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 * *
태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지요. 그리해야 시문께서 더 이상 오해하는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예, 에. 오해십니다….”
태청이 입을 열려 하자 소예는 오히려 안도한 기색이 되어 맞장구를 쳤다.
태청이 다시 말했다.
“지금 시문께서 저희를 완전히 악당 취급을 하고 계시지만, 저희가 하는 일은 모두 벽명관을 위한 것입니다.”
“벽명관을 위해서라고.”
“예. 아시겠지만 얼마 전 돌 인간의 준동으로 벽명관이 함락됐습니다. 그때 벽명관을 구원한 것이 대운관입니다. 대운관은 많은 수의 법군과 대량의 마력석, 단련된 병사들을 보내 사람들을 보호하고 요지에서 거석을 몰아냈으며 수원을 되살렸습니다. 이후로 벽명관과 대운관은 긴밀한 협의하에 서로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벽명관을 구했다고 할 때 태청은 자랑스럽게 선언하는 투였다. 하지만 시현에게선 아무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시현이 직전과 똑같은 무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자 태청은 할 수 없이 다음 말을 이어갔다.
“양 관성의 협조하에 진행되는 일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거석과 싸울 마력석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마력석 광산은 거석들에게 집요하게 노려지고 있습니다. 겁에 질린 노역자들이 툭하면 도망치기 때문에 채굴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희 대운관군이 광산을 지키고 채굴 작업을 감독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소 사람을 거칠 게 다룬 것은 저희의 부족함입니다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이 벽명관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태청은 당당하게 말을 마쳤다. 시현이 물었다.
“그러면 단구에서 밖으로 내보낸 인력과 마력석은 어찌 되었느냐?”
“사람은 거석에게서 수복한 다른 채굴지로 보냈습니다. 한번 함락됐다가 되찾은 지역으로 보낸다고 하니 사람이 도통 모이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단구읍성 이름으로 사람을 모았습니다.”
“마력석은?”
“그것은 벽명관과 대운관이 협의하에 분배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대운관은 벽명관을 구원하는 데 대량의 마력석을 사용했고, 앞으로도 계속 지원군을 유지해야 하니까요. 저희가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함락된 벽명관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일입니다.”
태청은 모든 말에 막힘이 없었다. 선 굵고 미려한 얼굴에 흠잡을 데 없는 미소가 되돌아와 있었다.
줄곧 미동 없이 이야기를 듣던 시현이 처음으로 몸을 약간 움직였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듣기로는 참으로 좋은 일이구나.”
소예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습니다! 저는 전부 벽명관을 위해서….”
“헌데 이렇게 좋은 일을 어찌해서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비밀로 하였느냐? 내가 청천을 거쳐 단구까지 오는 동안 대운관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다. 여기 채굴장에서 노역하는 백성도 병사들이 대운관 출신임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더구나.”
“그, 그것은… 총령부의 명령으로….”
소예는 곧바로 말문이 막혔다. 대신 태청이 대답했다.
“민심이 혼란한 시기니까요. 일을 모르는 아랫것들이 대운관이란 말에 다짜고짜 반감을 가질까 걱정해서입니다.”
“어째서 반감을 가지겠느냐? 대운관군이 사람을 구하고 수원을 살렸다면 부모의 원수라도 고마울 일이다.”
“남운관은 다소 외따로 떨어진 곳이라 시문께서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인접한 관성끼리는 소위 지역감정이란 것이 있습니다. 역사 또한 유구하다 보니….”
태청은 여전히 핑계가 빨랐고 태도도 태연자약했다. 하지만 시현은 더 반론할 가치도 없다는 듯 짧게 눈살을 찌푸리고 소예를 향했다.
“단구 치읍감에게 묻겠다. 그대가 대운관군에 협조하는 것, 그리고 다른 여러 읍성과 협약을 맺고 사람과 식량을 모은 것은 단구읍성 단독으로 한 일이 아니라 벽명관 총치총령의 명에 따른 것인가.”
“예! 예. 그렇습니다.”
