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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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이 단구읍성에 들어가고 한 시진쯤 뒤, 단과 호란은 몰래 읍성을 빠져 나왔다. 소영과 하늘인 대여섯 명도 함께였다.
목적지는 문제의 마력석 채굴장이었다.
읍성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골짜기에는 곳곳에 불이 밝혀지고 움직이는 사람이 가득했다. 인부를 교대시키며 밤낮으로 채굴을 하느라 한밤중인데도 소란스러웠다.
전방에 거의 수직으로 선 하얀 암벽이 화광을 반사하며 노란빛을 뿌렸다. 암벽 곳곳에는 갱도가 뚫려 있고 계속 사람이 드나들며 안에서 파낸 암석을 밖으로 날랐다.
바위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그 광경을 바라보며 호란이 속삭였다.
“밤 동안 정보를 모은다는 게 이런 거였어?”
“그럼 야간에 모을 수 있는 정보가 달리 뭐가 있겠어요.”
단이 대답했다.
“어쨌든 나리님은 여기 사람을 찾으러 온 거잖아요. 광산에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그중에 얼마가 청천 쪽에서 끌려온 사람인지, 소릿골 사람들은 얼마나 있는지…. 대충이라도 알아야 뭘 시작을 하죠.”
“쉿, 움직인다. 천천히 갈 거야. 발밑 조심하고, 입 닫고 따라와.”
소영이 말하고 바위 그림자를 따라 느리게 움직였다. 일행은 숨을 죽이고 그 뒤를 따랐다.
호란이 놀란 것은 소영과 그 무리가 단구읍성 마력석 광산에서 일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는 것이었다.
마력석 채굴은 힘이 엄청나게 드는 반면 광부 대접이 좋지 않아 기피되는 일자리였고 그래서 하늘인 죄수나 방랑족이 많이 흘러 들어갔다.
소영은 열세 살 이후 식량이 떨어지는 겨울마다 단구읍성 광산에 일하러 갔다. 보통 삼 개월 계약이었지만 워낙 더럽고 치사해서 한겨울이 지나면 항상 도망쳤다고 했다.
간혹 마력석 원석을 빼돌리는 인부가 있었던 탓에 광산은 강제 징발을 안 하던 시절에도 감시가 삼엄했다. 소영도 첫해에는 두 번이나 잡혔다. 하지만 마력석을 훔친 게 아니라 감독관이 재수 없어서 도망친 거라는 걸 알자 다시 작업장에 투입되었다.
다음 해부터는 항상 잡히지 않고 도망쳤고 그래도 매년 고용되었다. 마력석 광산은 그 정도로 손이 달리는 일터였다.
소영 말고 다른 방랑족 하늘인들도 대강 사연이 비슷했다. 덕택에 다들 광산 지리에 자세하고 감시 초소의 사각도 훤했다.
소영은 요령 좋게 움직이면서 채굴장 지척의 둔덕까지 일행을 끌어갔다.
하지만 그 안쪽부터는 잠입이 쉽지 않아 보였다. 갱구가 있는 암벽은 불이 훤하게 밝아 작업 경로 이외의 움직임이 다 보였고, 아래쪽 작업장과 인부 숙소는 일정 간격으로 하늘인 병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전체적인 틀은 그대론데 규모가 너무 커졌어. 감시병도 너무 많아졌고. 솔직히 끝까지 안 들킬 자신은 없는데.”
소영이 투덜거리더니 둔덕 아래를 가리켰다.
“봐봐. 저기 비탈에 개집 같은 거 수없이 선 거 보여? 저게 인부들 숙소야. 왼쪽이 하늘인, 오른쪽이 반민. 나 있었을 때보다 몇 배는 늘어났어. 그리고 건너편, 저기 좀 더 지붕같이 생긴 게 감시병들 숙소고. 저것도 훨씬 더 늘어났네.”
“그래도 적어요.”
단이 말했다. 소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보았다.
“이게 적다고?”
“네. 광산 인부로는 많지만 사방에서 끌려온 사람들 수를 생각하면 한참 적어요.”
“다들 도망가서 그런 걸지도. 여기 의외로 도망가기 쉬워. 아무리 감시병이 많아도 인부가 항상 더 많잖아. 다들 하늘인이고.”
“그것도 아닐 겁니다. 무사히 도망쳤으면 청천 쪽으로 돌아온 사람이 있었겠죠.”
단의 말에 담긴 불길한 암시에 무리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소릿골에서 온 청년 하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 못 하고 입만 여닫았다.
단이 다시 말했다.
