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 * *
시현과 단이 유의 연구를 정리하느라 바쁘게 지내는 사이, 호란은 주로 다천관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온성의 심부름을 하거나 단이 주문해둔 물건을 받아 오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그냥 돌아다니는 일이 많았다.
며칠 사이 다천관의 분위기는 많이 흉흉해져 있었다. 거석의 습격으로 피해가 컸기 때문이었다.
가을 파종을 앞둔 밭이 짓밟히고 수원도 여러 곳 상했다. 인명 피해도 없지 않았다.
관에서는 홍은산에 나타난 돌 인간을 퇴치했음을 공표하고 빠르게 복구에 나섰다. 하지만 사람들의 불안까지 쉽사리 가시지는 않았다.
지금 호란이 줄을 선 기름떡 가판 주위에서도 사람들이 이런저런 소문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근데, 지금 다천관에 문이 와 계신다는 건 정말이야?”
“그렇다더라. 금표 구역에 나온 돌 인간을 문이 다 잡으셨다던데.”
“근데 정말 문이 오셨으면 왜 관에서 발표가 없어?”
장터에선 내내 비슷한 갑론을박이 반복되고 있었다.
싸움이 끝난 후, 관에서는 홍은산에 대동한 정예부대에 강력한 함구령을 내렸다.
시현의 존재뿐 아니라 당일 있었던 모든 일이 비밀에 부쳐졌다.
그래도 워낙 목격자가 많아 소문이 퍼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시현의 방문을 공표하지 않은 것은 일장일단이 뚜렷했다.
다천관의 정치 문제에 가능한 한 관련되지 않고, 시간과 신경을 덜 써도 되는 것은 확실히 좋았다. 하지만 그만큼 발휘할 수 있는 영향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이것도 괜찮지 않을까? 시문 님은 이제까지 너무 고생했잖아. 호란은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시현은 민심을 달래겠다고 공식 석상에 나서고, 피해를 복구하고 회의를 하느라 아침부터 밤까지 분주하게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모든 일을 시현이 다 떠맡을 필요는 없었다. 아니 그래선 안 됐다.
호란은 사람들이 불안해한다는 이야기도 시현에게 전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당장 누가 죽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은 다천관 땅님들이 알아서 잘 할 것이다.
떡장수가 다 익은 기름떡을 종이봉투에 포개 넣었다. 빵빵하게 찬 봉투를 여미면서, 떡장수가 옆 가판 사람에게 물었다.
“그래서 문이 오신 게 사실이라 치면…. 와 계신 분이 어느 쪽 문이라셔? 위쪽? 아래쪽?”
“위쪽 분이 아닐까? 아무래도….”
“뭐?”
호란은 무심코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야, 어느 쪽 문이라니?”
수다를 떨던 반민 장사치들이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호란이 다시 물었다.
“위쪽 문이란 게 대체 뭐야, 문은 세상에 한 분뿐이잖아?”
사람들의 안색이 흐려졌다. 모두가 소문을 떠들고 있어서 경각심이 흐려졌지만, 문을 두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얼마든지 죄가 될 수 있었다. 다들 허둥지둥 머리를 조아렸다.
“아이고, 용서하십시오. 저희가 허튼 소리를….”
“아니야. 화 내는 거 아니니까 말해 봐.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기름떡 장수가 주위의 눈치를 보더니 주뼛주뼛 입을 열었다.
“그, 이제는 문이 두 분 계시다고 하지 않습니까, 남운관에 한 분, 대운관에 한 분….”
“뭐어?”
호란은 이번에야말로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소문 주고받는 사람들을 다그쳐 보았지만 그 사람들이라고 제대로 아는 것은 없었다. 몇 주 전부터 대운관에 새로운 문이 있다는 소문이 돈다는 게 다였다.
다천관 북쪽에 있는 대운관은 팔대관성 중에 가장 크고 오래된 도시였다. 왕조시절 세상의 수도였고, 지금도 북방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천관과 그 이북 지방에서는 가장 알아주는 동네로, 예전부터 왕가를 비롯해 훌륭한 가문이 많은 동네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다른 잘난 땅님이 아무리 많았대도, 그게 문이 있다는 증거는 안 되지 않나?
