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 * *
공기가 내려앉았다.
돌 인간의 입에서 나온 별의 끝이라는 말에는 모두를 압도하는 무게감이 있었다.
시현이 소매 아래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가 긴장을 숨기지 못한 채 물었다.
“…심산인가? 심산이 너희가 온 세상의 기운을 모아들인 곳인가?”
그곳이야말로 일행이 남운관서부터 줄곧 찾아온 장소였다. 시현으로서는 입이 마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운모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아. 그런 엄청난 걸 사람이 사는 땅에 숨겨 두긴 어렵지.”
“그러면….”
“그 장소에 어느 정도 기운을 모아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이번 일을 위해서가 아니야. 예의 장소는 이 시대는 물론이고 지난번 문명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장소였어. 우리 중 몇몇의 묘지이기도 했고.”
시현은 운모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의 심각한 얼굴을 본 운모가 웃음을 지었다.
“사정을 알면 너희도 그 장소의 필요성을 인정할 거고, 그곳을 두고 다툴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만… 너는 직접 네 눈으로 보지 않으면 우리 말을 믿지 않겠지.”
운모는 장포 안에 찬 작은 주머니에서 납빛의 작은 패 하나를 꺼냈다. 크기는 작았지만 감람이 쓰던 봉인고의 열쇠와 비슷하게 생긴 구석이 있었다.
“받아.”
운모가 훌쩍 패를 던졌다. 호란이 앞으로 한 발 나서며 패를 공중에서 낚아챘다.
운모가 말했다.
“너희가 오지 말았으면 좋겠고, 찾아내지 못했으면 좋겠지만… 만일 예의 장소에 찾아오게 되면 그걸로 열고 들어와. 다천관에서처럼 아무 데나 마구 때려 부수지 말고.”
시현은 의혹을 드러내며 물었다.
“이건 열쇠인가? 우리를 안으로 들이겠다는 건가?”
“그래. 어차피 감람이랑 동료 몇몇은 너와 이야기해보고 싶어 하니까.”
“감람? 그는 분명 죽었을 텐데?”
“그것도, 와 보면 알게 될 거야.”
운모의 얼굴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웃음이 떠올랐다. 목까지 뻗은 운모의 기결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뭐, 네가 살아서 심산까지 올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시문 님!”
살기를 느낀 호란이 경고 삼아 소리치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호란이 운모에게 다다르기 전, 하늘과 땅이 크게 진동했다. 발밑의 지면이 쩍쩍 갈라지며 운모와 일행 사이를 갈라놓았다.
하마터면 균열 틈으로 빠질 뻔한 호란은 급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화하라!”
시현의 주문과 함께 두 줄기의 벼락이 운모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운모가 팔을 휘젓자 소매에서 푸른 빛줄기가 일어나며 벼락을 빨아들였다. 운모가 유쾌한 어조로 외쳤다.
“나하고 놀 거야? 난 그것도 괜찮지만, 너는 신경 쓸 일이 많을 텐데?”
지진이 일어난 곳은 운모의 발밑만이 아니었다.
대운관군이 자리잡은 장소에서도 땅이 요동치며 갈라져 깊은 균열을 만들었다.
이미 운모가 한 번 흔들어 놓아 약해진 지반은 사정없이 깨어지고 무너지며 병사들을 빨아들였다.
성한 땅으로 몸을 피한 이들에게도, 어느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거석들이 덤벼들었다.
“이런…!”
시현이 마력석 대련을 몸 가까이 당겼다. 그가 무릎을 꿇고 흔들리는 지면에 손을 대며 외쳤다.
“유백! 단을 부탁한다! 나는 지기를 진정시키겠다!”
“예!”
시현은 한 손으로 대련을 안은 채 주문을 읊기 시작하려 했지만 손을 댄 바로 그 장소가 쩍 갈라지며 지면이 기울었다.
달려온 호란이 시현을 안고 무너지는 땅을 차 몸을 피했다.
“잘해봐!”
운모는 놀리듯이 말하고 발밑의 균열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금방 땅이 쿵 닫혔다.
