 끼지 않은 단과 철보마저 말이 없었다.
온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 보였다.
“아이고, 숙연한 거 봐라. 그런 얼굴들 하지 말게! 후회 없이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다시 말하지만 나는 26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거야. 선이를 위해서도 헌이를 위해서도 그게 최선이었고, 내 생각은 변하지 않네.
나는 그냥, 가끔 생각한다네. 내가 그때 아이를 위해 싸웠다면, 선이가 내 말을 믿었을까…?”
이번에는 시현도 대답하지 않았다. 호란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중간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온성의 마지막 질문을 들은 순간 다 흩어져버렸다.
각자 무엇을 생각한들, 입 밖으로 내어선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런 일은 그냥 그대로 둔 채 시간이 흘러가게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22. 실마리
“시문 님, 쉬겠다고 하셨잖아요! 쉴 테니까 오지 말라고 헌의 나리한테 으름장 놓으셨잖아요!”
“진짜인 줄 알았느냐? 말을 그렇게 한 것이지.”
시현은 태연하게 말하며 좌탁 위에 새 종이를 얹었다. 호란은 약이 올라 안달을 했다.
봉인고를 허문 지 이틀째, 시현은 내내 유의 창고와 책상 앞만을 오가고 있었다.
유에게서 마력회로의 원리를 배우고, 유가 개발새발 써 놓은 연구 기록이나 발상을 새로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천관에 머문 동안 매일같이 하던 산책까지도 그만두고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감람의 장치 해결하는 것도, 다천관 사람들더러 전부 알아서 하라고 하셨잖아요….”
“알아서 하게 할 셈이다. 이건 내가 필요해서 정리하는 거야.”
“어차피 감람은 죽었는데….”
호란이 투덜거리자 옆에서 유가 기록한 걸 정리하고 있던 단이 말했다.
“음. 그건 상관없죠. 감람이 죽었어도 감람이 만든 물건들은 많이 남아 있을 겁니다. 다른 돌 인간들이 쓸 수도 있을 거고. 원래 도구란 건 그런 거잖아요.”
“하지만, 도구를 사용하는 돌 인간은 감람뿐이잖아.”
“바로 그러니까요. 애초에 돌 인간이 자기 능력을 도구 형태로 만들 필요가 뭐가 있어요? 원리를 간파당하기도 하고, 빼앗기기거나 부서지기도 하고… 감람 자신은 그것 때문에 손해만 봤잖아요.
그런데도 제 능력이 아니라 도구를 개발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동료 돌 인간들하고 능력을 공유하려고 한 거죠.”
“그랬겠죠….”
유가 중얼거렸다.
제가 연구하던 것이 돌 인간의 소산이란 걸 들은 이후, 유는 시시로 기분이 하늘과 땅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시현이 관심을 갖고 함께 연구를 정리해주는 것은 기쁘지만, 그게 돌 인간의 것이었다는 데는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저는 저처럼 마법을 못 쓰는 사람들이 마법을 쓰기 위한 도구인 줄 알았는데. 저랑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게 전부 돌 인간이 만든 것이었다니. 그것도 사람들을 해치기 위한 물건이었다니….”
유가 풀 죽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시현이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도구란 만들기 나름이고 쓰기 나름이다. 감람은 세상과 사람을 해치기 위한 물건을 만들었지만, 너는 다르지 않으냐. 그리고 네가 이 연구를 계속해온 덕택에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산 것이 아니냐.”
이틀 동안 시현은 유에게 이 이야기를 골백 번씩 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유는 시시때때로 기운을 잃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