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 * *
법군들은 겨우 머리를 들었으나 일어서지는 못했다.
태청이 계속 고개를 숙인 채 큰 소리로 말했다.
“관성을 침탈하려는 적의 무리가 저리 무수하고 강성한데, 관성을 지키고자 결사의 각오로 출정한 저희가 어찌 살아 돌아가기를 생각했겠습니까? 다만 상황이 너무 위태로우니 상부는 관성에 전황을 알려 2차전을 준비하고, 저희는 한시라도 더 오래 적의 발을 묶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저희가 미력하여 소임을 다하지 못할 것만이 한이었는데, 위께서 손을 아끼지 않으신 덕택에 적을 멸하고 비루한 목숨까지 건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감읍할 따름입니다!”
“만대에 복을 입으소서!”
땅인들이 다시 머리를 숙이며 감사와 찬탄을 되풀이했다.
시현은 태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현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이 태청임을 모르는 다른 땅인들에게는, 태청이 도망친 윗사람들을 감싸려는 것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대운관에서는 적의 규모가 얼마나 막대한지 출정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고 태청은 그 사실을 시현에게 미리 밝혀 두었다. 이를 아는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들렸다.
지휘부는 전위 부대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싸움에 몰아넣었다.
상부는 전황을 보고 물러나 2차전을 대비하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고, 이 싸움의 목적은 그저 시간을 버는 것뿐이었다.
시현이 와 주지 않았으면 그나마도 제대로 못 하고 개죽음을 했을 것이다.
지휘부의 저의를 일러바치고 제 버려진 신세를 한탄하는 틈틈이 결사의 충정까지 과시하는 것이 참으로 알뜰살뜰했다.
시현은 나오는 한숨을 참았다.
어쨌든 알고자 한 상황은 알았다. 상부가 고의로 도주했다면 남은 법군들도 버려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전장에 남은 이들에게 도망간 자들 일을 질책하는 것도 경우에 맞지 않았다.
시현이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말했다.
“되었으니 일어나라 했다. 부상자들은 잘 수습되고 있는가.”
질책이 끝난 것을 알고 사람들이 주춤주춤 일어났다. 총사령이 한 발 나와 말했다.
“의법사와 의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찰병의 보고로는 아직 황야를 돌아다니는 거석 무리가 있어 마력석을 많이 소모하기 어렵습니다.”
“목숨이 위중한 자가 있다면 마력석을 아끼지 말라. 거석이 나타나면 내가 처리하겠다.”
총사령의 얼굴이 밝아졌다.
“지니신 마력석이 남아 있습니까?”
“약간은. 잔당을 처리할 정도는 될 것이다.”
올 때 가져온 마력석은 지진을 가라앉히는 데 태반을 썼다. 하지만 보통 거석을 상대하는 거라면 어차피 마력석이 필요 없었다. 유백이 메고 다니던 돌 자루만 잘 건사했다면 이후로도 위장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나이 든 사령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쭙기 황송하오나… 시문께서 어찌 여기까지 걸음하셨습니까? 호위도 한둘밖에 거느리지 않으시고….”
다들 궁금했던 듯 눈빛이 초롱해졌다.
시현은 잠시 말이 막혔다.
그야 병사들의 목숨을 살리고자 왔다. 하지만 그 말은 너무 당연한 것이기에 도리어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뒤집으면 교연이 병사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것을 지적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최대한 멀리서 원호만 해주고 슬그머니 돌아갈 셈이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일이라도 교연과 이익이 맞으니 잡아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운모가 떠벌리는 바람에 계획이 망그러졌다.
거석을 전부 쓰러뜨린 후에도, 지휘부가 통째로 실종되어 우왕좌왕하는 꼴을 보다 못해 군을 수습하는 데 개입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둘러댈 말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침묵이 길어지면 오히려 난처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시현은 일단 입을 열었다.
“산책을 하다가… 나온 김에 왔다.”
“예?”