호란은 그냥 헛소문이란 결론을 내리고 기름떡을 사서 돌아섰다. 그래도 괜히 기분이 찜찜했다.
장터를 나가려는데 나각과 북소리가 들렸다. 큰길에 놀이패가 지나가고 있었다. 악대 뒤에 분장한 화동들이 꽃종이와 동전을 뿌리고 있어 사람이 새까맣게 몰렸다.
놀이패 맨 앞의 사람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대운관 어사가 왔다! 대운관 위씨 교문께서 베푸는 은전이니 모두 엎드려 받으라!”
동전을 주우러 모이는 사람들 뒤에서 군중이 수런거렸다.
“교문이래!”
“시문이 아니고?”
“정말 대운관에 문이 계셨나 봐!”
호란은 모든 어이를 상실하여 하마터면 기름떡 봉지를 떨어뜨릴 뻔했다.
저 사람들 사기꾼들 아닌가? 대로에 저렇게 다니게 놔둬도 돼?
잡아가야 하는 것 아냐?
* * *
기름떡 봉지를 끌어안은 호란이 쏜살같이 온성의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는 헌수가 와 있었다.
온성과 철보는 볼일로 나갔고, 시현과 헌수가 찻상을 받으려던 참이었다.
호란이 장터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털어놓자 시현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차를 들이고 자리를 비켜주려던 단까지 정색을 하고 돌아와 물었다.
“네? 시문 나리님 말고 문이 또 있다고요? 대운관에요?”
호란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럴 리가 있어? 그런데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 다천관 사람들도 진짜로 믿는 것 같아. 전부터 알음알음 돌아다니던 소문인데, 이번에 홍은산 일이 터지면서 확 퍼졌다나 봐.
근데 진짜 말도 안 되는 게 뭔 줄 알아? 그 사람들, 대운관 문을 위쪽 문, 시문 님을 아래쪽 문이라고 불러! 남쪽이 지도에서 아래쪽이니까 시문 님이 아래쪽이래!”
“쯧, 험.”
헌수가 헛기침을 했다. 그는 불쾌한 듯 난처한 듯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경을 칠 것들이. 감히 뚫린 입으로 허튼소리를! 유언비어를 엄금한다 몇 번을 포고했거늘.”
시현이 헌수를 보았다.
“자네는 뭔가 알고 있는가?”
“알고는 있었네만, 솔직히 엊그제까지만 해도 입에 올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네. 워낙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
“그러면 지금은?”
헌수의 말에서 암시를 읽은 시현이 물었다. 헌수는 정말로 불편한 얼굴이 되었다.
그가 헛기침을 몇 번씩 하고서 어렵게 말했다.
“실은… 얼마 전, 대운관에서 문을 자칭한 사람이 나왔네.”
“네에? 진짜로요?”
“자칭이라고요….”
호란은 입을 딱 벌렸다. 시현이 땅인들과 이야기할 땐 좀처럼 입을 여는 법이 없는 단까지도 당혹한 듯 중얼거렸다.
헌수가 말했다.
“소문은 전부터 돌고 있었네만, 이제까지 다천관에서는 허위라 판단하고 일절 대응하지 않았네. 그런데 오늘 오전 대운관으로부터 정식 사절이 도착했어. 저들한테 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절을 어사(御使)라 칭하고, 대운관에 새로 문이 등극했음을 주장하며 우리 쪽 총치총령 명의의 축전을 요구하고 있네.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어쨌든 정식 사절의 말이니 묵살할 수도 없고…. 일단 사절을 맞아들이고 대응을 논의 중이네. 자네에게도 알려둬야겠다 싶어서 찾아온 걸세.”
시현이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 물었다.
“그래서 정말로 문이 새로 났다고?”
“말도 안 돼요! 세상에 문은 시문 님 한 분뿐이잖아요?”
호란이 펄쩍 뛰었지만 시현이 손을 저었다.
“아니다. 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자격만 갖추었다면 문은 두 명이든 세 명이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구나. 변고 전에 문에 달한 이가 있다면 진즉 세상에 알려졌을 텐데.”
“그것이 말이야…. 아무래도 대운관이 말하는 ‘문의 등극’은 변고 전이 아니라 최근인 모양이야. 다천관에 소문이 닿은 것도 몇 주 안 되었네.”
