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 * *
“전부터 의심한 건데…. 이모는 사실 날 미워하는 게 아닐까? 내가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는데, 어떻게 내 얼굴도 안 보고 너부터 챙길 수가 있어?”
시현의 방에 비스듬히 누운 해성이 천으로 싼 탕파를 끌어안고 투덜거렸다.
시현이 웃고 말했다.
“삼수도 걱정을 많이 했다. 네 무사를 알자마자 삼수에게 사람을 보내 알렸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공적인 문제부터 챙긴 거지.”
“아니야. 미워하지 않으면 그럴 수가 없어. 너무해 진짜. …그래도 어릴 때는 이모가 나 이뻐했는데…. 공부하기 싫다고 도망가도 다 받아주고. 아무래도 이모 말 안 듣고 총치총령 했다가 말아먹어서 내가 싫어졌나 봐.”
해성은 평소처럼 자기 말만 했지만 시현은 그것이 싫지 않았다.
어차피 중문 밖만 나가도 읍소하는 사람이 그득할 것, 남의와 다른 법군들이 징징대는 소리를 듣느니 해성의 불평을 듣는 쪽이 백 배 정도 나았다.
수색대 지휘로 밤을 샌 터라 피곤했지만 당장은 마음이 심란해서 눕고 싶지도 않았다.
대운관에서 온 ‘문령’을 받은 후, 남의와 대운관 법군들은 문자 그대로 시현의 소맷자락에 매달렸다. 자기들과 함께 대운관에 가서 교문을 만나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시현은 단박에 거절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 심지어 그는 나를 초청하면서 내게 직접 서한을 쓰지도 않았다. 그런 비례에 내가 응해야 하는가?”
“제가 어사로서 전권을 받은 자이니 제게 모시라 한 것이 직접 청하신 것과 같습니다. 최대의 예를 다하라 친서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궤변은 그만두라. 실은 그대들도 아는 것이 아닌가. 지금 나와 그는 직접 대면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교연이 시현에게 직접 초청하는 서한을 보내지 않은 이유는 뻔했다. 호칭과 상하 관계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을 자칭한 이상 시현에게 위를 대하는 예우를 갖출 수는 없다.
하지만 멋대로 대등한 관계를 가정한 서한을 보냈다가 시현에게 거부당하면 원래도 부족했던 권위가 더 흔들린다.
결국 그는 휘하에게 예를 갖추게 하여 이 문제를 흐지부지하고 시현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려는 것이었다.
반면 시현 입장에서는 초청에 응할 이유도 교연이 문을 자칭하는 데 어울려줄 이유도 전혀 없었다.
시현은 교연이 정말 자신을 만나고 싶은 것인지, 그저 트집거리를 만들고 싶은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당장 시현이 교연을 교인이 아니라 그라고 에둘러 칭해주는 것만으로도 최대한 남의의 사정을 봐주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의는 단호한 거절에도 아랑곳 않고 애걸했다.
“제발 아량을 베풀어주십시오, 시문이시여! 위를 모시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면 저희가 교문께 크나큰 질책을 당할 것입니다.”
시현이 얼굴에 짜증을 드러냈다.
“내가 그것을 왜 신경 쓰겠는가? 그대들은 도대체 염치란 것이 없는가?”
남의와 법군들은 말을 못 하고 고개만 조아렸다. 시현이 힐난했다.
“그간 대운관의 면을 최대한 보아주려 하였으나 그대들이 이리 염치없이 나오니 나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대들은 이웃 지역의 어려움을 틈타 땅을 침탈하고 백성을 착취한 무뢰도당이다. 그대들이 돌아가 벌을 받든 벼슬을 잃든 내가 안타깝기라도 하겠는가?”
“저희도 명을 받았을 뿐입니다….”
“명을 받아 무엇을 하였는지를 돌아보란 말이다!”
시현은 호통을 치고 등을 돌리려 했다. 그가 읍성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 남의는 허락 없이는 시현을 만나러 올 수 없었다.
그때 남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 시문께서는 저희가 벽명관에서 물러나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습니까.”
시현은 멈춰 선 채 남의를 쏘아보았다. 남의는 고개를 못 들면서도 끝까지 말했다.