“그렇게 된 줄 알거라.”
뒤에 있던 호란마저 방금 것은 무리수라고 생각했으나 감히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시현은 서둘러 이야기를 얼버무리고 병사를 잘 다독이라 당부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란은 안타까운 미소를 짓고 있는 태청을 한 번 흘겨보고 시현을 따라 막사를 나왔다.
* * *
“그대들이 낮에 뭐라 했던가? 시문은 잠시 산책을 나간 것뿐이라고? 참 대단한 산책이군 그래.”
교연이 당 아래를 곁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 위 상석에 몸을 기대고 좌우에 부하들을 세워 둔 모습은 마치 어좌 아래 신료들을 세워둔 왕과도 같았다.
교연은 방금 전장에서 들어온 보고를 받은 참이었다. 시현의 활약상을 낱낱이 알고 나니 기분이 좋을 턱이 없었다.
결국 낮에 이미 질리도록 질책을 당한 책임자들이 다시 불려왔다. 내궁 경비부장, 외궁 경비부장, 수문을 책임지는 방위대 대장이 순서대로 박살이 났다.
또다시 차례가 돌아온 내궁 관리관과 궁내서 관인이 허둥지둥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소, 소신들이 실로 어리석었습니다!”
“차림새도 가볍고, 짐도 제대로 가진 것이 없어, 대운관 밖으로 나가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그래. 그대들이 몇 번이고 말했지. 시문은 거의 빈손이나 마찬가지로 궁을 나섰다고.”
교연이 손끝으로 보고서를 톡톡 두드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보고를 보니 시문의 호위가 몇 자루나 되는 마력석을 짊어지고 다녔고, 발휘한 위력을 보면 특상품일 게 틀림없다는데. 그 돌들이 대체 어디서 났을까?”
“소, 소신들로서는 도저히….”
“궁 밖에서 구한 것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을 누가 못 하나? 궁 밖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를 말할 사람이 있어야 할 게 아니야!”
교연이 언성을 높이며 당 아래 사람들을 훑어봤다. 좌우에 늘어서 있던 관인들이 모두 목을 움츠렸다.
시간은 한밤중이었지만 태화관의 대회의실에는 십 수 명의 고관들이 모여 있었다.
시현이 제 근시 둘과 유백을 데리고 성을 나갔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 이들 모두가 가시방석에 오른 채 태화관에서 대기 중이었다.
한 시진 간격으로 전장 쪽의 보고가 들어올 때마다 다들 간장이 오그라붙는 것은 덤이었다.
잠들지 못하는 것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태화관 전체가 방마다 휘황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것은 교연이 가진 수많은 강박 중 하나였다.
교연은 불면이 심해 밤에 깨어 있거나 침소를 나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등불을 켜고 끌 때마다 자신이 태화관의 어느 방에서 무얼 하는지, 특히 침소가 어디인지가 바깥에 드러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가족과 사용인의 침소를 제외한 모든 방에 불을 밝혀 두게 했다.
사람들은 교연이 언제 자는지, 언제 깨어 있는지 아무도 몰랐고 그가 원하면 밤이든 새벽이든 불려 나와야 했다.
다만 오늘 밤 회의실에는 평소 이상의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교연은 평소에도 용서가 없는 사람이었으나 완씨 시문의 일이 되면 항상 한술을 더 떴다. 아무리 작은 일도 큰 사달로 번질 수 있었다.
당 아래 고개를 숙인 관인들은 모두 교연의 최측근이었기에 이를 잘 알았다.
“미행을 붙이면 무얼 하나? 밀정이란 자들은 대운관 초행인 무리도 못 따라가서 궁을 나서자마자 사람을 놓치고, 경비군 머리라는 자는 미행을 들키고 오히려 시문을 따라 성을 나가? 내가 정녕 그대 같은 이들에게 이 성을 맡겨야겠는가?”
교연의 목소리에 점점 더 날이 섰다.