헌수가 말했다. 시현이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그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제아무리 자질과 능력이 넘친들, 세상에 법력이 없어졌는데 어떻게 문에 달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말할 가치도 없다는 게 아닌가. 당연히 거짓말이지.”
헌수가 경멸조로 말했다.
“뭘 모르는 아랫것들이나 소문에 놀아나지, 물정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진짜로 새로운 문이 났으리라고 믿지 않네. 대운관에서 주위에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 허위 주장을 하고 있는 걸세.”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헌수의 단호한 태도에 호란은 괜히 의기양양해졌다. 하지만 시현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문을 사칭한다고? 이 혼란한 시국에? 대체 무슨 생각으로….”
“물론 시국을 틈탄 거지. 벽명관이 함락된 지금 대운관은 북방산 마력석 대부분을 틀어쥐고 있잖은가. 놈들은 이 틈에 팔대관성의 힘의 구도를 다시 짜려는 걸세. 예전처럼 대운관이 수도 노릇이라도 하고 싶은 거겠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않은가….”
시현이 말끝을 흐렸다.
대운관처럼 유서 깊은 도시가 세상의 위기를 틈타 관성 간 권력 다툼에 나선다는 것은 허망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이었다.
헌수가 다른 말을 꺼냈다.
“자네, 혹시 위씨 교인을 기억하는가? 우리 서격원 동기 중에.”
“기억하네만. 분명 대운관 출신이었지. 설마.”
“그이네. 그가 문을 자칭했네. 위씨 교문이라 칭하고 있네.”
“정말로 교인이?”
아는 이름을 듣자 시현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이가 대체 왜 이런 일을…. 그이는 동기 중에서도 특출나게 명철한 이였는데.”
“똑똑하고 교활한 자니 더더욱 기회를 놓치지 않는 거야. 돌 인간과 싸우는 데는 힘을 합치더라도, 앞으로는 팔대관성 안에서 대운관이 우위를 갖고 싶다는 거겠지.
이번에 우리에게 축전을 요구한 건 가벼운 인사치레지. 앞으로는 다양한 방면에서 다천관에 압박이 들어올 걸세.”
헌수의 어조가 점점 더 느려지고 신중해졌다. 시현은 슬슬 헌수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알 것 같았다.
헌수가 시선을 피한 채 말했다.
“다천관이 중부로 쳐지기는 하나 여기 사람들은 지금도 천천곡을 가운데 두고 상방과 하방이란 말을 쓰지. 여긴 예로부터 대운관의 일에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는 지역이야. 그래서… 이 땅의 총령부 도총관으로서나, 다천관 서격원 원외이사로서나, 나는… 자네가 공식적으로 교인이 문인 것을 부정해줬으면 싶기는 해.”
시현은 망설이는 얼굴이 되었다.
원래라면 관성 간의 알력은 시현이 결코 발을 들여선 안 될 문제였지만, 이번 일은 그보다 더 복잡했다.
하지만 그가 무슨 결론을 내기 전에 헌수가 먼저 말했다.
“하지만 친구로서는 말리고 싶네.”
시현이 헌수를 바라보았다. 헌수가 멋쩍은 듯 우물거렸다.
“음. 자네가 나를 친구라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동기로서, 굳이 이번 일에 말려들지 말라고 하고 싶어. 자네에겐 더 시급한 일이 있지 않은가. 이제 슬슬 북으로 떠나야지?”
복잡한 기분이 된 시현이 말했다.
“하지만 자네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겠나. 다천관의 입장도.”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해야지. 알아서, 잘.”
헌수가 웃었다. 시현은 조금 당혹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헌수가 말했다.
“내 생각에 자네는 교문… 아니 교인과 대운관 일에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 게 최선이네. 아예 대운관에 가지 말고 빙 돌아서 북쪽을 향하게.”
“그에게서는 내가 협조를 얻기 어렵다 여기는가?”
“협조라니! 공격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헌수는 어째선지 화난 얼굴이 되었다. 시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째서. 내가 진짜 문이라서?”
“그것도 있지만….”
헌수가 팔짱을 끼었다. 그가 무엇을 결심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이제와서야 생각이 미친 거지만, 난 서격원 시절 자네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린 게 교인이라 생각하네.”
느닷없는 화제 전환에 시현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