“시문을 모시고서야, 벽명관 각지에 주둔한 대운관군이 고개를 들고 대운관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저희 군은 도저히 벽명관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고개를 못 드느니 어쩌느니 명분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시현이 가겠다고 할 때까지 이 지역에 주저앉아 버티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대운관군이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지역에 끼치는 민폐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시현은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벽명관 속령을 돌아다니며 그자들을 전부 쫓아낼 수는 없어도, 이 벌판에 주둔한 수천 정도는 지금 당장 민폐를 그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부디. 부디 아량을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대운관의 땅인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며 소리쳤다. 시현은 쳐다보지도 않고 성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대운관군을 두고 와도 귀찮은 일은 읍성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입성을 허가받지 못한 남의와 법군들은 단구읍성이나 벽명의 방랑족 중에 연 닿는 땅인들에게 부탁하여 글을 보내고 읍소를 시켰다.
시현이 아무도 만나주지 않자 처소의 호위나 시중꾼에게까지 지인을 보내 통사정을 했다.
창희만이 면목이 없다며 시현을 보러 오지 않았다.
회담은 중지된 상태였지만 교연의 전갈이 오면서 의미가 없어졌다.
시현이 초청에 응하면 협약은 전면 철폐될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회담을 재개해 봐야 남의가 우는소리 하며 버티는 꼴만 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 다과상 앞에서 앉았다 누웠다 하며 재깔거리는 해성을 보고 있으면 지친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해성은 총치총령은 그만두고, 길사부에 들어가되 관성 밖의 치수를 담당하는 외길사가 되어 사방을 돌아다니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중이었다.
시현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끔 자기가 여행하면서 경험한 것을 몇 마디 덧붙였다.
해성의 납치 사건으로 난리가 난 동안에도, 단구 관아에서는 징발된 인부들의 명단 정리를 상당히 진행했다.
징발된 인부들 중 희망자는 내일 아침부터 순차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소릿골 사람들도 다들 귀향을 택했다.
타지의 광산으로 보내진 인부들에 대해서도 노역 해제를 요구하기 위한 절차를 창희와 다른 관인들이 밟고 있었다.
마력석 거래 제안을 가지고 떠난 이가 다천관에 도착하면 온성과 다천관도 움직일 것이다.
이제 대운관의 일방적인 전횡은 끝났다고 보아도 좋았다.
어쨌든 벽명관에서 한 일이 헛되지 않을 것 같아 시현은 마음이 좋았다. 아직 앞길을 정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이라면 함께 상의할 사람들이 있었다.
시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해성이 물었다.
“너 내 얘기 안 듣지. 졸려?”
“음. 조금.”
“사실 나도 졸려. 좀 잘까? 대청 건너가 자는 방이지?”
해성이 벌떡 일어나 침소로 건너갔다.
별채로 안 가고 여기서 잘 셈인가? 시현은 약간 놀랐지만 해성을 따라갔다. 이미 여행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자는 데는 익숙해졌다.
해성은 따라온 시중꾼을 마다하고 자기가 직접 요를 깔았다. 그러면서 어릴 때 자기 학비 때문에 가세가 기울어서 시중꾼을 못 썼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해성은 옷을 벗고 이불에 들어간 다음에도 계속 이것저것 떠들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격을 얻었으니까, 나도 엄마도 당연히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 이모가 어떤 자리든 일을 맡는 자리는 보상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자리를 보상으로 여기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어.”
“삼수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네….”
“그렇기는 해. 아, 졸리면 대답 안 하고 자도 돼. 근데 있잖아. 내가 이모한테 섭섭했던 게 뭐냐면….”
시현은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누구와 같이 자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자리에 누워서도 이렇게 쉴 새 없이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단은 할 말이 있으면 눕기 전에 다 했고 호란은 머리만 대면 자는 편이었다.
그래도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시현은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들었다.
* * *
다음 날도 대운관 사람들의 애걸복걸은 끊이지 않았다. 말을 전하러 온 벽명관 사람들도 몇몇은 내심 시현이 대운관군을 싹 데리고 가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표를 냈다.
시현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단구의 남은 일들을 정리했다.
시현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은 대운관이나 벽명관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시현이 부르기 전에 단이 호란을 데리고 찾아왔다.
“대운관에 가실 겁니까?”
자리에 앉자마자 단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얼굴과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 있어 시현은 괜히 주눅이 들었다.
돌아보면 단은 대운관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말을 바꿔서 가게 된다고 좋아할 리도 없었다.