“원래 속령의 읍성을 직할하고 조세와 역을 거두는 것은 총령부의 권한이다. 벽명관 총령부는 어째서 직접 동원령을 내리지 않고 단구읍성을 앞에 내세워 징발을 진행했느냐?”
“소관은 그리하라 명 받은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그대는 이상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는가? 지금 이것은 돌아오는 비난을 피해 그대와 단구읍성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상황이 아니냐.”
“…….”
소예는 잠깐 대답을 망설였지만 표정의 동요를 숨기지 못했다. 결국 그가 울컥한 음성으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것은… 그렇습니다. 예. 문의 말씀이 전부 옳으십니다. 저는 명에 따랐을 뿐인데 사방에서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그것이 총령부가 그대와 단구를 내세운 이유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반드시 비난을 받게 될 것을 벽명관도 대운관도 알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은…. 그래도 벽명관을 위한 일인 것은 맞습니다만….”
소예는 머뭇거리며 또다시 태청의 눈치를 보았다. 태청은 한숨을 참으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단구읍성 치읍감은 남에게 책임을 돌리기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자신이 쥐고 흔들 때는 편했는데 같은 편으로 두려니 보통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이제까지 태청은 ‘다소 잘못은 있어도 큰 그림에선 좋은 일이다’라는 틀을 짜기 위해 한참을 떠들었다. 하지만 완씨 시문이 소예에게 질문 세 개를 한 것만으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아니 원점보다 못했다. 저쪽만 정보를 얻어갔으니.
태청이 딱딱하게 말했다.
“어쨌거나 대운관이 벽명관을 구원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시현이 전제마저 부인하자 태청도 얼굴을 굳혔다. 그가 정색이 되어 말했다.
“설마 시문께 제가 감히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그대가 아예 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의도를 가지고 왜곡된 말을 한다면 거짓을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저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대는 대운관군이 벽명관 사람을 보호하고, 땅에서 거석을 몰아내고, 수원을 복구했다고 말하였지.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쯤 도움이 왔다는 소문이 벽명관 속령 전역에 퍼졌을 것이다. 나는 실상이 어땠을지를 짐작한다.”
시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백성이 아니라 벽명관의 총치총령과 일부 관인들만을 보호하고, 광산을 점령하여 복구한 것이 전부겠지. 그리고 지금은 벽명관 각지의 광산에서 마력석을 갈취하고 있다. 대운관은 기회를 틈탄 약탈자일 뿐이다.”
“…….”
태청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가 조금 허탈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런 관점도 있겠군요….”
그가 시현의 눈을 보았다.
“시문이시여. 무엇을 원하십니까? 청천에서 징발한 사람을 전부 돌려보내기를 원하십니까? 벽명관 각지의 채굴장을 폐쇄하기라도 할까요? 변고 이후 마력석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입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지금은 시문께서도 마력석 없이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다소 민폐가 있더라도 최대한 마력석을 생산해야 합니다.”
도전적인 태청의 태도에 시현은 가볍게 웃었다.
“이제야 헛된 눈가림이니 속임수가 다 치워지고, 이야기가 여기까지 되돌아왔군. 그렇지 않은가?”
소예는 태청이 강하게 나오는 데 겁을 먹은 기색이었다. 그가 시현의 눈치를 보며 제안을 늘어놓았다.
“명하시면 따를 수 있는 일은 따르겠습니다. 각 읍성에 약조한 마력석도 전부 보내겠습니다. 노역자들도, 조사하여 억울하게 징발된 자는 돌려보내도록….”
시현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 말하였다. 그대들은 내가 여기 온 이유를 오해하고 있다고. 나는 여기에 딱히 청천읍성을 대변하거나 벽명관 백성 하나하나를 보살피러 온 것이 아니다. 채굴장을 닫느냐 마느냐도 내가 간여할 바가 아니다.”
“하면….”
“나는 벽명관 관리들이 일을 하게 만들려고 여기에 왔다.”
회의장에 잠시 침묵이 스쳤다. 소예가 머뭇대며 되물었다.
“예…?”
“백성을 보살피는 것, 그것이 관이 하는 일이다. 지금 이곳 단구는 물론 벽명관 전역에 걸쳐 그 일을 하는 자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구나. 일단 단구에서만이라도 일할 자를 찾아야겠다.”