“어떻게든 안에 있는 사람들하고 접촉해야 상황을 알겠는데요. 소릿골 출신이면 더 좋고.”
“흠….”
소영은 생각에 잠겨 눈으로 여기저기의 초소와 감시병 무리를 훑었다.
“그럼 나랑 애들이 도망가는 인부인 척하고 주의를 끌어볼게. 니네가 그 틈에 재주껏 스며들어 가 봐.”
“뭐? 그건 너희가 너무 위험하잖아?”
호란이 깜짝 놀라 물었다. 소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안 잡혀. 진짜로 도망간 적도 여러 번인데 뭐. 니네하고… 거기 소릿골에서 온 너, 이름 뭐랬지?”
“한오.”
청년이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
“그래. 너네 셋이서 잘 들어가 봐. 우리가 어디로 움직일 거냐면….”
소영은 자기 계획과 감시병들의 예상 이동 경로를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단이 고개를 끄덕이고 덧붙였다.
“혹시라도 잡히면 나리님 이름 파세요. 윗전 명 받고 조사하러 왔다고.”
소영은 좀 당황했다.
“그래도 돼? 일부러 몰래 온 거잖아.”
“광산 인부로 끌려가시는 거보다 낫죠. 싸움 돼서 다치거나 죽는 사람 나오는 거보다는 훨씬 더 낫고.”
“하하.”
소영이 작게 웃었다. 그가 눈가를 덮은 머리를 쓸어넘기고서 말했다.
“내가 먼저 버림패 하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또 남이 우리를 버림패 취급 안 하는 건 첨 겪어봐서 기분이 새롭네.”
“아니, 버림패라니? 안 잡힐 거라고 했잖아? 진짜 안 잡히는 거 맞아?”
호란이 당황해서 끼어들었다. 호란과 눈이 마주친 소영이 픽 웃었다.
“안 잡혀. 저런 등신들한테 왜 잡히냐? 나중에 너네나 잘 빠져나와.”
소영과 방랑족 출신 하늘인들은 두 무리로 갈라져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 후 한동안 아무 기척이 없었다.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기다리는 쪽이 초조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멀찍이 떨어진 초소 앞에 밝혀놓은 불항아리가 왈그랑 소리를 내며 깨졌다.
항아리를 깬 것은 어디서 날아온 큼지막한 돌덩이였다. 불붙은 탄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주위를 밝히던 빛도 훅 줄어들었다.
“뭐야!”
“탈출인가?”
병사들이 당황할 틈도 없이 이번에는 높이 피워놓은 횃불이 차례로 꺼졌다. 어둠 속에서 돌팔매가 날아와 광원을 하나하나 맞히고 있었다.
“어디야!”
“채굴장 바깥에서 날아옵니다!”
“망루등을 밝혀라! 인부 놈들 다 숙소에 집어넣어!”
감시병 머리는 바로 대열을 지휘해 대응을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을 다 파악할 틈도 없이 또 엉뚱한 방향에서 불항아리가 두 개나 깨졌다. 동시에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깁니다! 놈들이 식량 창고 쪽으로 갑니다!”
소리친 것은 소영의 목소리였다. 그래도 채굴장 병사들은 급한 상황에서 아군과 구분할 수 없을 터였다.
식량 창고란 말에 병사들은 물론 소란을 듣고 몰려나온 광산 인부들까지 술렁였다. 채굴장 바깥쪽을 지키던 병사들이 와르르 한쪽으로 몰렸다.
반대로 안쪽에 있던 병사들은 광산 인부들을 숙소와 작업장으로 몰아넣느라 바빠졌다. 담당한 위치를 지키는 병사들도 시선은 온통 소란통 쪽에 가 있었다.
그사이에 호란과 한오, 단은 기는 듯한 속도로 살금살금 움직여 구릉을 내려왔다.
이쪽은 아직 불이 밝혀져 있었지만 그래 봐야 대낮같이 밝은 것도 아니었다. 채굴장 반대편의 소란에 정신이 팔린 병사들은 그림자 진 곳을 따라 숙소동에 접근하는 일행을 눈치채지 못했다.
“너 이 새끼들! 나와 돌아다니지 말랬지!”
호란과 한오가 병사의 눈에 띈 것은 하늘인 숙소에 충분히 가까워진 뒤였다. 둘을 본 병사가 대뜸 소리치며 다가왔다.
둘은 읍성을 나오기 전, 소영네 무리에게서 빌린 거친 옷으로 바꿔입은 터라 딱히 인부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호란은 일부러 어눌한 척 말했다.
“원래 작업 나갈 차례였는데, 자다가 때를 놓쳐서….”