“음. 슬슬 앞길을 결정해야겠지. 만일 경로를 여러 번 고쳐 짜게 되면 네게는 미안하다만….”
“그런 문제가 아닌 걸 아시잖아요. 대운관에 가실 겁니까?”
“아직 정하지 못했다.”
시현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내가 이 초청에 응하면, 어떤 방식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든 그건 교인을 문으로 인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원래는 내가 인정하고 말고 할 일도 아니다만… 어쨌든 세상은 그렇게 받아들이겠지.”
호란이 눈을 부릅떴다.
“그런 나쁜 사람을 문으로 인정해주면 안 돼요!”
“음. 착하고 나쁜 것과 문은… 사실 관계가 없지. 달하였다면 아무리 심성이 나빠도 세상이 다 인정하겠지만, 그이는 그러지 못한 걸 누구나 다 아는데 내 인정이 무슨 소용이겠느냐.”
호란은 자기가 뭔가를 헷갈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물었다.
“어? 윤지관에서 시험 본 사람들은 변고 후에 마력석으로 시험을 봤는데 격을 인정받았잖아요. 그것도 원래는 안 되는데 시문 님이 인정해주셔서 된 게 아니에요?”
“아니다. 그때 나는 그저 모양을 좋게 해주는 역할이었지. 격을 인정하는 권위는 서격원의 것이다. 서격원이 권위와 공정성을 보장하는 정식 시험을 치른 것이 중요하지 내가 있고 없고는 사실 상관이 없다.”
그 정식 시험의 권위와 공정성을 자기 맘대로 휘저었던 것은 다 잊어버린 얼굴로 시현이 말했다.
“다만 다른 격은 모두 서격원이 인정하고 권위를 보증하지만 문의 격만은 그럴 수가 없다. 교인이 대운관 서격원을 쥐고 흔든들 나올 것이 없으니 애꿎은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지.”
“그럼 문 격은 누가 인정하는 거예요?”
“누가 인정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달하면 달한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네…에?”
호란에게 시현의 말은 선문답으로만 들렸다. 혼란에 빠진 호란을 도와주기 위해 단이 대신 이야기를 이끌어주었다.
“전에 각 과목의 서격 기준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인의예지 네 격과 무에 대한 이야기만 있고 문에 대한 언급은 없더군요.”
“그랬을 것이다. 인의예지 중의 의, 예, 지는 각각 과목마다 정해진 기준이 있어서 법술로 그 기준에 맞는 위력을 보이면 격에 달했음을 인정받는다. 시험에 정해진 기준을 한없이 넘어선 위력을 보이거나, 이전의 법술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위력을 드러내면 극상에 달했다 하여 인이 된다. 셋 이상의 과목에서 극상에 달하면 무가 된다.
극상부터는 시험을 초월하여 서격원의 권위를 넘어서는 존재가 되지만, 그래도 인과 무까지는 시험에 응한 결과로 달하는 것이니 서격원이 인증한다. 하지만 문에 달하는 것은 시험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 문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호란이 물었다.
“정해진 조건이 있어서, 그 조건에 달해야 하는데….”
술술 말하던 시현이 문득 무엇을 깨달은 것처럼 말끝을 흐렸다. 흥미진진해하는 호란의 눈으로부터 시현이 시선을 피했다.
“다만 그것은 서격원의 비밀이다.”
“네?”
호란이 황당한 목소리를 냈다. 단마저도 인상을 썼다.
시현이 입가를 가리며 얼굴을 피했다.
“미안하다. 실은 내 주위 사람들은 거의가 알고 있어서 의식을 못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규정으로는 비밀이었다….”
“남들이 다 알면 저한테도 말해주셔도 되잖아요?”
“그것이… 역시 안 된다. 그 조건 자체가 함부로 입에 올릴 일이 아니라서 그렇다. 누구에게 문이 되라 말하거나, 공부하는 이들이 문을 목표로 삼는 것도 금기로 삼고 있다.”
단이 고개를 기울였다.
“쓸데없는 신성시가 아닙니까.”
“그런 면이 없지는 않지만 이유가 있어서 생긴 금기다.”
미안해하던 시현이 등을 세우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직접 말해주는 것은 안 되지만, 어떤 책에 나와 있는지는 알려줄 수 있단다. 호란아. 글씨를 배우거라.”
“시문 님, 지금 그거는 아니죠!”
호란은 반쯤 격분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