시현은 가볍게 짜증을 내비쳤다.
“이것도 처음에 말하였다. 그대들 두 사람과만 논담해서는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논담장을 넓은 곳으로 바꾸고, 광산 운영에 대해 잘 아는 관리들을…. 아니, 아니다. 보아하니 그것으로는 부족하겠다. 단구의 다른 관리를 전부 불러라. 격 없는 잡관과 실무관, 하늘인 큰머리, 그 부관도 포함하라. 조금이라도 일을 일처럼 할 것 같은 자라면 누구라도 좋다.”
“…….”
소예는 멍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천천히 말뜻을 깨달았다. 그의 얼굴이 불그스레해졌다. 그가 울컥해하며 항변했다.
“너, 너무하십니다! 그리 말씀하시면, 꼭 제가 제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대는 애초에 논외다.”
시현이 냉랭하게 말했다.
“백성을 보호하지 않으면서 조세와 노역만 거둬가는 관은 무력으로 노략질하는 무리와 다를 것이 없다. 그리하게 놓아둘 바에는 차라리 관을 없이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정말로,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소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가 울 듯한 소리로 외쳤다.
“제가, 저도 어려운 시국에서 애썼습니다! 총치총령의 명을 따라 최선을 다했습니다! 문께서 보시기에 제가 아무리 무, 무능, 아니 모자라더라도, 말씀을 그렇게까지 하셔선 아니 됩니다!”
시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예를 보았다.
“그대는 지금 내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하였는가. 이 상황을 그렇게 이해하는가?”
태청은 이마를 감싸고 싶어지는 것을 꾹 참고 소예를 불렀다.
“치읍감님. 시문께서 명하신 데 따르시지요. 정청 앞에 논장을 준비하고 관리들을 불러모으십시오.”
“자, 자네까지! 내가 이제까지 자네 말하는 건 전부….”
소예가 펄쩍 뛰었다. 태청은 소예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 전에 재빨리 말을 끊었다.
“치읍감님. 시문께서 방금, 역할을 못 하는 관부는 없애는 것이 낫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예가 움찔 얼어붙었다.
보통은 빈말로 치부되는 흔한 표현이라도,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었다.
태청이 친절한 투로 설명했다.
“시문께서는 지금 치읍감님 한 사람을 책망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문께서 보시기에 제대로 일할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단구읍성이 사라집니다.”
그는 살짝 웃음을 띠고 덧붙였다.
“자비로우신 분이니 물리적으로 없애지는 않으실 것 같고, 아마 행정단위로서의 읍성이.”
소예가 시현을 돌아보았다. 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긍정이 되었다.
소예가 아직도 수긍을 못 한 채 중얼거렸다.
“단구읍성은 벽명관의 속령입니다….”
“문령은 관성의 경계를 넘는 것입니다. 저도 이런 방식으로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태청이 말했다. 시현이 태청을 노려보았다.
“그대 또한 마찬가지다. 구원군으로서 역할하고 있다고 주장할 참이라면 실제 백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제대로 설명하거라. 그러지 않고 명령을 받았다는 말만 반복할 것이라면 당장 병사를 데리고 벽명관을 떠나라.”
태청의 눈에 순간 알 수 없는 빛이 스쳤다. 그가 곧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 명만은 거둬주소서. 저 역시 대운관에 계신 문으로부터 문령을 받고 이곳에 와 있음을 알아주십시오.”
시현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대는 방금 문령이 관성의 경계를 넘는다고 직접 말했으면서, 그 말뜻은 잘 모르는 듯하군.”
“뜻이라 하시면….”
“팔대관성의 자치권은 격의 위아래에 상관없이 서로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 허나 지나간 역사를 볼 때, 문이 관성의 경계를 넘어와서 직접 명령패를 들이대는 일이 생기면 그 지역에서 대체로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문령이 관성의 경계를 넘는다는 말은 그것을… 약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태청이 살짝 입을 벌렸다. 시현이 그를 보고 미소지었다.
“불만이 있으면 위씨 교인이 직접 여기 와서 말하라고 해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