어느새 금강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시현은 입술을 깨물며 주위의 기운에 집중했다.
금강의 힘인지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모를 거대한 기운이 땅 아래에서 놀란 말처럼 날뛰고 있었다. 시현이 가진 마력석만으로는 그 기운을 다 억누를 수 없었다.
“단! 수원을!”
시현이 유백과 함께 있는 단을 향해 소리쳤다.
“가까이에 수원이 없느냐? 이 근방에서 가장 물이 많은 곳이 어디냐?”
“있는데요! 제길, 온통 흔들리니까 방향을….”
단이 옆에 있는 유백에게 급히 물었다.
“녹로읍성이 어느 쪽인지 아십니까?”
“저쪽이다!”
유백이 바로 구릉 너머 남동쪽을 가리켰다. 단이 곧바로 같은 곳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쪽입니다! 저쪽으로 사십 리만 가면 그 너머가 샘과 초지입니다!”
“지운이다…!”
시현은 단이 가리킨 곳을 향해 한 팔을 뻗고, 반대쪽 팔을 요동치는 전장을 향해 둔 채 주문을 읊었다.
“육신 잃은 혼이여. 길을 내니 흐르라.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멸함 없는 정수에서 유한의 허울로, 따르라, 흐르라. 네 그릇을 찾으라…!”
지진은 한 번에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는 뚜렷했다.
파괴적으로 날뛰던 기운이 지하 깊은 곳의 수맥을 타고 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일단 생겨난 흐름은 순식간에 빨라졌다. 기운이 물을 부르고 물이 기운을 부르는 순환이 일어나면서, 먼 곳의 수원이 적극적으로 전장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그와 함께 땅의 요동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현이 팔을 내리고 호란에게 말했다.
“기운의 흐름이 순리를 따르기 시작했으니 지진 쪽은 이제 괜찮다. 남은 것은 거석이다만, 사방에 기운이 거칠어서 멀리서 읽기 어렵다. 전장으로 가자.”
“네!”
호란은 바로 시현을 안아 올려 전장으로 뛰었다. 지진이 잦아들면서 대운관군도 혼란에서 빠져나오고 있었지만, 거석에 제대로 맞서는 대열은 일부에 불과했다.
단이 유백에게 말했다.
“전 이제 괜찮습니다. 놔두고 나리님께 가주십쇼.”
“알았다!”
유백도 바로 움직였다.
세 사람이 전장에 뛰어들었을 때는 지진은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지반이 온통 무너져 발밑이 불안했지만 그것은 거석도 마찬가지였다.
“열파하라!”
시현의 외침과 함께 전장 한복판에서 날뛰던 큰 거석 하나가 박살 났다.
무너진 구축물 주위에 모여 있던 법군들이 시현을 알아보고 구세주를 부르듯 외쳤다.
“시문이시여!”
“시문이시여!”
시현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외쳤다.
“정신 차리고 적에 맞서라! 공격 법사들은 의법사를 보호하고 부상자 구조부터 원호하라!”
“예, 예!”
난리통에 지휘 체계가 사라지고 공황에 빠져 있던 법술사들이 하나둘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인 병사들은 갈라진 땅 틈에 떨어지거나 토사에 깔렸다 해도 쉽게 죽지 않았다. 대처만 제대로 하면 구할 수 있는 인명이 많았다.
법군들에 비해 하늘인 병사들은 훨씬 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도 지진으로 흩어지고 제 대열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각자 근처에 있는 사람끼리 짝을 맺어 부상자를 구조하거나 거석을 막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었다.
무리의 맨 바깥, 남쪽 최일선에서는 큰 무리의 하늘인들이 불완전하게나마 전열을 유지한 채로 다가오는 거석들을 막고 있었다.
전선을 우회하거나 뚫고 들어온 거석들도 적지 않았으나 그래도 거석 무리의 태반은 하늘인 대열에 가로막혀 있었다.
시현이 호란에게 말했다.
“호란, 안쪽은 내게 맡기고 너는 전방 쪽에 가거라! 내 호위는 유백이 있다!”