“됐어! 지금은 일단 들어가 있어! 얼른!”
병사가 으르댔다. 호란과 한오는 병사에게 쫓기는 척 제일 커다란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 안은 광원 하나 없이 캄캄했지만 소란스러웠다. 잠에서 깬 하늘인들이 밖에서 무슨 일이 났냐며 너나없이 떠들고 있었다.
호란은 안쪽으로 몇 걸음 들어간 뒤 단에게서 받은 밀랍초에 불을 붙였다. 빛이 비치자 떠들던 사람들이 일제히 이쪽을 바라보았다.
호란은 초를 한오에게 넘기고 크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중에 소릿골에서 온 사람 있어?”
“하, 한오야!”
불빛에 드러난 한오의 얼굴을 보고 사람 몇이 다가왔다. 다들 퀭한 얼굴이었지만 한오는 바로 알아보고 울먹이며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된 거야, 너까지 끌려왔니?”
“그건 아냐. 사정은 나중에 말하고…. 왜 이거뿐이야? 다른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랑 형은?”
“반쯤은 다른 숙소에 있고, 네 가족들은….”
나이 든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한오의 음성이 다급해졌다.
“어떻게 됐는데?”
“다른 작업장에 갔다. 도망치려다 잡히거나, 작업 태도가 나쁘다고 찍힌 사람들은 또 다른 데로 보내져.”
“다른 데 어디?”
“그건 몰라. 간 사람만 있고 돌아온 사람은 없어서. 그리고….”
남자가 얼굴을 떨어뜨렸다.
“현지 머리랑 아성이네 남매는 도망가다 잡혀서 죽었다. 여기 병사 놈들은 짐승이야. 몫꾼을 몫꾼 취급을 안 해. 아니, 사람 취급도 안 해.”
한오는 입을 딱 벌렸다.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아니 아성이 그 순한 애가…. 도망은 왜 갔어? 감시병들이 저리 서슬이 퍼런데….”
“억울해서 어디 버티겠냐!”
남자가 억눌린 고함을 뱉었다. 그가 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억지로 끌려와서 사람 취급도 못 받는데, 심지어 우리가 캔 마력석, 우리 동네로 가는 것도 아니란다. 그러면 우리가 왜 여기서 일을 해야 하냐? 저 병사 놈들 사실은 벽명관 사람들이 아니래. 알고 보니 대운관 놈들이….”
그때 호란이 움직였다. 몰래 벽에 붙어 문가로 다가가던 사람 하나가 한 발을 더 못 딛고 호란에게 덜미를 채였다.
호란은 상대의 정강이를 차고 목 앞을 눌려 숙소 바닥에 처박았다.
“소란 부리지 마. 우릴 위험하게 하면 바로 죽일 거야.”
상대를 꽉 누른 호란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불빛 아래 드러난 얼굴은 서른 살 정도의 여자였다.
“어딜 가? 병사에게 가려고 했지?”
“아, 아니야….”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숙소 사람들의 낯빛이 변했다. 무리 안에 살기가 들끓었다.
“고자질꾼이 쟤였어?”
“현지 머리네가 도중에 붙잡힌 것도 쟤가 일러서 아냐?”
“아니….”
여자는 더 부인하려고 했지만 중간에 말이 막혔다. 그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죽이기까지 할 줄은 몰랐어. 그리고 놈들이…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다른 숙소에 있는 우리 무리를 멀리 떨어진 광산으로 보내버린다고 했단 말야….”
호란은 입술을 깨물었다.
단이 미리 경고해준 대로였다. 큰 숙소에는 반드시 밀고자가 있었다.
호란은 여자를 놓고 일어섰다. 떨면서 일어나 앉는 여자에게 호란이 경고했다.
“나하고 한오가 나간 뒤에도 입 잘 다물고 있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뭘 더 찔러 봐야 네 처지가 나아지긴 틀렸어. 병사들이 너나 네 무리를 놓아줄 리도 없고, 조만간 네 무리도 네가 한 짓을 알게 될 거야.”
여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무리를 위해서….”
“그래. 하지만 그런 일을 한 걸 네 무리 앞에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겠지. 사람들이 당장은 고마워할지 모르지만, 너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생각할 거 같아?”
여자는 더 말하지 못했다. 호란은 숙소 사람들을 보았다.
“이 사람, 감시만 하고 손대지 말고 내버려 둬. 그래야 대운관 놈들이 새 첩자를 심을 생각을 안 할 거야.”
“당신들은….”
“한오랑 나는 일단 여길 빠져나갈 거야. 하지만 금방 돌아올게. 어쩌면 바로 내일 올 수도 있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