결국 긴장과 두려움을 버티지 못한 관인 한 사람이 앞으로 뛰어나와 무릎을 꿇었다.
“교문이시여,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내통자가 있는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분위기가 차게 가라앉았다. 고변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보고를 보면 시문이 한 일이 하나같이 어마어마하여, 미리 빼돌려둔 돌이나 밀거래 시장에서 얻은 돌 따위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행장을 준비한 남방군 보급관 따위가 준비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닙니다.
누군가 군이 보유한 상급품에 손을 댄 것이 틀림없습니다. 말할 것 없는 대역입니다! 당장 8개 군의 군수창고와 왕실 수장고를 전수조사하여 사정을 밝혀야 합니다!”
고변자의 말이 이어질수록 둘러선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대역은 완씨 시문과 함께 교연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일 중 하나였다.
일단 대역 혐의로 조사가 시작되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실제 내통자가 있든 없든, 빼돌려진 물자가 있든 없든 피를 보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무슨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탓할 사람을 찾으려고 이루어진 발고인 만큼, 교연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무작정 피해가 번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교연은 그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과장하는 변고자의 태도에 흥분이 식은 듯했다.
“그것은 아니다. 시문에게 그렇게까지 많은 돌은 필요 없어.”
교연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완씨 시문은 원래도 작은 기운을 매개로 큰 기운을 다루는 것이 특기였다. 역리를 순리처럼, 순리를 역리처럼 다루고 작은 불티 하나로 마침내 산 하나를 다 태운다…. 스승님이 몇 번이고 칭찬하시며 그 이치를 따라보라 권했었지. 비슷한 시늉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야.”
교연의 말은 마치 시현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사람들은 수긍하는 모양을 보일 수도 없고 부정하는 말을 하지도 못한 채 서로 눈치만 보았다.
교연이 겁에 질린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왜 다들 그런 얼굴들이야? 같은 마력석으로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다든가 하는 일 따위가 이제 와서 왜 중요하지? 어차피 내가 훨씬 더 많은 마력석을 가지고 있는데.”
“그, 그렇습니다!”
“실로 옳으십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허둥지둥 동의의 말을 했다. 교연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대들은 문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군.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시문이 얼마나 강한지 따위가 아니야. 그것은 애저녁에 알던 일이었다. 그가 가진 돌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귀한지도 그리 크게는 관심이 없다. 나는 단지 시문이, 다른 곳 아닌 이 대운관에서, 그 잠깐 사이 어디를 다니고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 그것을 내가 모른다는 것이 기가 막히는 거야!”
“화, 황공합니다!”
“신들이 일을 다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허둥지둥 꿇어 엎드렸다.
교연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무리 중 하나에게 손짓했다.
“처소 시종장이 다시 말해 봐라. 시문이 처음 대운관에 올 때 가져온 마력석을 미리 밖으로 내보내두지 않은 것은 확실한가?”
“예. 낮에 처소를 나서기 전, 시문의 종자가 저를 불러 귀중품을 전부 확인시키고 제 눈앞에서 봉인하며 누가 손대는 일 없게 하라 신신당부했습니다.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처음 짐을 풀 때 본 것에 비해 마력석 함의 내용물에 큰 차이는 없어 보였습니다.”
“흠.”
교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들어 넘겼지만 이제 보니 그것도 이상하군. 어째서 굳이 저들이 지닌 물건을 확인까지 시켰을까?”
“차마 아뢰옵지 못할 일이옵니다만….”
시종장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 종자는 처음부터 한시도 처소를 비우지 않고 소지품을 하나하나 관리하는 모양이, 저희가 짐에 손을 댈까 노골적으로 의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짐을 확인하는 중에는 넌지시 위께서 평소 명령패를 몸에 직접 지니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명령패?”
교연의 표정과 음성이 순식간에 표독스러워졌다. 대회의실은 서리가 내린 듯했다.
“명령패라니. 그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는가?”
(계속)