“알겠어요. 이거, 시문 님 마력석!”
호란은 어깨에 멨던 돌 자루들을 유백에게 건넸다. 유백이 자루를 받아들자 호란은 몸을 솟구쳐 전선으로 달려갔다.
전열 맨 앞에서는 대장석에서 한두 척밖에 안 모자라는 커다란 거석이 대열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왼몸 하나! 들어간다!”
호란은 크게 외치며 무리를 뛰어넘었다.
선두에서 거석의 팔을 막아내고 있던 장신의 남자가 호란을 알아보고 놀란 목소리를 냈다.
“너는…!”
호란은 바닥을 딛고 뛰어오르며 거석의 기결을 강하게 돌려찼다.
기결 한가운데 커다랗게 금을 낸 거석이 뒤로 기울었다.
“쳐라!”
선두의 남자가 외쳤다.
놈을 상대하고 있던 대운관군이 한 번에 공격을 퍼부었다.
기세등등하던 거석은 순식간에 조각조각 난 돌덩이로 변했다.
다음 적을 찾아 움직이려는 호란을 남자가 불렀다.
“호란! 시문께서 친히 오신 건가? 정말로?”
태청은 얼굴도 의복도 온통 피에 뒤덮여 평소의 멀끔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특유의 용암 같은 기운은 전장의 폭풍 속에서도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호란은 무시하고 그냥 싸우러 갈까 하다가 못 한 말이 생각나서 얼른 말했다.
“오셨어! 빚은 네가 진 거야. 그리고 나는 아직 너한테 유감 있어!”
사투를 지속하느라 악에 받쳐 있던 태청이 순간적으로 얼빠진 얼굴을 했다. 그러든 말든 호란은 다시 눈앞의 거석 무리를 향해 돌격했다.
후방에서는 시현의 주문에 거석이 깨져나가는 파열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전장은 점차로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 * *
황야에 남은 거석을 모두 처치하고, 지반이 안정된 장소까지 이동해 군영을 차리고 나니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시현은 군영 한가운데의 지휘부 막사에서 법군들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어려운 싸움에 이기고 무수한 거석을 물리친 뒤였으나, 막사 안은 승전을 축하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시현 앞에 선 법군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시현이 날카롭게 물었다.
“지휘부는 다들 도망쳤다는 말이냐? 군의 태반이 전장에 남아있는데도?”
“저, 저희도 지휘부입니다….”
총사령과 사령이 머리를 조아리며 면목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격도 지위도 낮은 이들로, 전시 중 상황이 급박할 때 지휘를 대리하는 역할이지 군을 책임지는 이들은 아니었다.
시현의 얼굴이 더 굳어진 것을 보고 총사령이 변명했다.
“처음부터 장군석이 나타나면 단계적으로 퇴각할 계획이었습니다. 아마 지진 때문에 명령에 혼선이 생겨….”
“혼선이든 무엇이든, 계획대로 퇴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뒤만 돌아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일 텐데.”
총사령은 대꾸를 못 했다. 시현이 다시 다그쳤다.
“결국 장군석과 돌 인간이 나타나자, 가장 강력한 법술사부터 순서대로 도망쳤다는 것이 아니냐. 그것이 너희가 말하는 단계냐?”
“시문이시여, 그것은….”
법군들이 하나같이 말을 못 하고 쩔쩔매고 있는데 뒤에서 키 큰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가 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시문께서 저희를 구하셨습니다. 첫비 같고 강물 같은 은혜에 머리를 들 길이 없습니다…!”
엎드린 것은 태청이었다.
머리에는 평소 두르던 화려한 천 대신 붕대를 친친 감고 있었다.
태청이 하는 것을 보고 법군들도 남은 구멍이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막사 안의 모두가 흙바닥에 너나없이 엎드렸다.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이 시문의 은혜입니다!”
“대를 이어 기억할 은혜를 입었습니다!”
치사는 끝도 없이 이어져 그칠 기색이 없었다. 결국 시현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되었다. 사례의 말은 이미 넘치도록 들었다! 그만두고 모두 일어나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